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 제45장. 만행(漫行)
11. 믿음의 상징물(象徵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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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본 파향이 물었다.
“이야기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아, 24절기와 12궁도에 대한 말씀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나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랬군. 서인들이 하늘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연유(緣由)를 이야기하고 있었지. 이제 그만하면 왜 그들은 밤하늘의 별을 연구하게 되었는지 이해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떤가?”
“그렇습니다. 하늘에 신비롭게 빛나는 별을 보면서 수없이 많은 상상을 했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상징에 대해서도 알려줄까?”
“정말 신기합니다. 그런 것은 또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그야 암석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서인들의 풍습이랄지 종교에 대해서 이해하다가 보니 약간 알게 된 것일 따름이라네. 허허허~!”
“그들의 교주로 알려진 사람이 죄인의 형벌로 형틀에 매달아서 죽을 때까지 뒀다더군.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상징도 죄인의 형틀을 삼게 되었다고 한다네. 이것을 십자가(十字架)라고 한다네. 그러면서 형태를 설명하자 자원이 이야기를 듣고서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싸부! 이 십자가라고 부르는 상징의 도(十)는 위쪽에 있잖아요?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한걸요. 호호호~!”
“과연 그렇구나. 더욱 하늘에 다가가기 위해서 건물도 하늘 높이 뾰족하게 지었던 것은 아닐까?”
“맞아요! 싸부가 본대로 자원도 그렇게 느껴졌어요. 정말 신기하네요.”
자원과 우창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파향이 물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가? 도가 위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게 신기하단 말이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좀 해 주게.”
자원이 파향에게 신이 나서 설명했다.
“일음(一陰)과 일양(一陽)이 만나면 도(十)가 되잖아요? 그런데 그 만나는 지점이 음양의 중간이 아니라 훨씬 위쪽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원의 말에 파향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니, 참으로 놀랍군. 그런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듣는걸. 더구나 서인들의 도가 위쪽인 하늘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허허허~!”
파향도 신기하다는 듯이 자원이 그려놓은 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러자 우쭐해진 자원이 말했다.
“불교를 의미하는 만자(卍字)를 생각해 보면 또 재미있어요.”
“그냥 무심코 생각했는데 자원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과연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맞아요. 불교도는 도가 중심(中心)에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불교의 상징에서도 정확하게 십(十)자 모양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요. 그 끝에 있는 것은 회전(回轉)한다는 뜻으로 윤회(輪回)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면 되지 싶어요. 그러니까 중심은 부처인 도를 품고서 세상을 윤회하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菩薩)의 상징이 되었던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원의 말에 파향은 더욱 놀라운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내가 오늘 진객들을 만난 것이 맞구나. 허허허~!”
우창은 어제오늘 파향에게서 깊은 이치를 듣기만 하다가 뭔가 작은 선물을 드린 것 같아서 흐뭇했다.

“그렇다면 태극은 어떨까요? 도교(道敎)에서나 유교(儒敎)에서나 공통으로 사용하는 태극을 보면 뭔가 떠오르실 것 같은데요. 호호호~!”
“여기에는 도(道)를 의미하는 십(十)이 없지 않은가?”
비록 표시는 십이 없지만 의미로 보면 이해되시지 않을까요?
“그야 음양상합(陰陽相合)이 아닌가? 음양이 서로 만나서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나도 알겠네만.”
파향이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아요~! 바로 그것이잖아요. 일음일양 말이에요. 호호호~!”
“아하! 그러니까 도교(道敎)의 상징인 태극에도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지? 과연! 감탄을 금치 못하겠군.”
원래 공부가 깊어지면 사소한 것에도 곧 잘 감동한다. 파향의 표정에서 그러한 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점성술(占星術)이야 천문역학(天文易學)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다루는 것인 줄은 알았으나 이렇게 생생한 가르침을 접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우창이 그렇게 재미있어하니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까?”
“여부가 있습니까? 귀를 활짝 열었습니다.”
“이건 공부거리가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로 우스갯소리로 알아두고 들으면 좋겠네. 허허허~!”
“세상에 공부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잘 알아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서인들은 예의를 갖출 적에는 목에 끈을 맨다더군.”
“예? 목에다가 끈을 맨단 말입니까?”
“끈이라기보다는 천 조각이라고 해야 할까?”
“참 특이한 풍습인 것 같습니다. 말씀만 들어봐서는 위험해 보이기조차 하는데 그걸 왜 매는 거지요?”
“앞에서 해 준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듯도 하네만. 허허허~!”
“예? 앞에서 말씀이라면…… 혹시 주(主)라고 한다는?”
