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 제45장. 만행(漫行)/ 1.여행단(旅行團)

작성일
2025-06-10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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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제45장. 만행(漫行)

 

1. 여행단(旅行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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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 일행이 현령의 저택(邸宅)에 도착하자 이미 현령은 잔칫상을 차려놓고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다가 반겨 맞았다. 모두 연회실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자 현령이 향기로운 술을 꺼내와서는 모두에게 한 잔씩 따랐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진 빚을 갚는 날이니 조금도 사양하지 말고 즐겨 주시기 바라오. 자, 모두 잔을 들어서 축하합시다~!”

 


 

 

현령은 기현주를 통해서 우창 일행이 길을 떠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과 고마움을 모두 담아서 성대한 연회를 베푼 것이다. 잔치를 마무리하고서 현령과 작별했다. 일행이 소요원으로 출발하는데 현령이 수하를 시켜서 은전(銀錢)을 두둑하게 보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우창도 그것을 사양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서 합장으로 마음을 표현하고는 소요원으로 돌아왔다.

모두 응접실에 앉았으나 저마다 생각에 잠겼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자 기현주가 먼저 말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이별을 잘못한단 말이야. 열심히 묻고 답했던 추억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아마도 내 평생 기억에 남아 있을 거야.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너무 크네.”

기현주의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마음에 울컥하는 감정의 격동(激動)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 수가 있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뭐가 어렵습니까? 누님도 같이 갑시다. 또 천하를 누비면서 재미있는 풍경을 즐기는 시간을 왜 양보하려고 하십니까? 동행하면서 공부했던 것을 펼치게 되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의 눈이 커졌다. 자기도 동행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는데 우창의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래도 돼? 나는 왜 헤어진다는 생각만 했지?”

“누님도 참, 마차는 크고 말들은 힘찬데 동행이 많아서 불편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이 소요원은 이미 저마다 맡은 사람들이 잘 관리할 테니 화초들도 걱정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사람의 타성(惰性)이란 이래. 항상 여기를 떠나면 안 되는 줄로만 생각했던 모양이지 뭐야. 마음은 항상 자유롭게 천하를 주유(周遊)하고 싶어 하면서 말이지. 어쩌면 적당한 동행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 이유이기는 하지. 그런데 동생과 자원이 옆에서 챙겨준다면 나야말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겠어? 정말 그래도 되는 거야?”

기현주가 자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원에게 기현주는 큰언니 같은 든든함이 있어서 동행한다면 더 편안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아니, 언니가 동행한다면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또 있겠어요? 차마 말은 안 했으나 내심 같이 여행하면 즐겁겠다고 생각했는데 더 바랄 것이 없죠. 준비되는 대로 나서 봐요. 혼자서 집을 나서기는 어려워도 같이 다니면 또 좋은 경험도 많이 하게 될 테니까요. 호호~!”

“알았어, 자원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감동이네. 그렇다면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여정(旅程)을 의논해 봐야겠네. 그러니까 동생, 자원, 삼진, 광덕, 나, 여정까지 여섯 사람이구나. 광덕 선생도 동행하실 거지?”

차만 마시면서 조용하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갈만에게 물었다. 그러자 갈만이 합장하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광덕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으로야 당연히 동행하고 싶은데 곰곰 생각해 보니까 지금은 여행보다는 내면을 성숙시켜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의 여행에는 동행하지 못하지 싶습니다. 다시 보타암으로 올라가서 수선(修禪)에 몰입하고자 합니다. 며칠간의 깊은 공부에 동참하게 된 것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스승님과 도반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창에게 절하자, 합장하고 절을 받으며 우창이 말했다.

“그러셨구나. 그렇다면 광덕은 선정(禪定)에 들어서 더욱 깊은 자연의 이치를 궁구(窮究)하고자 하니 더 권하지 않겠네. 부디 큰 깨달음을 이루기만 바라겠네. 함께 해서 나도 즐거웠네.”

