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 제45장. 만행(漫行)/ 4.서호(西湖)의 풍광(風光)

작성일
2025-06-25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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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제45장. 만행(漫行)


4. 서호(西湖)의 풍광(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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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일행이 쉬엄쉬엄 길을 가다가 보니 사흘을 더 달려서야 항주부(杭州府)에 들어섰고, 다시 하루를 지난 다음에야 서호(西湖)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비록 바쁜 일이 없다고는 해도 목적지가 있으니 자연히 마음은 목적지에 가 있었는데 과연 항주(杭州)는 번화(繁華)한 성시(城市)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길가의 전각이며 오가는 사람들의 행색이 여유로워 보였다. 어둠 속에서 더욱 화려한 고도(古都)의 풍경을 보면서 자원이 말했다.

“싸부, 마침내 서호를 만나보겠어요. 오늘은 늦었으니 가까운 곳에서 여장을 풀고 푹 쉰 다음에 내일 유람해야겠죠?”

자원도 흥겨운지 우창에게 말하면서 객잔을 물색했다. 기현주가 불빛을 휘황하게 밝혀놓은 객잔을 발견하고는 자원에게 말했다.

“저기가 좋아 보이네. 오랜만에 따끈한 물에 푹 담기고 싶구나.”

기현주가 가리킨 곳은 「서시빈관(西施賓館)」이었다. 마차가 빈관 앞에 멈추자, 고대의 복식을 갖춰 입은 낭자가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번화가의 풍경이었다.

“귀한 손님들께서 서시를 찾아오셨네요. 잘 오셨습니다.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 모습을 본 삼진이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오호! 서시가 마중을 나오시다니 하하하~!”

여정이 마차를 대러 간 사이에 일행들이 넓은 객청(客廳)으로 들어가니 중앙에는 한 장수(將帥)가 여인과 마주 보면서 담소하는 인물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20여 세로 보이는 점원에게 물었다.

“여인이 서시인 것은 알겠는데 장수는 누구지?”

“예, 손님! 고사(故事)에 나오는 범려(范蠡) 장군이십니다.”

고사라는 말을 듣고서 기현주도 알고 있는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이마를 찌푸렸다. 그것을 본 삼진이 웃으며 말했다.

“설마하니 사대미녀(四大美女) 중의 하나인 서시의 고사를 모르시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아, 얼핏 들어본 것도 같기는 한데 남의 일이라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가 본데 삼진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는가 보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오월(吳越)의 역사를 논하자면 빠질 수가 없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자니 자연히 약간의 이해를 하게 되었나 싶습니다.”

“역사가 나오면 재미없잖아? 어디 귀를 기울일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전해지고 있었던 건가?”

기현주가 묻는 말을 듣고서 점원이 자리를 마련하고 차를 준비한 다음에 일행을 보며 말했다.

“손님께서 궁금하신 것에 대해서는 소인이 말씀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창이 봐하니 이곳에 와서 묵는 길손들에게 수도 없이 이야기했을 범려와 서시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자 느긋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청했다.

“오호! 그러니까 그대가 전문가겠구나. 어디 우리를 위해서 수도 없이 말했을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겠나?”

우창도 대략은 알고 있었으나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짐짓 청했다. 그러자 젊은 점원은 신이 나서 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나리께서 묻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항주와 서시는 서로 바늘과 실처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이곳에 유람을 오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한두 가지의 고사는 알고 있으십니다. 소인이 약간의 설명을 해 드릴 기회를 주셨으니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에 기다리시는데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점원의 말에 모두 흥미롭게 귀를 기울였다.

“전(傳)하는 말에 의하면 서시(西施)의 본래 이름은 시이광(施夷光)으로 회계(會稽)의 영라산(苧萝山) 아래의 마을에 살았다고 합니다. 동촌(東村)과 서촌(西村)으로 나누어진 마을의 서촌에 살았기 때문에 서시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동촌에도 시씨녀가 있어서 그를 동시(東施)라고 부르게 되자 서로의 혼동을 피하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점원의 말에 자원이 물었다.

“그랬던 거야? 같은 마을이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미모가 빼어났던 거야?”

“당시 서시를 데려갔던 월(越)의 대부(大夫)인 범려(范蠡)가 ‘미녀를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말에 3일이면 돈이 궤짝에 가득하게 채워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객청의 중간에 마련된 인물을 가리켰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서 만든 것이라는 뜻이었다.

“아하~ 그랬구나. 근데 단지 절세(絶世)의 미녀(美女)라서 유명한 것은 아니잖아?”

