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 제44장. 소요원(逍遙園)
35. 심신(心身)의 질병(疾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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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도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웃고는 말했다.
“참으로 강호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고 웃지 못할 사연도 많아요. 오늘도 귀한 가르침으로 새로운 안목을 얻게 되었으니 감사드려요. 호호~!”
자원의 말에 감경보도 합장하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널리 보고 많이 듣는 것보다 중요한 공부도 없다고 하는가 봅니다. 마침 풍수에 대한 경험이 좀 있었던 인연으로 이렇게나마 약간의 상식에 보탬을 드리게 된 것이 다행스럽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니 말이지요. 하하~!”
“말씀을 들으면서 특별한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갈만의 말이었다. 그래서 모두 갈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자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웬만한 지기(地氣)가 교란을 시킨다고 해도 꿋꿋하게 견딜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반면에 허약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약간의 영향으로도 치명적인 질환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풍수지리에 대한 깊은 이치는 모르겠으나 환기(換氣)가 되지 않는 폐쇄된 곳에서 장시간을 기거한다면 당연히 건강이 나빠질 것이니 이러한 맥락에서 풍수지리를 이해해 보았는데 그래도 되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갈만은 감경보에게 묻고 싶었던 것에 대해서 말했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깊은 이치가 있기는 하오만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순한 환경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또 거대한 힘이 작용하는 대지(大地)의 기운이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아직은 공부가 부족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양인들은 하늘의 별자리가 특정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것을 점성술(占星術)이라고 하지요. 문득 든 생각이 여기 사람들이 땅의 이치에 밝은 것처럼 양인은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회교(回敎)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징에도 달과 별을 넣어서 밤을 존중하는데 그것은 밤이 되어야 별이 보이는 까닭이라고 한답니다.”
“우리도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살피지 않는 것은 아니나 실성(實星)과 허성(虛星)이 서로 어울려 있지만 땅은 생생하게 목도(目睹)하는 현장(現場)이 있으니까, 그것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하는 별을 실성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만, 허성이라니 그것은 또 무엇입니까?”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실제로 하늘에 존재하는 하늘의 별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관념 속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별을 거론하여 길흉화복을 논하는 것이지요.”
“아, 그렇군요. 어찌 보면 양인들의 점성술도 실은 허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령 하늘의 별을 논한다고는 하지만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별들이 영향을 미쳐서 사람에게 어떤 기운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믿기는 어려운 것이니 말이지요.”
“광덕 선생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유하십니다. 그로 인해서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겪을 수가 있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예, 아마도 그런 성품이 있는가 싶습니다. 그런데도 간지(干支)의 연원(淵源)은 모르겠으나 이치를 궁리하는 모습은 대단히 큰 매력이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워서 잘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것이 인연이지 않겠습니까? 그로 인해서 또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지요.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에 공부하는 대목이 질병(疾病)인데 실제로 팔자를 통해서 질병을 알 수만 있다면 참으로 활용할 가치가 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수 선생의 가르침으로 팔자의 영향과는 별개로 풍수지리의 작용도 있다는 말씀에 내심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건강장수(健康長壽)를 희망하고 질병(疾病)과 단명(短命)을 싫어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질병에 대해 귀한 말씀을 듣는 것은 의미가 크겠습니다. 그래서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하~!”
갈만의 말에 기현주가 웃으며 말했다.
“오호라! 그러니까 어서 책을 읽어보라는 뜻이로구나.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책을 펴고 다음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기신입오장이병흉(忌神入五臟而病凶)
객신유육경이재소(客神遊六經而災小)
‘기신이 용신을 공격하면 흉한 질병이 생기지만
한신은 육경을 떠돌아도 두려워할 것은 없느니라’
이렇게 풀이한 기현주가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건 나도 많이 들어본 말이네. 기(己)가 용신일 경우에 을(乙)이 있으면 비위(脾胃)가 병들게 된다는 말이잖아?”
