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길, 하나의 마음』—서울에서 만난 대안 선생과 이도의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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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늦가을은 조용한 잎새의 노래로 물든다. 낙엽이 지는 길목, 성북동 골짜기 끝자락에 자리한 기와집 안채에서는 맑은 차 향이 은은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집의 주인은 칠십을 넘긴 대안(大安) 선생이라 불리는 이였으니, 사주명리와 주역, 노장사상, 불교와 유가의 흐름까지 꿰뚫어 본다 하여, 동방의 숨은 현자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어느 날, 먼 이국에서 바람을 타고 찾아온 젊은 선비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이도(李道)’라 하였고, 중국 하남성 출신으로, 노자의 사상을 따르며 살아가는 사십 대의 방랑 철학자였다. 그는 소문으로만 듣던 대안 선생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향했고, 길고 긴 여정 끝에 기와집의 문 앞에 섰다.

“선생, 저 노자라 불리는 자의 뜻을 좇아 사는 이도라 하옵니다. 선생의 사유의 깊이를 듣고자 천 리 길을 달려왔사오니,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을는지요?”

대안 선생은 차를 따르며 그를 맞이하였다. 깊은 눈매엔 세월의 잔잔한 파문이 있었고, 말보다는 침묵이 먼저 말을 거는 이였다.

“이도라 하였소? 참 이름이오. ‘이’는 흐르는 것이고, ‘도’는 그 흐름이 향하는 길이니. 노자의 정신을 따르고자 함이 분명하겠군요.”

“그렇사옵니다. 제가 오늘 이처럼 찾은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사주의 깊은 이치를 따라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자 함입니다. 특히, 쌍둥이의 사주는 생년월일시가 동일한데도, 어찌 그 삶의 모습과 심리가 다를 수 있는지를 알기 원합니다.”

대안 선생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창밖의 잎새를 바라보았다.

“하늘은 같은 씨앗을 뿌려도, 땅은 다르게 그것을 기른다오. 자네는 그것이 무슨 뜻이라 생각하오?”

이도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고요히 흐르는 물소리처럼 대안의 물음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것은 곧, 외부 환경과 내면의 선택이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말씀이시온지요?”

“옳소. 사주는 사람이 태어날 때의 시간이라는 씨앗이오. 그러나 땅, 즉 육친과 환경은 다르고, 물, 즉 경험은 다르며, 햇살, 즉 교육과 사랑은 다르지. 같은 사주라 해도, 자라나는 조건이 다르면 가지는 다른 방향으로 뻗는다오.”

이도의 눈빛에 불이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허면, 그 다름은 사주의 오류입니까? 아니면 사주의 심층이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층위가 있는 것입니까?”

대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 뒤쪽에 있던 오래된 나무 상자를 꺼내 하나의 그림을 펼쳤다. 태극과 팔괘, 오행의 흐름이 정갈히 그려진 고문(古文) 양식의 지도였다.

“자네가 묻는 그것이 바로 내가 수십 년 간 천착한 문제였소. 쌍둥이는 분명 사주팔자는 같소. 하지만 세밀히 들어가면 기운의 쓰임이 다르고, 태어난 순간의 숨결, 곧 ‘기(氣)의 응결점’이 다르다는 것이지. 이를 ‘심기(心氣)의 방향’이라 하오.”

“심기의 방향이라…”

“그렇소. 기는 우주의 숨결이요, 심은 그 숨결을 받아들여 내면화하는 주체지. 두 사람의 기가 같아도, 그 받아들이는 방식, 즉 의식의 무늬가 다르면 전혀 다른 인생을 걷게 되오.”

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다면 사주는 그 무늬까지 볼 수 있습니까?”

“표면으로만 보려 한다면, 사주는 단지 시간의 기록일 뿐이오. 그러나 사람의 ‘반응’을 함께 본다면, 사주는 곧 마음의 발자취가 되지. 그러니 나는 쌍둥이의 사주를 해석할 때, 반드시 세 가지를 함께 보오. 첫째는 ‘심리의 굴절점’이며, 둘째는 ‘기억의 흔적’, 셋째는 ‘거울처럼 반응하는 관계의 패턴’이오.”

“선생님… 그 말씀은 어쩌면, 사주는 정적(靜的)인 틀이 아니라, 유동하는 흐름이란 말씀이신지요?”

대안은 가만히 웃으며 이도를 바라보았다.

“그리하오. 사주는 물이오. 사람의 의식이 그릇이지. 그러니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은 달라 보이오. 쌍둥이도, 똑같은 물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하나는 바다로 흐르고 하나는 연못이 되는 것이지. 문제는, 우리는 늘 그 바깥의 모습을 가지고 비교하려 든다는 것이오.”

차를 마신 대안은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정원에는 키 작은 단풍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다.

“저기 있는 나무가 자네에게 무엇처럼 보이오?”

“어느 것이 더 높고, 어느 것이 더 넓게 자랐는지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렇소. 하나는 햇볕을 먼저 받았고, 하나는 바람을 먼저 맞았지. 하지만 두 나무의 뿌리는 땅 아래에서 이어져 있소. 그것이 바로 쌍둥이의 삶이오.”

이도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서울의 하늘엔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고, 바람이 마당을 가로질렀다.

“선생, 저 오늘 이 자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길은, 노자의 ‘무위’와 부처의 ‘공성’, 그리고 주역의 ‘변화’가 함께하는 자리였습니다.”

대안 선생은 조용히 말했다.

“사주는 명(命)을 아는 도구이고, 삶은 운(運)을 실현하는 장이오. 자네의 길 위에, 바람이 불더라도 길이 꺾이지 않기를 바라오.”

【에필로그】

이도는 그날 밤, 한 장의 쪽지를 남겼다. 글씨는 단정하고 고요했다.

“천리 길을 와서, 천하의 길을 보았습니다.

기(氣)와 심(心)이 만나는 순간, 삶은 하나의 노래가 됩니다.

대안 선생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깁니다.

—이도(李道)”

그리고 몇 해가 흐른 후, 중국 사천성의 한 산속 암자에서는 ‘심기학파(心氣學派)’라 불리는 새로운 사주심리 연구회가 생겨났고, 그 서문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쌍둥이의 사주는 하나이되, 마음의 길은 둘이니,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바로, 흐름에 대한 자각이다.”

낙엽이 지고 나무가 앙상해지는 계절,

서울 성북동의 기와집 안에서는 여전히 차 향이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대안 선생은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위해 조용히 찻잔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