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6.출신(出身)의 환경(環境)

작성일
2025-05-2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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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6. 출신(出身)의 환경(環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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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푹 쉬었다가 다시 모여앉았다. 기현주의 열정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고맙게 여기기조차 했다.

“이번 대목은 출신(出身)편이네?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자녀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정도라면 이미 상당한 집안이라고 봐도 되지 않겠어?”

“맞습니다. 하루하루를 연명하기에도 급급한 환경이라면 자녀의 먼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요. 그렇게 논한다면 출세(出世)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환경(環境)의 비중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 대목을 슬쩍 읽어봤는데 공감이 되기도 하고 또 안 되기도 해서 나름대로 판단하기에 좀 어렵던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

“맞는 말씀입니다. 우선 읽어보시지요.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야 있지 않겠습니까?”

우창의 말에 미소를 지은 기현주가 내용을 읽었다.

 

외외과제매등륜(巍巍科第邁等倫)

일개원기암리존(一個元機暗裡存)

청득진시황방객(清得盡時黃榜客)

수존탁기역중식(雖存濁氣亦中式)

수재불시진범자(秀才不是塵凡子)

청기환협관불기(清氣還嫌官不起)

이로공명막설경(異路功名莫說輕)

일간득기우재성(日干得氣遇財星)

 

“이 대목은 나눠서 볼 것이 아니라 묶어서 보는 것이 좋겠어. 풀이는 나눠서 하더라도 말이지.”

“아무래도 좋습니다. 어떻게 풀이하시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대답하자 기현주가 앞의 두 구절을 풀이했다.

“그러니까, ‘외외과제매등륜(巍巍科第邁等倫)’이란 말은 대대로 벼슬이 높은 자제를 배출하는 가문이라는 말이잖아? 또 이어지는 ‘일개원기암리존(一個元機暗裡存)’이라니 그야말로 잘 나가는 집안이라는 뜻이지?”

“그렇겠습니다.”

“잘 나가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주는 원기(元機)가 그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잖아? 이러한 것이 팔자에도 드러난다는 말인가?”

“내용은 그렇습니다만, 실로 신빙성은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귀한 가문의 자식이 망나니로 살기도 하고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식도 출세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아하! 그렇구나. 그런데 그렇게 변하는 것은 제외하고 꾸준하게 대를 이어서 명성을 얻는 가문은 이렇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평법(子平法)은 일개인(一個人)을 말할 뿐이고 가문과 혈통은 논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대목이 여기에 들어왔다는 것도 사족 선생의 오류라고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

“이것도 사족 선생의 글이었던 거야? 그건 생각지 못했어.”

“경도 선생이 이미 ‘득기중(得其中)’을 말했는데 중언부언하는 것부터도 원래의 취지(趣旨)에서 십만팔천리지 않습니까? 하하~!”

“아, 맞아! 그것을 배웠으면서도 금세 잊고 있었네. 호호호~!”

“그냥 ‘글이 있으니 풀이나 해 보자’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알았어. 여하튼 잘 되는 가문의 혈통으로 태어난 사람은 사주에도 그러한 청기(淸氣)가 있다는 것은 다 믿을 것이 없다는 걸로 본단 말이지?”

“맞습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청득진시황방객(清得盡時黃榜客)’은 사주가 청하니 자연히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라는 말이고, ‘수존탁기역중식(雖存濁氣亦中式)’이란 말은 비록 탁기가 있더라도 벼슬길에 나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보면 되겠습니다. 청탁(淸濁)은 이미 앞서 충분히 언급했는데 다시 언급하는 것도 군더더기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하하~!”

“정말 그렇구나. 이미 한 말을 다시 되뇌면서 괜히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뭐지? 그래도 괜히 써 놓지는 않았을 거잖아?”

“이유야 사족 선생에게 물어야 하겠습니다만, 어쩌면 풍수가(風水家)와 겨루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약수 선생의 말씀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창은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감경보에게 의견을 물었다.

“아, 두 분이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니 얼떨떨하잖습니까. 하하하~!”

“우리 공부가 늘 이렇습니다. 하하~!”

이렇게 말한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대목을 보면 풍수가의 말투가 느껴지는데 그런 느낌이 타당한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생각해 봅니다. 실로 조산(祖山)에서 흘러내린 용맥(龍脈)이 주산(主山)을 거쳐서 혈처(穴處)에 모여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일러서 뼈대가 있는 가문이라고 하지요. 우창 선생의 풍수에 대한 견문도 예사롭지 않으십니다. 하하~!”

