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불.

서로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존재였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한 쪽은 끓어오르고, 다른 쪽은 퍼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들을 두고 "상극(相剋)"이라 했다.

하지만, 그렇게도 어울릴 수 없었던 둘이 이제 나란히 숲 속, 한 자락 안개 어린 연못가에 마주 앉아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고, 나무 위에서 아침을 알리는 새 한 마리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이 모든 기이한 장면의 시작은 ‘귀곡자(鬼谷子)’라는 노승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하늘과 땅 사이를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을 가진 그 도인은, 말없이 두 존재를 바라보다가 단 한마디만 남겼다.

"그대들은 서로를 이기려다 끝내 자신을 불태우고, 자신을 흘려보내고 있소."

그 말이, 어찌 된 일인지 두 존재의 심연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렇게 꺼졌던 불씨처럼, 그렇게 마른 계곡 바닥을 적시는 이슬처럼, 마침내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항상 네가 나를 덮치러 오는 줄만 알았다. 너의 차가움은, 내 뜨거움을 억제하려는 칼날처럼 느껴졌지."

물이 고요히 대답했다.

"나는 항상 네가 나를 증발시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네 뜨거움은 내 평정을 깨뜨리는 광기 같았으니."

불은 타오르는 듯한 눈빛으로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나는 세상을 밝히고자 했을 뿐이었다. 추위와 어둠에서 생명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파괴자로 불렸을까."

물도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나는 생명을 기르기 위해 흐르고 흘렀다. 온 산과 들을 적시고, 굶주린 땅에 젖음을 나눠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삼켜버리는 재앙’이라 불렀지."

그 순간, 서로가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서로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리고자’ 했다는 것.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를 뿐, 의도는 같았다는 것.

불이 이윽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예전에 한 나무를 태운 적이 있다. 나는 그 나무에게 따스함을 주고 싶었는데, 어느새 전신에 불이 옮아가버렸지. 그리고 그 옆에는 네가 흘러와 내 불길을 꺼뜨렸더군."

물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나무를 살리고 싶었다. 너의 열이 지나치면 삶을 위협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열 속에도, 네 나름의 애정이 있었던 걸까."

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끝없이 번져 결국 모든 걸 태워버렸을 거야. 너는 나를 막았고, 나는 분노했지.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절제였구나."

물이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너 없이 나는 너무나 냉정했을지도 모르지. 너는 내 안의 침묵을 흔들어 놓았고, 그 속에서 비로소 생명이 숨 쉬기 시작했으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숲의 공기가 더욱 고요해졌고, 연못 위에는 안개 대신 작은 햇살이 내려앉았다.

불이 다시 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정말로 함께할 수는 없는 걸까?"

물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그 손끝에 닿자 불은 순간 작게 타올랐지만, 곧 조용히 잦아들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그것은 증기였다.

하늘로 올라가는, 새로운 형상.

파괴도 아니고, 소멸도 아닌,

변화였다.

물은 말했다.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하려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 존재할 수 있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불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줄기 연기를 피워 올리며 말했다.

"귀곡자가 말했지. 대립은 양극이지만, 조화는 중도라고. 우리가 그 중도를 찾을 수 있다면, 세상은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거야."

그날 이후, 세상은 종종 안개가 끼는 날 아침이면,

숲 속에서 마치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물과 불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만들어낸

화해의 숨결이었다.

그 숨결 속에서 나무는 자라고, 꽃은 피고, 새는 노래를 부른다.

상극이라 불렸던 두 존재는,

이제 상생의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는 전설로 남았다.

그들이 머물렀던 연못가에는 아직도 작고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다.

누군가는 그곳을

'수화정(水火亭)'

이라 부른다.

그 이름엔 다툼 대신 이해가, 증오 대신 조화가 담겨 있다.

그곳에서, 모든 대립은

언젠가 반드시 변화로 승화될 수 있다는 진실을 조용히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