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9] 제45장. 만행(漫行)
14. 무의식계(無意識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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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진인(眞人)은 사람이 볼 수가 없는 것조차도 능히 볼 수 있다’고 하면 그 말을 믿겠나?”
“지금까지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당연히 그것을 믿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창은 선생님의 호칭이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승님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하충 스승님과 같은 반열이거나 더 위에 머무르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이기도 했다.
“얇은 종이 한 장만 눈앞에 있어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는 인간의 눈과 개는 당연히 맡을 수가 있는 냄새도 전혀 알 수가 없는 인간의 코를 생각해 본다면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감관(感官)에 갇혀서 우주에서 들리는 소리며 빛이며 냄새를 어찌 상상이나 하겠느냔 말이네.”
“과연 그렇겠습니다. 오늘에서야 오감(五感)의 의미가 모래로 지은 집과 같다는 것을 사무치게 깨닫습니다.”
“과거에 오랜 세월을 피나는 수행을 통해서 직접 겪어 보고 깨달은 현자들이 기록해 놓은 것조차도 전혀 믿지 못하는 인간이야 누군들 가르칠 것이며 부처가 온다고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저 하근기(下根機)는 그런 말을 들으면 크게 웃을 따름이고, 중근기(中根機)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상근기(上根機)가 되어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 말이네.”
“우창도 알 것 같습니다. 그 말의 뜻을 알겠습니다.”
“부처가 극락세계(極樂世界)에 대해서 말했을 적에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했다고 하던가?”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사리불(舍利佛)과 같은 아라한(阿羅漢)조차도 말은 믿지 못하겠으나 부처를 스승으로 믿는 이유로 해서 그 말도 믿을 뿐이라고 했다니 어떤가?”
“과연 사리불과 같은 십대제자(十大弟子)조차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 나머지 보통의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나 싶습니다.”
“안다는 것에도 상중하가 있다는 것을 말해 보겠나?”
파향의 갑자기 우창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창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잠시 생각해 보고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우창이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말을 들으면 바로 깨쳐서 아는 것이 상(上)이고 믿음으로 인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중(中)이며 말을 듣고서도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下)가 된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위에 최상(最上)이 있다는 것은 모르겠는가?”
“최상은 또 어떤 것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말하기 전에 말을 듣고 보여주기 전에 보며 들리기 전에 듣는 것을 최상이라고 한다네.”
“혹시 스승님의 말씀은 조짐(兆朕)을 가리키는 것인지요?”
“조짐이라고 하는 것도 최상은 아니지. 조짐은 알 수는 없지만 뭔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말이네. 가령 말이네.”
이렇게 말한 파향이 찻잔을 집어 들고서 말했다.
“이것은 실제인가? 아니면 조짐인가?”
“그야 실물인 찻잔을 들어 올리셨으니 실제입니다.”
“조짐을 이렇게 실제처럼 본다면 어떻게 되겠나?”
우창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조짐을 조짐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것이 실제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낀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본 파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개가 멀리에서 나는 미미한 향을 맡으면서 그것은 실제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전혀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키우는 개가 코를 벌렁거리는 것을 보면 무슨 냄새가 나는가 보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비유를 들면 이해가 되겠나? 심지어 영혼에게서 풍기는 냄새까지도 맡는다는 말도 있는데 들어 봤는가?”
파향의 설명을 듣고서도 확연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느낌은 들었다. 대략 그런 의미일 것으로 짐작하고서 대답했다.
“우창이 참으로 우둔하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분명하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짐작으로만 느껴지니 말 입니다.”
“괜찮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지. 허허허~!”
“그동안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려고 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만물의 영장이니 하는 말은 얼마나 오만하고 옹졸한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를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래서 장자도 인간이나 길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는 것도 공감이 됩니다.”
“나도 놀랐던 이야기도 있는데 들어 보겠나?”
“아니, 스승님께서 놀랐다고 하신다면 당연히 그 내용이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어서 들어 보고 싶습니다.”
“인간의 몸속에는 다른 생명체가 들어와서 살고 있다는 것을 나도 나중에야 알았다네.”
“혹시, 회충(蛔蟲)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몸속에서 영양분을 훔쳐 먹으면서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스승님께서 나중에 알게 되셨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 그것도 있었구나. 허허허~!”
