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3] 제45장. 만행(漫行)
8. 완석지락(玩石至樂)
===========================
이번에는 먼저 들렸던 곳이 아니라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건물의 입구에는 자그마한 현판이 붙어 있었다.
「완석지락(玩石至樂)」
그러니까 돌과 함께 놀면서 즐긴다는 뜻으로 이해가 되었다. 당연히 이 안에도 돌들이 있을 것임을 짐작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문 앞에 다다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안에서 문이 열리면서 낭자가 등불을 대낮같이 밝혀놓고 있었다.
“아, 연(燕)이 미리 와서 준비했구나. 고맙군.”
그러니까 낭자의 이름이 연이다. 연 낭자는 조용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서 밖으로 나갔다.
“어머나~ 이게 다 뭐죠? 와우~ 눈앞이 갑자기 황홀해졌어요. 호호호~!”

자원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괜한 것이 아니었다. 우창이 봐도 휘황찬란한 각종의 진기한 보석들이 휘황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색깔은 달라도 서로 공통점은 하나라네. 모두 돌이라고 하는 것이지.”
“아, 그렇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돌이라는 생각을 잊었네요. 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임을 새삼 느꼈어요.”
자원이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파향이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모여있는 돌들은 모두 수정석(水晶石)이네. 이름에 석(石) 자가 붙으면 어색해서 사람들은 그냥 수정이라고만 하지. 그러나 본질을 보면 모두가 화즙(火汁)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이고, 석영(石英)이 그 고향인 셈이지. 허허~!”
파향이 가리키는 곳에는 색색의 돌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을 받아서 더욱 반짝이는 것 같았다. 자원이 또 감탄하며 말했다.
“선생님, 투명하게 맑은 수정은 봤으나 실은 한 가지가 아니었네요. 황색(黃色)이며 홍색(紅色)이며 자색(姿色)이며 회색(灰色)에 흑색(黑色)까지 그야말로 오색찬란(五色燦爛) 하네요. 너무 아름다워요. 오늘 처음 봤어요. 수정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가? 원래 자원은 수정을 좋아하는가 보군. 저마다 좋아하는 돌이 있기도 하니까 말이네. 허허허~!”
“이건 기둥처럼 생겼어요. 육각(六角)인가요? 그 속에는 나무도 같고 새도 같은 것이 들어 있기도 해요. 그냥 맑기만 한 것이 아니었네요?”
“아, 그건 정원수정(庭園水晶)이라고 부르는 종류라네. 원래는 불순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수정으로 생성되는 과정에서 섞인 것인데 오히려 이러한 것을 더 예쁘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또한 사랑을 받기도 한다네.”
“정원수정이라고요? 산수의 풍경이 그 안에 있어요. 이 조그만 돌 안에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이 자연을 닮은 듯 안 닮은 모습들이 너무 신기하네요. 이러한 것을 하나하나 모으려면 금전도 많이 들었겠어요?”
“그렇지. 다만 금광을 찾아서 금전적인 비용은 충당했다네. 그러니까 돌로 돌을 바꾼 셈이랄까? 허허허~!”
“정원수정이 모두 이렇게 멋진 것은 아닐 것이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그중에서도 이렇게 뛰어난 형태로 된 것이 관상할 가치가 높아서 누구라도 보면 사랑스러워한다네.”
“완전히 별천지(別天地)네요. ‘완석지락(玩石至樂)’이라는 편액이 참 잘 어울리네요. 수정만 모아놓은 것도 이렇게 멋진데 다른 것은 또 어떤지 보여주세요.”
자원이 거듭 감탄하면서 말하자, 파향이 또 한 옆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와 볼 텐가?”
그곳에는 높이 삼척(三尺)은 됨직한 푸르스럼한 돌에 산천(山川)의 풍경을 조각한 것으로 보였다. 인물이며 전각이며 하천과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꾸며져 있는데 정교한 솜씨와 원석(原石)의 배경에 천연적으로 색깔의 무늬가 있는 것을 잘 살려서 드러낸 것이 누가 봐도 보물이었다. 앞에는 조그맣게 이름이 놓여 있었다.
「무릉도원(武陵桃源)」
과연 이름에 걸 맞는 풍경이었다.
