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 인생의 춘하추동, 하루의 춘하추동

작성일
2014-05-25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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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인생의 춘하추동, 하루의 춘하추동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소만도 지나서 망종을 앞에 두고 있는 초여름이네요. 온다는 말만 있는 비 소식은 오늘도 맑은 하늘로 답변을 하는군요. 이제 비가 좀 내려야 밭에 뭘 심을텐데 가뭄이 지속되고 있어서 하늘만 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올 봄의 꽃은 수년 이래로 가장 풍성했던 것 같습니다. 몇년 만에 광주 조선대학교의 장미원을 가봤더니 보던 중에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눈이 호강하고 코가 감동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는 것도 행복입니다. 아마도 갑오년(甲午年)의 목화지기(木火之氣)가 이렇게도 초목의 꽃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싶은 생각을 해 보다가 문득 인간에게 춘하추동도 생각해 보고 하루의 춘하추동도 생각해 봅니다.
1. 연주(年柱)의 봄날 (0세부터 20세까지), 하루의 아침

         


글은 되지 않고 자꾸만 삶을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계절이 당년의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갑오년의 초목들이 이상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아카시아 꿀을 채취하는 양봉농가에서는 울상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순차적으로 꽃을 피워야만 벌통을 싣고 남도에서부터 꽃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꿀을 채취하게 되는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전국이 동시에 개화하는 바람에 꿀을 얻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모든 것이 다 같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이것은 필시 갑오년의 현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춘하추동에 대해서도 생각이 이어져 갑니다. 어린 시절은 누구나 꿈에 부풀고 또 희망을 안고 성장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혹독한 시절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꿈을 키우면서 천진난만한 꽃을 피우는 시절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는 부모의 몫으로 넘겨놓고서 자신들은 미래의 모습을 그리면서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아직 혹독한 겨울은 너무나 멀리 있고 따뜻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으니 걱정을 할 것은 '오늘 신나게 놀아야 하는데 비나 내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는 부모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그것을 당년의 태세(太歲) 즉 갑오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어떤 해는 경신년(庚申年)의 봄이 될 수도 있겠는데 꽃을 피워야 할 시절에 금기운이 하늘에 가득하다면 목의 기운을 공격하는 금의 영향을 받아서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여름이 되는 그야말로 '봄의 실종' 사태가 발생하듯이 인생의 어린 시절도 그렇게 재미없이 지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임자년(壬子年)의 봄이 되기도 할 겁니다. 임자의 가혹한 냉기는 꽃이 피워보려고 해도 주변의 여건에 눌려서 마음대로 해 보지도 못한 채로 꿈많은 소년시절을 그대로 보낼 수 밖에 없겠네요. 그러니까 경신년의 봄은 가난한 부모를 만나서 맘대로 할 수가 없는 환경에 처한 소년 시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임자년의 봄은 혹독한 부모를 만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어린 시절이 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60가지의 환경에서 맞이하는 봄이 된다는 이야기로 정리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벗님의 봄철은 어떠하셨는지요? 낭월은 가난하고 혹독한 봄철을 보냈다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가정은 가난하여 중학교에 진학을 한다는 것이 당연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엄한 부친을 만나게 되었으니 다정하게 자신의 미래를 의논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나중에서야 저마다 천지차이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만 이러한 일은 오늘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침에 차를 마시다가 문득 인생의 아침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니까 삶을 한 해로 본다면 봄이 되겠지만 하루로 본다면 아침이겠지요? 특히 오늘 일진이 병신일(丙申日)입니다. 어제는 당연히 을미일(乙未日)이었지요. 그리고 그저께는 갑오일(甲午日)이었던 것도 당연한데 갑오년의 갑오일을 보내면서 오늘 하루의 모습이 올 한해의 모습과 겹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던 것입니다. 한해와 하루가 겹친다면 이를 미뤄서 오늘의 상황을 병신년(2016)의 상황을 유추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던 것입니다.

어제는 예정에도 없든 상담을 두 껀이나 했습니다. 그것도 다된 저녁에 말이지요. 무작정 찾아와서는 상담을 하겠다는데 일단 에정에 없는 사람은 상담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먼 길을 찾아왔는데 고마워서라도 형편이 되는대로 최선을 다해서 상담을 해 드렸지요. 그런데 점차로 문제점이 생겨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진정으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조언을 들을 준비가 안 된 상태라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서 좋다는 말만 기대하고 찾아온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은 아마도 통계라고 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약을 할 정도의 성의가 없는 사람은 만나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냥 보낼 줄로 생각했는데 어제 오후에는 화인도 없고 금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을미일의 현실이고 아마도 어쩌면 을미년의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화인은 남편이 퇴근하여 내려갔고 금휘는 엑쏘인가 뭔가 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에 손님을 보내는 역할은 연지님이 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연지님은 갑오년의 운이 좋거든요. 을미년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찾아온 손님에게 혹독하게 못합니다. 이것은 항상 그렇습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예약을 못하고 시간은 없고 해서 무작정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잠깐 뵙고 한 말씀만 들으면 되는데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하면..... ㅎㅎㅎ