“말인즉 그렇겠습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니, 몸에 어떤 병이 있을지를 이렇게나 쉽게 알 수가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천금의 가치가 있는 귀중한 비법이네?”
기현주의 호들갑에 우창이 미소만 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자원이 우창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싸부의 생각은 언니와 좀 다른가 봐요. 무슨 생각인지 들어봐요. 말씀을 해주셔야 긍정하든 부정하든 할 테니 말이에요. 호호~!”
자원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원래는 학문적으로 본다면 명(命)과 의(醫)가 동원(同源)이었을 거야.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각기 분리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아니, 지금도 같은 관점으로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논하지 않나요? 을정기신계(乙丁己辛癸)는 간심비폐신(肝心脾肺腎)에 배속하고, 갑병무경임(甲丙戊庚壬)은 담소위대방(膽小胃大膀)에 배속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니까요.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걸요.”
자원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의견을 말했다. 그러자 기현주도 한마디 언급했다.
“당연하지!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의 말에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되네. 무슨 연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혹 성정(性情)에서처럼 말이야. 설명을 듣고 싶어.”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러실 만도 합니다. 오랜 관습(慣習)으로 인해서 당연시(當然視)하던 것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을(乙)이 신(辛)에게 극을 받으면 간장(肝臟)이 손상을 입게 된다고 한다면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시겠습니까?”
“당연하지. 항상 그렇게 생각했는걸?”
“그런데도 왜 의학(醫學)은 따로 분리되었겠습니까? 그렇게 사주에 나온 오행의 생극에 따라서 질병이 정해진다면 약을 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보다도 누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정과 마찬가지로 단지 오행만으로 인간에게 일어나는 온갖 질병에 대해서 만족스러운 답을 내릴 수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신(忌神)이 오장(五臟)에 들어있어도 건강하게 잘 살 수가 있는 것이고, 용신이 병들지 않고 건왕(健旺)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유황(硫黃)이 끓는 곳에서 일하게 된다면 호흡기관이 온전하기가 오히려 어려울 테니 만약에 금(金)이 생을 받고 있어서 괜찮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한 이치에 타당하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따지듯이 묻자,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우창의 말투로 봐서 팔자의 오행과 질병은 크게 연관이 없다는 것으로 확고(確固)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갈만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질병은 실로 환경(環境)과 습관(習慣)에서 비롯되는 것이 더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요인(要因)도 작용합니다. 지금 논하는 것은 그중에서 선택한다면 물려받아서 태어나면서부터 유전(遺傳)된 것과 유관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네. 내 생각도 그와 같다네.”
“맞습니다. 만약에 한 마을에 같은 사주로 태어난 두 사람이 있다면 사주는 비록 같더라도 몸에 유전되어 타고난 부모의 영향은 서로 다를 테니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더라도 사주로 질병을 논하는 것이나 신체를 거론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옳지! 내 맘이 바로 그것이지.”
우창이 동의하자 갈만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자가 오행의 이치를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논리적(論理的)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주로 질병을 논하는 것은 옛날에 사람이 병을 얻으면 신탁(神託)받은 무당이 하늘에 기도해서 병이 낫는다는 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풍토병(風土病)을 생각해 보면 질병은 환경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곳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서 건강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것은 덕국의 의학자들도 모두 동의한 바이니 단순히 스승님의 말씀을 거드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타당성이 있다고 여기면서 과연 스승님의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밝히려는 통찰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됩니다.”
갈만의 말에 기현주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말했다.
“광덕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되었어. 그동안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당연히 그렇겠거니 했던 것을 이제 동생 앞에서 반성하게 되네. 호호~!”
기현주의 말에 우창이 설명을 이었다.
“항간에는 여인의 사주에 상관(傷官)이 있으면 용모가 빼어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성(印星)이 많으면 체형이 뚱뚱하다고도 하는데 이러한 것은 책마다 서로 다르므로 깊이 생각할 것도 아니지만 사주의 간지를 놓고서 외모를 말하는 것이야말로 옥새(玉璽)로 호두나 깨어 먹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지를 생각해 봤던 것인데 이해를 해 주셨으니 고맙습니다. 하하~!”
