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 신삼명론(新三命論)

작성일
2015-11-15 07:0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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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신삼명론(新三命論)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무슨 가을비가 이렇게도 줄기차게 내리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겨우 비도 멈추고 바람도 사라졌으니 산사에는 다시 고요한 적막이 찾아와서 생각의 실끝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엇그제 사진기행에 사리암전기를 쓰느라고 힘들었는데(ㅋㅋ) 오늘 또 한 생각이 일어나서 글쓰기를 누르고 말았습니다. 아! 이걸 우째~~!!! 이런 기분은 듭니다만 또 이렇게 해서 한 생각을 잡아두면 뒷날 다시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나, 혹은 도리도리를 하겠지만 또한 생각의 한 순간이라는 점은 확인이 되싶습니다.

 

1. 논형의 삼명(三命)


삼명으로 검색을 해 보면 여러 가지의 해석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논형에서 언급하는 내용이 그럴싸 하니 옮겨봅니다.

《논형(論衡)》이 워낙 오래 된 책이고 나름 권위도 있어서 삼명에 대한 설명으로 인용을 해 봤습니다. 한자라서 깜짝 놀라실까봐 대충 풀어놨으니 너무 놀라지 마시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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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命有三:一曰正命,二曰隨命,三曰遭命。」
正命、謂本稟之自得吉也。性然骨善,故不假操行以求福而吉自至,故曰正命。
隨命者、戮力操行而吉福至,縱情施欲而凶禍到,故曰隨命。
遭命者、行善得惡,非所冀望,逢遭於外而得凶禍,故曰遭命。


「명에 세 가지가 있음을 설하나니, 하나는 정명이고, 둘은 수명이며, 셋은 조명이니라」

정명(正命)이란, 본래의 타고난 품성이 길함을 말한다. 선천적으로 타고 난 골격이 선량하여 거짓으로 행하지 않음으로 복을 얻기 위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되는 것이니 그래서 바른 명이라고 한다.

수명(隨命)이란, 힘써 조심하고 노력함으로 해서 복을 받게 되고, 감정에 치우쳐서 방종하게 되면 재앙을 받게 되니 그래서 따르는 명이라고 한다.

조명(遭命)이란, 선행을 했음에도 결과는 나쁜 것으로 돌아오고, 언제나 흉한 일만 만나게 되므로 만나는 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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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구절은 논형의 『명의(命義)』라는 대목입니다. 옛 사람들도 명(命)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오늘 낭월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게 뭡니까? 라고 하면서 코웃음을 치려는 속셈입니다.

논형의 이야기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책의 이름에 눌리지 말고 내용을 보면서 평가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도 짐짓 넘겨다 봅니다. 가소롭지요? 원래 낭월이 좀 그렇습니다. 대책없는 식신의 붓끝은 종횡무진입니다. 좀 거슬리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하하~

물론, 당연히 타당성이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분석을 해 보면, 인과법이 적용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 봅니다.

첫째로 정명은 전생에 공덕을 많이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생에서는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산다고 하니까 그야말로 하늘이 점지해 준 복덩어리 인생이라고 하겠고, 요즘 말로 한다면 금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둘째로 수명은 그야말로 인과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일을 하면 먹을 것이 생기고, 놀면 굶는다는 단순명쾌한 논리로군요. 대부분은 이러한 이치로만 인생의 모양을 저울질하려는 심리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그만큼 노력을 했겠지.... 하고, 또 나쁜 일이 생기면, 뭔가 그럴만한 짓을 했겠지....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야말로 일상의 논리요 음양의 논리라고 보면 되겠으니 또한 타당하다고 하겠고, 아마도 구리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셋째로 조명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이야기로군요. 뭘 해도 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정명과 상대적인 관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식으로 말하면, 전생에 악업을 하도 많이 쌓아놔서 이번 생에서는 뭘 하든 악연을 만나게 되어서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사람도 없진 않지요? 이러한 경우는 흙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것을 팔자로 본다면, 그러니까 명리학(命理學)으로 본다면 정명은 무지하게 좋은 사주를 타고 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 조명은 억수로 나쁜 사주를 타고났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수명은 중간쯤의 사주라고 봐서 운세에 따라 부침(浮沈)을 반복하게 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일리가 있지요? 다만 일리는 있으나 만족스럽지 않다는 단서를 붙여봅니다.