“그렇다면 풍수에서 탁기(濁氣)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흐름이 잘 빠져서 아름다운데 중간에 귀면봉(鬼面峯)과 같은 험한 풍경이 혈처를 넘겨다보고 있는 경우라면 탁기로 봅니다. 그래도 벼슬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일치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감경보의 설명에 기현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과연 많이 알지 않으면 이해하는 힘도 떨어질 수밖에 없구나. 난 그냥 내용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동생은 이미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를 살펴서 그 연유(緣由)까지 생각하면서 사유할 수가 있으니 참 대단해~!”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든 되는대로 알아두면 어딘가에서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많아서 이치에 부합한다고 생각되거나 말은 되지만 내용은 실없는 것조차도 모두 긁어모으는 셈인가 봅니다. 하하~!”

“맞아! 그렇게 지칠 줄을 모르는 호기심이야말로 학문을 이루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오늘도 동생을 보면서 어떻게 공부하는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는구나.”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시 풀이했다.

“다음 구절은 ‘수재불시진범자(秀才不是塵凡子)’구나. 평생 공부만 하고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잖아? 이런 사람도 보통은 아니라는 뜻이네. 이어지는 ‘청기환혐관불기(清氣還嫌官不起)’를 보면 청기가 있는데도 아쉽게 관성(官星)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아쉽다는 말이지?”

“글로 봐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다만, 관성(官星)이 있어야 벼슬길이 높다는 것도 고정관념(固定觀念)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니, 그것도 틀린 거였어?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득기의(得其宜)’에서 다 밝혔습니다. 모든 십성이 이치에 맞도록 자리를 잡는다면 누구라도 벼슬을 할 수가 있는 것이란 의미인데 새삼스럽게 ‘관불기(官不起)’를 거론하면서 관성의 가치만을 내세울 필요는 없지요. 하하~!”

“정말이네. 듣고 보니까 득기중(得其中)과 득기의(得其宜)에서 모두 밝힌 내용을 확실하게 알겠어. 동생이 왜 그렇게 명쾌하게 군더더기를 알고 있는지도 이렇게 명료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었구나. 정말 학문의 깊이란 측량(測量)이 불가한 것 같아. 호호호~!”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과찬은 의미가 없으니 그만 거두시고요. 이미 누님도 알고 우창도 알고 있는 내용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경도 선생의 가르침만 받아들인다면 그 나머지는 그야말로 밖에서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이웃집의 개가 짖나 보다’ 하면 그뿐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맞아! 그래도 명료하게 알지 못하면 미심쩍어서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동생의 학문이 심후(深厚)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과찬이라고 할 것도 없어. 이렇게 올곧게 자신의 학문을 향해서 외길로 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예사로운 단계는 멀리 벗어났으니 말이야.”

기현주는 진심으로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우창도 말없이 합장으로 받아들였다. 기현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로공명막설경(異路功名莫說輕)’은 대대로 벼슬을 한 가문이 아니라고 해서 공명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인 거지?”

“맞습니다. 사족 선생이 문득 정신이 들었나 봅니다. 하하하~!”

“그렇구나. 그래서 이어지는 말이 ‘일간득기우재성(日干得氣遇財星)’이구나. 그러니까 이제 비로소 득기중(得其中)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말이네.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살펴보니까 간단해서 좋구나. 그런데 벼슬길에서 출세하는 것은 과연 어떤 연유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텐데 말이야.”

기현주는 이대로 넘어가는 것이 아쉽다는 듯이 우창을 보며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누님의 말씀은 벼슬이 높은 사람은 어떤 연유로 그 자리를 지키게 되는지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시지요?”

“맞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가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지 궁금해.”

기현주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잠시 생각하더니 채록집에서 사주 하나를 찾아서 적었다. 이것은 수시로 공부가 될만한 자료들을 접하면 기록해 놓는 것이었는데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창이 적어놓은 사주를 들여다보던 기현주가 먼저 말했다.

“팔자를 봐하니 참 고단한 사람이겠네. 이렇게 정관이 울타리를 치고 있으면 삶도 얼마나 고단하겠나 싶어서 말이야.”

“그렇게 보이십니까? 하하~!”

“왜 아니야? 내가 보기는 그런데 자원은 어떻게 보여?”

우창의 웃음소리를 듣자 혹 헛다리를 짚었나 싶어서 자원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자원도 사주를 보고는 기현주의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언니가 잘 보셨어요. 자원이 봐도 마찬가진걸요. 하루도 편히 다리를 뻗고 쉬지 못했을 것으로 보여요. 하물며 삶도 무척이나 고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적어도 싸부의 비망록(備忘錄)에 적혀있는 정도라면 특별한 면이 있는 사람이겠죠?”

두 사람의 말을 미소로 듣고 있던 우창이 비로소 말을 꺼냈다.

“이 사람은 한 시대에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은 지위와 부유함을 누렸던 사람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사주와 현실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놓은 것인데 문득 생각이 나서 꺼내 봤지요. 그런데 누님이나 자원의 의견도 그와 같은 것으로 봐서 사주가 틀리지 않았다면 뭔가 그 안에는 내막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사주가 틀렸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건 논외로 하고서 사주를 봐서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청기(淸氣)는 일푼(一分)도 없잖아?”