“아니야. 처음에는 동생의 말이 어딘가에 집착해서 좁은 생각으로 고집을 부리는 것인가 싶기도 했어. 그런데 갈만의 설명을 들으면서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환경을 바꾸면 있던 병도 없어진다는 말도 있잖아? 그래서 병이 있는 사람이 절간에 가서 요양하면 병이 낫는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봐도 환경의 요인이 얼마나 큰지는 알 수가 있겠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물론 앞으로 이러한 점에 대해서 살펴봐야 할 질환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 이러한 내용으로 궁리하는 것은 논할 의미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적천수 안에 있는 내용이니 한번 훑고 지나가는 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기현주가 책을 펴려다가 다시 의문이 생겼는지 우창에게 물었다.
“동생의 말대로 명학의 핵심은 심리적인 분석이라고 했잖아? 그렇다면 사주를 살펴서 건강에 참고할 수는 없을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일간의 주위에 관살이 많으면 두려움증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작용한다면 기운이 활짝 펴지기 어려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억압보다는 격려의 말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호라! 알겠어. 우울증(憂鬱症)이나 공황장애(恐慌障礙)와 같은 증세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구나. 이러한 것은 마음의 병이니까 팔자에서 다룰 것은 심병(心病)이란 말이지?”
“틀림없습니다. 또 식상이 과다하면 다사(多思)로 인한 허로(虛勞)가 올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재성(財星)이 지나치면 다사(多事)로 인해서 체력이 고갈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알았어. 그러니까 정신(精神)의 질환(疾患)은 거론하고 신체(身體)의 질환은 거론하지 말라는 말이지?”
“잘 이해하셨습니다. 이제 되셨습니까?”
“응, 욕심(慾心)이 많은 겁재(劫財)가 도사리고 있으면 많이 얻지 못해서 상처받을 것이고 인정이 많은 인성(印星)이 있으면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걱정을 하느라고 잠시도 마음이 편히 쉴 수가 없다는 말이잖아?”
기현주는 이제야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우창이 말없이 미소를 짓자 비로소 책을 펴고 읽었다.
목불수수자혈병(木不受水者血病)
토불수화자기상(土不受火者氣傷)
‘목이 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혈병이요
토가 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니 기가 상하느니라’
이렇게 일고 풀이한 기현주가 우창에게 물었다.
“팔자의 오행이 건강과는 무관한 줄을 알겠는데 이 글의 내용인 무슨 뜻이야? 뜻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어?”
“물론입니다. 허약(虛弱)한 목(木)이 수(水)의 생을 받지 못하니까 수(水)는 혈액(血液)과 같아서 혈병이라고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목은 간(肝)이고 간이 피를 만들어야 하지만 생을 받지 못했으니 원활하지 못하여 혈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토가 화를 받지 못하는 것도 허약하면 병이 된다는 말이구나? 그런데 기상(氣傷)이 무슨 병이지? 처음 들어보는 것이네?”
“토가 허하여 화를 받아야 하거나, 또는 화가 너무 왕성해서 받을 수가 없는 것을 모두 아우르는 내용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과다하거나 부족함으로 인한 결과가 사뭇 다를 것임에도 묶어서 기상(氣傷)이라고 한 것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춤도 출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오호! 그런 뜻이었구나. 어쩐지 내용이 막연해서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어. 이제 듣고 보니까 그냥 멋스럽게 있어 보이려고 써놨다는 생각도 들어. 호호호~!”
“그런 생각도 들으셨다면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하하~!”