“참으로 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는데 많은 단서를 얻었습니다. 소요원에서 배운 오행(五行)과 변화(變化)에 대해서는 더욱 정밀하게 궁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갈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약간은 조바심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덕국(德國)으로 가게 되면 강당(講堂)에서 후학을 지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견문(見聞)을 쌓은 것은 앞으로의 삶에서 풍요로운 경험담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스승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어서 든든합니다.”

이렇게 말을 한 갈만은 일일이 모두의 손을 잡으면서 눈을 마주하고 작별을 나누고는 홀연(忽然)이 소요원을 떠났다. 그 결심을 알고서 아무도 다시 권하지는 않았다.

갈만이 홀연히 떠나자, 기현주는 이번 여행에 고난(苦難)은 없을 것인지를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창에게 말했다.

“동생, 길을 떠난다는 것은 즐거울 것을 기대하지만 뜻밖의 고난도 일어날 수가 있잖아? 그러니까 점괘를 보는 것이 어떨까? 만약에 어떤 조짐이 보인다면 그에 대해서 대비하면 또한 좋은 일이 될 테니까 말이야.”

기현주의 말에 자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언니의 원모심려(遠謀深慮)네요. 그렇게 생각하시니까 여행하는데 반드시 동행하셔야 한단 말이죠. 점괘는 우리 다섯 사람이 가는 것이니까 저마다 육갑패(六甲牌)를 하나씩 뽑아서 오주괘를 만들어 봐요. 나이순으로 하나씩 뽑아요. 언니부터요. 호호~!”

“와~ 그것도 재미있겠구나. 어쩜 그렇게 기발한 생각을 잘하는지 참 신기하다니까. 호호~!”

이렇게 말하면서 자원이 펼쳐놓은 육갑패에서 먼저 하나를 뽑아서 오른쪽에 놓자, 우창과 삼진도 하나씩 뽑아놓았다. 자원도 패를 뽑고는 마지막에 여정에게 맡겼다. 항상 눈빛을 반짝이면서 뭐든지 배우려고 애쓰는 여정도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 개를 뽑아서 가지런히 놓자. 기현주가 패를 모두 뒤집어 놓자 열 개의 눈이 한 곳으로 향했다.

 

 


 

 

기현주가 먼저 말했다.

“난 계묘(癸卯)를 뽑았구나. 계수(癸水)가 식신(食神)을 깔았으니까 이건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라는 조짐인 거지?”

먼저 계묘를 뽑은 기현주가 신이 나서 말하자 자원이 거들었다.

“언니는 씨앗에서 싹이 막 터지기 시작한 천진난만(天眞爛漫)한 낭자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패를 뽑으셨으니 여행하는 내내 즐거운 풍경이 떠올라요. 축하해요~ 호호~!”

“그렇지? 내가 봐도 그래. 동생이 뽑은 패는 임진(壬辰)이네? 편관(偏官)을 깔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나?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자원이 풀어봐.”

기현주가 약간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자원에게 풀이를 떠밀었다. 자원도 기현주의 마음을 헤아리고는 차분하게 풀었다.

“언니도 빤히 아시면서 뭘 물어보시는 거죠? 싸부의 운명이랄 밖에요. 항상 자기의 자리에서 조심하는 것은 편관(偏官)의 영향이겠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상관(傷官)이겠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겁재(劫財)의 영향이 아니고 무었이겠어요? 이렇게 점괘를 뽑아도 언니는 단순명쾌(單純明快)한데 싸부는 복잡미묘(複雜微妙)하잖아요? 그것도 팔자려니 해야죠. 호호~!”

“아니, 그래도 임진(壬辰)은 고근(庫根)이기도 하잖아?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맞아요! 그래서 중심은 잡고 있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언제라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정(旅程)이 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겠어요. 그러자니 얼마나 피곤하겠느냔 말이죠. 안 그래요?”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도 자원의 풀이에 반박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쓴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기현주도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동생은 걱정팔자격을 타고 나서 언제라도 마음을 푹 놓고 즐기는 날은 오지 않는 모양이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안쓰럽기는 하구나. 호호호~!”

