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 제45장. 만행(漫行)
6. 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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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옆에 있는 돌을 살펴보니까 왠지 견고해 보이지 않고 부스스해 보이는 것이 특이해서 물었다.
“선생님, 이 돌은 생김새가 또 다릅니다. 현무암이나 유문암과 달라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다른 돌과 크고 작은 자갈도 섞여 있습니다. 왜 이렇게 생겼을까요?”
우창이 가리키는 돌을 바라보니까 과연 색깔은 밝은 회색인데 견고해 보이지는 않았다. 우창의 말에 파향도 살펴보고는 설명했다.
“아, 이것은 화산이 분출하고 나서 계속 화산(火山)의 재가 오랜 세월을 두고 분출(噴出)했지. 처음에는 화즙이 분출되어서 용암이 되었는데 나중에는 용암은 나오지 않고 시커먼 재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바람을 타고 주변에 쌓이게 되었던 것인데 이것도 수억만 년을 흐르다 보니까 또한 바위가 된 것이라서 이름도 응회암(凝灰巖)이라고 한다네. 그래서 색깔도 회색(灰色)이지 않은가?”
“말씀을 듣고 다시 보니까 과연 그렇게 보입니다. 다소 무질서하게 생긴 것은 화산재가 쌓여서 된 암석이라는 의미를 알고 보니까 이해됩니다. 그러니까 응회암은 층상(層狀)을 이루기 어렵겠습니다.”
“그렇지, 다만 가끔은 층을 이루기도 한다네. 오랜 세월을 두고 화산재가 쌓이다 보면 도중에 다른 혼합물들이 섞여 들어서 구분이 되는 까닭이지.”
“그렇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이해됩니다. 천년만년을 두고 겹겹이 쌓이다 보면 그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은 당연할 테니 말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응회암도 화산암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는 것이지요?”
“맞아, 황금을 찾아서 금맥을 누비는 사람들은 이러한 응회암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모든 암석에는 금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금맥이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어떤 곳에 금맥이 있는지 아시고서 선생님도 금을 캐셨던 것이지요?”
“그건 단지 공부하다가 알게 되었을 따름이라네. 원래 금을 캐려고 공부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허허허~!”
“참 신기합니다. 어디에 금이 있는지를 알아낼 수가 있다면 그것도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효과가 있겠습니다.”
금맥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여정이었다.
“선생님, 어떤 곳에 금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가? 금을 캐서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건 아닙니다만, 어떤 곳에 금이 있는지 알 수가 있다고 하시니 그것이 무척 궁금합니다.”
“알았네. 우선 금맥을 찾기 위해서는 석영(石英)이라고 하는 암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겠군.”
석영이라는 말이 나오자, 우창도 들었던 적이 있어서 물었다.
“석영이라면 하얗고 투명한 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딘가에서 봤는데 석영이라고 들었던 것이 수정이라고도 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맞아! 바로 그것이지 다른 말로는 ‘차돌’이라고도 한다네. 그리고 석영이 자라면 수정(水晶)이 되기도 하지.”
파향이 수정이라고 말하자 기현주도 그것을 안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수정이라면 갖고 있기도 하죠.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영롱하게 맑은 돌이 아름다워서 구입했는데 그것이 석영이라고 하는 줄은 몰랐어요. 더구나 금이 나오는 곳에서 나온 돌인 줄도 몰랐죠.”
“보통은 그렇게만 알고 있어도 무리가 없다네. 다만, 본격적으로 암석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당연히 석영과 수정과 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네. 허허허~!”
파향이 즐겁게 말하며 웃자, 우창도 궁금한 것이 생겨서 물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왜 금이 있는 것을 금맥(金脈)이라고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맥(脈)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띠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일 텐데 과연 실제로도 그렇습니까?”
“맞아! 일정한 띠를 형성하고 있어서 금맥을 발견하려고 다들 혈안이 되곤 한다네.”
“그건 어떤 원리에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열수(熱水)로 인해서라네.”
“예? 열수라면 뜨거운 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솥에 물을 붓고 끓이면 열수가 되지?”
