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 제44장. 소요원(逍遙園)/ 28.순국(順局)과 반국(反局)

작성일
2025-04-15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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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44. 소요원(逍遙園)

 

28. 순국(順局)과 반국(反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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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밥을 맛있게 먹고는 한 차례 휴식한 다음에 다시 둘러앉았다. 모두 공부라고 하면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좋아하는 까닭이었다.

또 공부해야지. 이번에는 순국(順局)이라고 되어 있구나. 읽어볼 테니 듣고서 가르침을 부탁해.”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글을 읽고 풀이했다.

 

일출문래요견아(一出門來要見兒)

오아성기구문려(吾兒成氣構門閭)

종아불관신강약(從兒不管身強弱)

지요오아우우아(只要吾兒又遇兒)

 

문을 한 번 나서니 아이가 보이길 바라네

내 아이들의 기운들이 문앞에 웅성거린다면

종아가 되는 것이니 신강과 신약은 관계치 않고

다만 내 아이가 또 아이 만나기만 바랄 뿐이니라

 

글에서 아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식상(食傷)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흐름을 따른다고 해서 순국(順局)이라고 했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아니, 동생의 표정이 어째 시큰둥하지? 내용이 시답지 않은 거야?”

잘 살펴보시지요. 누님은 얻을 만한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기현주가 다시 글을 살피면서 곰곰 생각하다가 물었다.

아니, 이것은 결국 종격(從格)을 말하는 것이었잖아? 아니, 앞에서 이미 진종과 가종을 언급했는데 왜 또 순국이라는 이름으로 식상으로 종하는 것을 언급한 거지?”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군더더기도 이런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하하~!”

그래서 동생의 표정이 그랬구나. 이제야 이해되었어. 결국은 종아로 이뤄진 사주는 별도로 순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인족(蚓足) 선생의 말이지?”

맞습니다. 하하하~!”

더구나 기가 막힌 이야기는 신강약을 논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

오호! 이제 그것도 보이십니까? 눈이 밝으십니다. 하하하~!”

이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식상이 많아도 일간이 감당할 수가 없다면 인성을 찾아야 하는 것이 상리(常理)잖아?”

당연합니다. 이런 이야기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그래도 적천수의 탈을 쓰고 여기에 붙어 있으니 언급은 할 따름이지요.”

정말이네. 나도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으니 어서 다음으로 넘어가야겠어. 호호호~!”

이렇게 말하고는 다 대목인 반국(反局)을 펼치고 읽었다.

 

군뢰신생리최미(君賴臣生理最微)

아능구모설천기(兒能救母洩天機)

모자멸자관두이(母慈滅子關頭異)

부건하위우파처(夫健何爲又怕妻)

 

임금이 신하의 생함을 의뢰하니 그 이치가 가장 정미롭네

아이가 능히 어머니를 구하니 천기(天機)를 설하는 것이고

어머니가 자상하여 아이를 죽이는 것도 천간에 따라 다르며

남편이 건왕(健旺)한데도 아내를 두려워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아니, 글자만 칠언절구로 모여 있을 뿐이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연관성이 없는 각자의 네 구절이잖아?”

잘 읽으셨습니다. 하나씩 의미나 살펴보고 지나가면 되지 싶습니다.”

, 우선 군뢰신생(君賴臣生)’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지?”

가령 수다목부(水多木浮)’의 경우에 목()이 군()이라면 신()은 토()가 되는데 이때 토극수(土剋水)로 수를 제어하여 임금인 목()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내용은 뭔가 있어 보이고 이해도 어려우나 간단히 설명하면 목이 인성과다(印星過多)하면 토()를 용신으로 삼아서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쉬운 말을 두고서 왜 어렵게 빙빙 돌려서 설명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야 모든 오행이 다 같은 것이잖아? 토다금매(土多金埋)하면 목으로 토를 극하여 용신이 되는 이치도 같은 것인데 뭘?”

이러한 것을 군뢰신생이라고 멋있게 표현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하하하~!”

정말이구나. 동생의 설명이 아니었으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며칠을 골몰(汨沒)했을 것인데 간단히 해결해 주니 눈물겹게 고마워. 호호호~!”

잘 이해하셨으니 다행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다음 구절의 아능구모(兒能救母)’는 겨울나무가 병정화(丙丁火)를 만나서 동사(凍死)를 면한다는 말인가?”

이제 엉켰던 실타래가 풀리듯이 저절로 풀리고 계십니다.”