“그렇다면 삶은 탁했다고 하겠습니까?”

“맞아! 비록 권세(權勢)는 높아도 삶은 탁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말하자면 탐관(貪官)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다.

“정말 누님의 예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 사람은 탐관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야말로 일인지하(一人之下)요 만인지상(萬人之上)이었던 사람이니까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라면 이름이 궁금하네. 뭐라는 사람이야?”

“예, 기록에 나온 이름으로는 화신(和珅)이라는 사람입니다.”

“응 그래? 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그런데 얼마나 탐재(貪財)를 했기에 탐관이라고 하는 거야?”

“매관매직(賣官賣職)으로 큰돈을 벌어서 자기의 별장(別莊)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왕의 것보다도 더 화려했다고 하니까 미뤄서 짐작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하! 을경합(乙庚合)으로 정재(正財)를 탐했던 것으로 봐도 되겠구나. 그런데 이렇게 살아도 왕의 벌을 받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잖아? 뒤끝이 그렇게 되면 너무나 불공평하잖아? 이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의 관점으로도 납득도 안 되고 말이야.”

기현주가 항의라도 하듯이 말하자 우창이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에 부귀빈천(富貴貧賤)이 팔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누님의 말씀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에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부유(富裕)하여 왕실의 재산을 능멸할 정도라고 할지라도 그의 품성(品性)은 하중하(下中下)일 테니 항상 왕의 비위를 맞추면서 돈을 긁어모았을 수도 있을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수전노(守錢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일리가 있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지? 팔자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또 깜빡했지 뭐야. 호호호~!”

“왕의 비위를 맞추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다가 왕이 죽고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십여 일 만에 새 왕이 하사한 비단으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온 삶이니 지위나 권세를 누렸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에는 이러한 불안감을 피할 수가 있었겠느냐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정말 팔자는 면하지 못한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틀리기 쉬운 말이네. 다만 내면을 놓고 말한다면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러고 보니까 왜 동생이 비망록에 적어놓은 것인지 이제 알겠어.”

기현주가 이해된다는 듯이 말하자 우창이 다시 하나의 사주를 찾아서 적었다.

 

 


 

 

이번에도 기현주가 사주를 보면서 먼저 말했다.

“이건 또 다른 사주잖아?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걸. 청기(淸氣)도 있고 말이야. 이 사람은 화신(和珅)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겠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기현주가 자기의 말이 맞았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우창을 보면 말했다.

“누님의 눈이 참 예리하십니다. 이 사람은 앞의 화신과 같은 왕의 아래에서 벼슬을 했기에 두 사람은 항상 첨예하게 부딪치면서 살았다고 전합니다.”

“와, 그것참 재미있구나. 앞의 사람은 경금(庚金)이고 이 사람은 병화(丙火)니까 애초에 서로 겨룰 상황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대체 어떤 연유가 있었기에 서로 겨룰 수가 있었을까? 이 사람의 이름은 또 뭐야?”

“이름은 기윤(記昀)이고 호는 효람(曉嵐)이라고 전합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반기며 말했다.

“아니, 나와 같은 기(紀)씨란 말이야? 화신과 같은 사람과 부대끼면서 왕을 보필하느라고 고생도 많았겠다. 호호호~!”

“아, 그렇군요. 누님과 같은 성(姓)입니다. 기효람(紀曉嵐)은 학문의 조예가 깊어서 왕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직언(直言)도 서슴없이 했다고 전합니다.”

“이 그랬구나. 왕에게 직언하거나 교언(巧言)하는 것도 팔자와 유관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어. 하긴,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니까 마음에 바라는 것이 있으면 사심(私心)이 들어가게 되니까 마음에 없는 말도 잘하게 된다는 이치잖아?”

“맞습니다. 항상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공익(公益)인지 사익(私益)인지에 따라서 찬성하거나 반대하게 되거든요. 화신은 화중당(和中堂)이라고 했는데 아호는 중당(中堂)이지만 행동은 하당(下堂)이라고 후세인들이 평합니다.”

“맞아! 이름은 이름일 뿐이라고 했잖아. 심성(心性)이 중당이면 이름이 말종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행실은 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심성이 하천(下賤)하다면 이름은 아무리 중당이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조차 중당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것도 이야깃거리가 되네. 호호호~!”

“그렇습니다. 기효람은 문학(文學)에 밝아서 왕실에서 거대한 도서관(圖書館) 사업을 할 적에 총감(總監)을 맡아서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데 그 시간에 화중당은 뇌물을 받아서 마당을 넓히고 첩들을 들이느라고 바빴다고 합니다. 하하~!”

“와~! 정말 재미있는 두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왕은 왜 그런 사람을 옆에 뒀을까? 왕이 어리석었나?”

