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 제45장. 만행(漫行)/ 3.도박장(賭博場)

작성일
2025-06-20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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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 제45장. 만행(漫行)

 

3. 도박장(賭博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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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무척 궁금하다는 듯이 말하자 현경은 이야기할 맛이 난다는 듯이 입술에 침을 바르고는 그가 겪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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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3년 전이었다. 현경이 호주부(湖州府)에서 관리로 성실하게 일을 한 것을 높이 인정받게 되어 지현으로 승진했고 무강(武康)을 맡아서 다스리게 되었다. 고을을 다스린다는 것은 혼자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만이 아닌지라 항상 지방의 유지(有志)들과 잘 지내면서 보이지 않는 일조차도 내밀(內密)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몇몇 인물들과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면서 지내는 동안에 돈독(敦篤)한 정이 생기기도 했다. 하루는 가깝게 지내던 고원지(高元之)가 찾아왔다. 그의 호는 만죽(萬竹)이었고 평소에 주역(周易)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 어려운 일에 대해 답을 구하면 언제나 명쾌하게 풀이해 줘서 큰 의지가 되는 인물이었다.

“아니, 형님께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한동안 소식이 없으셔서 도화락(桃花樂)을 즐기고 계시는가 싶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도화락이라고? 허허~ 그보다도 더한 마작락(麻雀樂)에 빠져서 날이 새는지 밤이 되는지도 모르고 지냈나 보네. 아우님은 별일 없으셨지? 나를 찾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는 무사태평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말이네.”

고원지의 입에서 마작이라는 말이 나오자, 현경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니, 형님은 이제 놀음도 즐기십니까? 역경(易經)의 묘리(妙理)를 터득하시느라고 골몰하신 줄만 알았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그게 뭐기에 그렇게나 형님의 혼을 빼놨더란 말입니까?”

“아우도 알지? 월영루(月影樓)말이네.”

“그야 알다뿐입니까? 형님께서 가끔 연회를 열곤 하던 곳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월영루의 주인에게 푹 빠지셨던 것은 아니고요? 하하~!”

“주인이야 돈만 갖다주면 지옥에서 지장보살 만난 듯이 반기니까 심심할 적에는 파적(破寂)삼아 놀러 가곤 했었네만 이번엔 좀 다르다네.”

“그렇다면 매우 아리따운 아이가 새로 왔던가 봅니다. 월영루에서 빠질 만한 것이 그것 말고 또 뭐가 있겠습니까?”

“아이만 온 것이 아니었다네. 그 아이는 기가 막힌 마술(麻術)을 발휘하는데 바라보는 사람들의 넋을 혹 빼놓더란 말이지. 우리도 가끔 오락 삼아서 한판 벌이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심심풀이 삼아 하던 놀이였지 않은가? 그런데 이 아이가 보여주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더란 말이지. 허허~!”

그렇지 않아도 현경은 고을에 특별한 일도 없이 무사태평(無事泰平)한 나날이 이어지자 다소 무료(無聊)해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는지라 만죽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형님께서 그렇게나 재미있는 일이 있으셨으면서 왜 이제야 그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까? 이 아우도 도대체 무슨 재주이기에 그렇게 홀딱 빠지셨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오늘에서야 문득 정신이 들어서 아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왔는데 역시 관심을 보이니 보람이 있구나. 같이 가볼 텐가?”

“여부가 있습니까. 그럼, 평복으로 갈아입을 동안 잠시 기다려 주시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재미있게 놀아보려면 밑천도 좀 챙겨가야 할 것이네. 하하~!”

만죽의 말에 현경은 평소에 모아 둔 여윳돈에서 스무 냥을 챙겨서 허리춤에 넣고는 만죽에게 물었다.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몰라서 대중통보(大中通寶) 스무 냥을 준비했는데 이만하면 되겠습니까?”

“되다마다~! 그리고 부족하면 차용(借用)도 가능하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또 누가 아는가. 돈벼락을 맞게 될지 말이네. 허허~!”

“에구! 형님도 참. 현경의 성정을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어디에나 몰입하지 못하고 슬쩍 건드려 보기만 하는 천성인걸요. 하하~!”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즐겁게 담소하면서 월영루에 다다랐다. 언제나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주인이 반겨 맞았다.

“에구머니나! 이게 뉘세요? 지현 나리께서 참으로 오랜만에 나들이하셨네요.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봐요. 잘 오셨어요. 호호호호~!”