“이름조차도 무릉도원이네요. 선경(仙境)이 따로 없어요.”
“풍경만 보이고 돌은 안 보이지?”
“그러고 보니 조각품으로만 봤네요. 이 돌은 어떤 돌인지 이제라도 여쭤보겠어요. 알려주세요. 호호호~!”
“보통은 옥(玉)이라고도 하고 취옥(翠玉), 비취(翡翠)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은 옥수(玉髓)라고 하는 이름을 갖고 있지. 또 마노(瑪瑙)도 비슷한 이름이라네. 단단해서 조각하기는 어렵지만 명공(名工)이 정성을 들여서 조각하게 되면 영롱한 광택을 내뿜는 귀한 돌로 거듭 태어난다네.”
“이름이 옥수라면 옥으로 만든 나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돌이었네요. 이름만 봐서는 단정할 수가 없는 것도 많아요. 그리고 이 모두가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본질은 돌이라고 하는 것도 신기하고요. 호호호~!”

“대자연이 만든 천연(天然)과 사람의 손이 만든 인공(人工)이 결합해서 이렇게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네. 돌이 조각하기에 적당하지 않아도 의미가 없지만 장인(匠人)의 공력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 오묘한 것을 살리지 못하게 되니 이것이야말로 신인(神人)의 합작(合作)이랄 밖에. 허허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창은 옆에 놓여 있는 탁자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또 여러 색으로 된 돌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돌마다 이름표가 옆에 놓여 있어서 어떤 것은 이름만으로도 짐작이 되었으나 대부분은 이름만으로는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창이 돌들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 것을 보자 파향과 일행도 걸음을 옮겨서 같이 살펴보았다.
“실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이기도 하다네.”
“아무래도 설명을 들어가면서 봐야 제대로 이해가 되지 싶습니다. 이름들도 생소하고 생긴 형태도 색깔도 제각각이라서 내용이 궁금합니다.”
우창이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고 생각하고서 파향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파향이 연한 녹색의 빛을 띠는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감람석(橄欖石)이라고 하는 것이네. 지하의 깊은 곳에서 화즙(火汁:마그마)이 요동을 칠 적에 비교적 가벼운 성분들로 되어 있어서 화즙의 윗부분에 있다가 화산이 폭발하면 같이 딸려 나와서 굳어진 화산암이라네. 그러니까 화즙의 윗부분에는 이러한 형태의 암석이 있다고 보면 되네. 이 돌은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굳어진 곳에서 주로 발견된다네. 이것은 감람석이지만 결정이 맑고 투명하게 되면 그것은 또 녹주석(綠柱石)이라고 해서 귀한 대접을 받지.”
이렇게 말하면서 옆의 상으로 다가가서 맑은 청록색의 기둥처럼 생긴 돌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이름표에 녹주석이라고 되어 있었다. 과연 맑은 빛이 누구라도 좋아할 만큼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시 탁자로 돌아가서 다음 돌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것은 옥수(玉髓)로 정동(晶洞)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 말하자면 수정동굴이라고 할까?”
그냥 봐서는 평범하게 생긴 둥그스럼한 돌덩어리였다. 그것을 보면서 의아해하는 일행을 반대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자 앞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그 속에는 말 그대로 동굴처럼 속이 비었고, 그 벽은 온통 반짝이는 수정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야~! 정말 기가 막혀요~!”
자원이 할 말이 없다는 듯이 감탄을 연발하면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동정 속을 들여다봤다. 자연의 힘이 이렇게나 오묘한 걸작을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크고 작은 수정들이 촘촘히 이빨처럼 박혀있는데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저마다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파향은 다시 옆에 있는 검은 빛이 나는 돌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 돌은 이름이 흑요석(黑曜石)이라고 하네. ‘검은빛을 내는 돌’이라는 뜻이니까 바라만 봐도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겠지?”
우창이 봐도 그 이름의 뜻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파향이 설명을 이었다.
