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 제45장. 만행(漫行)/ 2.같은 조짐 다른 해석

작성일
2025-06-1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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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 제45장. 만행(漫行)

 

2. 같은 조짐 다른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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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을 먹고 소요원을 마차가 번화가를 빠져나가서 한가한 대로를 달리자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면서 공부에 몰입했던 열정들을 모두 털어버리는 모습들이었다. 우창도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기고 개천에서 고기를 잡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앞에서 말을 몰던 여정이 옆에 앉은 삼진에게 물었다.

“형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검은 소와 붉은 소 중에서 누가 먼저 일어나겠느냐고 한 질문의 답이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런가? 왜 그렇게 되었다는 건지?”

삼진은 여정과 우창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여정이 불이 피어오르기 전에 연기가 먼저 난다는 이치를 말해주자 그제야 삼진도 의미를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그래 무슨 의미인지 알겠네. 그런데 여정은 뭐가 궁금하다는 말이지?”

“여정이 생각하기로 만약에 연기가 먼저 피어오르는 불도 있지만 연기가 나지 않는 불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짐에서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났는데 스승님께 여쭙기는 번거로운 것으로 생각되어서 형님께 여쭙습니다.”

여정의 말소리는 뒤에 앉은 모두에게도 또렷하게 잘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서 우창은 삼진이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궁금해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삼진은 어떤 경우가 되면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난다고 해석할 수가 있을지 곰곰 생각해 봤으나 해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자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정이 묻는 말에 내가 답을 하기가 버겁구나. 누이가 좀 도와줘야 하겠어. 아니면 공화(空華) 선생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삼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명쾌한 답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삼진이 답을 뒷자리로 넘겨주자, 모처럼 홀가분한 여행길에 흥이 잔뜩 올라서 약간 흥분이 된 기현주가 자원에게 말했다.

“아니, 여정이 이런 생각도 한다는 것이 참 대견하네. 이치를 생각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변화까지 생각한다는 것을 보니까 말이야. 앞으로 큰 성취가 있을 것이 분명해. 그런데 조짐을 뒤집어서 보는 것이 타당한지가 궁금하네. 조짐은 그 순간에 발휘되는 일회성(一回性)이라서 그 상황에서만 맞는 것일 텐데 그래도 공부 삼아 생각해 보는 것은 무방하지 않을까?”

“그야 언니가 답을 해주시면 되죠. 자원도 궁금하네요. 호호호~!”

기현주가 자원의 말을 듣고는 생각해 본 것이 있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

“응, 내 생각에는 말이야. 그 소들이 풀밭에 앉아있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풀을 불태우려면 연기가 먼저 피어오른다고 해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만약에 바싹 마른 풀더미 옆에 앉아있었더라면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난다고 해석할 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보는 것도 타당할까?”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자 자원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임기응변(臨機應變)이잖아요! 언니는 이미 변화까지도 읽을 수가 있는 사유의 힘을 갖고 계시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그에 부합하는 해석을 할 수가 있을 것은 당연하겠어요. 호호~!”

“그런가? 말이 된단 말이지? 그렇다면 같은 점괘나 질문이라도 주변의 상황까지도 고려해서 답을 찾아야 한단 말이구나. 그래서 ‘묻는것은 쉬워도 답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말이 나왔나 보다.”

“뭘요. 대답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아요. 그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보이면 바로 답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답을 못하거나 남의 다리를 긁게 되는 거죠. 도반 중에 진명(眞明)이라는 낭자가 있는데 정말 조짐을 해석하는데 무척이나 빠르거든요. 이러한 주변을 살피는 능력은 자원도 항상 감탄한다니까요. 호호~!”

“어머나! 그런 제자도 있었어? 왜 같이 오지 않았을까?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 나도 궁금하네.”

“물론 같이 오고 싶었죠. 그런데 오행원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다녀오라고 했어요. 가끔은 답답한 일에 부딪히게 되면 문득 떠오르곤 해요. 나중에 인연이 되면 만나실 거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정이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정말 간단하게 생각한 것인데 이렇게 깊은 대화로 의문을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드러나는 것은 단지 그 일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정말 큰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정의 말에 자원과 기현주가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여정에게 물었다.