“맞습니다. 범려가 적국(敵國)이었던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서 미인계(美人計)로 서시를 보내어서 빠져들게 했고 그로 인해서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게 되자 당시 대장군(大將軍)이었던 오자서(伍子胥)가 간언(諫言)했다고 합니다.”

“오자서는 들어봤지. 아마도 여색(女色)을 가까이 말라고 했겠지?”

“그렇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하(夏)는 말희(妺喜)로 인해서 망했고, 은(殷)도 달기(妲己)로 인해 망했으며, 주(周)는 포사(褒姒)로 인해서였으니 절대로 서시를 받으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으나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서시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녀를 위해서 고소대(姑蘇臺)에 춘소궁(春霄宮)을 짓고 영암산(靈巖山)에는 관왜궁(館娃宮)을 짓고 큰 연못을 파서 서시가 놀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서시에게 빠져서 나라는 돌보지 않게 되자 국력이 쇠약해서 결국은 월왕(越王)이 승리하게 되었고 범려는 대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하! 그래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했구나.”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자 점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고사를 남겼는데 후에 송(宋)의 소동파(蘇東坡)가 서시를 흠모해서 항주자사(杭州刺史)를 지낼 적에 오왕이 서시를 위해서 연못을 만들었던 것처럼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어서 한편으로는 백성이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물을 확보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호수에서 유람하도록 했으니 실은 소동파의 공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맞아! 소동파의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어. 호호호~!”

기현주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하자 점원이 대답했다.

“실로 서호를 파서 호수를 만들 적에도 소동파는 깊은 생각으로 멀리 내다봤다고 합니다. 가뭄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수입이 변변치 않았던 가난한 백성들이 호수를 파는 작업으로 넉넉하게 품값을 받아서 생계도 해결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아, 그런 말은 못 들어봤는데 역시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최고구나.”

기현주가 재미있어 하자 점원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말했다.

“서호는 내일 아침에 둘러보시면 되겠습니다. 마침 요리가 준비되었으니 즐거운 만찬이 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점원은 음식이 차려지는 것을 보고서 인사하고 물러갔다. 음식을 보면서 기현주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 항주에서는 동파육(東坡肉)이 제격이지. 동파육은 소동파가 창안한 항주의 명품이라지. 그리고 황주(黃酒)도 빠질 수가 없잖아?”

기현주의 말에 삼진도 한마디 거들었다.

“항주에서는 고래로 「고월용산(古越龍山)」이 명주(銘酒)로 소문이 났는데 오늘 그 맛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술의 이름을 듣자 고월이 떠올랐다.

“술 이름이 그렇단 말이지? 오행원에서 열심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을 고월 선생이 문득 떠오르는걸. 혼자만 나와서 주식(酒食)을 즐기니 조금은 미안하잖은가. 하하하~!”

“그렇다면 고월 스승님을 위해서 건배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모두 흥겨운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는 노정(路程)의 피로를 뜨거운 물로 씻고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일찍 잠이 깬 우창은 호반(湖畔)을 바라보다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서 산책을 나섰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서 사람들은 드문드문 보였다. 개를 데리고 운동하러 나온 노인들도 많았다. 지나치면서 눈인사를 나누면서 어둠이 걷히는 서호의 풍광에 젖어 들었다. 바람이 일자 출렁이는 파도가 쌓아놓은 축대를 두드려서 철썩이는 소리와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다가 호반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물결을 타고 나타난 오리며 원앙의 무리가 자맥질하면서 아침거리를 마련하는 풍경이 여유로웠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옆을 돌아보니 어느 사이에 나왔는지 기현주가 우창을 보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 옆에 앉았다.

“동생은 피곤하지도 않아? 일찍 일어나서 나온 것을 보니 말이야.”

“누님도 푹 쉬셨던가 봅니다. 안색이 무척 밝아 보이시니 말입니다. 하하~!”

“그래, 잘 잤나 봐. 동생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고 있었어?”

“아무런 생각도 없이 풍경에 취하고 있었습니다.”

“바람결에 살랑이는 버들가지가 흐느적거리는데 산책 삼아 걸을까?”

기현주가 일어나서 수양버들의 가지처럼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앞서 걸었다. 소요원의 화원에서 꽃을 따던 모습이 떠올랐다. 천천히 뒤따르면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기현주가 우창을 돌아보며 말했다.

“때로는 이렇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걸어보는 것도 참 좋아. 그렇지?”

“맞습니다. 바람도 상쾌해서 더욱 좋습니다.”