이렇게 웃은 파향이 차를 한 잔 마시고서는 말을 이었다.
“피부(皮膚) 속이나, 간담(肝膽)의 속이나 힘줄의 속에는 같은 내 몸인 듯하지만 전혀 다른 그러니까 외부에서 들어온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말이네. 이게 믿어지는가?”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몸 안에 있다면 내 몸이 아닙니까? 말씀을 들으면서도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이잖은가. 서인(西人)들은 파고드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조차도 알아낸 모양이네. 먼지보다도 더 작아서 미세(微細)를 넘어서 초미세(超微細)라고 할 정도의 육안(肉眼)으로는 도저히 볼 수가 없는 존재가 있다는데 그 이름은 사립체(絲粒體:미토콘드리아)라고 한다더군. 그러니까 실처럼 생겼는데 알갱이로 보인다는 말인데 형체가 있다는 것이니 얼마나 놀랍냔 말일세. 세상은 참으로 경이롭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삼진이 합장하고 끼어들었다.
“문득 말씀을 들으면서 화엄경의 이치가 떠오릅니다.”
“화엄경이라니 불경을 말하는 건가? 그곳에 뭐라고 써놨단 말인가?”
“예, 다른 것은 잘 모르겠으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듣고 보니 먼지보다 더 작은 생명체가 있다는 말씀이니 그 뜻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과연 그렇구나. 화엄경이라는 말은 들어봤네만 그런 구절이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여합부절(如合符節)이로구나. 놀랍군.”
“일미진(一微塵) 속에 우주(宇宙)가 들어있다는 말이 아무래도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과연 그것이 사실과 같다는 것을 알고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물었다.
“혹, 삼진(三塵)의 진(塵)도 거기에서 따온 것은 아닌가? 처음에는 ‘먼지 세톨’이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그 의미가 풀리는구나. 하하하~!”
“맞습니다. 스승님. 참으로 하찮고 가치 없는 존재로 조용히 살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파향이 말을 이었다.
“그 사립체라고 하는 존재가 모체(母體)에서 유전(流轉)이 된다고 하더군. 그런데 놀랍게도 대략 잡아서 400만 년을 흐르면서 계속 인간의 몸 안에서 살았는데도 몸과는 다른 존재라네. 하물며 인간뿐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도 공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더욱 놀랍지 않나? 그러니 하루를 살아도 당장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이치를 서인들이 밝혔다는 것에 새삼스레 그들의 노고에 존경심을 표하게 되었다네. 허허허~!”
“과연 그렇겠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기지 않는 말씀이니 말입니다.”
“오호~! 그래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의 차이를 알겠는가?”
“우창이 생각하기에 안다는 것은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그 연유와 작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벌이 날아들고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느낄 수는 없으나 믿을 수가 있는 스승님과 같은 존재가 설명해 주는 것을 미뤄서 믿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창의 성(姓)이 진하경(陳河鏡)이니 진(陳)가인데 조상이 순(舜)임금의 후손이신 진호공(陳胡公)이라고 전하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그렇게 믿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옳지! 적절한 비유로군. 말하자면 직접 가서 보지는 않았으나 극락세계(極樂世界)가 서방(西方)에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 말이겠지?”
“아, 그것도 여쭙고 싶었습니다. 극락세계가 서방에 있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러한 곳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하기에는 반신반의(半信半疑)하게 됩니다.”
“당연하지. 그런데 어떤가? 사립체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곳이 없으란 법도 없지 않겠느냔 말이지.”
“맞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이라면 불가시(不可視)의 세상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극락세계라고 하는 것에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듯싶군.”
“예? 그럼 어떻게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게. 서쪽으로 얼마쯤 가면 극락세계가 있다고 하던가?”
“십만 억 국토를 지나면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서쪽으로 백 리나, 천 리나, 만 리 밖에 있다면 이 땅임을 알겠는데 십만 억의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말은 어떤가? 과연 이 땅을 말한 것일까?”
“말씀을 듣고 보니 다른 뜻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입니까?”
“우창은 밤하늘의 무수히 반짝이는 성신(星辰)을 봤는가?”