“이 돌은 석기시대(石器時代)에 살았던 인류(人類)에게 더없이 소중한 광물이었지. 어쩌면 최초로 자연의 암석을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이 돌은 흡사 날카로운 수정과 같아서 단단한 돌의 모서리로 내리치면 떨어져 나가는데 그 조각이 예리하게 생겨서 이것을 모아서 칼을 만들었다고 하더군. 이것으로 화살촉도 만들고 칼도 만들어서 사냥하여 생계유지에 지대(至大)한 공을 세운 돌이라네.”
“선생님께서 설명을 덧붙여 주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을 텐데 그 의미까지 말씀해 주시니까 더욱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하하~!”
“그렇지? 이 돌을 보겠나?”
파향이 가리킨 돌은 검붉은 돌인데 결정이 사각으로 겹쳐 있었다. 이런 돌은 본 적이 없어서 설명을 기다렸다.
“아마도 주사(朱砂)라고 하는 말은 들어 봤겠지?”
“아, 주사라고 하면 도사들이 부적(符籍)을 그리는데 사용하거나, 의원이 어린아이가 열로 인해서 경기(驚氣)를 일으킬 적에 약으로 쓰는 것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 주사의 원료가 이 진사(辰砂)라는 돌에서 나오는 것이라네.”
“이 돌을 잘게 부숴서 가루로 만든다는 뜻입니까?”
“맞아! 이것은 성질이 매우 차가운 수은(水銀)을 함유하고 있어서 그냥 먹으면 큰일이 난다네. 이것을 법제해서 만든 것이 단약(丹藥)이라고 하는데 왜 붉을 단(丹)이 들어가 있는지 알겠는가?”
“그렇다면 불로장생에 매우 좋은 영약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아마도 진시황(秦始皇)도 이 주사를 다량으로 복용해서 49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지. 그래도 불로장생의 영약이라고 하겠는가?”
“아하! 그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는군요. 과연 진리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가 봅니다. 그것조차도 돌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아울러서 사람들은 돌을 먹고 건강과 장수를 바랐다는 것도 말입니다.”
파향은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옆의 돌을 가리켰다. 그것을 본 자원이 외쳤다.
“와~ 이것은 금덩어리다~!”
그 돌은 누런 황금빛을 띠고서 출렁이는 불빛을 받아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자원의 말이 아니라도 우창도 금덩어리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금덩어리로 보이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알겠어요. 황금이네요. 호호호~!”
자원이 틀림없다고 말하자 파향이 미소를 짓고서 말했다.
“그래서 바보들의 금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네. 허허허~!”
“예? 바보들의 금이라는 말은 금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 보이는데 정말이죠?”
자원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하자 파향이 작은 돌판을 들고 왔다.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 판에다가 황금을 문지른다면 무슨 색으로 나타날까?”
“그야 누런 금색으로 나타나겠죠.”
자원의 말을 듣고서 그 돌을 집어서 판에다 두어 번 문질렀다. 그런 다음에 돌판을 보여줬다.
“어? 검은색이네요? 이건 황금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돌판이 무슨 묘기를 부린 것인가요? 은수저를 비상(砒霜)에 담그면 검게 변하듯이 말이에요.”
“그런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이렇게 말한 파향이 손가락에 있던 가락지를 한 번 문질렀다. 그러자 돌판에는 선명한 황금빛의 선이 드러났다. 이것은 조금 전에 본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자원이 물었다.
“그렇군요. 황금으로 보였지만 금이 아니었네요. 그렇다면 이것은 뭐죠? 무엇이기에 이렇게 멋진 모양을 하고 황금처럼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이름이 황철석(黃鐵石)이라고 하는 돌이라네. 이렇게 겉으로 보는 것과 실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사뭇 다르다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보기에는 건달과 공자가 별반 차이가 없단 말이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니 돌이나 사람이나 그 속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하지. 허허허~!”
“정말 신기합니다. 겉만 봐서는 알 수가 없는 황철석도 있고, 겉만 봐도 알 수가 있는 흑요석도 있다는 것을 겨우 알고 보니 돌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도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알면 알수록 빠져 든다’고 하는 말 말이네. 이 돌 공부가 그렇지 않은가 싶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이 다양한 종류의 아름답고도 진귀한 돌은 모두가 저 깊은 곳에서 화즙의 활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우창이 약간이나마 돌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너무나 신기해서 말하자 파향은 잠시 생각하더니 한 곳으로 일행을 데리고 이동했다.