언제나 만나면 입 안의 음식도 내줄 듯이 반기는 주인의 설레발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당연히 돈을 보고 반기는 것인 줄은 알지만 또한 이렇게 돈으로 심심풀이할 수가 있다는 것도 좋은지라 그야말로 주객(主客)의 수작(酬酌)이 맞아떨어지는 셈이기도 하다. 현경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만죽이 작패를 상(床)에 던지는 시늉을 하자 재빨리 눈치를 채고는 내실(內室)로 안내했다.

“모처럼 오셨으니 즐겁게 시간을 보내세요. 월향(月香)아~ 진객(珍客)이 오셨으니 잘 뫼셔라~!”

주인이 안에 대고 소리치자 월향이라고 불린 낭자가 재빨리 나와서 일행을 맞았다. 월향도 만죽과는 이미 구면인지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마련해 놓은 방으로 향했다. 환하게 밝혀놓은 내실에는 이미 마작판이 차려져 있었고 옆에는 주안상(酒案床)도 마련되어 있었다. 

“소녀는 월향이옵니다. 지현나리를 모시게 되어서 영광이옵니다. 편안하신 시간 되시도록 잘 모시겠사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면서 허리를 굽히자 만죽이 희희낙락(喜喜樂樂)하면서 말했다.

“월향아, 지현 나리께 네 마작의 기술을 말하자마자 맘이 동해서 얼른 모시고 왔느니라. 우선 술부터 한 잔 따르고 어서 판을 보여주거라. 허허허~!”

만죽은 이미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렇게 말하고는 월향이 따라주는 술을 한잔 쭉 들이키고는 현경에게 말했다.

“아마 사람이 이렇게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네. 이제 잠시만 기다려 보면 알게 될 걸세.”

현경도 만죽의 말에 기대하면서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는 월향을 바라봤다. 나이는 많이 먹어봐야 22세 이전으로 보였다. 자태가 고우면서도 강인함이 내재(內在)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뼈대가 있는 가문의 낭자가 무슨 사연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적에 만죽이 마작의 패산(牌山)을 흩어서 뒤집어 놓으며 월향에게 말했다.

“오늘은 현경에게 우선 맛보기로 기술 하나를 보여봐.”

만죽의 말에 월향은 패를 섞으면서 물었다.

“고 대인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따르겠습니다. 어떤 것을 보여드리면 좋을까요?”

“동남서북(東南西北)을 차례로 뽑아내는 것부터~!”

 


 

 

만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월향의 섬섬옥수(纖纖玉手)가 작패(雀牌)의 위를 한 번 훑었다. 그러고는 패를 하나씩 골라서 만죽의 앞에 늘어놓았다. 그것을 본 현경은 손에 투시안(透視眼)이라도 달려있다면 몰라도 저렇게 해서 네 개의 패를 찾아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월향이 말했다.

“나리께서 수고스럽겠으나 패를 하나씩 뒤집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다소곳하게 현경을 바라보자, 현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월향이 놓았던 순서대로 하나씩 뒤집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순서대로 동남서북의 자패(字牌)가 드러났다.

“엇~!”

현경은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말했다.

“도대체 마작패에 무슨 짓을 한 거지?”

평소에도 항상 의심이 많아서 무슨 일이라도 세심하게 살피는 천성이 있어서 일단 이렇게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는 뒤집혀 있는 마작패를 일일이 살폈으나 모두가 같은 것일 뿐으로 점이나 표식과 같은 형태가 보이자 않아서 아무런 혐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의혹이 안개처럼 피어오르자 이번에는 현경이 직접 말했다.

“놀랍구나. 그렇다면 홍중(紅中)을 찾아보겠나?”

월향은 다시 손으로 마작패를 한 번 훑고 지나가면서 흡사 교감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월향의 손끝을 따라서 세 개의 패가 나란히 놓였다. 그것을 본 현경이 말했다.

“아니, 네 개를 찾아야 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는 고 대인께서 쥐고 계셔서 소녀가 찾을 방법이 없음을 널리 헤아려 주시옵기 바랍니다.”

현경은 월향의 말에 깜짝 놀라며 만죽의 손을 바라봤다. 그러자 만죽이 편 손에 마작패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을 내려놓자 월향이 가지런하게 모은 다음에 말했다.

“분부하신 대로 행하였나이다. 확인해 보시지요.”

현경이 다시 반신반의하면서 패를 뒤집자 과연 붉은색의 중(中)자가 가지런히 드러났다. 그것을 보면서 이게 무슨 조화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한 번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하겠거니와 연거푸 이렇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그 방법을 설명해 주겠나?”

