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5]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8.허공(虛空)에 일점(一點)

작성일
2025-06-05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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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8. 허공(虛空)에 일점(一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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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만과 자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은 갈만이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을 보며 마주 합장하고서 말했다.

“나도 의심이 많아서 명료(明瞭)한 근원이나 출처가 없으면 가장 먼저 의심부터 하고 보게 되었지. 그러다가 여러 스승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크게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것이라네. 가령 밥을 먹으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소화되는 것이며, 그것에서 힘이 나와서 생명을 유지하고 생각할 수가 있는지는 모르나 여하튼 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는 것은 필부(匹夫)도 알고, 금수(禽獸)도 알고 있으니 이러한 것에서도 깨달아야 할 것이 참 많더군.”

“아, 참으로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유연(柔軟)하게 사유하는 가르침이십니다. 그러한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알았으나 오늘 직접 가르침을 접하고 보니 참으로 쉽고도 가까운 곳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갈만의 말에 우창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예전에 ‘허공(虛空)에 점(點)을 하나 찍는다’고 하셨던 고승이 있었지.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손가락으로 허공에 점을 하나 찍고는 ‘알겠는가?’라고 하셨더라네. 그리고는 ‘알았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에게도 ‘차나 한잔 들게’라고 하셨고,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에게도 ‘차나 한잔 들게’라고 하셨다더군.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서 참 실없는 늙은 화상이라고 생각했다네.”

“당연히 그러실 만하겠습니다. 제자가 그러한 장면을 접했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밖에 달리 떠오르는 것은 없었지 싶습니다. 혹 그 고승의 법호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법호는 경봉(鏡峰)이라고 쓰셨지. 수행담(修行談)을 들어보면 좌선(坐禪)하다가 수마(睡魔)가 몰려오면 밖에 나가서 물통의 얼음을 깨어서 입에 물고 앉아서 졸음을 쫓았다고 하셨네.”

“아~! 그렇게 하면 치아가 크게 손상이 될 텐데 괜찮으셨습니까?”

“당연히 나이가 많이 들지도 않았으나 치근(齒根)이 모두 망가지고 치아가 손상되어서 잇몸으로 음식을 드셨다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더군.”

“아, 겪어보고 깨달으신 것은 그대로 전하셨군요.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그리 잘 알고 계십니까? 혹 곁에서 모시고 같이 수행하셨던 것은 아닙니까?”

“내게 그런 복이나 있었겠나? 하하하~!”

이렇게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실은 그 경봉회상(鏡峰會上)에서 곁에 모시고서 수행을 한 처사(處士)를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전해 들었지. 비록 직접 경험하진 않았으나 어찌나 생생하게 설명해 주던지 옆에서 직접 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하겠네. 하하~!”

우창이 흥이 나서 말하자 갈만도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또 물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허공에 점을 찍으셨던 화상의 행동이 의미가 있었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갈만은 예리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줄곧 그 이야기가 의문으로 남아있어서 뇌리를 맴돌았다. 우창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이 이야기부터 해결하고 싶어서 얼른 틈을 타서 질문했다. 우창이 그 말을 듣고서 미소를 지었다.

“아, 아직도 허공의 점에 매여 있구나. 하하하~!”

“예? 궁금한 것은 해결이 되어야 넘어가는 못된 습성이 있는 까닭입니다. 말씀해 주시는 이야기도 재미있으나 이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어서 아까부터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한 채로 있습니다. 하하~!”

“당연하지. 그래서 광덕은 학자라고 해야 할 것이네. 하하하~!”

“벗어나야 하는 줄은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는 깨달음의 자유를 누릴 날이 오리라고 생각은 합니다. 다만 아직은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틀렸다고는 보지 않네. 그리고 허공의 일점(一點)은 내가 말로 설명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고 말이지. 하하~!”

“아, 그런 것이었습니까? 스스로 깨달아야만 알게 되는 것도 모르고서 서둘러서 답을 구하려고 스승님을 괴롭게 했습니다.”

“당연하지. 하물며 내가 괴로워할 것도 없다네. 그러라고 있는 우창이지 않은가. 하하하~!”

“그럼, 스스로 깨닫도록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물론이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묻는다면 설명하지 못할 것도 없으니 우선 이야기나 들으면서 갈증을 달래고 나중에 스스로 깨닫도록 해도 좋겠지.”

우창이 설명해 주겠다고 말하자 갈만은 고맙다는 뜻으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겠네. 허공에 점을 찍었으니 이것은 과거심(過去心)인가 현재심(現在心)인가 미래심(未來心)인가?”