“그래서 싸부죠~! 언제나 사소한 일이라도 심사숙고(深思熟考)하니까 사람을 웃기는 재주는 없어도 감동을 주는 열정은 있으시잖아요.”

자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난 기현주가 계유(癸酉)를 짚으며 말했다.

“삼진(三塵)의 계유(癸酉)는 뭐지? 적천수를 다 공부하면 간지의 이치가 훤하게 손바닥을 보듯이 잘 보일 줄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앞이 캄캄한 건 왜지?”

“언니도 참, 그래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어야 한다잖아요. 이론(理論)을 통달했으면 실기(實技)를 익혀야 하는 것이 음양의 균형인데 당연하죠. 그래서 ‘이론삼년(理論三年)이면 숙성칠년(熟成七年)’이라고 하잖아요. 이치로 배우기는 쉽지만 실제로 상황에 따라서 임기응변(臨機應變)하는 것은 두 배로 힘이 든다는 고인의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호호~!”

또 여행을 떠날 생각에 신이 난 자원이 말도 술술 잘 나와서 기현주에게 일장 연설한 셈이 되었으나 기현주는 그래도 즐거워서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근데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는 들어 봤어도 학삼기칠(學三技七)이란 말은 금시초문이네. 원래 있는 말이야?”

“에구! 그런 말이 어디 있겠어요. 그냥 지어낸 거죠. 호호~!”

“아, 그랬구나. 그래 알았어. 지어냈거나 말았거나 이치에 부합되면 그것이 설법(說法)인 거지 뭘. 그래서 계유(癸酉)는 어떻게 풀이할까?”

“삼진 오라버니는 여전히 학인(學人)의 여정이 되겠죠. 배우고 또 배우고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언젠가 싸부가 계유에 대해서 풀이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자원은 항상 동생과 같이 다니면서 보고 듣고 배우기를 반복하니 얼마나 좋아. 내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데 그런 것은 참 부러워.”

“그건 맞아요. 자원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예전에 제자들과 모여서 차담(茶談)을 나누면서 계유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는데 싸부가 ‘암벽에 새겨진 귀한 문서’라고 풀이하셔서 모두 깜짝 놀랐는데 지금이 바로 그것을 써먹을 때란 것을 이제야 생각이 났어요. 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다시 설명했다.

“유금(酉金)은 암벽(巖壁)이잖아요? 그것도 단단한 암벽이죠. 계수(癸水)는 저장(貯藏)이기도 하잖아요? 암벽에 저장하는데 계(癸)는 자(子)이기도 하니까 씨앗을 저장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렇게 풀이하고 보니까 말이 되더란 말이죠. 언니가 생각하기에는 어때요?”

자원의 설명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기현주가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자원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하고서야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역시! 동생의 깊은 사유와 응용력(應用力)은 놀랍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보니까 그것도 계유(癸酉)였음을 비로소 알겠네. 그러니까 삼진은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말이구나. 그렇지?”

“맞아요. 호호~ 그리고 싸부의 말동무도 되시고 든든한 응원자도 될 테니까 또한 화목한 여행이 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어요.”

“가만, 말동무라고 하는 것은 임계(壬癸)는 겁재(劫財)라서 하는 말이고 든든한 응원자는 유금(酉金)이 임수(壬水)를 생하는 관계를 보고서 말하는 거지?”

“이제 언니도 통달하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네요. 호호~!”

자원의 말에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다시 육갑패를 들여 보면서 생각하던 기현주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말이야, 나도 계묘(癸卯)니까 동생과 말동무가 된다는 거잖아?”

“맞아요. 당연히 말동무가 되시죠. 그런데 무엇이 문제예요?”

“문제지 유금(酉金)은 동생에게 든든한 응원자라고 했는데 묘목(卯木)은 그럼 뭐야? 나는 동생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힘들게 한다는 말이잖아? 더구나 내가 동생을 귀찮게 한다고 삼진이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니 그것이 큰일이란 말이야.”