잠시 걷는데 저만치 바위 언덕이 보이고 그 옆에는 우아한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정자로 올라가면 서호의 풍광이 더 잘 보일 것 같지?”

기현주가 가볍게 걸음을 옮기자 우창도 뒤를 따랐다. 정자에는 편액이 붙어있었다.





「파향정(波香亭)」

“정자 이름이 파향정이네? 파도가 향기로운 정자라는 뜻일까?”

기현주가 우창에게 뜻을 풀이해 보라는 듯이 물었다. 우창은 대답대신에 파항정을 살펴보니 주련(柱聯)이 있었다.

“사입파심수역향(瀉入波心水亦香)이라, 여기에 뜻이 있었네요.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나 봅니다. ‘물이 흘러가고 마음도 파도에 들어가니 물도 또한 향기롭구나’라고 하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읽은 주련을 보던 기현주는 다시 양옆에 있는 대련(對聯)을 보면서 읽었다.

“야취생송죽(野翠生松竹)이요, 담향문지하(潭香闻芰荷)라”

기현주가 읽어보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풀이했다.

“들에는 푸른 송죽(松竹)이 자라고 연못에는 연꽃이 향기를 뿜는구나”

“멋집니다. 그야말로 서호의 그윽한 풍광을 제대로 읊은 시인듯싶습니다. 누군가 운치있는 글을 지었네요.”

“정자만 있나 했더니 장원(莊園)이 있잖아? 겉에서 봐도 예사롭지 않은 풍경인걸. 우리 가볼까?”

“그렇군요. 이 파향정도 저 장원의 주인이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려고 지은 듯 싶습니다. 이제 곧 아침을 먹을 시간이니 밥부터 먹고 천천히 둘러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하~!”

우창은 기현주의 즉석적인 행동이 시원시원해서 맘에 들었지만 빈관에서 기다릴 일행을 생각해서 잠시 후에 다시 나오자고 하고는 빈관으로 향했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의 모습이 한가로웠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일찍 잠이 깨서 산책을 다녀 오셨군요.”

숙소에 들어서자 마침 씻고 나온 자원이 우창과 기현주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기현주도 자원을 보고 말했다.

“잘 쉬었어? 새벽에 잠이 깨서 바람을 쐬고 왔어. 자원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이따가 밥 먹고 둘러보자꾸나.”

“알았어요. 두 분이 오붓하게 산책을 즐기셨단 말이죠? 한발 늦은 잠버릇이 항상 문제라니까요. 호호호~!”

아침상도 푸짐했다. 잉어탕과 함께 등장한 주인이 말했다.

“나리님들 잘 주무셨지요? 서호에서 잡은 잉어로 맛있는 탕을 끓였으니 든든하게 드시고 한 바퀴 둘러보시면 힘들지 않을 거예요.”

크게 꾸밈없이 수수한 여주인의 모습이 흡사 내 집인냥 편안하게 느껴졌다. 모두 맛있는 서호의 별미를 먹고서 차와 함께 과일까지 먹고 나자 우창이 자원에게 말했다.

“새벽에 잠깐 둘러보니까 멀지 않은 곳에 멋진 정자도 있고, 장원도 있어서 풍경이 일품이었는데 아침밥을 먹고 같이 둘러보려고 돌아서지 않는 걸음을 돌렸지. 호수와 정자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이런 곳에서 몇 달 푹 쉬고 싶었지.”

“싸부가 그렇게 말하시니 자원도 가보고 싶어요. 아, 여정은 주인에게 말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하고 같이 둘러보자.”

여정은 혹시라도 우창 등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용히 빈관에서 기다리려고 생각했다가 자원이 같이 나가자는 뜻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서 무척 기뻤다. 얼른 마굿간에 가서 말을 보살피고는 돌보는 사람에게 챙겨달라고 부탁하고는 서둘러서 준비했다.

일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파향정에 오르자 멋진 풍경에 자원이 감탄했다.

“어머나~!”

자원이 자기도 모르게 외치다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는 머쓱했다. 우창이 보니까 70세는 되어 보이는 노인이 조용하게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가 자원의 말을 듣고서 돌아다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우창이 사색하는데 파적(破寂)을 깨트렸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에 얼른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노인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공수하고 말했다.

“어서 오시오. 나는 곡원(曲院)에 살고 있는 허승조(許承祖)라는 늙은이외다. 어디에서 이렇게 유람을 오셨소?”

노인이 관심을 보이면서 말하자 우창도 반가워서 포권하고는 말했다.