“여정의 궁리가 날로 깊어져서 좋아.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글로만 써 놓은 것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데 여정의 생각이 궁금하군.”

여정은 우창이 이야기를 듣고서 이렇게 묻자 기쁘기도 하고 긴장도 되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자가 생각하기에는 만약에 그렇게 글로 써서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났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면 다음에 그것을 읽은 사람은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또 그러한 질문을 하게 된다면 답은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검은 소와 붉은 소가 앉아있다가 일어날 적에는 검은 소가 당연히 먼저 일어나게 된다. 이것은 틀림없는 명인(名人)의 가르침이기도 하고 그렇게 임상한 사례(事例)이기도 한 것은 물론이고 자연의 이치에서도 불이 피어오르기 전에는 반드시 연기가 나게 되어 있으므로 틀림이 없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스승님의 가르침은 핵심을 가르고서 깊은 내면의 이치를 꺼내서 보여주는 깊이가 있습니다. 감탄합니다.”

“문자에 갇힌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나?”

우창은 다시 여정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정이 이번에는 쉽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아하! 그렇게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자지옥(文字地獄)’이라는 말은 들어봤으나 옥졸(獄卒)이 잡아 가두는 것도 아닌데 왜 지옥이라고 하는가 싶기는 했었지요. 오늘 스승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보니까 그 의미를 확연히 깨닫겠습니다.”

“그래, 여정이 바로 알아들었구나.”

“여정이 공부는 비록 일천(日淺)하나 스승님의 자상한 가르침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두는 것은 그 고통(苦痛)이 한 사람에게 미치겠지만 글로 전하게 되어서 잘못 수용하고 적용한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수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문자지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도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 그것도 범부가 오다가다 아무렇게나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과거에 위대했던 스승의 말씀’이라는 말과 함께 스승의 이름이 공자(孔子)나 주자(朱子)라고 하게 된다는 말도 같이 전하는 것을 접하게 되면 더욱 깊은 지옥과 같아서 참으로 헤어 나오기는 더욱 어려울밖에. 하하~!”

“과연 그렇겠습니다. 몰라서 빠져드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혹은 알면서도 감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단순하게 그냥 결과만 외우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그 이치와 연유를 잘 살펴서 실제와 다른 경우에는 또 그것에서 빠져나올 방법까지도 알려줘야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궁금해서 여쭸으나 말씀하신 가르침은 그보다 천 배는 큰 소득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정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 있던 삼진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알고 있었던 한 의원(醫員)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가 살고 있던 인근에서는 명의라고 소문이 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만난 환자의 증세가 책이 나와 있는 것과 같아서 그대로 처방했는데 병이 낫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더 악화가 되어서 사망에 이르는 바람에 큰 배상을 해주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니까 이것도 의방지옥(醫方地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런! 그럴 수도 있겠는걸.”

“맞습니다. 그는 처방대로 했으나 실은 원칙(原則)만 알고 적용했을 뿐이고 변화(變化)의 응용(應用)을 몰라서 겪게 된 고통이라고 하겠습니다. 흑우(黑牛)와 적우(赤牛)의 이야기처럼 그 환자와 책에 나온 환자의 증세는 비록 같다고 하더라도 발병(發病)의 원인과 사람의 상황이 달랐을 텐데 그것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허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공화 선생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에 그 의원도 책만을 믿지 않고 이치와 변화를 터득하고 적절하게 대응했더라면 그러한 곤경에 처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일단 한 번의 실수가 알려지게 되자 환자들이 모두 그를 기피(忌避)하게 되어서 다른 마을로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삼진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도 생각나는 것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의 풍경은 어디나 같은 모양이구나. 점술(占術)이나 의술(醫術)이나 법률(法律)이나 모두가 같은 모양이네. 가령 조카 행성이 일으킨 문제로 시신(屍身)을 놓고 재판할 적에도 기본적인 이치로만 논한다면 마땅히 행성을 중벌에 처해야 할 것이지만 전후의 정황을 고려하게 되니까 오히려 죽은 사람이 죄인으로 처벌되었던 것과 같이 어디에서나 이치는 하나라고 생각되었어. 그러니까 항상 열린 안목으로 살펴서 판단하고 시행(施行)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오류(誤謬)가 생길 수 있겠다는 것도 비로소 알겠어. 오늘 여정 덕분에 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니 함께 공부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호호~!”