“당연히 봅니다. 밤하늘에 은하수(銀河水)가 걸쳐있고, 그 사이로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것은 직접 봤으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이네. 눈에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의 숫자는 얼마나 되겠는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겠습니다. 보이는 것만으로도 무수히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인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논한다면 상상으로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그런 뜻이 아닐까? 세상은 이 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는 것처럼 우주의 다른 곳에서도 이와 같은 세상이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을까?”
“비록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지금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도 어딘가 극락세계도 있을 것이고 아비지옥(阿鼻地獄)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네. 불타(佛陀)가 그렇게 말했다지만 불타거나 아니거나 상관없이 누군가 그것을 보고서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이 설명한 것을 보면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테니까 말이지.”
파향이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차를 한 잔 마셨다.
우창이 파향의 말을 다시 음미해 봐도 조금도 논리적으로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파향이 말을 이었다.
“어떤가? 보이는 세계는 현상계(現象界)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초현상계(超現象界)라고 한다면 그 두 세계는 서로에게 간섭할까?”
“그건 또 무슨 말씀인지요? 그건 언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창이 의미를 몰라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 것을 본 파향이 다시 말했다.
“가령 말이네. 지금 이렇게 우리의 면전(面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펼쳐진다고 생각해 볼까? 서로의 왕래나 생각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존재할 수가 있다면 말이네. 가령 영혼(靈魂)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지금 우리가 이렇게 담소하고 있는 사이로 지나간다고 해서 우리의 담소에 영향을 준다고 하겠는가?”
우창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비로소 알겠습니다. 영혼의 존재가 왕래하더라도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즉, 달리 말하면 부처는 극락세계가 십만 억의 국토를 지나서 있다고 했으나, 실은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우리의 면전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을지 누가 알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그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뭐 어려운 일인가? 지금 생각해 보시게나.”
“맞습니다. 어려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옛 노래에 ‘대문 밖이 저승이라’는 구절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말은 이와 같은 의미와 통한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실은 대문 밖도 너무 멀지. 허허허~!”
우창은 참으로 놀라운 사유를 하는 파향의 경지가 대단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한가롭게 산보를 즐기는 모습으로 느껴져서 닿을 수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야말로 자연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어서 동서남북(東西南北)과 과거(過去)와 미래(未來)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간 오행(五行)의 생극(生剋)에만 매달려서 궁리하고 답을 찾았던 자기의 모습이 무척이나 왜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연 진리는 도처(到處)에 있어서 진리가 없는 곳이 없으며 진리 아닌 것이 없다는 이치를 몸소 보여주고 계시는 스승님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것을 본 파향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답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자원이 궁금하다는 듯이 파향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뭔고?”
“두 분의 대화를 듣고 보니까 참으로 인간의 일생은 너무나 짧디짧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잠시 이 몸으로 머물다가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런 이치를 윤회(輪回)라고 하나요?”
“그렇게 말하지.”
“스승님께서도 윤회는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아마도 없다고는 못하지 싶군. 허허허~!”
“더 명료하게 말씀해 주실 수는 없나요?”
“왜?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해 달란 뜻인가?”
“맞아요. 자원의 생각으로는 스승님이시라면 능히 여기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하실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거든요. 호호호~!”
“그래? 그렇다면 내가 물어볼까?”
“예~! 뭐든지 물으시면 답은 하겠지만 그 답이 옳은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어요. 호호호~!”
“귀신이 있나?”
“예? 귀~ 귀신이 있느냐고요?”
“그래 귀신 말이네.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그야 있잖아요? 조금 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면서요.”
“난 그대의 생각을 묻는 것이라네. 어서 답해 보게.”
“예, 있어요. 있고 말고요.”
“그걸 어떻게 알지? 봤나?”
“보지는 못했어요.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봤을 적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참 맹랑(孟浪)하군. 허허허~!”
“예? 자원이 말씀을 잘 못 드렸어요?”
“스스로 보지도 못한 것을 마치 직접 봤다는 듯이 있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배짱이냔 말이네. 허허허~!”
자원은 파향의 신랄(辛辣)한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옳은 거죠?”
자원이 당황하면서 이렇게 묻자 파향은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서 다시 물었다.
“다시 묻겠네. 귀신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이번에는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친 김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외쳤다.
“귀신은 없어요~!”
“왜?”
“그야 간단하죠. 저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대 고조부(高祖父)는 뵌 적이 있는가?”
“없죠.”
“그렇다면 고조부는 원래 없었던 것인가?”