우창의 물음이 잠시 생각하던 갈만이 대답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 미래심일 수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과거심이라고 해도 맞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근접하겠습니다. 그런데 금강경에서 말한 ‘현재심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허공에 점을 찍은 것은 현재심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얻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지요?”

갈만의 대답과 질문에 우창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자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아, 그거다! 허공에 점을 찍었으나 그것은 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라서 현재심도 얻을 수가 없다는 이치에도 완전히 부합하잖아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에요.”

자원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자원의 깨달음은 날로 깊어지는구나. 하하하~!”

“경봉 선사의 가르침은 거기에 있었던 거죠? 무엇을 물어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예요. ‘다 쓸데없고 소용없으니 그만두고 차나 마시면서 이 순간을 즐기라’는 가르침 말이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하하~!”

“그렇다면 간지를 논하고 운명을 논하는 것도 모두 진리의 차원에서 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잖아요? 그것조차도 내려놓고 차나 마시는 것이 좋다는 의미도 되나요?”

“아무렴. 하하~!”

우창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자원을 보며 말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학문을 연마하고 이치를 궁구(窮究)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 그런데 이제 그 이치를 깨닫고 난 다음에도 근원까지 추적하면서 뿌리를 파려고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지 않을까? 이제 간지의 이치가 마냥 허황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으니 그대로 내버려 두고서 편안하게 차를 마신단 말이지. 그러다가 누군가 찾아와서 고뇌를 하소연한다면 문득 간지를 조합해서 그의 업장을 풀이해 주고 또한 의미가 없으니 내려놓고 차나 마시라고 한다면 이것이 경봉 선사의 삶과 크게 다르겠어?”

“아하! 그러니까 허공에 점을 찍는 것이 사주를 적어놓고 풀이하는 것이었잖아요? 그리고 다시 원래 허공에는 아무 일도 없었듯이 풀이한 사람도 아무런 일이 없이 다시 원래의 고요함으로 돌아간단 말이었어요. 맞죠?”

“과연 자원이 자원(慈園)이로구나. 하하하~!”

“예?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씀이에요?”

“고운 선녀가 자애(慈愛)로운 마음으로 화원(花園)을 거닐다가 길을 묻는 이가 찾아오면 말없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고는 다시 길을 가는 한가로운 풍경이 문득 떠올랐지 뭔가. 하하하~!”

“정말요? 자원은 그렇게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이에게 그가 찾는 길을 알려줄 능력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갑자기 ‘백의관음무설설(白衣觀音無說說)’이란 구절이 왜 떠오르죠?”

“말없이 말하는 이치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지 뭐겠어. 하하하~!”

“싸부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평온해져요. 일을 다 마친 사람이 허허로운 마음으로 저무는 석양을 받으며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은 본성(本性)을 의미하는 것이지. 아무런 색도 없는 그야말로 허공과 같은 존재임을 표현한 것이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백의(白衣)는 투명의(透明衣)를 말하는 것이었다네. 그러한 관세음보살이 무슨 말을 하겠어? 그렇지만 그 안에서는 무진(無盡)의 법문(法門)이 쏟아진단 말이지. 그러니까 자원이 바로 그러한 의미를 깨닫고 보니까 문득 그러한 시(詩)가 떠오른 거야. 시는 흰 종이에 글씨로 존재하다가 마음에 부합이 되었을 적에 갑자기 생명력을 띠면서 되살아 나는 것이니까.”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기현주가 말했다.

“사제(師弟)의 대화가 흡사 연인의 정담(情談)을 나누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창이 백의관음이면 자원은 남순동자(南巡童子)잖아? 그러니까 ‘남순동자불문문(南巡童子不聞聞)’이라고 했던 거야?”

“아, 누님도 알고 있는 시였군요. ‘남순동자는 듣는 것이 없이 듣는다’는 뜻을 알고 계시니 누님도 역시 공화(空華)가 맞으십니다. 하하하~!”

“왜?”

기현주도 자원(慈園)처럼 자신의 호에 대해서 멋진 풀이를 해주려나 싶어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허공(虛空)에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용히 앉아서 세상의 모습을 관하고 있으니 그 풍경이 바로 누님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화(華)는 빛나는 꽃이니 이것이 바로 공화(空華)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하하~!”

“그야말로 글자보다 풀이로구나. 그래도 기분은 좋아. 호호호~!”