“맞아! 자기는 주인(主人)을 모시는 종복(從僕)이라고도 한다더군. 그러니까 주인에게 복종한다는 뜻으로 그 천을 목에 매고 다닌다는 우스갯말이 있더라네. 어떤가 일리는 있어 보이는가?”
우창은 파향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죄인의 손을 묶고 목에 칼을 씌워서 잡혀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말씀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설마하니 그럴 리가 있겠나 싶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풍습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겠지. 남의 풍습을 보면 때로는 이해하지 못할 경우도 허다하니까 누군가 그렇게 보였던 것인가 생각되기도 하더군. 허허허~!”
“그들의 종교는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요?”
“보통 기독교(基督敎)라고 하는데 기독은 그들 교주의 이름을 한자로 적은 것이니까 기독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으로 보면 되겠네.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를 불교(佛敎)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
“그렇겠습니다. 참으로 넓은 세상입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그들의 가르침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러시게. 뭐든 배워서 남 주면 좋은 일이니까 말이네. 허허허~!”
잠시 자리를 떴던 여초가 다가와서 말했다.
“자, 열띤 담소도 식후(食後)에 하시기로 하고 자리를 옮기시지요.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시장하시겠어요. 호호호~!”
식당에는 푸짐한 진수성찬이 이미 차려졌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요리들이 가득했다. 모두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우창도 처음 듣는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느라고 다른 말을 할 겨를도 없었다. 돌 이야기로 인해서 알게 된 이 땅의 역사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 오늘은 풀 이야기로 다시 머리를 가득 채우는 바람에 잠시 복잡한 것을 정리해야만 했다. 저마다 배를 가득 채우고 나서야 다시 차실로 옮겨 앉으면서 우창이 물었다.
“참, 선생님 말씀 중에 식물이 동물을 지배한다고 하셨던 것으로 생각이 났는데 그건 무슨 뜻인지 듣고 싶습니다.”
“아, 그 말인가? 뭐가 어렵나. 꽃의 향기로 벌 나비를 유혹해서 종족을 번식하는 것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식물은 꽃으로 벌과 나비를 지배한다는 뜻이지요?”
“인간도 지배당한다는 생각은 못 해봤는가?”
“예? 그럴 리가 있습니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어찌 풀 따위에게 지배당한단 말입니까?”
“누가 그러던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흔히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아닙니까?”
“내가 알기로 성현(聖賢)이나 군자(君子)는 인간을 초개(草芥)같이 여긴다는 말은 알고 있네만 감히 영장이라고 하는 오만한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겠는걸.”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한 것일까요?”
우창이 의아해서 파향에게 물었다.
“글쎄,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내 생각으로는 아마도 오만무례한 마음에 명예심이나 공명심에 가득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은 드는군. 왜냐하면 인간도 단지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땅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어찌 그러한 말은 그만두고 생각이라도 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네. 허허허~!”
“그 말씀도 일리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
우창은 선뜻 동의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일부분이나마 수긍하려고 애쓰면서 겨우 말했다. 그것을 본 파향이 다시 말했다.
“괜한 일이네. 그야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초원을 뛰어다니는 말은 자기의 조상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할 것이고, 산중의 제왕인 호랑이도 자기네 조상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냔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물어볼까? 인간이 왜 굶어 죽는가?”
“예? 굶어 죽다니요? 아마도 그렇다면 먹을 식량이 없어서이겠지요.”
“옳지~! 왜 식량이 없지?”
“그것은 벼와 보리가 자라지 못해서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말일세. 풀때기의 지배를 어찌 받지 않는다고 하겠느냔 말이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가?”
“그것과 이것이 같은 의미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호! 그런가? 벼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야 종자를 계속해서 퍼트려야 하겠습니다.”
“종자를 누구에게 퍼트리도록 맡기는 것이 좋겠는가?”
“벼의 입장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인간이 가장 유력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주식(酒食)을 삼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렇다면 벼를 보존하고 종자를 퍼트려서 더 많은 수확을 얻고자 할 것이란 말에는 동의하겠나?”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벼의 입장에서는 성공한 것인가? 맛 좋고 영양도 풍부한 품종으로 진화하게 된 벼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고 봐도 되겠는가? 그래서 피(稗)보다 우선적으로 선택받게 되면서 피는 들판에서 뽑혀 나가고 벼는 자라서 결실을 이루게 되었으니 말이네.”
“아, 듣고 보니 과연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다.”
“옥수수는 어떠하며 기장은 또 어떻겠는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들의 식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겠는가?”
“그런 생각은 전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새롭게 개안(開眼)합니다. 계속 말씀해 주시지요.”