“그… 건…”
“아니, 내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자원의 답은 어디가 분명하다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는걸. 좀 분명하게 말을 해 줄 수 없는가?”
“에구~ 스승님. 죄송합니다. 자원이 실언(失言)을 했어요. 호호호~!”
그제야 뭘 잘못 했는지 깨닫고서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뭘?”
“실로 윤회가 있는지 없는지는 명쾌하게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다만 간혹 전생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 보면 또 없다고 하기도 그랬어요. 그런데 있다고 하면 증거를 댈 수가 없어요. 직접 보거나 겪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기억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러므로 ‘없다고 못 한다’는 말씀이 실로 가장 적확(的確)한 답이라고 하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어요. 호호호~!”

자원이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자 파향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가 있겠구나. 내 생각으로는 전생은 있어야만 하고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고 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네. 가령 사람마다 팔자가 다른 이유는 뭘까?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아니, 그 이유는 전생의 업연(業緣)에 따른다고 하지 않는다면 단지 그날 그 시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는 고관대작이 되고 누구는 빈천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겠느냔 말이네.”
“그건 예전에도 우창 싸부와 늘 이야기 나눴던 것이긴 한데 오늘 새삼스럽게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 보니 더욱 실감이 나요. 당연히 전생은 있어야만 하고 그래야만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고 해야 하겠고, 이것은 인과법(因果法)에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되네요.”
“그렇다면 물으나 마나 한 것을 물었다는 말이잖은가? 왜 그랬지?”
“늘 누군가에게서 확인받고 싶었어요.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지 그냥 생각으로만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고 실제는 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인지 일말(一抹)의 의혹(疑惑)조차 없진 않았거든요. 호호호~!”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겠군.”
“당연히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라고 하잖아요.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며 살아야 할뿐더러 나아가서 웃음을 웃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어요? 더구나 스승님처럼 모르는 것이 없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에서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하고 꾸짖고 가르치면서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삶이 되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자원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뭉클뭉클 샘솟아 나는걸요. 호호호~!”
“이미 자원은 해탈도인(解脫道人)의 자리를 깔았구나. 앞으로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갈 것임을 내가 증명(證明)함세. 허허허허~!”
파향이 유쾌하게 웃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창이 조용히 생각하다가 파향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겠습니다. 이렇게 오행놀이를 하면서 살다가 누군가를 만나서 담소하면서 위로하거나 격려하거나 혹은 꾸짖는 것도 수행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행이라고 한다면 좌선(坐禪)하거나 명상(瞑想)하거나 기도(祈禱)하는 등의 직접적인 수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수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가르침을 청합니다.”
우창이 진지하게 묻는 것을 본 파향도 정색(正色)하고서 물었다.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은 들어 봤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것이나 참선하는 것이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까?”
“사선일여(事禪一如)라는 말은 들어 봤는가?”
“예? 그것은 처음 듣습니다.”
“그럴 것이네. 왜냐하면 내가 지금 만든 것이니까. 허허허~!”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물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뜻인가? 일을 하거나 참선하거나 모두 같다는 말인데 뭘.”
“뜻은 알겠습니다. 그래도 옛 도인의 말을 들어 보면 허튼소리 우스개로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되느냐는 준엄한 가르침이 있기도 해서 약간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중요한 것은 그 마음 아니겠나?”
“그 마음이 무엇입니까?”
“상대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진심(眞心)으로 대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일이란 말이네. 돌을 보거나, 공룡의 이빨 화석을 보거나, 난초 한 포기를 보거나, 어린아이를 대하거나 늙은이를 대하거나 여기에 차별이 없고 그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놓지 않는다면 그것이 참선(參禪)이 아닐까?”
“아, 그것이 다선일여(茶禪一如)였습니까? 차를 마셔도 참선하듯이 엄숙하고 신중하게 마셔야 한다는 뜻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자기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비로소 마음 속에 쌓여 있었던 앙금들이 바람에 흩날리듯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그 표정을 본 파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제 그만하면 차값과 밥값은 한 것으로 봐서 나는 또 귀가하려네. 그사이에 돌들이 보고 싶어서 말일세. 허허허~!”
모두 밖으로 나가서 파향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합장했다. 그것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말을 타고 산수원을 떠나버렸다. 잠시 적막감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