기현주가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자원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괴상한 통변이죠?”

“삼진의 유금(酉金)이 내 묘목(卯木)을 치고 있는 풍경을 보니 이렇게 해석이 되지 않겠어?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뭔가 갈등의 조짐이 보이잖아? 그러니까 걱정이 되지 않겠느냔 말이지.”

설명을 듣고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한 자원이 재미있다는 듯이 기현주에게 말했다.

“그럼 어떡하죠? 그냥 집에 계셔야 하겠네요. 호호호~!”

“아무래도…… 그렇겠지 ……?”

갑자기 시무룩해진 기현주를 보면서 자원이 다시 설명했다.

“자원이 싸부를 만난 세월도 짧지 않으나 유(酉)가 진(辰)을 건너뛰어서 묘(卯)를 공격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유(酉)는 묘(卯)가 임(壬)을 귀찮게 하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이 없다는 의미인 거죠. 그것을 걱정하고 있으면 언니도 걱정팔자격이랄 밖에요. 그러니까, 삼진 오라버니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언니 혼자서 눈치를 본다고나 할까요? 호호호~!”

자원의 설명을 듣고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안도하면서 말했다.

“맞아! 그것도 언젠가 설명을 들었었는데 어느 사이에 까맣게 잊었나 봐.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이네. 호호~!”

“이제 이해되셨으면 자원의 패(牌)도 설명해 줘요. 언니는 저 경술(庚戌)을 어떻게 풀이할지 그것이 궁금해요.”

“그럴까? 우선 우리 세 사람은 자원의 보살핌을 피할 수가 없구나. 금생수(金生水)로 인성(印星)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안주인이 맞네.”

“어머! 정말 언니의 풀이가 일취월장이네요. 7년까지도 필요 없겠어요. 1년으로 정정해야 하겠어요. 호호~!”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여하튼 술(戌)이 문제란 말이야. 이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으니.....”

“틀리면 어때요? 우리끼리 이야기잖아요.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거침없이 풀이하면 되죠.”

“그러면 되겠지? 알았어. 편인(偏印)을 깔았으니까 항상 공부하는 열정은 불타오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신금(辛金)의 겁재는 자기의 중심이 있다고 하겠고, 정화(丁火)의 정관(正官)은 객관적(客觀的)이고 합리적(合理的)으로 상황을 판단할 테니까 어미 닭이 병아리를 돌보듯 한다고 해석하면 될까?”

“오호! 그렇게까지 보이셨단 말이죠? 오늘 바로 돗자리를 깔아도 되겠어요. 더 이상 익혀야 할 것이 없겠는걸요. 호호호~!”

“에구, 놀리지 말고 제대로 풀이하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충직한 개처럼 식구들을 잘 보살핀다는 말씀도 해보시고요. 호호~!”

“어? 그건 생각지 못했는데? 어디서 나온 말이야? 정관이라서?”

기현주가 의아하다는 듯이 자원을 보고 정색하며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자원이 또 태연하게 말했다.

“술(戌)은 개잖아요. 개는 오로지 충직하게 주인을 섬기는 것으로 본분을 다하니까 주인에게 위험이 따르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거리기도 하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것이 영락없는 개잖아요?”

자원의 말을 생각하던 기현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이네. 자원의 풀이도 말이 되잖아? 그렇다면 나는 토끼네? 아무래도 자원에게 쥐어서 꼼짝도 못 하고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에구~ 그냥 웃자고 한 말인데 그렇게 정색하시면 어떡해요. 호호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던 삼진이 한마디 했다.

“누이가 우리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것이 맞지. 나는 누이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는걸. 놀랍게도 유(酉)가 술(戌)의 생을 받는 것을 보면서 내심 혀를 내둘렀는걸. 하하하~!”

삼진의 말에 자원도 미소를 짓고는 다시 기현주에게 마지막 패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여정(旅鼎)의 패가 남았어요. 이것은 또 어떻게 풀이하실지 궁금해요.”