 


 

기현주는 이렇게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즐거워서 신난다는 듯이 말하면서 웃었다. 마차는 인가들이 있는 마을을 벗어나자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조용한 산속에서 말발굽 소리와 마차에서 들리는 바퀴 구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모두 잠시 말이 없이 주변의 풍경을 보면서 앉아있던 여정아 갑자기 앞을 가리키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앗! 저기~ 사람이 목을 매고 있지 않습니까? 목숨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정의 말에 모두 화들짝 놀라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과연 남자로 보이는 사람이 나무에 매달려서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우창이 자원을 바라보자, 그 순간 자원이 허리에서 유사시(有事時)에 쓰려고 차고 다니던 표창(鏢槍)을 꺼내서 우창이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나무를 향해서 던졌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우선 목숨을 구하려고 흔들리는 마차에서도 중심을 잡고서 표창을 던졌고 자원의 손을 떠난 표창이 쉭-!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서는 그 사람의 목을 매고 있던 줄에 닿자마자 동시에 남자는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언덕 아래로 나동그라졌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자원에게 그런 비기(秘技)가 있었어? 나는 간이 작아서 사람이 다칠까봐 절대로 그렇게 못 했을 텐데 어쩌면 그 순간에 빠른 판단을 하지?”

자원은 기현주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마차가 그 사람 옆에 멈추자 재빨리 뛰어내려서 상태를 확인하려고 목에 손을 갖다 대면서 맥박을 살피고는 마차를 돌아보며 말했다.

“목숨은 건졌어요. 아직 저승사자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도착했었던가 봐요. 여정은 삼진 오라버니와 같이 좀 부축해서 뒷자리에 실어줘. 편안한 곳에 가서 안정을 취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여.”

자원도 순간적으로 놀랐는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웃었다. 그것을 본 일행이 모두 안도하고는 마차에서 내려서 남자의 행색을 살폈다. 나이는 대략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겉모습을 봐서는 삶에 찌들어 보이는 행색은 아니었다. 아마도 무슨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이 있을 것이려니 생각하고는 삼진과 여정이 그 사람을 들어서 마차의 뒷자리에 싣고서 쉴 수가 있는 곳이 나올 때까지 달렸다.

이각(二刻)쯤 달렸을 적에 남자는 혼절한 상태에서 정신이 돌아오는지 몸을 움직였다. 아마도 나무에 매달려서 살아보려고 모든 기운을 다 써버렸다는 듯이 힘없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으윽… 저승으로 가는 길도 마차…구나…… 참 신…기 하군…”

그가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침 길가에 객잔을 발견한 우창이 여정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쉬었다 가도 되겠구나. 점심도 먹을 겸 말이지.”

작은 마을이어선지 한산한 음식점은 손님도 거의 없었다. 남자의 정신이 돌아오도록 평상에 뉘어놓고서 여정이 지켜보기로 하고 모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는 먹을 것을 시켰다. 주인이 밖을 내다보고는 환자가 있는 것을 보고서 빈방으로 안내했다.

“몸이 성치 않은 분이 계셨네요. 이쪽으로 편히 쉬시게 하시지요.”

친절해 보이는 중년의 주인 남자가 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자원도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순히 응했다.

“그래 주신다면 고맙겠어요. 그럼 부탁하는 김에 뜨거운 물에 감초가 있으면 좀 넣고 끓여주시면 되겠는데 가능할까요?”

“그 정도야 가능하지요. 잠시 기다리시면 됩니다.”