 

2. 낭월의 『신삼명론(新三命論)』


논형의 삼명에 대해서는 잘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삼명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래야 벗님의 낭월한담 나들이에 눈꼽만큼이나마 드릴 것이 있을테니 말이지요. 물론 그러한 것을 기대하진 않으셨겠습니다만, 그래도 쥔장의 마음은 또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하~

낭월이 오늘 아침에 차를 만들다가 문득 한 생각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삼명이 뭐지?'
'천지인?'
'천명(天命), 지명(地命), 인명(人命)을 삼명이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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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수에서는 삼명이라고 하지 않고 삼원(三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원 지원 인원이라는 글로 표현을 했구먼요. 여하튼 여기저기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천지인입니다. 이것을 논형의 삼명에 대입한다면, 정명(正命)은 천명이고, 조명(遭命)은 지원이고, 수명(隨命)은  인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명(命)이든 원(元)이든 천지인을 붙여놓고 생각해 보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할 수가 있겠네요.

그러니까 낭월도 천지인의 바탕에서 삼명론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늘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하는 진리대로, 뭐 신통한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그냥 생각을 해 보는 흐름에서 약간의 힌트가 된다면 충분히 목적달성이라고 생각하기에 『신삼명론(新三命論)』이라고 이름을 붙여놓고 생각을 쫓아가 봅니다.

 

(1) 천명(天命)은 팔자(八字)이다.


저마다 타고난 팔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명리학이고, 낭월이 연구하는 형태는 자평명리학이라는 정도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적천수의 삼원은 천명에 속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사주는 천간, 지지, 지장간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명리학(命理學 = 천명학(天命學)」이 되는 셈입니다. 천명을 연구하는 것이 명리학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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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이 천명입니다. 그러니까 논형의 삼명론이 왜 허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느냐면, 결국은 셋을 다 합해봐야 천명의 사주팔자에 귀속이 되는 까닭입니다. 무엇을 하던 잘 되어서 잘 먹고 사는 사람이나, 뭘 해도 고통만 남는 사람이나, 노력하여 혹은 얻기도 하고 혹은 잃기도 하는 것은 모두 팔자에 소관이라는 결론을 유추할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사주를 보면 잘 먹고 잘 살 사람과, 고통 받고 힘들게 살 사람이 구분된다는 것으로 인해서 이러한 대입은 사주쟁이의 억지만은 아니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주공부를 한다는 것은 저마다 태어나면서 결정된 천명을 읽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지요. 이것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에서의 천명과도 완전히 동일한 것입니다.

"사람이 할 것을 다 한 다음에 하늘의 명을 기다려라"
할 수가 있는 일을 다 하지도 않고서 하늘의 명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나요? 예! 당연히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주를 보러 가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물어보러 가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스스로 뭘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할 일을 다 할 수가 있을 것이며, 그러한 사람이 천명을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이라는 것입니다. 운명론자는 3분의 3이 모두 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낭월은 당연히 운명론자가 아닙니다. 예? 이게 무슨 모순이며, 망발이냐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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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고양이의 명이 있고, 병아리는 병아리의 명이 있으니 이것이 태어날 적에 주어진 천명입니다. 아무리 사람의 말을 하고 싶어도 "냐용~!"밖에 나오지 않고 아무리 멋진 노래를 불러보려고 해도 "삐약삐약~"밖에 안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로군요.

운명론자는 모든 것은 운명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작년에 고생을 했어야 하는데 편안했던 것은 당신이 잘못 살아서 그렇다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펴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모든 것은 사주팔자라는 여덟 글자에 부합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운명론자임을 동의하신다면, 낭월은 운명론자가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태여 운명론자라고 한다면 '33%운명론자'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운명의 작용, 즉 천명의 영향이 0%로가 아닌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비운명론자(非運命論者)는 천명의 작용을 0%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동등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든 그 나머지에 의해서 변수가 주어질 뿐이라고 하는 것이겠군요. 벗님은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셔도 좋고 반의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용어가 갖고 있는 의미만 제대로 이해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평명리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래서 달라집니다. 어떤 학자는 100%의 사주 암시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영감을 얻어서 활연개오(豁然開悟)를 할 수도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그것은 이미 명리학이 아니라 영감(靈感)의 영역이라는 것을 착각하면 안 되겠습니다. 명리학은 오로지 간지(干支)의 생극(生剋)에 의한 운명적인 암시를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간지학으로 100%의 인생 운명을 예측하고 증명하기는 극히 어렵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 명리학자가 있다면 낭월이 오늘 당장 달려가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생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울러서 영감은 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학문의 논리성과 영감의 직관성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착각하지 않아야 용어의 뜻이 바로 전달 될 것입니다.

어쩌면,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영감이든 학문이든 과거의 모든 것을 맞추면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다만 그것은 이미 다른 영역입니다. 삼명을 논함에 있어서 맞추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정해진 영역이 있고 그것을 천명이라고 하자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므로 학문적으로 접근을 하는 자평명리학은 천명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점만 이해한다면 충분하겠습니다.