정말 이러한 것이 설천기(洩天機)라니 천기를 누설한다는 말이잖아? 참으로 지나가는 당나귀가 들었으면 하품할 일이구나. 호호~!”

아마도 후학들이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겠거니하는 마음으로 고맙게 접수하면 충분하지 싶습니다.”

알았어. 좋게 생각하는 것이 정신의 건강에도 좋을 테니 말이야. 호호~!”

당연하지요. 또 나쁘다고만 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하하하~!”

그렇지, 궁리하고 생각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것이야 없지. 다만 혼란스러울 따름이지. 그렇잖아?”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겠습니다.”

다음은 모자멸자(母慈滅子)’? 이것은 인성(印星)이 과다(過多)해서 생기는 폐해(弊害)를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치를 모르는 사람이 읽고 물으면 설명을 한 시진(時辰)은 해야 하지 싶기도 하네. 미리 공부해 둔 것으로 인해서 설렁설렁 넘어가도 되는데 혹 갈만은 잘 모르겠으면 물어봐.”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면서 갈만을 바라보자,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갈만이 물었다.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십성의 이름과 오행의 이치만 알게 된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가 있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모자멸자라는 것은 인성이 과중하니 재성으로 인성을 눌러줘서 해결하면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결국은 군뢰신생과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치는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까?”

저런! 나보다도 더 명쾌하게 이해하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안심이야. 호호~!”

혹 말씀 중에 이해가 되지 않으면 또 여쭙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어서 읽고 풀이해 주시면 됩니다. 맑은 음성으로 읽으시는 것을 듣는 것이 얼마나 상쾌한지 모르겠습니다.”

갈만이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기현주가 다시 풀이를 이어갔다.

 


 

다음은 부건파처(夫健怕妻)’구나. 남편은 일주(日柱)가 갑인(甲寅)이라면 뿌리가 튼튼해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데 옆에 경신(庚申)이 있고, 그 경신을 토()가 생하고 있으면 이미 힘이 있음에도 토생금(土生金)의 상황을 두려워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맞아?”

맞습니다. 내용을 봐서는 매우 유치하지만 그래도 글로 써놨으니 그 정도의 성의를 보인다면 이미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하하~!”

알았어. 다음은 전국(戰局)편이네. 어디 글도 간단한데.”

이렇게 말한 기현주가 글을 읽고 풀이했다.

 

천전유자가(天戰猶自可)

지전급여화(地戰急如火)

 

천간의 전쟁은 그래도 괜찮으나

지지의 전쟁은 급하기가 불과 같으니라

 

글을 읽은 기현주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천전(天戰)은 천간에서 전쟁이 났다는 말이야? 그런데 천간의 전쟁은 괜찮은데 지지의 전쟁은 불같이 급하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달리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글자로 봐서 달리 해석할 방법은 없지 싶습니다.”

 


 

천간이 전쟁하는 것은 괜찮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사주 안에서 전쟁이 났다면 천간과 지지가 다르다는 거야? 이게 또 무슨 말이지?”

아마도 인족 선생은 간()과 지()의 의미가 달랐던가 봅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왜 아냐.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해서 어리둥절했잖아.”

잘 이해하셨습니다. 인족 선생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셨으니 통과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하하~!”

난 슬그머니 화가 나는데 동생은 오히려 재미있어하네?”

왜냐하면 우창은 벌써 많은 화를 냈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더 낼 화가 없는 까닭입니다. 몸에도 좋지 않을 화()를 자꾸 낼 수도 없지 않습니까? 하하~!”

정말 동생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글만이 아니었구나. 감동이야!”

전국(戰局)이 이해되셨으면 다음 구절로 넘어가도 되겠습니다.”

우창이 재촉하자 기현주도 다음 구절인 합국(合局)편을 읽었다.

 

합유의불의(合有宜不宜)

합다불위기(合多不爲奇)

 

합에는 마땅한 것도 있고 마땅치 않은 것도 있으며

합이 많은 것은 기특하다고 할 것이 없느니라

 

합국을 읽은 기현주가 풀이하고는 우창을 바라봤다. 의견을 물은 것이다.

풀이는 어렵지 않을뿐더러 잘 해석하셨습니다.”

그런데 의미는 쉽지 않은 것 같잖아? 여기에서 말하는 합은 뭘 의미하지?”