잠시 후 음식과 함께 감초차를 그릇에 담아왔다. 연노랑의 빛깔을 본 자원이 품에서 환약을 하나 꺼내어서 남자의 입에 밀어 넣고는 물잔을 들어서 기울여 주자 남자도 목이 탄다는 듯이 벌컥벅컥 마시고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남자의 허리띠를 살짝 느슨하게 해주고는 점심밥을 먹으면서 상태를 지켜봤다. 일행이 밥을 거의 다 먹고 났을 즈음에서야 남자는 정신이 돌아왔다는 듯이 일어나서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렸다. 자원이 걱정되어서 얼른 다가가서 표정을 살폈다.

“아니…… 죽어야 할 사람을 왜 살렸단 말인가……”

“세상에 죽어야 할 사람은 없어요. 서두르지 않아도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 테니 급하게 가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이에요? 이제 다행히 정신을 차리셨으니 잠시 누워 계세요.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자원의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는 다시 쓰러졌다. 아마도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여서 일행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목에 맺힌 피멍은 자원이 가려줬다. 얼마나 지났을까.

“낭자, 낭자가 날 살렸소?”

비로소 남자는 제대로 정신이 들어온 것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자원이 얼른 일어나서 다가갔다.

“아니, 뭐가 그리 급해서 서둘러 저승으로 가보시려고 했단 말이에요? 서두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다 가야 할 곳이니 재미있게 살다가 가야 하지 않겠어요? 에구~”

그는 한숨을 깊이 내쉬고는 자원에게 말했다.

“낭자, 과연 죽음의 문턱에 가려는 순간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소이다. 죽음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해서 나무에 매달렸는데 막상 발을 받치고 있던 돌을 걷어차고 나자 비로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이지 개미라도 지나가다가 목에 맨 줄을 끊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구려. 만약에 누군가가 나를 살려주기만 한다면 참으로 열심히 잘 살아갈 수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구름을 탄 듯이 몸이 허공을 나는듯한 느낌을 받고는 이내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구려. 생명의 은인들이시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공수로 예를 갖췄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는지 궁금했으나 우선은 정신을 차린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기현주도 꺼냈던 침통(針筒)을 도로 넣으며 말했다.

“정신이 돌아왔으니 침은 놓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래도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만났으니 반가워요. 과연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인가 보네요. 다시 생환(生還)하심을 축하합니다.”

남자는 기현주를 보고 말했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인간을 살려 주셨으니 이 은혜가 백골난망(白骨難忘)입니다. 어떻게든 은혜를 갚을 길을 마련해 주시면 뼈가 부서지도록 갚겠습니다.”

남자의 비장한 표정을 본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이것도 인연이니 통성명이나 하시지요. 소생은 우창이라고 합니다.”

“아, 우창 선생이셨구료. 못난 이놈은 양문광(楊文廣)으로 아호는 현경(玄鏡)이외다. 글이나 읽으면서 관직(官職)에 몸을 담았으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나름 순탄했던 삶이라고 여겼는데 한순간에 요 모양이 되었구려. 귀하신 분들을 뵈니 신세한탄(身世恨歎)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들어주시려오?”

“물론입니다. 무슨 사연이 있으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하~!”

현경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려는 듯이 한숨을 깊이 쉬고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어느 사이에 기운은 회복이 된 것으로 보여서 모두 안심이 되었다.

“소생은 호주부(湖州府)의 무강(武康)이라는 곳에 살고 있소이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던지 지현(知縣)을 명 받아서 목민(牧民)에 힘쓰면서 칭송도 받았었소이다.”

“아하, 현령(縣令) 나리셨군요. 어쩐지 품위가 있어 보인다고 했더니 과연 높은 자리에 있으셨다는 것에 공감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러한 지경까지 다다르게 되셨던 것입니까?”

우창이 관심을 보이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사이에 주인도 바쁜 일이 없었는지 멀찌감치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술이 가득 든 항아리를 들고 와서는 내어놓으면서 말했다.