“맞습니다. 열수(熱水)가 탕수(湯水)이니 같은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금맥을 만드는 열수는 그 뜨거운 정도가 솥에 물이 끓은 것과는 많이 다르다네. 끓는 물의 10배 이상으로 뜨거워서 광물질(鑛物質)이 그 물에 녹아서 흘러 다니게 될 정도니까 보통의 끓는 물을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
“그렇겠습니다. 불이 없는 불과 같은 정도의 고온(高溫)이라고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열수에는 온갖 광물질이 녹아있다는 말씀이신지요?”
“옳지! 잘 이해했구나. 그 열수가 지하의 틈새를 타고 흐른단 말이네. 이것은 지하수가 암반을 타고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면 될 것이네. 알고 보면 수화(水火)는 모두 노는 모양이 많이 닮았거든. 무엇보다도 흘러 다니는 것이 말이네. 화즙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아, 그렇겠습니다. 그러니까 틈이 있으면 따라서 흐르는 것이로군요. 그것이 밖으로까지 연결되었으면 땅 위에서 금을 줍게 되는 것이고요?”
“저런! 너무 앞서가는구나. 허허허~!”
“아, 지금 석영의 열수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마음이 앞섰나 봅니다. 하하~!”
“열수(熱水)가 흘러 다니는데 더욱 고온에서 녹게 되는 용암과 같은 암석은 열수 정도에는 녹지 않는다네. 그러니까 열수가 다니는 통로라고 해서 모든 암석이 녹아버리는 것은 아니지. 다만 그 사이에서도 비교적 낮은 온도에 녹게 되는 광물들이 열수에 계속해서 투입되는 것이라네. 이것은 마치 맑은 개울물이 흘러가다가 흙탕을 만나면 흙탕으로 변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고 하겠지.”
“정말 선생님의 설명이 어찌나 자상하신지 머릿속에 꼭꼭 들어박힙니다. 한 번만 들으면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로군. 허허허~!”
파향은 이야기하다가 입이 마른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도 이때다 싶어서 차를 마시면서 다음의 설명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헛기침을 한 번 한 파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원래는 미량(微量)의 황금이나 은이나 구리지만 오랜 세월, 수억 년을 뜨겁게 틈새를 헤집고 다니다가 보니까 점점 그 함량이 많아지게 되었고, 그렇게 다니다가 지표(地表)로 가까이 올라오기도 하지. 일단 지표에 가까이 흘러오게 되면 비로소 서서히 식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식으면 그것이 나중에 일종의 암맥(巖脈)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라네.”
“아하! 알겠습니다. 그 암맥의 주요성분이 석영이어서 석영맥이라고 한다는 말씀이지요?”
“오호~ 어느 사이에 거기까지 이해하셨나? 허허허~!”
파향은 즐겁다는 듯이 웃고는 다시 말했다.
“맞아! 그렇게 형성된 석영맥이지만 지하의 깊은 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것을 찾아낼 방법은 없는 셈이지. 그러니까 표면으로 흘러나온 석영맥을 찾아서 온 산천을 누비고 다닌다네.”
“정말 재미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서 곡괭이를 들고 나가보면 왠지 금광맥을 찾을 수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우창의 말에 파향이 미소를 짓고는 설명했다.
“그런가? 그렇게 쉽진 않을 것이네. 여하튼 석영맥이 있다면 자세히 캐내어서 황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뭔가 가치가 있는 광물이 있는지를 찾아봐야 한단 말이네. 그리고 석영맥이 있더라도 금전적으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또 그다음에 판단하는 일이라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진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흥미롭게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영맥을 찾아서 금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겠습니다만 사금(砂金)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고롭게 온 산천을 누비고 다닐 것이 아니라 강이나 하천을 뒤지는 것이 더 손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오, 사금 말인가? 그것도 있지. 결국은 사금도 석영맥이 물에 노출되어서 오랜 세월 씻겨 나와서 바닥에 가라앉은 것을 찾는 것이니까 비유하자면 원류의 우물을 찾느냐 아니면 우물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찾느냐고 하는 차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실제로 금맥을 강변이나 하천의 중류에서 찾아내는 경우도 많지.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찾기 어렵지만 비가 내리고 홍수가 흘러서 흙이 깎여나가고 바위가 남은 곳이라면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나?”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실은 황금보다도 더 귀한 것도 있지 않습니까? 홍옥(紅玉:루비)이나 청옥(靑玉:사파이어)이나 찬석(鑽石:다이아몬드)과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더 이익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왜 다들 황금에 대해서 열정적일까요?”