기다려 보라고 말을 하면 어쩌겠느냐는 것이지요. 도리없이 상담을 해야 할 분위기가 됩니다. 그래서 '부디 참으로 다급하고 시간이 없어서 예의는 있었으나 예약을 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포기하게 되는 것이랍니다. 물론 그 방문자들에게는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겠군요. 여하튼 낭월은 그렇게 해서 예정에도 없던 상담을 두 껀이나 하고 보니 영지님은 주머니에 상담료가 들어갔지만 낭월은 뭔가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이고 그것이 을미일이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필시 내년에 다가올 조짐이 아니겠느냐는 불길(!)한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너무 확대해석인가요? 하하하~

그렇다면, 그저께는요? 갑오일 말입니다. 예 아침부터 화인이 걱정꺼리들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좀 보세요. "오늘이 갑오일이라서 이런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는데 또 말을 하게 되네요~" 쳇 말이나 않으면 밉지나 않다고 하던가요? 그러니까요. 영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갑오년의 모습과 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루와 일년과 사주를 겹치기로 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요. 그렇게 오전 내내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잔소리래야 뭐 있겠어요. 막중한 책임감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갑오년의 갑목이 낭월에게 정관(正官)이며 부담인데, 눈치도 없이 원고를 쓰지 않는다느니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한다느니 하고 볶아대는 것이지요. 이걸 내 팔자라고 할까요? 아니면 화인이가 나쁘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화인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어느 독자가 전화를 해서는 동영상 강의는 언제 나오느냐, 운세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는데 언제 나오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해 놓으니 화인도 슬거머니 꼭지가 돌아버린 것이겠지요. 물론 그 독자가 아침부터 그런 전화를 하는 것을 탓할 수도 없지요. 자신도 나이는 먹어가는데 얼른 공부를 할 자료를 제공해 주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밤새 잠도 못 주무신 것 같더군요. 그러니 이러한 것을 악순환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제각기 자신의 짐을 천만근씩 짋어지고 하루를 한해를 그리고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흉운이 있어서 철학자는 완성된다"
라고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습니다. 만사가 여의하다면 이런 생각들을 할 겨를도 없지 싶어서 말이지요. 올해의 봄이 이와 같듯이 어제나 그제의 모습이 또한 이와 같듯이 삶의 모습은 어딘가에서 항상 미래에 대한 조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되네요. 그리고 오늘 다시 병신일을 맞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음.... 병신년은 나이 60세가 되는군.... 그렇다면 인생으로 치면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이군요. 그래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노년을 점쳐 볼까나? 하하~~
2. 월주(月柱)의 여름날 (21세에서 40세까지), 하루의 낮

         


그렇다면 입하도 지난 이 계절은 인생의 청년기로 들어가는 시절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인생으로 보면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타고 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사주로 본다면 월주의 환경에서 미래를 위한 꿈을 실현시키고 있을 것이며 하루로 본다면 서서히 일과에 몰입할 시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월주에 용신이 있는 사주를 가졌다면 주마가편으로 승승장구를 할 것이고, 월주에 기구신을 품고 있다면 계획은 있으니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눌려서 고통스러워하는 여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또한 하루의 삶이고 인생의 여름이 되겠네요. 사실, 요즘 취업에 대해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통스러운 여름일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에게 이 초여름의 가뭄은 생존여부를 물어야 하는 절박함의 계절이기도 하겠기에 저마다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의 무게가 다르다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낭월의 여름은 비교적 자유분방하게 잘 지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전반부의 20대는 그렇게 자유로웠던 걸망생활이었다고 한다면 후반부의 30대는 삶의 무게와 학문을 겸해서 수행해야 했던 시기인데 말이지요. 좋게 보면 철학자가 될 기반을 닦았으니 좋았다고 하겠고 나쁘게 보면 무엇하나 이뤄놓은 것이 없는 시절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뇌의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은 늘 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벗님의 여름은 어떠하셨습니까? 생기발랄하고 신명나는 나날이셨는지요? 아니면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나날이었는지요? 물론 한 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돌이켜 볼 나이가 되셨다면 나름대로의 정리는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신명나는 나날이셨다면 신나는 여름이 되셨겠습니다만 우울하셨다면 또한 현재의 여름을 보내고 있는 벗님이 우울하시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먹구름이 가득한 여름의 풍경일 수 있겠다고 보면 적절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이치는 모두 음양으로 논할 수가 있다고 본다면, 활기넘치는 양의 시간을 보냈다면 반대로 사색과 사유를 하는 음의 기운은 부족했을 것이고, 물질의 풍요를 누렸다면 정신의 빈곤을 얻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봄직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음과 양을 함께 생각할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좌절하거나 우울하게 되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3. 일주(日柱)의 가을날 (41세에서 60세까지), 하루의 저녁