그러니.....
천명을 안다는 것이 그리 녹록하겠느냔 말이지요.....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도전을 했다가는 제풀에 포기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또 도전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낭월의 방식대로 자평법을 연구하는 것이 그래도 덜 험난한 통로를 거쳐서 천명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감히 해 봅니다. 그간의 노력들도 모두 후학이 고생을 덜 하고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에 투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천명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봤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태어나면서 정해진 운명을 천명이라고 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천명의 의미를 잘 이해 하셨다면 다음으로 지명에 대해서 살펴볼 준비가 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2) 지명(地命)은 환경(環境)이다.


지명은 땅을 인연하여 주어지는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천명은 선천적이라고 한다면 지명은 후천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 이것은 동물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기회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식물은 지명조차도 천명에 포함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이동을 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동물은 지명을 선택할 얼마간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천명보다는 훨씬 자유롭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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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은 요지부동이잖요?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달아날 곳이 없기 때문에 팔자도둑질은 못한다는 고인의 속담이 남겨진 것이려니 싶습니다. 그런데 지명, 즉 환경은 어느 정도 선택을 할 여지가 주어진다는 것에서 그나마 천명보다는 훨씬 다행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물론 천명이 흉한 상황일 경우를 놓고 하는 말씀입니다. 천명이 이미 행복덩어리라면 뭐 더 이상 말을 할 필요도 없겠으니 말이지요.

낭월이 모든 선택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선택이 가능하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물 속으로 들어가서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땅의 명'이라고 해야 하는 것은 '땅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의미도 그 속에 포함된 것이려니 합니다. 그래서 땅을 떠나서 공중에서 살거나 물에서 살 경우에는 지명은 해당이 없다고 해도 되겠네요. 그래서 이 땅 위에서는 어느 정도 이동의 선택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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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생각하면 풍수지리(風水地理)가 지명을 알게 되는 분야라고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주팔자를 공부해서는 땅의 이치를 알 수가 없지만 풍수공부를 하면 땅의 이치를 알 수가 있다는 것으로 보면 틀림없는 지명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낭월도 현공풍수라는 방법을 통해서 지명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불타는 열정을 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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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만, 땅의 이치는 지리(地理)이므로 당연히 땅 공부를 하면 땅의 운명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천명을 알고 지명을 알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보유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조차도 했었던 적이 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과욕(過慾)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조용히 내려놨습니다. 다만 인연이 있는 학인에게 참고적인 길잡이는 될 것이라고 여겨서 현공풍수의 정리는 해 놨습니다만 그것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갈 마음은 놓은지 오래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은 풍수지리를 공부하면 지명을 알 수가 있겠다는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지명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땅의 운명, 또는 땅의 인연, 혹은 환경의 인연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이 억지로는 안 된다는 한계점을 너무 빨리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는 것과 누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명도 천명의 한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지명 위에 천명이 있다."
그렇습니다. 그런 느낌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천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이 되기도 하네요.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천하의 명당자리도 자신이 소유할 수가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알아봐야 소용이 없다면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남에게 알려 줄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 보긴 했습니다만, 또한 그 사람이 누릴 인연이 되지 않으면 그것도 맘대로 안 되더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환경은 어느 정도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에 따라서, 혹은 필요에 의해서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특히 공기가 매우 나쁜 지역(예를 들어 북경같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호흡기와 관련해서 건강이 안 좋은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환경의 변화를 찾아서 전원생활을 한다면 적어도 몸에는 훨씬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은 당연합니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아토피가 극성을 부리기도 합니다. 아토피로 글자풀이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 : 아파트에 살다보니까
토 : 토(土)를 만나지 못해서 
피 :피부가 반란을 일으키는 병

어떤가요? 틀림 없지요? 그러니까 아토피를 고치는 것은 병원 다니면서 약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맨발로 뛰놀게 되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낭월이 의사는 아닙니다만 상식으로 봤을 적에 환경의 부작용이라고 보는 관점은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아토피는 환경의 병인 것이지요. 이것은 지병(地病)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땅의 기운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생긴 병증이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실제로 많은 현명한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찾아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점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는 1년도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이 지명을 알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는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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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바로 천명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으로 인해서입니다. 시골로 가는 것도 먹고 살 방법이 해결된 다음에서야 생각을 해 볼 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버리고 가서 굶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요. 그리고 직장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은, 천명에서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분부를 내렸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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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력에 의해서 지명은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지진이 자꾸 일어나는 곳에서 이동을 하거나, 테러가 빈번한 곳을 벗어나는 것이나, 혹은 통치자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삶이 피폐해질 경우에도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서 이주하고 탈출하는 것이겠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추구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낭월은 이것이 지명이라고 이해합니다.

