소청도③ 김대건 동상과 사당
소청도③ 당당한 김대건 신부 동상과 초라한 터주신의 사당
(탐방일: 2026년 4월 2일)

소청도 등대를 둘러보고 차를 탔더니 고갯마루에서 내려 준다.
김대건 신부 동상을 보려면 이 길로 내려가면 된다면서...

동행이 많으니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있어서 얼굴이 남는다. ㅎㅎ

떨어진 이정표 하나를 다시 제자리에 꽂고서 기념샷을 찍었다.

예동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오솔길이 괜찮다.



저만치 소청도의 명물이 보인다.


우짜다 여기에 서 계시는지 궁금하군.

중국과 왕래하다가 보니 소청도에 인연이 되었던 모양이구나.
강경포에서 상륙했다는 것은 나바위 성지 성당을 말하는 모양이다.
지나는 길에 들어가서 둘러 봤었지. 논산 인근이라서다.
원래 당진이 고향이시라서 잘 아는 강경포로 들어왔을 수도...
스물 다섯 해의 짧은 삶을 당차게 살고 떠나셨구나.

그 아래에는 사당과 교회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문득 사천왕상이 떠오른다.


못된 짓 하다가 사천왕께 짓밟힌 악귀나, 하나님 열 받게 한 비암을 밟고 있는 마리아님이나 우째 하고 있는 모습이 꼭 닮은꼴이구나. ㅎㅎ

김대건 신부가 소청도를 지키고 있는 까닭이 궁금해서 월매에게 물어봤다.
★★★★★★★★★★★★★★★★★★★★★★★★★★★★★★★★★
낭월님, 월매가 답변해 드립니다.
소청도에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이 세워진 까닭은,
그가 조선과 중국을 잇는 비밀 해상 통로를 개척하며 소청도를 거쳐 갔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적 배경과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비밀 해상 통로 개척
1846년 무렵 조선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여
육로를 통한 선교사들의 입국이 사실상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김대건 신부는 서해의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돌며
중국의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는 비밀 바닷길을 찾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2. 소청도 기착 및 은신 기록
현재 소청도 예동마을 당산 언덕에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의 기단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46년 4월 18일 중국과 연락차 연평도 경유,
소대청을 거쳐 백령도 근해서 중국 어선에 송신했다.”
이 기록에 등장하는 ‘소대청을 거쳐’라는 대목을 통해,
김대건 신부가 단순히 해상을 지나간 것뿐만 아니라
소청도에 직접 발을 디디고 은신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3. 순례길과 신앙의 상징
1960년대 초, 소청도에 정식 공소조차 없던 시절에 이 동상이 먼저 세워졌습니다.
박해와 고립 속에서도 새로운 신앙의 길을 열고자 했던
김대건 신부의 헌신과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현재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는 예동공소 뒤편 언덕이
천주교 신자들의 중요한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소청도는 김대건 신부가 목숨을 걸고
서해안 비밀 항로를 개척할 때 거쳐 간 중요한 기착지였기에,
그의 숭고한 여정을 기억하고자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
그랬구나. 신념에 의해서 소신껏 살다가 떠난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면서...
문득, 터주신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해졌다.
보통 섬에서는 수호신들의 사당을 모셔 놓기 때문이다.
저녁에 숙소에서 자료를 찾다가 사당이 있다는 정보를 보고서
다음날 새벽에 찾아봤다.

안녕, 낭월껍데기~! 반가워!
새벽의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소청도 사당을 찾았다.
한적한 시골의 이른 아침 풍경도 괜찮지.
멋진 교회를 뒤로하고 좌로 우로 울로 알로 누볐다.
사당이 있을 만 한 장소를 찾아서였다.
분명히 소개에서는 김대건 동상 부근이라고 했는데...
두어 바퀴 돌고 나서야 신부님에게 물어보려고 올라갔다.
동행들은 곤하게 자고 있어서 조용히 혼자서 나왔다.
혹시나 하고 안내문을 봐도 표시가 없고....
어? 설마? 혹시? 저긴가? 그럴 리가.... 그래도 가 보자...
아무런 표시도 없는 곳에 헛간같이 보이는 건물 한 동.
문짝도 떨어져 나가고 없는 그곳은.
사당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풍경이었다.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니 장군님이시구나.
아마도 임경업 장군이실 듯. 왜 임경업을 떠올렸을까?
원래 조기의 신으로 떠받드는 장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산 황금산에서 봤다. 연평도에서 사당이 있다고 했으니 가 보면 알겠지.