“맞는 말이네. 다만 황금이 그들보다는 찾아내기가 쉬운 것도 있을 것이네. 특히 홍옥이든 청옥이든 찬석이든 일정한 맥이 있으면 그것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허공에서 흩뿌린 것처럼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으니, 그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고 실은 그래서 또 가치가 높은 것이기도 하다네. 그나저나 삼진은 아는 것이 많구나. 허허허~!”
“과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가치도 높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실로 황금도 중요하지만, 도검(刀劍)을 만드는 강철(鋼鐵)도 일상에 꼭 필요한 금속이니 그러한 것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습니다. 지질을 알게 되면 세상에 유익한 일도 많이 할 수가 있으니 또한 좋은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왜 아니겠나. 탐욕에 사로잡혀서 가산을 탕진하고 자기의 삶도 돌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나 그래도 공익을 위해서 광맥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 그런 사람은 관원으로 뽑혀서 항상 지질을 탐사하고 주변 땅이나 바위 속에 어떤 광물이 있는지를 연구하는 직책도 있다네.”
“아, 그렇습니까?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참으로 막중한 직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돌은 금전적으로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 것입니까?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고 깊숙이 저장하신 것으로 봐서 매우 소중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여쭙습니다.”
삼진의 말에 파향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금전적인 가치를 말인가? 아마도 한 푼의 가치도 없을 것이네. 허허허~!”
“아니 그런데 왜 소중하게 간직하시는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야 남에게는 하등의 가치가 없더라도 내게는 소중한 돌이기 때문이라네. 돌 하나하나마다 추억과 감동과 기쁨이 있으니 흡사 정원에 핀 한 송이의 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예쁜 꽃에 불과하겠으나 주인에게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피해서 다치지 않도록 애지중지한 다음에 핀 꽃의 가치는 전혀 다르지 않겠느냔 말이네. 이것은 공화도 잘 알고 있지?”
기현주에게 묻자, 얼른 대답했다.
“당연히 알지요. 이 돌 하나하나는 천만년을 두고 시들지 않는 꽃과 같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그런데 이것은 무슨 암석이죠? 흡사 동물의 이빨처럼 생겼네요.”
기현주가 돌 하나를 가리키면서 묻자, 이번에도 파향이 반가워하면서 설명했다.
“아, 그건 화석(化石)이라네. 공룡(恐龍)의 이빨이라고 하더군.”
“예? 청룡(靑龍)이나 황룡(黃龍)이 아니라 공룡이라는 용도 있었던가요? 이렇게 이빨이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살았었다고 봐야 하잖아요?”
기현주가 신기하다는 듯이 공룡의 이빨을 만져보면서 물었다.
“그렇다네. 과거 중생대(中生代)라고 하는 시기에 이 땅을 누비고 다녔다더군. 그러니까 고생대(古生代)가 있고, 중생대가 있고 또 신생대(新生代)가 있는 것으로 분류하더군.”
“그렇다면 이 땅이 처음 생기게 된 것이 고생대라는 말인 거지요?”
“고생대 이전에는 명왕누대(冥王累代)로 시작해서 시생누대(始生累代)를 거쳐서 은생누대(隱生累代)를 거쳐서 원생누대(原生累代)가 있는데 이 모든 세월은 과거 42억 년간 이어진 세월이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어서 그렇게 부른다네. 그리고 실제로 패류(貝類)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현생누대(現生累代)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처음이 고생대이고 다음이 중생대이니 그 중생대에 살았던 것이 공룡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전한다네. 그 공룡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직경 25리(里:10km)쯤 되는 운석(隕石)이 떨어지면서 충돌하는 바람에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하더군. 허허~!”
기현주는 파향의 설명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나 오랜 세월이 흘러왔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았고 상상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파향은 당연하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해괴(駭怪)한 말인가 싶었는데 의심하면 할수록 이렇게 실존했다는 흔적이 나타나는 바람에 믿을 수밖에 없었지. 실로 40억 년이라는 긴 세월에는 아무런 생명체가 보이지 않아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더군. 그런데 고생대가 되면서 비로소 생명체의 흔적을 찾게 되었다는 거라네.”