“경봉 선사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점을 찍으셨다지만 누님은 허공에 꽃을 뿌리시니 그 풍경이야말로 무엇에 비하겠습니까? 이보다 멋진 모습이 또 있겠나 싶습니다. 그러니 소요원(逍遙園)의 주인이랄 밖에요. 하하~!”

그러자 갈만이 문득 궁금해졌다는 듯이 우창에게 물었다.

“허공(虛空)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든 생각입니다. 공(空)의 글자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구멍 혈(穴)에 장인 공(工)인데 이것이 어떻게 텅 빈 허공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갈만의 말에 기현주와 자원도 궁금하다는 듯이 일제히 우창을 바라봤다. 어떻게 풀이할지 궁금하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본 우창이 갈만에게 말했다.

“문득 갈만의 아호가 광덕(廣德)이라는 것이 떠올랐네. ‘부단(不斷)히 수행해서 널리 덕을 베풀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텅 빈 허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광덕은 그 텅 빈 허공에 이름을 붙여주자고 안달 나는 것을 보니 말이네. 하하하~!”

“제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하하~!”

우창의 말뜻을 헤아렸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갈만에게 우창이 공(空)의 글자의 의미를 설명했다.

“구멍은 사물이 호흡하는 공간이라네. 인체에는 폐가 있어서 그 구멍으로 호흡하듯이 자연도 이와 같아서 항상 호흡한다지 않은가. 그로 인해서 천지의 기운이 순환(循環)하는 것일 테니 말이지.”

“아, 맞습니다. 이 땅도 호흡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구멍이야말로 숨통이었다는 말씀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이치에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로부터 동물은 비바람을 피해서 구멍을 찾았고, 식물은 뿌리를 뻗기 위해서 구멍을 찾지. 그렇지 못하면 죽음을 면키 어려우니까 말이지.”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동물이 동굴(洞窟)을 찾는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식물이야 강제로 땅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나? 이렇게 화원(花園)을 가꾸면서도 그렇게 생각을 해 보지 않아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힌 듯이 아득하잖아. 그것이 이해되지 않으니 설명해 줘봐.”

“이것은 직접 나무의 뿌리를 보면서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유를 통해서 짐작할 수가 있을 것으로 여깁니다. 처음에 인간이 나무를 땅에 심을 적에는 강제로 뚫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의 뿌리의 끝은 매우 연약해서 그 힘으로는 땅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빈틈을 찾아서 뿌리를 내릴 따름이지요. 흡사 사람이 발을 뻗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발을 뻗다가 책상의 다리가 걸리면 그것을 걷어찹니까? 아니면 옆으로 비켜서 뻗습니까?”

“정말이네. 내가 생각이 짧았어. 듣고 보니까 모두가 구멍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었구나. 듣고 보니 참으로 신기한걸.”

“그래서 허공(虛空)은 만물의 허파입니다. 텅 빈 것으로 생명을 삼으니 과연 신비롭지 않습니까? 밥을 먹어야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허파가 텅 비어야만 살아갈 수가 있다는 단순한 이치가 있으니 말입니다. 허파에는 물도 밥도 금은보화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바람만 담을 수가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어쩌다가 마신 물이 기도(氣道)로 흘러 들어가기라도 할라치면 그것을 내보내기 위해서 기침하거나 재채기하는 것을 한순간도 미룰 수가 없지요. 누님은 그것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맞아! 기침이나 재채기를 어떻게 참아. 정말 구멍은 생명이 드나드는 통로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

“인체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서 호흡하듯이 운명에는 여덟 개의 구멍이 있어서 삶을 관장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구멍에 들어있는 간지(干支)를 보면서 그 팔자의 주인인 영혼은 어떤 모습일지를 가늠할 수가 있으니 또한 고인이 심혈(心血)을 기울여서 전해 주신 비결(秘訣)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네. 그런데 여태까지 혈(穴)에 대해서 말했어. 그렇다면 그 아래의 공(工)은 무슨 의미이지? 뭔가 무척이나 재미있는 설명을 들을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벌써 기대가 되는걸.”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을 듣고 싶어서 안달하는 표정은 흡사 호기심이 가득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설명했다.

“만물이 선천적(先天的)으로 타고난 것은 혈(穴)을 의미합니다. 콧구멍이든 목구멍이든 모두 태어나면서 저절로 주어진 것이니까 말이지요.”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이해된다는 듯이 말했다.