여정도 옆에 앉아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해서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자기가 뽑은 것에 대해서 풀이한다는 말에 눈빛을 반짝이면서 기현주의 설명을 기다렸다.

“응, 이건 말이야. 내가 생각하기로는 무척 고단하게 보이는데 마차를 관리하고 말들을 챙기려니까 그런 것으로 생각이 드네. 더구나 말을 잘 다루는 것은 술중무토(戌中戊土)가 편재(偏財)라서 그럴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사람은 모두 여정을 잘 챙겨주는데 왜 자원만 못된 마님처럼 여정에게 못살게 구는 거지?”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면서 자원을 보고 웃었다. 장군에 멍군격으로 자원이 놀린 것에 대한 작은 복수이기도 했다. 그러자 자원도 그것을 알고는 받았다.

“아니! 그렇게 대놓고 복수하시면 어떡해요.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우창도 웃으며 말했다.

“누님의 풀이가 아주 그럴싸합니다. 원래 여정은 자원이 잘 챙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다만, 동(東)으로 가자, 서(西)로 가자는 것에 대해서 여정이 싫은 마음이 있다면 힘들겠으나 그럴 까닭은 없을 테니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심중(心中)에서 일행을 잘 보살펴야 하겠다는 마음에 자기를 채찍질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싶습니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여정을 바라보자 여정이 합장하고 말했다.

“과연 스승님께서 여정의 내심(內心)을 잘 헤아려 주셨습니다. 아무도 여정을 힘들게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원 누님께서야 알뜰하게 챙겨주시니 절대로 힘들게 할 까닭이 없습니다. 다만 그러시는 만큼 더 잘 챙겨드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을 풀지 않고 늘 조심하는 것으로 보답할 따름입니다. 다시 길을 떠나신다니까 그간 잘 놀았던 말도 챙기고 마차에도 기름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여정이 밖으로 나가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현주가 말했다.

“역시 다섯 사람이 한 몸처럼 똘똘 뭉쳐서 길을 떠난다면 모두의 노력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겠네. 더구나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데리고 간다니까 나도 뭔가 밥값은 해야 하겠지? 현령에게 가서 통행패(通行牌)를 하나 해 달라고 해야겠네. 그것만 있으면 웬만한 관문(關門)에서는 전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말이지.”

이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말을 타고 급히 나가는 것을 보고는 자원이 우창에게 말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우리끼리 길을 떠났더라면 오래도록 우울증에 걸렸을 수도 있었을 거 같죠? 정말 언니도 동행하기로 한 것은 잘하셨어요. 호호~!”

“누님도 장원에서 오래도록 살았으니까 바람을 쐬고 싶으셨을 거야. 모두 공부하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다시 길을 떠난다니까 생기가 넘치는 것 같잖은가? 우선은 항주(杭州)를 가는 것으로 하면 되겠지?”

우창의 말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도 항주를 못 갔네요. 참 멀기도 한 항주예요. 그런데 이제 한참 더운 하절기(夏節期)로 접어드는 오월(午月) 말인데 괜찮을까요? 날이 더우면 여유객(旅遊客)에게는 여러 가지로 불리한 점이 많아서 그것 하나가 걱정이네요.”

“괜한 걱정을 하네. 폭설이 쏟아지는 동절기(冬節期)보다는 낫잖은가? 그리고 길을 나서면 더울 때는 더운 대로, 또 추울 때는 추운 대로 저마다의 인연을 만나서 사연을 쌓을 테니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고 봐. 더구나 먹고 살려고 밥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힘들겠으나 강호(江湖)를 놀이터 삼아서 유람(遊覽)하는 나그네에게야 한서(寒暑)가 무슨 장애가 되겠느냔 말이지. 하하~!”