의미로 본다면 일간합(日干合)과 용신(用神)의 합()으로 나눌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앞서 기반(羈絆)편이 있었지 않습니까? 이미 합에 대해서 거론했는데 다시 합이 언급된다는 것은 분명히 글을 쓴 사람이 다르다는 의미가 분명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그 생각은 또 못했어. 한 사람이 같은 말을 두 번이나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여하튼 써놓은 글이 있으면 말이 되든 안 되든 간에 뒤져봐야지요? 그게 우리 후학이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긴 그래. 그럼 다시 살펴봐야지. ‘합에는 마땅한 합과 마땅치 않은 합이 있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의미야?”

마땅한 합은 일간이 용신과 합이 되면 좋은 합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간이 기신과 합하면 나쁜 합이라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의불의(宜不宜)‘라고 했습니다만, 또한 하나 마나 한 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건 간단하구나. 그럼, ’합이 많으면 기특(奇特)하지 않다는 말은?”

무엇이든 많아서는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합이 많으면 합은 끄달리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 여기저기 얽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그런 말도 일리는 있지 싶기는 합니다.”

뭐야? 그렇게 맥 빠지는 내용이란 말이었어?”

왜 그러십니까? 실망하셨습니까? 하하하~!”

그렇잖고. 다른 말로라도 위로해 줘봐. 너무 싱겁잖아.”

누님도 참. 하하하~!”

우창이 웃으며 대중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가령, 글을 읽는 선비와 친하게 지내면 무엇이 돌아오겠습니까?”

그야 지혜로운 가르침을 얻겠지.”

이것은 합의 좋은 작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산적(山賊)의 무리와 친하게 지내면 자칫 감옥에 갇히게 될 수가 있을 테고 이것은 나쁜 합의 작용이라고 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또 게으름과 합이 되면 허송세월하게 되고, 부지런함과 합이 되면 자기의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중에 소호(小胡)가 밖에서 기척을 했다. 무슨 일인가 내다보니까 웬 중년의 남자를 데리고 와서 말했다.

이 손님께서 주인을 뵙겠다고 청하시는데 그래도 괜찮은지 여쭙습니다.”

모두 공부에 취해서 열중하고 있다가 낯선 방문객을 보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들여다보는 책에서 눈을 떼고는 방문자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했다.

열심히 토론하시는데 방해가 되어서 미안합니다. 소생은 물장수입니다. 현령께 인연이 되어서 찾아뵈었더니 소요원에 가보라고 하는 안내를 받고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현령이 표식으로 준 패를 보여줬다. 이것은 현령이 신임하는 사람이니 꺼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본 기현주가 반갑게 맞이했다.

아하! 현령께서 보내셨구나. 잘 오셨어요. 이리 들어오시지요.”

남자가 자리를 잡고 앉자 다시 기현주가 물었다.

그런데 방금 물장수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물은 어디 있죠?”

그러자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생의 별호가 약수(藥手)입니다. 그렇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약수라면 손이 약손이라는 말이지 않아요? 재미있네요. 설마하니 손을 약탕기에 넣고 끓이는 것은 아닐 것이고 무슨 뜻인지 설명을 부탁해요. 호호호~!”

우창이 살펴보니 약수(藥手)는 외모는 삶에 찌들어서 힘들게 살아온 흔적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외모와는 다르게 눈에서는 광채가 서려 있어서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나름대로 비기(秘技)를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맙습니다. 불쑥 찾아왔는데도 내치지 않으시고 맞이해 주셔서 이렇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주인 나리와 합이 잘 맞는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그가 난데없이 합이 잘 맞는다고 말하자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방금 공부한 합이 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모두 말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

소생의 이름은 감경보(甘炅甫)라고 합니다. 실은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중에 나누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적천수를 공부하시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합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이고요. 하하~!”

아니, 적천수를 알고 계십니까?”

감경보의 말을 듣고서 우창이 반갑게 말했다. 그러자 감경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는 미소로 화답하고 말을 이었다.

()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듣자니 올곧은 학자의 풍모라고 느껴졌습니다. 다만 학문적인 관점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가 합으로 이뤄져 있으니 그러한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우창은 내심 놀랐다.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으나 막상 자신이 생각한 것이 편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뭔가 귀한 가르침을 받을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 긴장했다.

귀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 아닙니다. 혹시라도 오해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생이 드린 말씀은 사주에서의 합만 생각하지 말고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실로 사주에서야 합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하~!”