“오호라~! 그러니까 혹시 공(工)은 후천적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야? 원래 공은 만드는 것이잖아? 위의 일(一)은 하늘이고 아래의 일(一)은 땅이니까 그 중간에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의미로 공(功)이 되는 것이잖아? 만들려면 힘이 들어야 하니까.”

 


 

 

“참 하나를 말씀드리면 열을 깨달으십니다. 하하하~!”

우창이 동의하면서 웃자, 기현주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두 글자를 합한 뜻은 ‘텅 빔’이라는 의미가 되지? 뭔가 만든다면 그로 인해서 결과물이 생길 텐데 말이야. 이것은 사용하는 과정에서 의미에 변화가 된 것일까?”

기현주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창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이렇게 말한 우창이 갈만을 보며 말했다.

“혹 여기에 대해서 광덕의 의견을 들어볼 수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혹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부탁하네.”

우창이 갑자기 갈만에게 묻자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스승님께서 물어주시니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불교(佛敎)를 수행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공(空)’은 허공이기도 하고 텅 비었다는 뜻도 있습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원리로 봐서는 무엇인가 인연법으로 생겨났다가 마침내는 공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냥 텅 비어있는 것으로 이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굴을 깎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해서 스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서역에서 생각한 공과 이곳에서의 공이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 그런 것이었나? 우리가 공간(空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허공을 의미하는데 오늘 글자를 풀어보고서야 뭔가 그 속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을 나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네. 시공(時空)이라고 말할 때는 ‘텅 빈 것’이 아니라 일체만물(一切萬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네. 참으로 풀이가 오묘한 글자인걸.”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내 아호(雅號)의 공화(空華)에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또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말이야. 허공에 꽃비가 내린다는 의미로만 생각했더니 허공이 밝고 밝아서 빛난다는 의미도 된다는 것이잖아?”

“그렇습니다. ‘빛날 화(華)’는 빛이기도 하니까요. 이것을 풀이하면 ‘텅 빈 허공에 아름다운 빛이 가득한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소요원에서 밝게 살아가고 있으시니 그 호는 참으로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고인(高人)께서 지으신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가 웃으며 받았다.

“역시 동생은 둘러 붙이기에 고수네. 내 생각에는 허공에 동생이 점을 하나 찍어주는 바람에 비로소 빛이 나는 의미로 생각이 되기도 해. 내가 동생을 만나기 전과 후로 큰 변화가 생겼으니까 말이야. 고마워~! 호호~!”

기현주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우창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학문을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점을 마음에도 찍어 봅니다. 명학(命學)을 배워서 완미(玩味)하다가 누군가 찾아와서 길을 묻는다면 그 찾아온 사람에게 점을 하나 찍어주는 것도 되는 까닭입니다. 누군가는 그 점을 붓으로 찍고, 누군가는 칼이나 창으로 찍는데 우창은 간지로 찍을 따름이라고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렇게 말하는데 밖에서 화원에 물을 주고 있던 소호(小胡)가 기현주에게 알렸다.

“동헌(東軒)에서 집사 나리가 방문하셨습니다.”

“아, 그래? 무슨 일이지? 들어오시라고 하렴.”

집사가 들어와서 기현주에게 말했다.

“나리께서 소요원 주인님께 안부 여쭈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고마워. 근데 무슨 일로 이렇게 급히 오셨지?”

기현주가 이렇게 묻자 집사가 말했다.

“나리께서 특별히 바쁘신 일이 없으면 놀러 오실 수 있겠느냐고 전하셨습니다. 마침 귀한 음식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소요원의 모든 인원이 왕림해 주시면 자리가 빛나겠다는 말씀을 꼭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집사의 나이는 대략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이렇게 정중히 말하자 기현주가 기뻐하며 대답했다.

“당연히 가야지. 우리 식구 모두 대동하고서 귀찮게 하러 갈 테니 그렇게 전해드리시게.”

“예!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는 바로 돌아갔다. 그러자 기현주가 우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현령이 심심하셨던가 보네.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고 속이 허한 것을 어떻게 눈치채고는 한 상 차려놓고 우릴 불러주니 말이야. 마침 적천수 공부도 끝냈는데 이렇게 거하게 책례(冊禮:책거리)의 자리를 마련해 주시니 거절할 수가 없잖아?”

“정말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누님의 고운 음성으로 읽으셨던 적천수 공부가 끝나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 섭섭함을 주연(酒宴)으로 채워주시는 현령님이 계시니 금상첨화(錦上添花)입니다. 어서 준비하고 일지(一志) 선생을 뵈러 가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일행은 모두 마차에 올라서 동헌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