“오행이 위대한 줄이야 알았지만 이렇게 오행으로 성정과 질병을 모두 설명하려고 궁리하신 사족 선생의 열정은 알아줘야 하겠어. 호호호~!”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다음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금수상관 한즉냉수 열즉담화(金水傷官 寒則冷嗽 熱則痰火)
화토인수 열증풍담 조즉피양(火土印綬 熱則風痰 燥則皮癢)
‘겨울 금이 추우면 기침하고 더우면 담화이고
여름 토가 더우면 풍담이요 건조하면 피부병이니라’
“참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단 말이야.”
“아마도 사족 선생이 오행에 미쳐서 모든 질병을 오행으로 풀어낼 수가 있다고 확신하신 듯하니 그 성의를 높이 사야 하겠습니다. 하하~!”
“그런데 왜 풍담(風痰)이야? 풍(風)은 저절로 흔들리는 것이잖아? 눈꺼풀이 떨리면 경풍(輕風)이고 수족이 말을 안 듣고 움직이면 중풍(中風)인 것을 말하나 본데 이건 무슨 논리인지 이해가 안 되네?”
“풍(風)은 목(木)인 까닭입니다. 화토가 너무 강하니 목은 화에게 기운이 빼앗겨서 병이 된다고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또 담(痰)은 가래를 말하니 가래는 폐(肺)의 질환이라고 보면 화토(火土)가 많으면 금도 그 열을 받아서 발병한다는 것이지요.”
“오호! 논리는 그럴싸하잖아? 그렇게만 된다면 제대로 써먹어 보겠는데 말이야. 호호호~!”
“그렇습니다. 그럴싸한 것이 속빈 강정인 셈이지요. 실속이 없으니 이러한 것을 대입하려다가 오히려 상대방의 두려움만 잔뜩 지워줄 수도 있으니 차라리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 본다면 충분하려니 싶습니다. 하하~!”
우창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기현주가 다시 다음 구절을 읽었다.
논담다목화(論痰多木火)
생독울화금(生毒鬱火金)
‘가래는 목화(木火)에서 많고
독울은 화금(火金)에서 생기느니라’
“아니, 왜 이렇게 어려워? 독울(毒鬱)은 또 뭐지? 듣도 보도 못한 병이잖아? 이런 말도 있었어?”
“우창도 의원(醫員)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글자로 봐서 우울증(憂鬱症)이 극심한 것을 의미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울한 사람은 화극금(火剋金)이 되면 발생할 수가 있겠다는데 이것은 심리적으로 봐서는 일리가 있습니다. 금(金)은 주체이고 화(火)는 관살이니 술중신금(戌中辛金)이나 사중경금(巳中庚金)과 같이 지장간의 금이 주변에 화(火)를 많이 보게 된다면 우울증이 생길 수가 있겠다는 의미로 본다면 말이지요.”
“와~! 그러면 이것은 일리가 있다는 거잖아? 조금 전에 말한 심리적인 질환의 원인으로 살펴볼 수도 있단 말이지?”
“맞습니다.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확대해석해서 신체적인 영역으로 옮겨가지만 않으면 말이지요. 그 경계가 명쾌하지 않고 애매하긴 합니다. 하하~!”
“맞아! 그렇긴 해. 그래도 질병의 원인이 될 수가 있으니까 이러한 것은 재미있는걸. 호호~!”
“실로 신체의 병을 논하나 대부분은 마음의 병에서 기인(起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마음은 만병의 근원’이기도 하니까요. 마음을 느긋하게 쓰는 사람은 있던 병도 사라질 것이지만, 조바심으로 초조하게 마음을 쓴다면 없던 병도 생길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지 싶습니다.”
“정말이야. 동생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어. 이제 신체의 질병을 논하기 전에 그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이치를 이해하겠어. 오늘도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으니 감사할밖에. 호호호~!”
기현주는 여전히 질병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우창의 말에 일말(一抹)의 의혹이 있었으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안개가 걷히듯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시 「질병(疾病)」편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 풀이했다.
