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7.지위(地位)와 정원(貞元)

작성일
2025-05-3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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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7. 지위(地位)와 정원(貞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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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지위(地位)에 대한 내용인가봐. 앞서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더니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살펴볼까?”

잠시의 생각할 시간이 지난 후에 기현주가 책을 펼치고 내용을 읽었다.

 

대각훈로백세전(臺閣勳勞百世傳)

천연청기발기권(天然清氣發機權)

병권해표병관객(兵權獬豸弁冠客)

인살신청기세특(刃煞神清氣勢特)

분번사목재관화(分藩司牧財官和)

청순격국신기다(清純格局神氣多)

변시제사병수령(便是諸司並首領)

야종청탁분형영(也從清濁分形影)

 

누대(樓臺)의 공훈(功勳)이 대대로 전하는 것은

천연(天然)의 청기(淸氣)가 권세의 기틀을 발휘한 것이고

병권(兵權)을 잡고 멋진 장군의 모자를 쓴 것은

양인(陽刃)과 편관(偏官)의 정신이 청하여 특별한 기세니라

한 지역(地域)의 목사(牧使)가 되는 것은 재관(財官)이 조화로운 것이니

격국(格局)이 청순(淸純)하고 정신기(精神氣)가 넉넉한 까닭이라

문득 높은 지위에 올라 수령(首領)이 되는 것도

청탁(淸濁)으로 형상(形象)을 그림자가 따르는 것임을

 

글을 읽고 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앞의 출신(出身)과 이번의 지위(地位)는 아마도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잖아?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맞춰서 쓴 것으로 보면 그런 것으로 보여서 말이야. 동생은 어떻게 생각해?”

“누님의 말씀이 그럴싸합니다. 아마도 그게 맞지 싶습니다. 더구나 내용도 나름대로 일목요연해서 글을 좀 써본 솜씨라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적천수를 읽다가 뭔가 빠진 것으로 생각되어서 이렇게 세상의 풍경을 담아보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 실은 출신과 지위도 서로 비슷한 말이기도 하니까 조금 더 자세하게 풀이한 것이 「지위(地位)」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용은 풀이하면서 논해 보기로 하고 대략 관념적(觀念的)인 생각으로 문장력(文章力)을 발휘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실로 이 또한 하나 마나 한 내용으로 너절하게 늘어놨으니 해본 생각입니다. 하하~!”

“그렇게 봤단 말이지? 일단 풀어보고 같이 생각해 봐야겠네.”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시 글을 읽으면서 이해한 대로 풀이했다.

“먼저 ‘대각훈로백세전(臺閣勳勞百世傳)’은 높은 누대(樓臺)에 올라서 이름을 오래도록 전한다는 뜻일 것이고, ‘천연청기발기권(天然清氣發機權)’은 팔자에 저절로 청기가 있어서 권세를 드러낼 조짐이 된다는 의미겠지?”

“글을 쓴 사족 선생이야 중요하다고 썼겠으나 그 소식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미 군더더기일 뿐이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정말이네. 결국은 청탁(淸濁)의 이야기니 실로 영양분은 전혀 없는 내용이잖아. 그렇지만 청탁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해롭지는 않겠어.”

“맞습니다. 그래서 없느니보다 나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냥 둬야지요. 하하~!”

“아, 그래서 동생이 한 말이구나. 이제 이해가 되었어. 호호호~!”

이렇게 한바탕 웃고는 다시 글을 살펴보고 풀이했다.

“다음엔 ‘병권해표병관객(兵權獬豸弁冠客)’이네. 이것은 무과(武科)로 나가면 장군이 되어서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는 말이고, ‘인살신청기세특(刃煞神清氣勢特)’이라는 내용은 양인(陽刃)과 편관(偏官)이 청기를 갖고 특이하게 세력을 유지하는 경우라는 말인가? 조금 어렵네.”

“잘 이해하셨습니다. 다만 또한 편견(偏見)일 따름이지요. 고정관념은 언제라도 무너지게 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기세가 청하다면 양인(陽刃)이든 칠살(七殺)이든 무슨 장애가 되겠습니까? 오히려 기세가 탁하다면 정관(正官)이나 정인(正印)인들 또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건 그래. 나도 동감이야. 다만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것으로 보면 되겠어. 이러한 내용을 막상 현실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오류가 또 발생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냥 이론적인 것으로 알아두면 탈이 나지는 않는다는 정도구나.”