우창도 궁금증이 샘물이 솟아오르듯 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용(龍)이 단순히 전설 속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땅에 살았었다는 말씀입니까? 현세(現世)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어서 단지 상상으로만 존재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공룡의 이빨을 앞에 놓고 보니 의문과 호기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과연 이것이 공룡의 이빨이 맞기는 한 것인가도 의심스럽고요. 하하~!”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변화무쌍한 청룡과 황룡 등의 용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쩌면 이러한 공룡들의 전설에서 변화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그것도 무리는 아니네. 그러나 양인(洋人)들의 과거사(過去事) 연구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깊어서 감히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만 깨달았네. 그래서 부정할 이유가 명확해질 때까지는 그냥 수용하기로 했다네. 그래도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기도 하고 말이네. 허허허~!”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여와(女媧)가 천지(天地)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한낱 설화(說話)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까? 문득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한 생각이 엄습(掩襲)합니다. 여태 이렇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선생님을 만나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안목을 크게 넓히고 보니 이것도 하늘이 도우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런가? 그 또한 인연이겠지. 허허허~!”
“양인들은 인류의 최초는 어떻게 생겨났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창이 이렇게 묻자,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던 파향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우창은 뭔가 잘못 물었나 싶어서 괜히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우창을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들은 두 가지의 이론을 전개한다네. 하나는 천제(天帝)가 인류를 창조했다고 하는 설과, 또 하나는 원래는 미물이었는데 오랜 세월을 거쳐서 진화(進化)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라네. 신앙으로 본다면 천제가 만들었다는 설이 속이 편하겠으나 곰곰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자연적으로 진화하면서 최종적으로 남게 된 것이 인류(人類)라고 하는 설에 공감이 가지만 실물을 보지는 못했으니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파향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새삼 상상하기 어려운 광활한 이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파향도 신기했다.
“그렇다면 현생누대라고 하셨습니까? 고생대와 중생대를 거쳐서 신생대까지 흘러오면서 거역할 수가 없는 여러 흔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그러한 흔적이 드러난다면 신화를 따르기보다는 학문적인 논리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우창은 논리적인 심성을 가졌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득한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생을 살다가 죽기를 얼마나 반복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인신(人身)을 얻어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 항상 감사할 따름이라네. 허허허~!”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명학(命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고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명왕누대부터 흘러온 수십억 년의 세월을 생각해 보니 어디에서 연주(年柱)와 월주(月柱)와 일주(日柱)와 시주(時柱)가 작용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자괴감(自愧感)조차 들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혹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우창은 실로 한낱 별다른 의미도 없이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삶에 대해서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팔자(八字)의 논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회의심(懷疑心)이 들어서 처연(悽然)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일찍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우창의 말에 자원과 기현주도 공감이 된다는 듯이 파향의 설명을 기다렸다. 어떤 말이라도 분명히 사유하는데 깊은 깨달음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최초(最初)의 갑자년(甲子年)은 언제일까?”
“46억 년 전의 어느 날이었을까요?”
“그때도 하루는 12시였을까?”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그냥 이 늙은이가 생각해 본 것이니 너무 마음을 쓰지는 말게나. 허허허~!”
이렇게 웃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시대에는 인간도 없고 그것을 기록할 문자(文字)도 없으니 어느 누가 기록할 수가 있었을까?”
모두 숙연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울리는 파향의 음성을 따라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반고가 세상을 만들었다고도 하니 그날이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였을까? 여기에 대해서 어느 누가 명쾌하게 말할 수가 있겠나?”
“그래서 말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실로 난감(難堪)합니다. 혜안을 열어서 후학의 고뇌를 시원하게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냥 두면 되지 왜 그러한 고민을 한단 말인가?”
“갑자년(甲子年)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금년이 계유년(癸酉年)임을 어찌 단정(斷定)하고 길흉을 풀이하겠습니까?”
“그럼 내려놓으면 될 일이 아닌가? 허허허~!”
“……”
우창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잠자코 생각에 빠졌다. 과연 파향의 말대로 내려놓으면 그뿐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나? 그렇다면 여태까지 심혈을 기울여서 토론한 적천수(滴天髓)며 생극제화(生剋制化)며 길흉화복(吉凶禍福)은 과연 아무런 쓸모도 없었더란 말인가? 그동안 헛된 신기루(蜃氣樓)를 찾아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했던 것인가?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迷宮)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파향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러한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 듯하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는 수시로 살펴봐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선생님, 돌에 대한 세월이며 아득한 역사에 대해서 듣기 전에만 해도 전혀 의심하지도 않았고, 할 생각도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문득 말씀을 듣다가 생각해 보니까 이게 무엇인가 싶은 생각이 엄습(掩襲)하는 바람에 갑자기 혼란(混亂)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이런 계기로 인해서 생각해 볼 틈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또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무엇이든 간에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역사는 흘러오고 또 흘러간다네. 그 오랜 세월에 이 땅에는 또 단절의 시간이 없었겠나?”