우창의 말에 삼진이 동의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에 전적(全的)으로 동감합니다. 같은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환경에 따라서 변화는 무쌍하기 마련인데 길을 가다가 보면 또 어떤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인지 그것이 기대됩니다. 보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삼진의 말에 자원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삼진 오라버니도 천부적인 방랑자의 기질을 갖고 태어나셨네요. 하긴 그래서 이번 여행길에 동행하시기도 했겠지만 정말 그 호기심만큼은 대단하시니까요. 호호~!”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난 여정이 마차를 앞에 끌어다 놓고 말들의 몸을 솔로 훑어주면서 교감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도 여장(旅裝)을 꾸렸다. 그사이에 말들도 관리를 잘 받아서인지 털은 윤기가 흘렀고 말들도 힘이 넘쳐 보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여정에게 말했다.

“양(陽)이와 음(陰)이가 푹 쉬어서인지 마차에 매니까 신이 난 것처럼 보이는데 맞는 건가?”

“스승님께서는 마심(馬心)도 보이십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오행의 이치를 공부하면 세상 만물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가 있다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 마차를 보더니 특히 양이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신나서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것이 그동안 갇혀서 지낸 것이 무척 갑갑했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음(陰)이는 표현은 하지 않아도 발굽을 구르는 것이 어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은 같았습니다. 이것도 음양에 따른 성품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일리가 있겠습니까?”

“암, 일리가 있다마다! 백마(白馬)인 양이는 성품도 밝고 솔직하며 외향적(外向的)이지 않은가. 반면에 흑마(黑馬)인 음이는 성품도 온순하고 내성적(內省的)이라서 양이를 따라서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것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잖은가? 하하~!”

“그렇습니다. 스승님.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만약에 둘 다 백마였거나 흑마였더라면 또 종종 충돌이 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러한 것에서도 음양의 뜻이 있다는 것이 여정은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단순히 태어나면서 부모의 인연으로 털의 색이 정해졌을 뿐인데 거기에서도 의미가 있고 마음이 작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거든요.”

“여정이 신기하다니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예전에 어느 사제(師弟)가 길을 가다가 논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났다네 마침 농부는 쉬고 있고 일을 거들던 붉은 소와 검은 소도 풀밭에서 쉬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는 제자에게 물었다네.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날까?’라고 말이지.”

“아하, 점술(占術)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색깔로 판단한다면 불은 붉은 색이니까 당연히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난다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그런가? 그 제자도 여정과 같이 대답했는데 그 스승은 오히려 반대로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했더라네. 제자는 자기 생각이 옳을 것으로 믿으면서 이번에는 스승님이 틀렸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잠시 기다리니까 농부가 일어나서 소들에게 일하자고 외치자 과연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나고 이어서 붉은 소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제자가 의아해서 스승에게 물었다지.”

“당연히 그랬겠습니다. 어째서 검은 소가 먼저 일어날 것을 알았는지 여정도 궁금합니다.”

“그러자 스승이 답하기를, ‘이 녀석아! 불이 일어나려면 검은 연기부터 피어오르다가 불꽃이 일어나는 것도 모른단 말이냐!’라고 했다잖은가.”

여정이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연기부터 나고 불이 피어오르는 것이 맞겠습니다. 참으로 신묘한 점괘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자연의 이치를 궁리하고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하면 점괘는 더욱 영험(靈驗)하기 마련이란 말이네. 무엇을 하나 살피더라도 그 바닥에 있는 이치를 놓지 않는다면 학문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겠나?”

“정말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렇게 살피고 사유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말 울음소리가 나면서 기현주가 돌아와서는 우창에게 말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되었으니 그만 길을 떠나 볼까?”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참, 익현(翼弦)이 안 보입니다. 이런 기회에 동행하면 견문도 넓히고 좋을 텐데 말입니다.”

“아, 그 녀석은 내가 없는 동안에 소요원을 잘 관리하라고 일러뒀지. 아마도 친구들과 뱃놀이하고 있을 거야. 내버려 둬. 아직은 공부할 때가 아닌가 봐. 호호~!”

여정이 일행이 모두 마차에 오르기를 기다려서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말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남으로 향해서 내달렸다. 상쾌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