“맞습니다. 딱 그만큼입니다. 하하~!”

“알았어. 다음은 ‘분번사목재관화(分藩司牧財官和)’라고 했으니까, 주목(州牧)이 되어서 한 고을을 다스리려면 재생관(財生官)이 조화로워야 한다는 의미겠고, ‘청순격국신기다(清純格局神氣多)’라고 했으니, 격국이 청순하면 신기한 것이 많다는 말이네. 이 글귀도 언뜻 봐서는 그럴싸하긴 하네.”

“그래서 우창도 처음에는 이러한 글귀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러한 자료가 있으면 확인을 해보고 싶었지요. 물론 그러한 사주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고, 나중에는 그나마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모두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이런 글이 차라리 없었더라면 오히려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겠네?”

“맞습니다. 그래서 원망도 했습니다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또한 공부하는 과정이려니 했습니다. 다만 깨닫고 보니까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내용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격국이 청순(淸純)하면 신기한 것이 많을 것은 또 뭐야? 승진도 잘하고 지위가 올라가는 것이 신기하단 말인가? 이러한 내용을 보면 이 글을 쓴 사족 선생은 아마도 세상에서 관료(官僚)를 했던 사람인 것이 분명하겠어. 누구나 자신의 환경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호호~!”

기현주도 많은 여유가 생겼는지 이렇게 웃으며 글을 쓴 사람의 심리(心理)를 헤아릴 정도의 안목을 갖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변시제사병수령(便是諸司並首領)’이라고 했으니, 모든 관리들의 수령이 되는 것을 말하는가 봐. ‘야종청탁분형영(也從清濁分形影)’은 그러한 것도 또한 청탁으로 나눠서 혹은 형상이 되기도 하고 그림자가 될 뿐이기도 하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는데 글자는 많지만 특별하게 감동할 내용은 없어. 그렇다면 우리의 수준이 이미 사족 선생의 안목은 넘었다는 말이 아닐까? 호호호~!”

기현주는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말하며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야 누님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인해서 웬만한 장애물은 모두 녹여버리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글자만 봐서는 대단히 많은 내용과 배움이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막상 뜯어보니까 포장만 화려했다는 것을 알겠어.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그러시지요. 이제 적천수도 거의 다 왔지 싶습니다. 하하하~!”

“그렇구나. 어서 마지막 장을 보고 싶어. 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세운(歲運)」편의 글을 읽었다.

 

휴수계호운 우계호세(休囚系乎運 尤系乎歲)

전충시기숙항(戰沖視其孰降)

화호시기숙절(和好視其孰切)

하위전 하위충(何爲戰 何爲沖)

하위화 하위호(何爲和 何爲好)

 

나쁜 것은 운에 연계(連繫)되나 특히 세운(歲運)이 중요하니

전쟁(戰爭)으로 충돌(衝突)이 일어나면 누가 항복하는지

화해(和諧)를 청한다면 누가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지 보라

무엇이 전(戰)인지 무엇이 충(衝)인지

무엇이 화(和)인지 무엇이 호(好)인지

 

조용히 글의 내용을 음미하던 기현주가 갑자기 소리쳤다.

“아니, 갑자기 글이 왜 이래?”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내용이 앞의 출신(出身)과 지위(地位)를 보고 나서인가? 이건 무슨 말이야? 좋다는 말인지 나쁘다는 말인지 갈피를 못 잡겠잖아? 이름은 세운(歲運)인데 ‘어찌 하(何)’만 넷이네. 어쩌란 말이지? 호호호~!”

“아마도 이 글을 쓴 사족 선생은 신비롭게 보이고 싶었는가 싶습니다. 이 선생의 학문을 등급으로 본다면 출신 지위를 쓴 선생은 중급(中級)이라면 세운을 쓴 이 선생은 하급(下級)이라고 하겠습니다.”

“하급이라면 지렁이에 발을 그린 인족(蚓足) 선생이라고 해야잖아? 글을 읽느라고 그사이에 까맣게 잊고 있었네. 호호호~!”

“아, 맞습니다. 인족 선생이 있었네요. 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 정도로 보겠습니다. 그래도 애썼다는 의미에서 ‘선생’의 호칭은 그대로 붙여주겠습니다. 하하~!”