 


 

 

“왕은 매우 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옆에 있어서 심심풀이도 되고, 기효람과 경쟁도 되어서 그 중간을 잘 살폈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화중당은 왕의 친척이었다고 하니까 나름대로 내치지 못할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왕후(王后)와 연관이 되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하튼 이런 사주를 갖고서 호화(豪華)롭게 살았다는 것이 재미있을 따름입니다. 하하하~!”

“그야말로 환경의 덕을 톡톡히 봤잖아요.”

조용히 듣고 있던 자원이 한마디 했다.

“왕후의 뒷배를 얻어 타고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렸다면 이것은 팔자가 좋아서라기보다는 환경의 도움이 컸다고 해도 되겠어요. 팔자로 봐서는 재물도 겨우 밥이나 먹고 살 정도라고 해야 할 텐데 그 정도로 누렸다면 왕의 그늘이 컸다고 하겠어요.”

“팔자로 봐서는 기효람과 화중당은 차이가 나지? 그래도 왕을 섬기면서 저마다 자신의 맡은 역할을 잘했으니까 왕의 재물창고를 잘 관리해 준 공덕도 화중당에게 있을 것으로 봐. 하하하~!”

“이러한 것을 보면 팔자만으로 출신(出身)을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싸부의 가르침이 틀림없음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네요. 그러니까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고 늘 말씀하신 것이 다시 새삼스럽게 떠오르네요.”

자원의 말에 기현주가 물었다.

“어? 그건 무슨 뜻이야? 나도 알게 가르쳐 줘봐.”

“언니는 모르셨구나. 뜻은 간단해요. ‘바둑을 두게 될 적에 마주 앉은 사람은 염두에 두지 말라’는 뜻이거든요. 신선이든 주정뱅이든 사람을 보지 말고 바둑판만 보라는 뜻이죠. 싸부가 늘 가르쳐주신 말씀이에요. 사람에 현혹되어서 판단에 혼동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뜻이죠.”

자원의 설명에 기현주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했다.

“아하! 역시 동생의 가르침답구나. 맞아. 사주의 청탁을 보고서 그 사람의 심성이 어떠한지를 살펴야지 지위가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고 하면 망가진 팔자라도 멋져 보이고 사람이 추레하게 입고 앞에 앉아 있으면 사주가 아무리 청해도 하천한 것으로 보일 수가 있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그러한 경계를 잘 가르쳐 주셨잖아. 멋진 가르침인걸. 이것은 명가(命家)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라 세상만사에 두루 통용되는 말인걸.”

“맞아요. 그래서 늘 경계하고 있죠. 겉모습과 속마음은 서로 다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항상 겉보다 속을 살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어 실수를 줄이기도 해요. 호호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삼진도 한마디 했다.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보지 말고 팔자청탁(八字淸濁)을 보고서 사람을 살피라는 의미는 참으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합니다. 우선 보이는 것이 외모(外貌)인지라 아무래도 겉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일진대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깊은 내면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그로 미뤄서 생각해 보니 팔자는 용신(用神)의 강약(强弱)도 중요하나 그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청탁(淸濁)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결국 청한 팔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심성도 무리(無理)하지 않고 순리(順理)를 따르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기가 쉬울 테니까요.”

“그렇다네. 물론 팔자가 청하더라도 환경에 따라서 곡첨(曲諂)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 바탕에서 살아있는 내면의 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니 말이네.”

이번에는 감경보가 우창에게 물었다.

“듣고 보니 이치에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팔자가 혼탁(混濁)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그냥 팔자 생긴 대로 살면서 번뇌(煩惱)와 고통(苦痛)으로 신음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운명입니까?”

“과연 약수 선생이십니다. 이미 진동수를 통해서 길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비록 신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졌더라도 진동수를 마시면서 바로잡아 가듯이 마음이 혼탁한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리고 탐욕은 구렁이나 악마를 대하듯이 멀리한다면 또한 청한 팔자로 태어난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사주는 비록 청귀(淸貴)하게 태어났더라도 환경에 따라서 아첨하고 군림하게 된다면 또한 탁한 팔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과연 명언입니다. 결국은 유심론(唯心論)이로군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마음을 떠나서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충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생각하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라고 여깁니다. 비록 팔자는 깨어지고 썩어서 문드러졌더라도 마음에 걸림이 없다면 도인(道人)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출신의 가르침을 통해서 심성의 자유로움과 속박에 대한 것까지 배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많이 느끼고 생각하게 됩니다.”

“공감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약수 선생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는데 책 이야기에 빠져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하~!”

“이렇게 진리와 노닐면서 무슨 이야기면 또 어떻습니까? 아무 이야기라도 모두 즐거울 따름이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하하하~!”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편안한 것이 곧 지상(至上)의 복락(福樂)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