          

그렇게 변하무쌍하던 여름날도 때가 되면 물러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느 사이에 가을이 자리를 잡게 되겠네요. 인생의 40대와 50대를 가을에서 생각해 봅니다. 전반부는 초가을이니 40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귀농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이때를 넘기면 어려워질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가을의 한복판에 해당하는 50대가 되어버리면 하던 일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될테니 말이지요. 그러니까 귀농이 아니라 직업의 전환을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40대에는 방향을 잡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즉 "아직은 늦지 않았어~!"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50대로 접어들게 된다면 아마도 그렇게 마냥 여유를 부릴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일주는 자신의 얼굴입니다. 아니, 일간(日干)이 자신의 얼굴이지요. 그렇다면 일지(日支)는 자신의 몸이 되겠군요. 그것이 인생의 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벗님의 중년은 어떠하십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낭월학당 방문자께서는 이 언저리에 해당하실 것으로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여름철에는 바쁘게 사느라고 사색을 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 찬 바람이 목으로 파고 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오싹한 느낌도 들면서 뭔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그러니까 남은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될 가능성이 많은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가을은 그렇게 결실을 향해서 준비하는 계절임에 분명한 까닭입니다.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것도 중년의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화두입니다. 30대까지는 그러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런 말도 듣게 되듯이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시기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열심히 광합성을 한 사과나무의 열매는 굵고도 탐스러운 열매로 키워낼 것이지만, 여러 가지의 환경에 의한 원인으로 그렇지 못했다면 빈약하고 보잘 것이 없는 열매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중년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소중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낭월의 중년, 그러니까 지금의 모습은 그런대로 노력을 한 만큼의 결실은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위안을 가져 봅니다. 나름대로 한 가지의 방향에서 약간의 성취가 있어서 동학인(同學人)들에게 어느 정도의 문제를 제가할 만큼의 결실은 이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다만 아직도 가을의 햇살은 따끈따근합니다. 그래서 결실을 아직 단언할 수는 없기도 합니다. 늦가을에 과수원에서 사과가 굵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인생의 50대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실이 엉글어 가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서 약간의 분발을 했음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여름의 햇살도 중요합니다만 가을의 지는 햇살도 그에 못지않은 비중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더욱 왕성한 결실을 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갑오년이라는 복병을 만나서 마음으로만 분발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시간들조차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손은 놀더라도 머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또 한 생각이 일어나면 열심히 메모를 하지요. 그렇게 된 것은 책을 쓰는데 다시 대입이 될 것이니 빈둥거리는 만큼 책의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하네요. 하하하~

어느 독자의 말씀에, 낭월의 책을 처음부터 꾸준하게 읽고 있는데 《用神》에서 확연히 달라진 오행관을 읽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신을 기준으로 해서 이전과 이후로 나눠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늦가을의 결실에 대한 소식을 전해 받으셨던가 싶습니다. 물론 감사하지요. 그리고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결실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겠다는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운세편도 마찬가지로 기대가 된다고 하셨는데 이런 생각들을 녹여서 넣으려니까 작업은 그렇게도 더딘가 봅니다.