“손님들께서 말씀을 나누시는데 아무래도 술이 필요하지싶은데 이게 명주는 아니라도 사양치 마시고 나눠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술을 본 기현주가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랐다는 듯이 반갑게 받아서 술잔마다 가득 채우고서 권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술이라도 한잔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주인장이 눈치가 빨라서 얼른 가져오셨네요. 그렇다면 술은 고맙게 받고 요리를 좀 부탁해도 되겠어요? 뭐든 좋으니까 푸짐하게 가져오세요. 호호~!”

기현주의 말에 주인이 얼른 대답하고는 오리를 잡아서 생강과 마늘을 넣고 볶아서 내왔다. 삽시간에 조촐하던 탁자는 잔칫상으로 변했다. 현경도 잘 되었다는 듯이 따라놓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요리를 집으며 우창에게 말했다.

“그런데 다들 바쁜 걸음은 아니신 것 같고 어디를 가시는 중이셨는지 모르겠으나 소생으로 인해서 걸음이 더뎌져서 어쩐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의를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쁜 일도 없이 유람(遊覽)에 나섰으니까요. 오히려 이렇게 대화할 기회가 생겼으니, 우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천천히 드시면서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하하~!”

우창의 말에 안심이 된다는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창밖을 잠시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신가 싶었소이다. 과연 복록(福祿)이 넘치는 분들이구료. 나도 한 해 전에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삶으로 일평생을 보내게 될 줄로만 생각했었소만 사람이 망가지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고 보니까 비로소 재기(再起)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이미 불 꺼진 아궁이에 싸늘하게 식은 잿더미와 같은지라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냔 말이오.”

현경은 이렇게 말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처연(悽然)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무겁게 전해졌다. 모두 말없이 현경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릴 따름이었다. 좌중을 둘러본 현경이 목이 타는지 술을 다시 한 사발 마시고 나서야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우창 선생, ‘참새 소리’라고 들어보셨소?”

갑자기 묻는 말에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참새 소리야 눈만 뜨면 아침마다 듣는 것이 아닙니까? 우창이 알고 있는 그 참새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모르겠습니다.”

우창의 대답을 듣고서 삼진이 현경에게 물었다.

“지현(知縣)께서 물으시는 참새 소리는 혹 마작(麻雀)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삼진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혹 나이 들어서 마작에 취미를 붙였다가 낭패(狼狽)를 당하신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삼진의 말을 듣고야 우창도 작패(雀牌)가 떠올랐다. 동평호(東平湖)에서 마홍(馬弘)의 열정적인 설명과 식당에서 대삼원(大三元)을 외쳤던 도박꾼의 표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도 이렇게 계기가 되면 바로 조금 전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도 참 신기했다. 마작패를 섞을 적에 들리는 상아(象牙)조각들의 부딪치는 소리가 참새 소리와 같다고 해서 마작이라고 한다는 것도 떠올랐다.

“아~ 그 마작 말씀이셨습니까? 예전에 한 번 만져본 적은 있습니다만 골몰(汨沒)해서 배워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낭패당하시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사기꾼의 농간(弄奸)에 휘말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실 수는 있겠습니까?”

우창이 호기심을 보이면서 정중하게 묻자 조금 전의 극단적(極端的)인 생각으로 세상을 하직하려고 했던 사람인가 싶을 만큼 눈에서 광채가 나면서 신나게 말했다.

“오호! 우창 선생도 작패를 만져보셨다니 이해되시겠구려. 지현(知縣)을 맡아서 고을을 다스리다가 보면 온갖 일들이 많으나 그 일은 참으로 괴이(怪異)한 경험이었소. 고을에서 평소에 음으로 양으로 일을 도와주던 형님뻘 되는 부호(富豪)가 있었는데 그가 인연이 되어서 일어난 일이오.”

“그런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가 있었겠습니다. 선생께서 겪으신 일이 비록 고통스러운 일이었겠다는 짐작은 됩니다만 그래도 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책(自責)하는 마음으로 죽음 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귀인들을 뵙고 나니까 지난 일들도 재미있는 희극(戱劇)처럼 생각이 떠오르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