우창은 파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멀뚱히 바라봤다. 그러자 파향이 기침을 한 번 하고는 차를 마시더니 우창에게 설명했다.
“고생대와 중생대로 나뉘는 구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냥 단지 세월이 흘러가다가 보니 적당한 지점에서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고 생각하나?”
우창이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내용이라서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땅을 주름잡았던 공룡도 사라지고 그 결과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의 구할(九割)은 절멸(絶滅)하게 되었고 다시 아득한 세월이 흐른 다음에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기를 반복했다고 하잖은가. 이러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잠시 태어나서 머물다가 떠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조차도 우스운 일이기는 하잖은가? 허허허~!”
“그러니까 활개를 치던 공룡들이 모두 지상에서 사라졌다는 말씀입니까?”
“아, 그 후손들도 아직 살고 있기는 하지.”
“예? 그건 보지 못했는데 어디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까?”
“닭장과 새장에 살고 있다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간단하다네. 닭이 공룡의 후손이라는 말이지. 그러니까 바닥을 누비던 공룡은 멸종했으나 하늘을 날던 익룡(翼龍)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이지.”
“아니, 그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몰랐던 것이네요. 그렇다면 공룡과 닭의 공통점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우창의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파향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오호~! 내 그럴 줄 알았네. 질문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가 아닌가 말이네. 허허허~!”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설명했다.
“공룡은 소화기관에서 담즙(膽汁)이 생성되지 않아서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더군. 그래서 돌을 삼켜서 음식물을 소화시켰다는 거야.”
“아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닭은 가끔 모래를 주워먹기도 하는 것이 그런 까닭이었습니까? 참 신기합니다. 그런 공통점이 있었군요.”
우창이 감탄하면서 말하자 파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창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우연히 생긴 것은 없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것도 있고 사라진 것도 있고 변화한 것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음양중(陰陽中)이 다시 떠올라서 미소가 절로 배어 나왔다.
“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곳에서도 의연하게 존재하는 것은 음양중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어? 음양중아라니?”
우창의 뜬금없는 말에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던지 파향의 눈이 커진 것을 본 우창이 설명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존재가 소멸하니 음(陰)이고 존재가 탄생하니 양(陽)이고 존재가 변화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니 중(中)이라고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왜 아니겠나. 그러니까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해야 할지. 그 바람에 인류의 태곳적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포유류(哺乳類)가 탄생하게 되었다니 또한 돌고 도는 유전(流轉)이 얼마나 신기하냔 말이네.”
파향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에 대한 즐거움으로 신나게 설명했다. 실로 누군가 물어주지 않는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대상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니 오늘 제대로 속에 담아뒀던 것을 장광설(長廣舌)로 펼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생각해 보게. 처음에 태어난 생명체는 눈도 없고 단지 더듬더듬 먹을 것을 찾다가 잡아먹히기도 했겠지? 그러다가 빛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그래서 먹이를 찾거나 적을 피하는 행동도 하면서 이렇게 흘러온 것을 진화라고 한다더군. 허허허~!”
우창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쏟아 내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정리하느라고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니, 눈이 애초에는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랬다더군. 그러한 흔적을 화석에서 발견했으니 믿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 않나?”
“참으로 말씀을 들을수록 요지경(瑤池鏡)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대(周代)며 한대(漢代)의 위인들에 대해서만 생각하다가 오늘 해 주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러한 것도 아득한 세월에 잠시 명멸(明滅)한 반딧불이에 불과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천 년도 상상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1만 년도 아니고 백만 년, 천만년이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우창은 목이 타서 차를 한잔 마시는데 시중드는 낭자가 음식이 준비되었다고 전달했다. 그 말을 들은 파향이 말했다.
“이런, 그대들의 열정으로 인해서 나도 이야기에 취해서 밥때가 되는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제 자리를 옮겨서 담소하도록 하지.”
우창은 일행과 함께 파향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