“여기에는 뭐라고 했는지 읽어봐야지. 우선 ‘휴수계호운(休囚系乎運)’은 왕상(旺相)은 없고 휴수(休囚)만 있네? 이런 것은 모두 운에 달렸단 말이겠고, ‘우계호세(尤系乎歲)’란 말은 특히 중요한 것은 세운(歲運)이 중요하다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앞의 운은 대운(大運)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아마도 그렇게 봐야 하겠습니다.”

“이미 동생은 대운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인족 선생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세운이 더 중요하다고 했으니 이것은 기특한걸. 호호~!”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

“더러는 재미도 있구나. ‘전충시기숙항(戰沖視其孰降)’은 전쟁으로 충이 일어나면 누가 항복하는지를 보라는 말이니까 충은 둘 다 깨진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진보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어?”

“맞습니다. 그래서 인족 선생이지요. 가령 인신충(寅申沖)이라고 하면 항복(降伏)하는 자는 인목(寅木)이라는 이야기니까 이렇게만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글을 썼다고 한다면 그것은 기특하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명쾌하게 답을 말하지 않고 모두가 의문(疑問)으로 남겨서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여서 그러한 점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오독(誤讀)할 수가 있으니 바람직하다고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래서 말이야. 다음 구절은 더 기가 막히잖아? ‘화호시기숙절(和好視其孰切)’이라니 이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이지? 난 모르겠어.”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가 있는 내용을 이렇게 쓴 것은 어쩌면 ‘나는 알고 있는데 너희들은 알아?’라는 정도의 느낌이 들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은 초학자(初學者)가 우쭐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준이 높다고는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맞아! ‘하위전(何爲戰)’은 ‘무엇이 전쟁인가?’라는 뜻인 모양인데,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던져놓은 글은 제자들에게 시험(試驗)을 하기 위해서 쓴 것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이렇게 적천수의 끄트머리에 붙여놔서 막바지에 머리가 좀 아파보라는 듯이 적어놓고는 혼자서 빙글거리며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아무래도 못마땅한걸. 호호호~!”

“그래도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되겠습니다. 하하~!”

“하긴, 얼마 되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네. ‘하위충(何爲沖)’은 무엇이 충(冲)이냐는 말이고, ‘하위화(何爲和)’는 무엇이 화(和)냐는 말이고, ‘하위호(何爲好)’는 무엇이 호(好)냐는 말인데 이 모두는 그냥 술 한 잔에 자아도취(自我陶醉)까지 간 것으로 봐도 되지 싶어서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기현주의 말에 우창도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 또한 일주(日主)의 강약(强弱)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인데 이렇게 의미없는 글을 써 놓은 것은 아마도 실제로 임상(臨床)은 하지 않고 책만 읽으면서 생각이 나는 대로 써놨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래도 아직 한 구절은 더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고 마무리를 멋지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그래야지. 이번엔 뭐야? ‘정원(貞元)’편이네? 그러니까 정원도 괜히 멋을 부리느라고 써놓은 것이 분명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인족 선생의 글이 틀림없겠구나.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알고 있다는 듯이 쓴 것으로 봐서 주역은 좀 읽은 것으로 봐도 되겠지?”

“그렇겠습니다. 간단하게 풀이해 보시지요. 끝내고 놀러나 가십시다. 하하~!”

우창의 말에 기현주도 웃으며 차를 마시고는 읽었다.

 

조화기어원(造化起於元)

역지어정(亦止於貞)

재조정원지회(再肇貞元之會)

배태사속지기(胚胎嗣續之機)

 

조화(造化)는 저 원(元)에서 시작되어 

또한 정(貞)에서 그치는데

다시 정(貞)에서 원(元)으로 모여지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틀을 품느니라

 

풀이까지 하고 난 기현주가 우창을 보며 말했다.

“한 권의 적천수를 공부하는데도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이 개입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잖아. 동생이 아니었더라면 건성으로 읽고 넘어갈 뻔한 내용들을 다시 음미(吟味)하여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되었으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야. 동생에게 절이라고 해야 하겠어. 호호~!”

“이미 누님의 절을 받았습니다. 우창도 함께 웃으며 토론(討論)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감사드리고 누님께도 절을 올립니다. 하하하~!”

이렇게 두 사람이 호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자 자원도 말했다.