금수고상이신경허(金水枯傷而腎經虛)
수목상승이비위설(水木相勝而脾胃泄)
‘금수(金水)가 마르고 손상되면 신경(腎經)이 허약(虛弱)하고
수목(水木)이 서로 이기려고 하니 비위가 누설(漏泄)되느니라’
내용을 풀이하고 난 기현주가 우창에게 말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냥 흘려버리면 되는 거지?”
“맞습니다. 글은 있으나 적용(適用)은 불가하니 없느니만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누님이 잘 이해하셨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다.”
“이해했어. 이러한 구절이 있었기 때문에 질병과 신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있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냥 막연하게 사주팔자에서 질병의 원인이 있을 것으로만 여기면서 살았을 테니 말이지.”
“그렇습니다.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옳은 것도 배우고 그른 것도 배우는 것이 참된 공부라고 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갈만이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께 여쭙습니다. 마음의 병에 대해서 말씀하셔서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우울증(憂鬱症)은 물론이고, 조바심이나 두려움이 모두 지나치면 신체적으로도 질환이 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화병(火病)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것은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이며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는데 그 원인이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화병은 억압(抑壓)된 심리를 풀지 못하고 쌓아두다가 보면 그것이 병으로 진행되어서 약을 먹어야만 하는 상황까지 이어진다고 하겠네. 그것뿐만 아니라 탐욕(貪慾)으로 인한 원인이 되어서 몸이 아플 수도 있지.”
“예? 그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사촌이 돈을 벌어서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들어봤나?”
“그런 말도 있습니까? 처음 듣습니다.”
“또한 마음의 병이지만 실제로 배가 아프다네. 그래서 약을 먹어야 낫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덮어놓고 증세만 치료하는 꼴이라서 다시 재발(再發)할 테니 이러한 것을 의원은 불치병(不治病)이라고 한다지 뭔가. 하하하~!”
“아, 불치병이 무엇인지는 알지요.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고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그 마음은 탐욕스러움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니까 결국은 평정심(平靜心)이 최상의 치료 약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이네. 하하하~!”
갈만은 우창의 말을 들으며 곰곰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과연 명쾌하십니다. 마음에서 모든것이 비롯된다고 하면 결국은 그 원인은 팔자에서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질병의 대목도 실은 십성(十星)으로 대입해서 관찰한다면 매우 중요한 활용법을 알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팔자와 무관하게 생기는 병에는 신병(神病)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나?”
우창이 갈만에게 묻자 오히려 기현주가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아, 맞아! 악귀가 가져다 주는 신병도 있어. 이것은 신체와 무관하게 생기는 병이라고 할 수가 있잖아?”
“누님도 알고 계시는군요. 귀신으로 인해서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도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하면 목숨까지 끊기도 하니까요. 이러한 것은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고만 할 수가 없으니까, 질병에도 세 가지의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면 타당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팔자에서 올 수가 있는 심병(心病), 환경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 신병(身病) 그리고 영혼과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가 있는 신병(神病)이란 말이지? 정말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치는 알 수가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뛰어난 의원은 증세를 보고 기이하다고 생각이 되면 영혼(靈魂)이 개입(介入)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봐서 치료법을 바꾸기도 한답니다.”
“아니, 어떻게?”
“자신이 해결할 영역이 아니라고 봐서 법력이 높은 고승이나 무당에게 안내해서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호라! 과연 현명한 의원은 자신의 의술에 매이지 않고 모든 활용할 줄을 안단 말이지?”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도 미소를 지으며 진동수를 한 잔 마셨다. 시원한 물이 설명하느라고 애썼던 갈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참, 공부도 좋지만 뭘 좀 먹어야 하지 않겠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기현주가 대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이야기에 취해서 배가 고프다는 생각도 잊고 있다가 기현주의 말에 비로소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는 것을 알고 서로 마주 보며 웃자, 자원이 말했다.
“언니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못 했겠어요. 질병 공부도 했으니 음식을 먹어줘야 몸도 반발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를 잘하도록 협조하지 않겠어요? 호호~!”
우창도 다소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밥이 준비될 때까지 쉬기로 하고 각자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