“아, 허 어르신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소생은 진하경(陳河鏡)으로 소주(蘇州)에서 머물고 있다가 잠시 항주의 풍광이 좋다기로 나들이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워서 정신을 빼앗길 지경입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살고 계시니 참으로 부럽습니다.”

“아, 멀지 않은 소주에서 오셨구료. 잘 오셨소이다. 맘껏 풍광을 즐기시오. 그리고 바쁘지 않으시면 곡원으로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으시오?”

우창은 그렇지 않아도 새벽에 멀리서나마 살펴보고 멋진 장원이 궁금했는데 마침 주인이 초대한다니 기꺼이 응하고 싶어서 자원을 보며 말했다.

“어때? 잠시 폐를 끼쳐도 괜찮겠지?”

“물론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안쪽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사양할 까닭이 없잖아요? 정말 감사드려요~! 호호~!”

자원의 경쾌한 말에 노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앞장을 섰다. 장원으로 가는 길가에는 거대한 태호석(太湖石)이 나그네를 반기듯이 자태를 뽑내고 있는 것을 보니 우창은 문득 곡부에서 공자묘를 둘러보던 생각이 떠올랐다. 공자묘에서도 태호석을 봤었는데 여기에서 보는 것은 그보다도 훨씬 컸고 또 형태도 괴석(怪石)답게 일품이었다.

“태호석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창이 허승조에게 말하자 조용히 걷던 노인이 우창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호! 태호석을 아시오? 반갑구려. 허허허~!”

“알지는 못합니다. 곡부에서 공묘(孔廟)에서 봤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니까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태호석을 보고서 반가워하는 것으로 봐서 돌을 보는 안목이 있는 듯싶소이다.”

우창은 의외로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노인의 돌에 대한 조예(造詣)가 남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생겼다. 항상 오가면서 만나는 돌이지만 그러한 것들의 연원(淵源)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었는데 즐비하게 늘어선 한길이나 됨직한 멋진 괴석들을 보면서 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암석의 자태를 보면 저절로 마음을 빼앗깁니다. 풍경이나 수석이나 저마다 독특한 풍모를 갖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다만 물어볼 곳이 없어서 내심으로 늘 궁금했습니다.”

우창의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서 노인의 눈이 커졌다.

“내 그럴 줄 알았소.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는 왠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들었기에 혹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은 생각으로 파향정에 나가서 짐짓 누군가를 기다렸는데 갑자기 나타난 진 선생을 보고서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는데 저 여인의 풍모를 보면서 차 한 잔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소이다.”

노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기현주를 가리켰다. 우창은 그 말을 들으면서 세상을 오래 살게 되면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내력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노인의 내공이 출중해서 일반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도 살필 혜안(慧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궁금한 마음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기현주도 노인의 말에 화답했다.

“기현주인데 공화(空華)라고 불러주세요. 오늘 어르신을 뵙고서 문득 차를 얻어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흔쾌히 초대(招待)해 주셔서 내심 무척이나 기뻤답니다. 하물며 호감을 느끼셨더니 감사합니다.”

“공화? 흔치 않은 아호구려. 무슨 뜻인지 물어도 되겠소?”

“별 뜻은 없어요. 허공(虛空)에 꽃비가 가득히 쏟아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으로 지은 호인 걸요. 호호호~!”

“어쩐지,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꽃 이야기를 하시니 뭔가 죽이 맞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혹 정원을 가꾸시오?”

우창은 내심 흠칫 놀랐다. 단지 두어 마디를 말했을 뿐인데 벌써 기현주의 내력을 파악했다는 듯이 물어보는 말에서 노인의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실은 이 정원에 즐비한 괴석들을 보면서 공화랑 같은 취미를 갖고 있으신 것으로 느꼈으니까요. 몇 송이의 꽃을 가꾸면서 소일하고 있다가 동행을 만나서 항주 나들이를 했는데 이렇게 진기한 내공을 갖추고 은둔(隱遁)하는 이인(異人)을 뵙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호호~!”

“오호~! 화원(花園)이라. 과연!”

“공화는 오늘 암석원(巖石園)에 대해서 새로운 안목을 얻었습니다. 꽃보다 예쁜 돌들이 이렇게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난생처음으로 만났으니까요. 돌은 무표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스스로 무지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요. 호호~!”

기현주는 진심으로 노인이 꾸며놓은 괴석원(怪石園)에 대해서 감탄했다. 그것은 우창이 봐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렇게 담소하면서 걷는 사이에 한 건물에 도착했다. 한 소녀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는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우창 일행은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가니 넓은 차방(茶房)으로 보이는 접객실이었다. 노인이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모두 앉기를 권하자, 여정까지도 의자에 앉아서 잠시 주변을 살펴봤다.