“여태까지 싸부를 옆에서 봤으나 언니와 대담(對談)하는 순간의 표정은 본 기억이 없어요. 이렇게나 죽이 잘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부러워요. 과연 지기(知己)를 만난다는 기쁨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원의 마음도 기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적천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가장 큰 소득이었어요. 호호호~!”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만 있던 갈만이 비로소 이야기할 틈을 보다가는 말을 꺼냈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간지의 이치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며 깊은 것으로 논한다면 깊이를 알 수가 없는 심연(深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여 깊은 의미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더라도 어떤 느낌인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미비한 것은 앞으로 연마하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서 여쭙고자 하는데 그냥 스승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고 정답을 구하는 것은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래? 아무래도 답하기 어려운 것을 듣고자 하는 것이로구나. 걱정은 말고 일단 들어나 봐야지. 무엇이 궁금한가?”

“예, 실은 이러한 간지(干支)의 조화(造化)를 과연 누가 만들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토론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적에 결코 얕은 상식으로 아무렇게나 흙으로 사람을 만들듯이 주물러서 형상을 빚은 것은 아니라고 여겨지는데 그 근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 주실지 궁금했습니다.”

갈만의 질문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내 그럴 줄 알았네. 하하하~!”

“스승님, 혹 너무 당돌한 질문이었다면 사죄드립니다.”

“아니, 당돌하다니 당연하지. 무엇이든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연원(淵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어찌 허물이 된단 말인가. 다만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을 하게 되는 것이 조심스러울 따름이라네.”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스승님의 허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점은 염려 마시고 생각하시는 점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시면 깊이 새겨서 정리하겠습니다.”

갈만은 진심으로 간지의 근원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물었다. 그것을 보면서 다른 대중들도 귀를 기울였다. 누구나 이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할 내용이기도 한 까닭이었다.

“실로 나도 경도 선생을 만난다면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네. 백방으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전적(典籍)을 살폈으나 명쾌한 답은 없고 설화(說話)나 전설(傳說)과 같은 이야기만 전해질 따름이니 또한 답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어버릴 따름이었지.”

“과연 그러셨을 만도 하겠습니다. 이해됩니다. 역시 스승님도 광덕의 마음에 공감하시는 연유가 있었습니다. 이미 생각을 많이 해 보셨기 때문이니 당연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얻으셨습니까?”

“재미 삼아 물어보겠네. 간지(干支)의 최초였던 해는 무슨 해였겠나?”

“그야 육갑의 시작은 갑자(甲子)에서 비롯하니 갑자년(甲子年)이지 않겠습니까?”

“당연하겠지? 그렇다면 갑자년이 어느 날 돌연(突然)히 시작되었겠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갑자년의 전년(前年)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이네. 그렇다면 갑자년의 전년에는 무슨 해가 있어야 하겠나?”

“아마도 제자의 생각이 타당하다면 계해년(癸亥年)이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시 60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여전히 갑자년 이전에는 계해년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우창의 말에 갈만이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그 시작은 아득히 멀어서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가 되는데 맞습니까?”

갈만의 질문에 우창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예전에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은 제자가 있었던가 보더군. 하루는 스승에게 물었어. ‘스승님, 이 땅은 무엇이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말이네.”

우창의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지.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지.’라고 말이네. 그러자 제자가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의문이 생겨서 물었어. ‘그렇다면 그 네 마리의 코끼리는 또 무엇이 떠받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스승의 답이 어떠했겠나?”

“아마도 제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다시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떠받치고 있느니라’라고 답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갈만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알 수가 없는 것에 대해서 언제라도 물을 수도 있지만 스승은 이렇게 답이 없는 대답을 하더란 말이네.”

“아하! 그러니까 최초의 갑자(甲子)가 어떠했는지를 묻는 것은 결국은 다시 계해(癸亥)가 떠받치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이요. 물론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분명한 해답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는 것이고요?”

“밝은 스승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창은 그렇게 생각한다네. 하하하~!”

“말씀의 뜻은 잘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는 간지가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상정(想定)하고서 그대로 오늘의 시간에 적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맞아!”

우창이 간명하게 대답하자 다시 갈만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우연으로 만들어진 간지가 어떻게 운명을 예측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한 편으로는 의혹(疑惑)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나중에 누군가 간지의 이치를 의심하고 제자에게 물었을 적에 어떤 답이 옳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함입니다. 결코 스승님의 가르침을 의심해서는 아닙니다.”

“알고말고. 하하하~!”

이렇게 말한 우창이 대중을 둘러본 다음에 다시 갈만에게 말했다.