매사에 논리적(論理的)으로 설명되어야만 수용이 되는 현경에게 이러한 일은 과연 불가사의(不可思議)했다. 그것을 본 만죽은 희색이 만면해서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네. 허허허허~!”

현경은 만죽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이것은 무슨 이치인지 나를 위해서 설명해 주겠나?”

현경의 말에 월향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나리께서 연유를 밝히라고 말씀하시니 뭔가 설명은 해 드려야 하겠으나 소녀의 언변으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옵니다. 어쩌면 교감(交感)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으려나 싶기는 한데 이렇게 부실하게 답변드리기가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교감이라면 마작패와 교감한단 말인가? 사람과 사람끼리야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무정물(無情物)인 일개의 상아(象牙)로 만든 조각과 어찌 교감이 가능하다는 말인지 납득이 안 되는구나.”

“그러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리께 당돌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만약에 천년이나 된 거대한 석불(石佛)에는 신성(神性)한 성품이 있겠는지요?”

“그야 당연하지 않겠느냐? 누군가의 불심으로 조성(造成)이 되었고 또 수없이 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대물(大物)과 소물(小物)이 서로 다르겠는지요? 일전에 어느 화상(和尙)을 뫼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봐서 크고 작은 것에 차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옵니까?”

월향은 단순하게 술이나 따르고 주객의 비위나 맞춰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든 현경이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서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거대한 석불에도 신성(神性)이 있다면 미물(微物)에게도 그것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알겠네. 그렇다면 그대의 말로 봐서 마작패에도 신성이 있어서 네가 원하는 패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신용(信用)일 따름이지요.”

“신용이라니? 그냥 믿고 쓴다는 말이 아닌가?”

“맞아요. 비록 하나의 상아로 만들었을 뿐인 마작패 조각이지만 일일이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요. 그냥 생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지요. 아침이 되면 밤사이에 잘 잤느냐고 인사도 하고 놀이를 마친 다음에는 애썼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도 잊지 않고 있는데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이러한 소녀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진 않으시나요?”

현경은 월향의 말에 둔기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 어린 낭자의 입에서 나올 말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깊이가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가볍게 여겼던 마음을 가다듬고서 다시 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경솔했구나.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네. 그렇다면 마작패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말해주겠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뭔가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네.”

“그렇게 생각해 주셨다니 참으로 감사드려요. 나리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봐서 마작패와 같이 놀이하실 준비가 되셨다고 봐도 되겠어요. 그럼 한 판 즐겨 보시겠어요?”

현경은 자기도 모르게 탁자의 한쪽 면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만죽도 현경의 옆에 앉으며 월향에게 말했다.

“한 자리가 비지 않은가? 함께 할 사람을 데려오겠나?”

“예, 마침 함께 놀이할 분이 계시니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월향이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장을 대동하고 들어와서는 빈자리에 권하면서 말했다.

“이 어르신은 소녀가 항상 귀한 가르침을 배우고 있는 스승님이나 다름이 없으신 분이시니 나리들과 합석하셔도 좋을 듯싶어요.”

현경이 그를 바라보니 물욕을 떠난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에서 호감이 생겨서 마주 바라보며 눈인사하고는 마작패를 주워다가 앞에 패산을 쌓았다. 그런데 월향과 노인은 손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는데도 현경이 반도 쌓지 못한 짧은 순간에 모두 다 쌓아놓고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흡사 작패가 손가락에 붙어 있는 듯한 모습에서 묘한 운율(韻律)이 느껴지기도 해서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럼 순서를 정하도록 할게요.”

이렇게 시작된 마작판은 돌고 돌아서 술시(戌時)가 지났다. 그러자 월향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즐기셨으니 또 다음 시간을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는지요? 시간이 이미 술시를 넘었습니다.”

“아니? 벌써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현경은 이미 깊은 어둠에 잠긴 밖의 풍경을 내다보고 나서 비로소 놀이에 몰입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갖고 갔던 대중통보는 절반 정도 잃었는데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더 놀고 싶었으나 앞으로도 날이 많음을 생각하고는 자리를 떴다.

“오늘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노인장께서도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월향도 잘 지내시게. 하하~!”

