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노자의 대화] 스피노자가 태산으로 노자를 찾았다

작성일
2025-06-07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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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꿈, 도의 숨결》



 


그해 겨울, 바루흐 스피노자는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제 쉰을 막 넘겼고, 젊은 시절의 날카로운 열정은 점점 조용한 안개처럼 자신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자연은 곧 신이라는 그의 사상은 유럽의 학계에서 이단이라 불리었고, 신학자들은 그를 공공연히 배척했다. 심지어 그의 가장 가까웠던 동료들마저, 그가 쓴 《에티카》의 원고를 읽고는 말없이 떠났다.

“신은 사유이며, 신은 연장이다. 신은 필연이며, 곧 자연이다.”

이 한 문장은 그에게 있어 존재 전체의 핵심이었고, 그 누구에게도 진심을 오롯이 전할 수 없었다. 철학의 언어는 때론 진리를 가두고, 이해보다 오해를 먼저 불러왔다.

 

 


그해 겨울, 스피노자는 어느 때보다 깊은 고뇌에 잠겨 있었다. 자연과 신이 하나이며, 모든 존재는 필연적이며 신성하다는 그의 사상은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에티카』는 정연한 논증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의 논리를 이단이라 불렀고, 동료 학자들조차 그를 멀리했다.


밤이면 그는 묵묵히 초를 켜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신적 자연’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불꽃은 존재의 본질을 말없이 품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밤, 그는 몽중에서 한 노인을 보았다. 하얀 눈 위에 서서 손짓하는 노인. 말은 없었으나, 무언의 부름이 가슴속까지 스며들었다. 그 순간 눈을 떴고, 가슴속에는 이상한 결심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야 한다. 그곳은… 태산이다.’


여정을 시작한 지 몇 달 후, 그는 마침내 태산의 기슭에 도착했다. 6000계단이 눈앞에 펼쳐졌고, 하늘은 연기처럼 희미했다. 한 발 한 발, 그는 스스로를 덜어내듯 올라갔다.

욕망을 떨치고, 증오를 떨치고, 논리를 떨치고, 이름마저 가벼워지게 되자 마침내 정상의 옥황전에 다다랐다.


거기, 삼베옷을 입은 80대의 노인이 있었다.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 눈빛은 하늘을 닮은 고요함. 스피노자는 그 앞에 꿇어앉았다.


“스승님, 저는 유럽에서 온 철학자 바루흐 스피노자입니다. 저의 사상은 이렇습니다. 신은 자연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 필연을 이해함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사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틀린 것입니까?”


노자는 조용히 바람을 가르며 말했다.

“그대는 바람에 저항하려 하였네. 바람을 설명하고자 하였지. 그러나 바람은 불고, 그저 불 뿐.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고—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네. 그대의 철학은 깊고도 맑지만, 강물 위에 다리를 놓으려 하였네. 다리를 건넌 자는 물을 잊고, 다리에 집착하네.”


스피노자는 눈을 감고 노자의 말에 머물렀다.

“스승님… 저는 인간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이성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감정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그것을 이해함으로써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무위(無爲)’를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 차이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노자는 눈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요,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니라.

이름 붙이기 이전, 존재는 순수하였고, 도는 그 순수한 무에서 태어났네. 그대가 말하는 ‘이성’은 이름이요, 설명이요, 분별이네. 그러나 도는 그 이전에 있네. 도는 스스로 그러함이요, *자연(自然)*이라네.


무위자연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네. 억지로 하지 않음이네. 물이 흐르듯, 씨앗이 싹트듯, 아침이 밝아오듯. 도는 ‘됨’이지 ‘하려 함’이 아니네.”


스피노자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렇다면 저의 사상은 억지로 만물을 꿰려는 ‘위(爲)’였단 말씀이십니까?”


노자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대의 사상도 도에서 비롯되었네. 다만, 그대는 말을 통해 도를 보이려 했고, 나는 침묵을 통해 도를 듣게 하려 하였을 뿐. 다르지 않네. 다만 다를 뿐.”


그 말은 스피노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쳤다.

그가 주장한 자연의 필연성, 인간의 자유, 정념의 이해—all of it—그것은 도를 향한 하나의 길이었다.


스피노자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제 생각 속에서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노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의 철학 속에 흐르는 물. 그것이 바로 도와 닮았네.

그러니
곡신불사(谷神不死), 이것은 그대와 나의 공통된 고향이라네.

텅 빈 골짜기의 신, 보이지 않되 사라지지 않는 근원.


그 곡신이 존재를 낳고, 만물이 거기에서 나와도 그 자신은 여전히 빈 채로 남아 있네.


그대가 말한 실체(Substantia), 그것이 바로 곡신이네.”


스피노자의 숨이 길어졌다. 그는 말했다.


“저는 항상, 실체는 스스로 존재하며, 그 원인은 그 자신이라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그 실체의 방식(모드)이라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말씀하신 ‘곡신’과 다르지 않군요…”


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도(道)*를 철학이라 부르고, 나는 철학을 도라 부르네.

다만, 도는 흐르고, 철학은 가르치려 하지.


도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대의 눈에는 이미 도가 있네.”


스피노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물었다.


“스승님,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더 이상 말로 설명하지 않고, 강변하지 않고, 그저 흐르려면…”


노자는 말없이 일어나 바닥에 손을 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흙 위에 한 자를 그렸다.


“물이 되어라. 낮은 곳으로 흐르고, 스스로 높다고 하지 않으며, 필요한 자에게 스며들고, 다투지 않는 존재.

그대는 스스로를 비우고 또 비울 때, 곡신의 숨결과 하나가 되네.”


바람이 불었다. 옥황전의 처마가 흔들렸고, 눈송이들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스피노자는 무릎을 꿇은 채,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 유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다.

그의 글은 더욱 간결해졌고, 그의 말은 더욱 적어졌으며, 그의 침묵은 더 많은 진리를 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노트에 적힌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신을 논하지 않겠다. 다만 그 안에 살 것이다.”

Et hoc est silentium sapientiae.

이것이 지혜의 침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