“실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그 연원(淵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가령 이 땅은 또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나? 언제부터 생겼는지도 모르는 땅 위에서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는 조상에게서 대대로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또한 삶이지 않으냔 말이네.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서 유쾌하게 웃는 우창을 보면서 갈만이 말했다.

“스승님, 실로 과학자(科學者)들의 궁리에 의하면 이 땅이 생긴 이치는 46억 년 전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온통 불바다였다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산이 되고 물이 되고 그러다가 바다가 되면서 생명체들이 생겨나서 진화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영장류(靈長類)는 인간(人間)으로 진화했다고 합니다.”

“오호! 그것참 신기한 말이구나. 과연 서양인들의 연구 열정도 참으로 대단하단 말이구나. 그러니까 그냥 막연하게 아득한 옛날이라고 하지 않고 대략이나마 그만큼 아득한 세월의 이전에 천지(天地)가 생겨났다는 말이니 그냥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말이네. 하하하~!”

“그렇긴 합니다만, 그것조차도 가정(假定)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자신의 의지하는 종교의 교리에 의해서 6천 년 전에 이 땅이 탄생했다는 것으로 믿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알았네. 결국은 금강경(金剛經)의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드네그려.”

“어떤 말씀입니까?”

갈만이 궁금해서 얼른 물었다.

“금강경에 ‘과거심(過去心)도 불가득(不可得)이요 현재심(現在心)도 불가득(不可得)이요 미래심(未來心)도 불가득(不可得)이라’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명가(命家)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우창의 말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현주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동생은 편견이 없는 견해로 모든 이치를 관통(貫通)하고 있으니, 말만 들어도 든든하단 말이야. 호호호~!”

우창이 기현주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설명을 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게 되면 명학(命學)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겠나? 근거도 찾을 수가 없고, 논리적인 이유도 없으니 이러한 것을 일러서 황당무계(荒唐無稽)하다고 한들 누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우창의 말에 갈만이 수긍하며 말했다.

“실로 그렇습니다. 스승님.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제자가 근원에 대해서 집착했던 적이 있을 적에 보타암 화상께서 독화살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근원을 아무리 찾아도 알 수가 없는데 인생만 덧없이 흘러갈 뿐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니까 지금의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그 말도 의심스러웠습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까닭인가?”

“원래 답변이 궁하면 둘러 붙이기도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지 화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적에 처음에는 답이 궁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중에야 그 의미를 깨닫고서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갈만의 말에 자원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독화살의 비유라니 그건 무슨 뜻이죠? 고사(故事)가 있나 본데 설명을 조금만 해 주세요. 그래야 제대로 정리되지 싶어요. 호호~!”

자원의 말에 갈만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어느 왕이 전쟁터에서 적의 화살을 어깨에 맞았답니다. 화살촉에는 독이 묻어있어서 상처가 이내 퍼렇게 중독이 되었지요. 신하들이 얼른 화살을 뽑자고 했는데 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누가 봐도 긴급한 상황인데 왜 듣지 않았죠?”

“왕은 그 화살에 묻은 독이 어디에서 나는 무슨 독약을 사용했는지, 또 화살은 어느 산에서 난 대나무를 사용했으며 화살촉은 어느 광산에서 나온 쇠를 사용한 것인지, 또 그 화살을 쏜 자는 누구인지를 모두 확인하기 전에는 뽑지 않겠다고 버텼답니다.”

“저런! 그러다가 팔을 못 쓰게 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그래서 우선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라고 했는데 깨달음은 존재하는 것인지 그 깨달음은 누가 얻었는지 또 번뇌는 어디에서 온 것이기에 깨닫고 나면 사라지는 것인지 그러한 이치는 또 무엇 때문인지를 꼬치꼬치 묻는 제자에게 비유로 들었다고 합니다.”

“아하! 그러니까 근원(根源)을 따지는 것도 좋지만 급한 것은 우선 번뇌의 뿌리를 뽑는 것이란 가르침인가요? 그렇게 해서 자유를 얻고 나면 그러한 것도 절로 알게 될 테니 우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것이네요.”

“맞습니다. 같은 이치로 간지(干支)의 기원(起源)을 여쭸는데 스승님께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그것은 알 수가 없으니 괜한 수고를 하지 말고 사주(四柱)든 오주(五柱)든 그대로 필요에 따라서 적용하면서 즐겁게 사용하느니만 못하다는 가르침을 주셔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말한 갈만이 우창에게 합장하며 마음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