 

며칠 후에 현경은 마작판이 생각나서 만죽을 찾아갔으나 멀리 출타하고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서 월영루로 향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월영루와 월향을 생각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방망이질을 쳤다. 이것은 마치 아득한 옛날에 첫 여인을 만났을 적에 느꼈던 그런 기분과 흡사했다. 그래서인지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월영루에 도착하니 예의 그 주인이 반겨 맞으면서 마작을 치러 왔다는 것을 눈치로 알고는 내실로 안내했다. 이번에는 중년의 여인과 초로(初老)의 남자가 동석하게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한 번 이기면 두 번을 졌다. 불과 한 시진이 지나지 않아서 갖고 갔던 50냥의 돈이 삽시간에 모두 초로의 남자에게 넘어갔다. 다른 세 사람은 거의 차이가 없었는데 유독 현경만 많이 잃었다. 세상에 돈을 잃고서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현경은 즐거웠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그 순간의 긴장감을 즐기는 쾌락(快樂)은 어디에서도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나리의 패운(牌運)이 좋지 않은가 보옵니다. 그만 노시고 다음에 다시 즐거운 시간을 마련해 보시는 것이 어떠실지요?”

월향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기뻤다. 다음 날에는 이백 냥을 갖고 갔다가 이천 냥을 만들었다. 이렇게 되자 잠이 깨서부터 다시 잠들기 전까지 온통 마작패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원래 현경은 웬만한 것에는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하였으나 유독 마작패를 손에 잡은 후로는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관가에서 오전에 조례(朝禮)를 마치고는 모든 일을 부관(副官)에게 맡겨놓고 월영루로 달려가서 어둠이 깊어지도록 몰입했다. 그러는 사이에 점차로 갖고 있던 돈이 줄어들자 급기야 국고(國庫)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여보게 현경. 듣자니 월영루에 매일 출입한다던데 너무 깊이 빠진 것은 아닌가? 뭐든 과유불급(過猶不及)인데 혹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아닙니다. 형님 덕분에 기가 막힌 놀이를 익히게 되었지 않았습니까? 약간의 국고에 대한 손실은 또 세금을 받아서 채워놓으면 되니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아무런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아닐세! 무엇이든 지나치면 후회하게 될 수도 있으니 자중하는 것이 좋겠네. 너무 빠져든다면 소개를 한 나도 체면이 말이 아니란 말일세.”

만죽은 몰입하면 빠져나올 줄을 모르는 현경이 걱정되어서 이렇게 말했으니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월영루를 찾은 현경에게 월향이 말했다.

“나리, 작패(雀牌)와 즐겁게 놀이하셔야 하옵니다. 근래에는 월향이 보기에 나리께서 작패의 장난에 휘말리는 것으로 보여 심히 염려스럽사옵니다. 다소간 거리를 두시는 것은 어떻겠는지요?”

“그런가? 월향이 보기에 나는 언제나 작패와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나도 그대의 능력을 배우고 싶단 말이네. 그렇게 되면 돈을 잃고 따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될 것이니 그렇게 되기까지는 수업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돈은 아무리 잃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말이네.”

“나리께서는 참새 소리를 생각하시면 가슴이 쿵쾅거리시옵니까?”

“맞아! 내가 일찍이 이러한 기분에 사로잡혀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묘한 쾌감에 사로잡혔다네. 월영루에 오려고 돈을 금고에서 꺼낼 때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데 이미 한 다발의 돈 꾸러미가 열 개로 늘어나는 듯한 착각까지도 생기더란 말이네. 그리고 모두 잃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잃어버린 돈이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은 또 따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 먼저 든단 말이네.”

현경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월향이 말했다.

“나리께서는 이미 중독(中毒)되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서 멈춰야 할 것으로 생각되오니 부디 소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옵기를 간청드립니다.”

월향은 진심으로 말했으나 현경은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말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작패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된단 말이네. 이미 이만 냥을 썼으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잖은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서 보충하면 될 테니까 말이네. 그런데 오늘은 모두 어디 갔는가? 왜 같이 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안 보이는가?”

“나리, 그들은 또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작수(雀手)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마 모레쯤 또 다른 작수가 찾아올 것인데 그는 소녀도 이기지 못할 막강(莫强)한 고수(高手)입니다. 만약에 나리께서 그와 판을 벌인다면 여태까지의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하겠으니 부디 월영루에 걸음하지 마시옵기를 간청드리옵니다.”

“아니, 그대의 실력으로도 상대를 못 할 정도라면 도대체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란 말인고?”

현경은 상상으로도 가늠이 되지 않아서 월향에게 물었다.

“나리께서는 소녀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셨겠으나 실은 저 고수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에 불과합니다. 그는 상대방의 손에 어떤 패가 있는지를 훤하게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어떤 패를 버리고 싶어 하는지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훤합니다. 그런 상대와 붙어서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기에 나리같이 순수하시고 국사(國事)를 돌보는 분이 휘말리게 되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은 물론이고 그 화가 가족에게까지도 미칠까 두렵사옵니다.”