 

(3) 인명(人命)은 노력(努力)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명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명은 사람이 타고 난 팔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자는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만, 의미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인명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응당 해야 할 운명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쉽게 노력이라고 합니다. 노력하면 먹을 것이 생긴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작은 부자는 된다고도 합니다. 근자소부(勤者小富)라고 했으니 말이지요. 이렇게 노력하는 것으로 인명을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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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천명에 의해서 명리학자가 되어라는 명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러한 환경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책을 찾는 것도 환경이고 선생을 찾는 것도 환경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지명(地命)에 포함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북한보다는 대만이 훨씬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환경을 찾은 다음에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냥 환경만 주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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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면, 불철주야(不撤晝夜)로 하라고 말합니다. 밤이든 낮이던 가리지 말고 하는 것이 노력입니다. 쉼없이 하라는 뜻이겠구먼요. 그렇게 노력을 하여 오랜 시간이 흐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한 분야의, 그러니까 명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물론 천명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되지 않을 가능성은 당연히 있습니다. 그것을 일러서 '진인사(盡人事)했으나 불허천명(不許天命)'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간지의 이치를 얻지 못하여 수십 년의 세월을 방황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해보는 생각입니다. 아울러서 명리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비유를 들었으니 각자의 전문 분야를 이 자리에 바꿔넣으면 그대로 부합이 될 것으로 봅니다. 강남8학군을 찾아가는 어머니들은 환경을 바꿔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환경에서 스카이에 진입하는 것은 자녀의 노력으로 결실이 된다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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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녀도 있기 마련입니다. 지원자는 2만명인데 선택될 자리는 5천석이라면 나머지는 어쩔 수가 없이 다 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력을 한 다음에는 천명에 맡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명이 대단하기는 하네요. 하하~

그렇다면, 천명을 미리 알아보고 될성부른 자식만 가르치면 어떨까요? 참 교묘한 생각입니다만 허허~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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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합니다만, 그것도 어떤 방향으로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은 두말하면 군소리겠네요. 그래도 이런 그림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차적으로 천명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적성을 보는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원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를 봐야 하는 것인데, 그 적성이 바로 천성(天性)이고, 천성이 천명(天命)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심리분석을 잘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가기는 합니다만 이치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네요.

천성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앞에 단서를 '거의'라고 붙이기는 했습니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거의가 갖고 있는 뜻은 '절대로'의 순화된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천성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바꾸지는 못해도 고칠 수는 있을까요? 그야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것을 열심히 하게 되면 습관이 되는 까닭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으면 일단 동의하시는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좋은 말을 하고, 웃으면서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인상이 좋아질 가능성은 충분한 것입니다.

그렇게 인상이 변화한다면 생각도 변화하게 그것은 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기회를 얻게 될 가능성이 있고, 그로 인해서 삶이 천명의 암시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니 어쩌면 선택의 폭으로 본다면, 지명보다도 더 크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에는 그렇게도 많은 선현의 교훈서들이 준비된 것이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는 천명인가요? 참으로 무섭습니다. 그래서 선행공덕을 많이 지어서 천명을 좋게 타고 나라고 하는 부처의 말이 살아있는 가르침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을 알고 있어도 천명이 불허하면 들어갈 수가 없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천명이 허락하지 않으면 또한 이룰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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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盡人事待天命"
이 한마디의 말씀 속에는 많은 의미가 깃들어 있고, 삶의 지혜와 경험의 철학과 애쓰고 노력한 결과물이 모두 용해되어 있는 가르침의 한 마디라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역학서적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누기도 합니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인사(人事)로 나누는 것이 그것입니다. 천문은 하늘의 글을 배우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간지(干支)가 천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낭월 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만, 천서(天書)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생각이 날로 더욱 깊어지네요.....

지리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풍수지리를 공부하여 땅의 운명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그 방법에서도 참으로 각종각양의 이론과 유파가 나열되어 있음은 모든 분야가 다 그러하니 특별하달 것도 없겠습니다. 다만 입문자는 혼란의 과정을 필수코스로 지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네요.

인사는 인간의 길흉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점술과 같은 것으로 분류를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타파하면 되겠는지를 묻고 답하기도 하고, 희망하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물어보기도 하고 답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천명과 함께 엉켜 있어서 인사라고만 논하기는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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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에서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린 농부는 수확의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이것이 천지인 합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싶습니다만......

천지인

다시 바라보는 삼태극에는 이러한 의미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인들께서는 이 셋이 잘 조화를 이루게 되는 삶을 최상으로 꼽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균형을 잃은 것으로 보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렇게 오늘은 삼명에 대해서 일어난 한 생각을 붙잡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봤습니다. 벗님의 철학적인 연구에 약간의, 한 방울의 기름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여하튼 오늘의 일에 최선을 다 하십시다. 고맙습니다.

 

 2015년 11월 1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