대부분의 낭월 독자는 《왕초보사주학》으로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그렇다면 책에도 사계절이 있을까요?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왕초보를 쓴 시절은 봄에 해당합니다.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겨울의 여운 즉 고인들의 가르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알기쉬운 시리즈'가 되면서 여름으로 접어들었다고 하겠습니다.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활발하게 생각해 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시콜콜 명리학시리즈'부터는 가을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가을에 쓴 책이니 알맹이는 조금 더 성숙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봄의 이야기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루하루가 소중하듯이 책의 이야기도 저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부분은 있기 마련이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봄을 알기에 가을이 풍요로움을 느낄 수가 있듯이 책의 흐름에서도 춘하추동은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들었습니다. 이렇게 미리 생각하기도 하고, 글을 쓰다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책도 가을이고 인생도 가을이군요. 그렇다면 적당하다고 하겠습니다. 가을에는 만물이 결실을 이루게 되는 것으로 봐서 책도 어느 정도의 결실을 얻을 수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하겠네요.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명리학의 서적 속에서 의연하게 살아남아서 적어도 가을을 맞이한 것을 보면 여름철의 낙과(落果)는 면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왕초보사주학이 아직도 서점의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는 과일나무에서 낙과가 되어서 떨어져나간 것은 아니라고 해도 되겠기 때문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물론 마음으로 응원하는 독자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4. 시주(時柱)의 겨울날 (61세에서 하직까지), 하루의 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기 마련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환갑을 지나면 길고 지루할 수 있는 겨울이 오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직장인은 정년이 올 것이고 사업인은 후계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둠이 깃들고 있는데 휴식을 할 준비를 하지 않는 여행자에게 긴 밤은 안녕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하게 되면 가장 큰 근심이 먹는 것과 자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야 눈으로 보고 맘에 드는 것을 사 먹으면 됩니다만 잠자리는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하룻밤에 수십만원의 거금을 써도 될 만큼의 경제력이 받쳐준다면 문제는 달라지겠습니다만 대부분의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괜찮은 잠자리를 확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측이 가능한 행선지라면 미리 예약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놓으면 마음 편히 여행을 하면서 어둠이 깃든 시간에 잠자리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측을 할 수가 없는 여행이 될 경우에는 어디에서 낙조를 보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므로 예약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현지에 도착해서 쉴 곳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숙소의 간판은 네온싸인으로 화려하게 꾸며지는가 봅니다. 밤에는 불빛만이 사람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불빛따라서 큼직한 간판 밑으로 모여듭니다만 아침에 보면 오래 된 후줄근한 여관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혼자 웃지요.

벗님의 숙소에 대한 예측은 가능하십니까? 그래서 어떤 노후가 될 것인지를 지금부터 예측하실 수가 있다면 참으로 잘 살아가고 있으신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된 여행자에게는 결코 춥지 않은 따뜻한 밤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약을 할 만큼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조금은 분발하셔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천하의 방랑객 김삿갓도 겨울에는 따뜻한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내곤 했습니다. 그의 겨울은 글발이 있어서 따뜻한 방을 얻을 수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낭월도 추운 겨울은 면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물론 예측은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 유추하는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예측을 하려면 지금의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으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어느 정도의 깨달음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기분에 도취되어서는 바로 읽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아무리 예측을 했더라도 빗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비해서는 훨씬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겠습니다.
5. 정해진 춘하추동과 정해질 하루 날씨

한국기상도


  며칠 전에 상담을 한 고객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사주에서 갑오년은 용신운입니다. 즉 매우 왕성한 결실이 기대되는 나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주괘에서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주와 점괘가 서로 언바란스를 보일 적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어느 하나가 틀린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렇게 나온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낭월입니다. 그렇다면 이 괴리감을 어떻게 정리하여 설명해야 할까요? 낭월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생은 지금 왕성한 여름을 맞이한 것과 같아서 얼마든지 활동을 할 수가 있는 여건에 있다고 해석을 하게 됩니다. 즉 환경이 좋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불리합니다. 어쩐 일인지 여름인데도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은 저온을 연일 나타내고 있습니다.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일조와 수분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준비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사업은 잘 되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했고 매출도 활기를 띠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직원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그의 마음에 상처를 줬던가 봅니다. 그는 자신이 그만둔다고 나가면서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따라서 빠져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의뢰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난관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요?"
이렇습니다. 환경은 좋은데 사소한 문제가 생긴 것은 춘하추동으로는 읽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여르에는 적어도 눈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도는 확실히 알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나머지의 매우 중요할 수도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예측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오주괘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뭔가 문제가 있는 곳에 점신이 강림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계절만으로 예측을 했다면, 오주괘를 만난 이후로는 오늘의 일진까지도 예측을 할 방법을 찾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오주괘만이 아닙니다. 점술은 모두 이에 해당할 것이고 타로카드도 마찬가지로 변화를 읽는 도구가 되는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벗님의 기상도를 읽을 수 있는 연장은 어떠신지요? 육효, 육임, 단시점, 주역점 다 좋습니다. 적어도 한두 가지의 연장은 갖고 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대체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조짐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된다면 그래도 미래를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고 해도 되지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겨울은 그렇게 화롯불에 밤을 묻어놓고 삶의 여운을 뒤돌아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렇게 계절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하루를 맞이합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서서히 모여들고 있네요. 어쩌면 비가 내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먼 나들이라면 우산이라도 챙겨보시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모쪼록 행복하고 의미있는 병신일이 되셨으면 합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4년 5월 2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