“풀이 동쪽으로 이동하면 그것을 필요로 하는 동물도 따라서 이동하게 되고, 북쪽으로 이동하면 동물도 따라서 북으로 이동하게 된단 말이네. 물론 그 동물을 먹이로 삼는 육식성 동물도 따라서 움직이게 되지. 이렇게 된다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초목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파향의 설명을 들으면서 비로소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다. 결국 인간도 초목의 지배를 받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감탄했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심오하게 얽혀 있습니다.”
“산이나 들이나 강이나 바다까지도 모든 동물은 식물의 지배하에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의외로 많은 것을 살필 수가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네.”
“무슨 말씀이신지 듣고 싶습니다.”
파향은 우창이 집요하게 이해하려고 묻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가령 말이네. 가정에서 자녀는 부모를 지배하는 것이 맞는가?”
“자녀들은 부모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원, 그럴 리가 있나. 만약에 권력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말일세. 자녀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조차도 바치는 것이 부모라고 하는 것을 몰라서 말하는 것인가?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과 서로 비교해서 그 차이가 어떻겠는가?”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은 비교가 되지 않겠습니다. 과연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맞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자연의 이치와 알고 있던 상식의 사이에 커다란 간극(間隙)이 드러납니다.”
“결국 모두는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니,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땅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벌레조차도 함부로 밟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네.”
“아하~ 이것이 자연이로군요.”
“맞아! 꽃이 없으면 벌도 없고, 벌이 없으면 인간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도 알겠지?”
“예? 그것은 이야기를 너무 비약(飛躍)시킨 것이 아닙니까?”
“그래? 열매는 어떻게 해서 얻는지 아는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고 옥수수를 심어서 옥수수를 거두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까 우창의 말인즉 그것은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렸다?”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니 여태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아, 어쩌면 양봉(養蜂)해서 꿀을 얻는 사람에게는 벌의 지배를 받는 것이 맞을 것도 같습니다.”
“그렇기도 하겠군. 그러나 벌이 없다면 수분(受粉)이 될까? 수분이 되지 못하면 음양의 교류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수확할 것도 없을 것이네. 설령 그걸 사람의 손으로 한다면 그 수고로움은 벌이 하는 것과 비교해서 어떻겠는가?”
우창은 다시 한번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이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까지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파향은 어쩌면 이렇게도 자연의 질서에 대해서 속속들이 헤아리고 있는 것인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참으로 우창의 얕고도 짧디짧은 지식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어찌 사람이 세상의 이치를 모두 다 알 수야 있겠는가? 오행의 이치만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도 이미 보통의 수준은 넘어선 것이니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다만 이 늙은이가 쓸데없는 잡학(雜學)에 조금 상식을 넓게 얻고 있었을 뿐이라네. 허허허~!”
“그야말로 태양 하등(太陽下燈)일 뿐입니다. 배워야 할 세상은 이렇게나 드넓은데 알고 있는 것은 겨우 이 정도인데 그래도 제법 세상의 이치를 두루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알량한 자만심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하하~!”

우창은 모처럼 자신이 형편없이 쪼그라드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서 쓴웃음을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자원이 파향에게 말했다.
“선생님과 싸부의 대화를 들으면서 참으로 깊고도 오묘한 이치가 그 안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어제 말씀해 주셨던 이 땅의 역사가 46억의 오랜 세월이라고 하신 것도 놀라웠는데 오늘 현재 이 땅 위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관계들은 참으로 감탄의 연속이에요.”
자원이 이렇게 감탄하며 말하자. 파향이 자원에게 물었다.
“자원이라고 했나? 자연의 이치는 또 그렇거니와, 그대도 간지의 공부는 하고 있을 테니 어디 간지는 왜 그렇게 생겨서 60을 주기(周期)로 움직이는지 생각해 봤는가? 문득 그것이 궁금하군.”
“다 아시면서 물어보는 것이라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시면 고맙겠어요. 호호호~!”
“그럼 구체적으로 물어볼까? 갑자(甲子)는 왜 갑자인가? 내가 깊이 아는 것보다 우창에게 배운 그대의 깊이가 더할 듯하여 묻는 것이니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말해 주기 바라네. 허허허~!”
참으로 숨김없는 호기심으로 묻는다는 것을 자원도 능히 헤아릴 수가 있었다. 어쩌면 존경하는 우창이 기가 죽은 듯한 표정을 보면서 기를 살려 줄 겸해서 말이 안 되더라도 생각이 자라는데까지 라도 말해 보려고 생각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우창도, 자원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서 집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