“자, 누추하지만 편히 앉으시오. 그리고 소생은 아호가 파향(波香)이라오.”

“파향이라면 조금 전에 뵈었던 정자의 이름에 선생의 아호를 붙이셨군요. 어쩐지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은……?”

우창은 정자의 주련에서 파향에 대한 풀이를 보기는 했으나 그래도 직접 아호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별 뜻이 있겠소. 세상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는 파도(波濤)와 같아서 파(波)를 택했고, 돌에서 나는 향기(香氣)를 느끼고 싶어서 향(香)을 썼을 뿐이오. 그리고 이 집이 곡원(曲院)인 것은 돌이 춤을 추는 것이 흡사 곡예(曲藝)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라오. 그냥 늙은이의 착각이려니 하시구려. 허허허~!”

“항시 봐도 그 모습 그대로인 암석이 춤을 춘다는 말씀은 이 괴석원에 들어오기 전이라면 무슨 말인가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과연 암석들이 춤추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하하~!”

그 사이에 예의 낭자가 뜨거운 물을 들고 와서 조용히 차를 내리는 것을 본 자원이 얼른 일어나서 파향에게부터 잔을 돌렸다. 잔의 형태가 모두 같은 것으로 봐서 구분이 없어 보였다. 어떤 집에서는 주인이 애호하는 찻잔이 따로 있기도 해서 살펴봤지만 그런 차이는 없었다. 향을 맡아 본 자원이 감탄하면서 말했다.

“오호라! 오랜만에 접해보는 귀한 사봉용정(獅峰龍井)이로군요. 참 향기로워요. 과연 파향(波香)이네요. 향기가 파도처럼 마음속으로 파고드니까 말이죠. 호호~!”

잔을 들고 향을 맡던 자원이 감탄하면서 말하자 낭자가 대답했다.

“어마나, 차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네요. 단박에 사봉용정을 알아보시다니 말이에요. 말씀하신 대로 선생께서는 서호의 안개와 이슬을 머금고 자란 용정차(龍井茶)를 좋아하셔서 진객(珍客)을 만나시면 꼭 내시거든요.”

자원의 말에 파향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안목들이 과연 비범(非凡)하시구려. 오늘은 이 늙은이의 생일이오~ 허허허~!”

“아, 만수무강을 경축드립니다.”

우창이 얼른 말하자 낭자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호호호~ 아니에요. 태어나신 생신이 아니라 반가운 객을 만나면 그날이 생일이라고 하시는 건데 오늘 즐거우신가 봐요. 호호~!”

낭자의 말을 듣고서 우창은 왜 그렇게 말하는지 궁금해서 파향을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아니 호흡하는 매 순간이 생생(生生)아니오? 허허허~!”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말하다가 노인의 말이 예사롭지 않음을 생각하고는 바로 그 의미를 헤아리고서 말했다.

“아하! 그러니까 오늘도 새롭게 태어난다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우창도 오늘이 생일입니다. 하하~!”

삼진은 차를 마시면서 벽면을 가득 채운 수석(壽石)을 살펴보느라고 열심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우창도 벽을 바라보니 과연 여러 형태의 돌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위에는 「석우(石宇)」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

“석우는 돌집이라는 뜻인가요? 과연 잘 어울립니다.”

“아, 그런 뜻도 있고.”

또 다른 뜻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물었다.

“또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여쭙습니다.”

우창의 말에 파향은 벽의 편액을 보면서 말했다.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석중유우주(石中有宇宙)’라는 생각이 들어서 써 본 건데 아무도 그 뜻을 묻진 않더구먼. 허허허~!”

“돌 가운데 우주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과연 둘러보니 우주라 할 만하겠습니다.”

돌들을 다시 살펴보니까 갖가지의 문양(紋樣)과 물형(物形)의 형상들이 제각기 감탄할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다. 돌들 하나하나에 읽힌 이야기가 한가득 들어있을 것만 같은 모습의 빼어난 돌을 보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자 파향은 흥이 나서 말했다.

“이건 노송(老松)아래 참선(參禪)하는 수행자의 형상이군요.”

우창이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한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높이는 겨우 일척(一尺)이 될까말까한 짙은 황색의 돌에 소나무를 한 흰색의 문양과 그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보인다면 그게 맞을 것이오. 허허~!”

우창의 말에 자원도 한마디 했다.

“자원이 보기에는 장보러 간 아내를 기다리면서 졸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걸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