“여기 보이는 돌은 화즙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돌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래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네.”
“아니, 언뜻 봐도 돌이 분명한데 무슨 비밀이 있기에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서 설명해 주시지요.”
“이 돌은 이름이 철운석(鐵隕石)이라네, 혹 무슨 의미인지 짐작을 하겠는가?”
파향이 우창에게 묻자, 우창이 잠시 글자를 보고는 말했다.
“운(隕)은 떨어진다는 뜻이로군요. 그렇다면 떨어진 돌이라는 뜻인데 모든 돌은 땅에서 솟았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다른 종류라는 뜻이 아닙니까? 떨어졌다면 하늘에서 떨어진 돌이라는 뜻일까요?”
우창이 이렇게 묻자 비로소 파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네. 이 돌을 다른 말로는 ‘별똥별’이라고도 하지. 하늘에서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그으며 떨어지면 뛰어난 위인이 죽을 징조라고도 하지 않던가? 그때 떨어져서 이렇게 남은 것을 철운석 혹은 석질운석이라고 한다네. 그러니까 이 돌은 특이하게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말일세.”
파향의 설명을 듣고서야 우창은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하! 그러니까 석질(石質)의 운석(隕石)도 있고, 철질(鐵質)의 운석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저렇게 드넓은 하늘에서 돌이 떨어진다는 것도 참 신기한데 예로부터 그러한 말은 들었습니다. 별똥별이 떨어질 적에는 뛰어난 위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거든요. 그렇게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여기에 수집한 것이로군요. 참 신기합니다. 물론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것도 처음입니다. 하하~!”
우창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하며 운석을 다시 잘 살펴봤다. 과연 겉으로 봐서도 흡사 뜨거운 고열의 불에 녹은 듯한 흔적을 갖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불에 녹은 쇠의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별똥별이 불빛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네. 유성우(流星雨)라고 한다네. 한꺼번에 쏟아질 적에 보면 마치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 그런 것은 일생에 한 번 볼까말까하지만 실제로 그 장면을 보게 된다면 참으로 장관이라네. 혹시 본 적이 있는가?”
“아닙니다. 그런 행운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 장관(壯觀)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대단하지 싶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기회를 만나셨겠지요?”
“그렇다네. 마침 지인 중에 천기관(天氣官)이 있어서 미리 언제쯤 유성우가 내릴 것이라고 정보를 미리 알려주는 통에 하늘에 구름만 없으면 그 멋진 장관을 놓치진 않는다네.”
파향은 그 장면을 상상하는 듯이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말이 없었다. 우창도 태허공(太虛空)으로부터 쏟아지는 유성우를 상상해 보는데 파향이 말했다.
“고인(古人)들도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항상 신비롭게 생각하고 궁금하게 생각했었지. 그렇게 해서 발달한 것이 천문학(天文學)이고 점성학(占星學)이 아니겠나? 자평법은 이 땅의 조화를 살펴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겠군, 그러니까 춘하추동과 더불어서 지상(地上)의 변화를 궁리하여 22간지(干支)로 압축했으니 서로 각자의 영역에서 자연의 조화를 읽어내려고 애쓴 결과가 아니겠나? 왜 그렇게 생겨서 작용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작용하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오랜 세월을 두고 지켜봤을 고인들의 노고(老苦)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네. 허허허~!”
“과연 그렇겠습니다. 오늘 선생님을 만나서 참으로 귀중한 가르침을 얻게 되었으니 이런 행운이 또 없습니다. 아마도 전생에 큰 공덕을 쌓았겠거니 싶기도 합니다. 하하~!”
“그런가? 뭣하러 멀리 전생까지 가는가? 이렇게 한 마음이 일어나서 파향정에 왔던 인연이라고 해도 될 일을 말이네. 덕분에 나도 모처럼 혼자만 누려왔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가 있었으니 또한 행복하지 않으냔 말이네. 그래서 그대들이 진객이랄 밖에. 허허허~!”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오늘 뜻하지 않게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접할 기회를 주셔서 귀한 가르침을 얻게 되었으니 참으로 복이 많은 우창입니다. 그리고 돌도 돌고 돌아서 바위가 되었다가 흙이 되었다가 다시 화즙으로 돌아가는 순환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면서 인생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고맙군.”