현경은 월향의 간곡한 말을 들으면서도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흥미가 동했다. 실로 그러한 고수에게서 기술을 배워야 천하제일의 고수가 된다고 생각하고는 오히려 내심으로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미 오락을 넘어서 사활(死活)의 위험한 길로 걸어가는 자신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이렇게 말을 한 현경은 입이 쓴지 물을 마셨다. 그러면서도 그 표정에서는 회한(悔恨)보다는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도박(賭博)의 재앙이 어떤 것인지를 새삼 느꼈어요. 이제야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다시는 놀음하지 않겠다고 손목을 자르고 나서도 다시 발가락으로 하더라는 말이 과연 허언(虛言)이 아니었네요. 소름이 돋았어요.”

기현주의 말을 듣고서야 현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오. 국고에 손을 대면서도 이것을 잃으면 복구할 가능성이 없으니까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잠시뿐이고 가슴 속에서는 벌써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린단 말이오. 상상만 해도 이 정도이니 마작패를 앞에 늘어놓고 있을 적에야 무슨 말인들 귀에 들어오겠소? 이런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난다고 해도 전혀 알 수가 없을 것이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생사조차도 돌봐야 할 의식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어려워요. 그래서 결국은 삶을 하직하려고 하셨어요?”

“실은 국가의 죄인이 된 것을 자책해서가 아니라 도박을 이어갈 돈이 없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다음 생에는 부잣집에 태어나서 원없이 푹 빠져보는 것을 염원했던 것인데 다시 살았으니……”

이렇게 말하면서 고마워하는 마음과 함께 원망하는 듯한 마음조차도 느껴질 정도여서 우창도 도박의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꼈다. 그 표정을 보던 현경이 우창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오.”

다시 술을 한 잔 단숨에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우창 선생을 보니 비로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소. 마치 첫사랑은 가슴에 묻어두고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듯이 그 짜릿하고 가슴이 뛰는 쾌락은 기억 속에 담아두고 국법을 피해서 은신(隱身)하면서 참회하고 수행할 것이오. 허허허~!”

“그런데 어떻게 감옥에 가는 것은 피하셨습니까?”

우창은 그것이 궁금해서 물었다.

“말도 마시오. 더 이상 꺼낼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큰일이다 싶어서 야반도주(夜半逃走)하지 않았겠소. 세상의 즐거움을 다 누렸으니 이제부터는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들어가서 불전에 귀의할 생각이오. 앞으로 그대들의 나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어드리면서 말이오. 허허~!”

자원도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러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으셨어요?”

자원의 말에 현경은 씁스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낭자는 듣지 못했소? 도박에 미치면 처자식(妻子息)도 팔아먹는다는 말을 말이오. 그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오. 이것은 올바른 사람의 상식(常識)을 넘어가는 곳에 있으니 아마도 납득이 불가할 것이오. 그야말로 미친놈의 넋두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

우창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과연 이것이 노름꾼의 종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가 있었다. 그러한 표정을 보던 현경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을 수고롭게 해 드린 것만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오. 앞으로 남은 생명은 아껴서 나처럼 미쳐서 정신을 잃은 놈을 만나면 그를 위해서 쓰도록 할 테니 부디 일로평안(一路平安)을 빌 뿐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허리를 깊이 숙이며 포권(包拳)하고는 휘적휘적 떠났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자원이 조용히 말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새로운 경험이네요.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가 없는 것도 이렇게 공감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요. 앞으로 누군가 도박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저 사람의 말이 떠오르지 않겠어요?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싸부, 저 사람이 가슴을 뛰게 한 것에 대해서 이해는 되시죠?”

자원의 물음에 우창은 문득 서옥을 봤을 적에 느꼈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판단도 서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니까 현경의 심경도 그랬을 것이라는 짐작되어서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지. 짐작은 할 수가 있겠으나 실제로 그가 겪었던 것을 모두 알 수는 없지 않겠나? 다만 나도 잠시나마 그러한 경험을 했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잠시 그랬던 것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이미 비정상이라고 해야 하겠지.”

“맞아요. 누구나 그러한 경험은 있죠. 그것이 길어지면 탐닉(耽溺)하게 되어서 결국은 이 지경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이겠죠? 원래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는 종이 한 장이라고 봐야 하겠어요.”

“맞아! 그래서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이내 반대쪽으로 기울여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너무 쏠려버려서 되돌아올 수가 없는 지경(地境)에 처했던 거지.”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여정이 말했다.

“다시 길 떠날 준비를 위해서 마차를 대령하겠습니다.”

여정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