, 사주에서 합이 상관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합은 의서(醫書)에서 말하는 오운(五運)이지 않습니까? 오운은 천지의 기운을 논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하늘에는 오운이 있고, 땅에는 육기(六氣)가 있다고 하고 그것을 묶어서 운기(運氣)라고 하지만 명학(命學)에서조차 그것을 거론할 의미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합을 연구하셨군요. 참 멋지십니다. 이제 약수 선생의 합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고자 합니다.”

우창은 감경보에게 차를 권하면서 그가 말하는 합의 의미를 물었다. 찻잔을 받고서 합장을 한 다음에 대중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여러 선생의 표정을 보니 참으로 맑으십니다. 왜 현령 나리께서 소요원에 가서 주인을 만나보라고 하셨는지 바로 알았습니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맑은 기운을 접하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기현주는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했으나 차차로 알아보기로 하고 우선 이야기부터 들어보자고 하는 마음으로 궁금함을 눌렀다. 차를 마신 감경보가 합에 대해서 말했다.

()은 인()이 일()로 구()가 되는 것입니다.”

, 싸부가 늘 즐겨하는 말을 약수 선생이 하셨어요. 호호호~!”

자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자 감경보가 미소를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은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흡사 집과 같은 것이지요. 집을 보면 합()의 글자처럼 생기지 않았습니까?”

?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까 그렇게 보여요.”

자원이 또 공감하면서 말했다. 벌써 감경보에게 홀딱 빠져버린 듯이 동조했다.

, 싸부가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은 사람이라고요. 글자도 사람이 하늘이었는데 오늘 그 말씀을 다른 분에게서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하늘만이 아니라 천지(天地)를 의미한다는 것은 새롭게 들려요. 호호~!”

천지불이(天地不二)가 아니겠습니까?”

, 음양불이(陰陽不二)니까 그렇단 말씀이죠? 잘 이해가 되었어요.”

자원의 말에 감경보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창과 기현주를 보며 말했다.

간지(干支)의 여덟 글자가 모여서 삶이 되고, 남녀가 만나서 합이 되니 가정이 되고, 가정이 모여서 뜻을 같이하니 나라가 됩니다. 이렇게 합은 세상을 만드는 위대한 능력이 있으니 불타와 중생이 합을 이뤄서 배움의 터전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간지의 합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요.”

기현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흡사 보살이 나들이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합에 대한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희열감이 들기조차 했다. 감경보의 설명이 이어졌다.

천지로 집을 삼고 살아가는 이 한 물건이 일()입니다. 합의 중간에 들어있지요. 그래서 인()은 하늘이고 구()는 땅이 되기도 합니다. 하늘과 땅의 사이에 있는 이 존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불성(佛性)이기도 하지요.”

아니, 조금 전에는 인()을 천지(天地)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하늘이라고 하시면 설명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아닌가요?”

자원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자원에게 말했다.

불이(不二)라고 하지 않으셨나? 이야기를 발바닥으로 들은 것은 아니지? 하하~!”

, 그렇지! 귓구멍이 발바닥이라서 죄송해요. 호호호~!”

감경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갑기합(甲己合)이니 을경합(乙庚合)이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소생은 우창으로 불러주십시오.”

, 우창 선생의 꼿꼿한 학문적인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합국(合局)편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 맞지요. 만약에 인간사(人間事)쯤에 들어있었더라면 광채(光彩)를 발휘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그렇겠습니다. 과연 탁견(卓見)이십니다.”

항상 그렇듯이 좋은 작용이 있으면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면도 알고 나쁜 면도 알고 있으면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약수 선생을 만나서 귀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허접한 소견입니다만, 받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적천수의 뒷면을 살펴보면 세상의 풍경도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은 다른 관점으로 사유(思惟)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창이 동의하자 다시 말했다.

전국(戰局)편이 사주에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만, 세상살이에서는 이것도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다만 글을 쓴 사람이 왜 여기에서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미를 생각하면 틀린 것도 아니라고 하게 됩니다. 싸움이 붙었으면 승패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서 스스로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빨리 판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아마도 이 대목을 삽입한 사람은 치세(治世)에 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적천수를 읽다가 사람의 팔자만 논하는 것이 못내 허전해서 세상의 이치도 넌지시 넣고 싶었던 것으로 살펴보면 또 재미있기도 합니다.”

오늘 새로운 관점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넓은 시야로 살펴봐야 하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창의 말에 기현주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물을 팔러 다닌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 그렇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