파향이 흐뭇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인연에 따라서 하나의 돌덩어리가 태산(泰山)이 되기도 하고, 숭산(崇山)이 되기도 했다가 또 때로는 곤륜산(崑崙山)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어디 상상이나 해 봤겠습니까. 그러다가 불상이 되어서 존중도 받다가 또 때로는 길바닥에 깔리는 보도석(步道石)이 되어서 온갖 마소의 발에 짓밟히기도 하니 참으로 오묘합니다.”
“그렇다네. 그래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지 않던가? 허허허~!”
우창은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많이 배웠으니 그만 작별해야 하겠지?”
이 말에 모두 합장하고는 감사의 말을 남기고 곡원(曲院)을 떠났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서 호반(湖畔)의 산책로를 천천히 걸았다.
호수에서는 뱃놀이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악기며 북소리가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우리도 뱃놀이해야지? 서호에 와서 배를 못 다면 되겠어?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자원도 거들었다.
“맞아요! 돌 공부를 해서 금(金)을 배웠으니 이제 뱃놀이하면서 수(水)를 공부해야 할 순서잖아요? 호호~!”
자원이 앞장을 서서 나루터에 도착하니 마침 선객(船客)을 모으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었다.
“자~ 오늘의 마지막 배가 출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오셔서 서호의 풍광을 맘껏 즐기세요~ 오늘은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은 신시(申時)쯤 되었는지 해도 서산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자원이 다섯 사람의 뱃삯을 지불하고 배에 올랐다. 이미 배에는 10여 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선수(船首) 쪽에는 악단이 기다리고 있다가 배가 출항하자 흥겨운 연주로 흥을 돋웠다. 기현주도 기분이 좋은지 뱃전에 기대어 서서 배가 움직이는 대로 일어나는 물결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오늘 우연히 곡원에서 만난 파향으로 인해서 문득 떠오른 옛날의 인연이 있어서였다. 원래 소요원에서 정원을 가꾸게 된 인연이었기도 한 사람이 있었다. 문득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항주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기현주를 본 자원이 다가가서 물었다.
“언니, 무슨 생각을 그리도 골똘하게 하세요? 혹 서호에 왔었던 적이 있는 거죠?”
“정말 자원의 눈매는 예리하구나. 맞아. 그러니까 대략 20여 년 전에 서호의 인근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생각지도 못하게 곡원에서 파향 선생을 만나서 담소하다가 보니까 그 시절이 떠올랐지 뭐야. 호호~!”
“와~! 그런 사연이 있는 서호였구나. 그렇다면 분명히 사모하는 분이 아직도 서호에 계신다는 말이잖아요? 그곳이 어딘데요? 또 어떤 곳인지도 궁금해요. 어서 말씀해 줘봐요~!”
자원이 다그치듯이 묻자, 기현주가 물어주기를 바라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응, 여기에서 대략 2~30리 서쪽으로 가면 북문밖에 옥천리(玉泉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부근에도 아담한 호수가 있어.”
“그곳의 풍취도 그럴싸하겠는걸요. 언니가 그곳에서 기거하셨단 말이죠?”
“맞아, 그 호숫가에 산수원(山水園)이라고 하는 멋진 장원(莊園)이 있어. 그곳에 살면서 화초를 가꾸는 법을 배웠잖아.”
“아하, 그러셨구나. 그렇다면 그곳에 가봐야 하잖아요? 여기까지 모처럼 왔는데 말이죠. 안 그래요?”
자원은 기현주의 과거가 깃들어 있다는 말에 궁금해졌다. 그곳에는 또 어떤 기인이 머물러 있을 것인지도 궁금했고 또 어떤 것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면 우리 내일은 북문 밖으로 나들이 가요.”
“그럴까? 나도 가보고 싶기는 했는데 동행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호호호~!”
“와~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되네요. 갑자기 서호의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이죠?”
“그러네.”
노을이 곱게 물들어 가는 하늘빛이 호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창도 이 땅의 역사를 배우느라고 복잡했던 머리가 시원하게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상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