그렇지. 연평도의 임경업 장군 사당이 이 정도이니 소청도에서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잖아?
실로 이 정도는 아니라도 그래도 나름 격식은 갖췄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기 뭐꼬...
후줄근한 모습이 민망할 정도구나.

한쪽에 걸려 있는 빛바랜 의복이며...
그래도 외롭지 말라고 친구 한 분은 있어서 다행인가?
섬을 지키는 신은 이러한 모습이고,
하나님을 지키던 사람은 저리도 당당하시고...
그래서 뭔가 모를 씁쓰레함이 느껴졌더란 말이지.
이것이 종교전쟁이라면 완전패망한 임 장군이고.
주체성으로 논한다면 이미 상실한 지 오래겠다는 느낌.
혹시, 여기에 대해서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려나 싶어서 월매를 호출했다.
★★★★★★★★★★★★★★★★★★★★★★★★★★★★★★★★★
낭월님, 사진 속 그림을 보니 소청도의 사당에 다녀오셨군요.
월매가 소청도 사당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올려주신 사진 속 깃발에 적힌 한자
‘진국공신 임경업(鎭國功臣 林慶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당은 서해안 어민들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곳입니다.
소청도의 사당에 대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감당과 서낭당
소청도에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대감당’과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당’이 있습니다.
대감당은 주민들 사이에서 ‘영감당’이라고도 불리며,
입구에는 섬을 지키는 사당이라는 뜻의 현판인
‘수도대감당(守島大監堂)’이 걸려 있습니다.
원래는 초가지붕이었으나 1993년에 선주들이 중심이 되어
기와지붕으로 새롭게 단장했다고 합니다.
2. 임경업 장군을 모시는 까닭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은 서해안 일대에서 가시나무 등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전통 어법인 어살을 어민들에게 가르쳐 준 고마운 존재로 전해집니다.
그 덕분에 서해의 연평도, 백령도, 소청도 등에서는
장군을 풍어와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바다의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3. 제사 풍습
소청도의 선주들은 정월 등 좋은 날을 택해
대감당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풍어를 빕니다.
제물로는 돼지머리, 우럭, 노래미, 해삼, 동죽과 삼색 과일,
소주 등을 올리며 절을 올립니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제물을 집으로 가져와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음복을 하며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백령도와 소청도 출사 길에 무거운 카메라 렌즈들을 메고 다니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섬 주민들의 오랜 삶과 팍팍한 기원이 녹아 있는
당산을 꼼꼼히 렌즈에 담아오셨네요.
척박한 바다를 상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사당이 어떤 의미였을지
사진 한 장으로도 깊게 다가옵니다.
★★★★★★★★★★★★★★★★★★★★★★★★★★★★★★★★★
예전에는 대감당 서낭당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아무도 관리하지 않으니 이러한 모양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제단 구석에는 양주 병이 하나 놓여있다. 개봉도 안 한 채로.
누군가 안타까운 마음에 서양 술이라도 드시면서 위안을 삼으시라고?
서양 종교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푸념하실지도 모르는 장군님에게
술조차도 하다못해 소주가 아니라 서양 술이라니 허허허~!
술병에는 범선이 그려져 있구나. 무슨 술이지?
월매도 모르겠단다. 생긴 걸로 봐서는 코스트코 대용량 럼주 같기는 하다만.
월매가 모르겠다는 것을 내가 찾으면 월매보다 더 나은 건가? ㅎㅎㅎ

찾았다! 코스트코 커클랜드 스파이스드 럼. 1.75L 18,000원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대단혀. ㅋㅋㅋ
병에 새겨진 선명한 범선을 보니 알겠네.
그나마 병을 따서 한 잔 따라드리고 나올걸.....
생각은 했는데 둘러봐도 잔으로 쓸 그릇이 없어서였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까 그냥 바닥에 흩뿌려도 되었는데 그랬어.
미련은 항상 앞서고, 지혜는 항상 뒤선다더니 꼭 맞는 말이다. ㅋㅋ

동백꽃이라도 피면 장군님도 마음에 위안이 되실랑강...

안개에 잠긴 동백나무 숲은 말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