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깍따구와 배암거이의 전설

작성일
2017-04-07 03:2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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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 깍따구와 배암거이의 전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서 더 자야 하나..... 그냥 일어나야 하나.... 하고 있던 차에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어제는 고단했던지 일찍 잠이 들어서는 일찍 깼던 모양입니다. 뉴스룸을 보다가 잠이 들기는 또 첨이네요. ㅎㅎㅎ

때로는 문득, 아주 우연히 옛날의 영상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것도 아주 어린 시절의 영상들이 말이지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생각이 떠오르면 다시 그것을 단서로 해서 과거로의 여행이 이어지곤 합니다.

치매가 오면, 현재는 잊고 과거에서 산다고 하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 생각의 한 도막을 떠올려 봅니다. 이렇게 심심풀이로 생각을 정리해 좋으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역사의 사료(史料)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문득 해 봅니다.

검색을 하다가 보면 또 어딘가에서는 필요한 자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낭월이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자료를 찾으니까 필요한 사진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또 이러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득한 옛날, 53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세월을 헤아려 보면 53년 전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어저께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보면 시간과 공간이 같이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시간은 현실이고 공간은 환상인가 싶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발가벋고 뛰놀던 곳에 있으니 말이지요. 하하~!

창원군 동면에서 신방국민학교 2학년 봄학기를 다니고는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서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신나는 여행을 했는데 그 종착지는 기차타고, 버스타고, 그렇게 그렇게 달려서 도착한 곳이 안면도 창기리 였습니다. 창기리에서도 더 올라가서 아갈재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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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에서 노리까이(갈아타기)하다가 미아가 될뻔 했던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대합실에 그냥 앉아 계셨더라면 우리 두 형제는 어느 고아원으로 가서 또 다른 환경을 맞이할 뻔 했습니다만, 조상이 도와서(?) 아이들이 오지 않자 예감이 이상하셨던지 바로 밖으로 나오셔서는 방황하는 우리 형제를 발견하시고 소리소리 지르던 모습만 문득 떠오릅니다. 하하~!

그렇게 흘러흘러서 도착한 곳이 그야말로 산설고 물설은 아갈재비였습니다. 아갈재비에는 어머니의 이모님께서 살고 계셔서 그 인연으로 머나먼 안면도까지 이주를 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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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면서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차에서 내렸습니다. 드르니였습니다. 지금 보면 백사장 건너편입니다. 여기에서 나룻배를 타야 하는데 배는 끊기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습니다. 물론 여관에서 잤는지, 여인숙에서 잤는지 아니면 그냥 대합실에서 잤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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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다음 날 밝아서 일어난 다음에 눈 앞에 펼쳐진 바다의 짙푸른 물결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강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때의 나이는 여덟살입니다. 여름 방학을 하고서는 영문도 모르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안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전 처음으로 배를 탔습니다. 배를 건너면 백사장입니다. 그 다음에는 걸었지요. 부친은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우리는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짐을 지고, 아, 동생은 여섯살이었겠습니다.

주현 : 아부지 어데로 자꾸 가노?
부친 : 엄마한테 안 가나.
주현 : 엄마가 와이래 먼 데 있노?
부친 : 좋은 데라 카더라.
주현 : 근데 강은 참 좋데이.
부친 : 그렇제, 그 바라. 좋다카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었습니다. 어린 녀석들이 긴 여행에 지쳤을 법도 하네요. 그래도 떠돌이 기질이 있었던지 나름 좋은 기억만 남아있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여행에서 엄마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갈재비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알고 보면, 실은 다른 경로로 해서 몰래 미리 와 계셨다는... ㅋㅋㅋ

서론이 깁니다. 기승전결이 그렇게 되네요. 여하튼 한참 더운 폭염에 안면도의 아갈재비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고, 잠시 이모할머니 댁에서 머물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설명하려니까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거 참, 희한하게도 생각이 그물을 건지듯이 솔솔 따라 나오네요. 그래서 생각의 꼬투리를 잡고 잠시 과거 여행을 해 봤습니다. 하하~!

무엇보다도 신나는 것은 바다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옹색한 처이모 댁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음을 눈치채셨는지 절골의 바닷가에 집을 지어 보겠다고 터를 닦으셨던 모양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 배암거이를 구워먹다.

절골이라는 지명을 보면 아마도 옛날에 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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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골의 앞이 당시에는 바다였습니다. 그 후로 간척공사를 해서 지도는 육지로 변했습니다만, 아버지께서 바닷가에 터를 닦을 적에 어린 형제는 물에서 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일을 하시는 곳으로 가면 아버지께서는 모닥불에 빨간 게를 구워서 주셨습니다. 그것을 창기리 사람들은 배암거이라고 불렀습니다. '게'를 '거이'라고 하므로 뱀게라고 이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게라고 하면 그 맛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거이라고 합니다. 충청도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길게 늘어지는 서산의 사투리입니다. 당시에는 서산군 안면면 창기리였지요. 그 후에 태안군으로 분리가 되었고 안면도는 읍이 되었습니다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거이'라고 해야 할지, '그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게에 가깝게 기록을 해 보면 거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멍멍개는 '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개똥은 가이똥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아버지께서 이 말을 못 알아들으셨더라는... ㅎㅎㅎ

불에서 기름을 내면서 자글자글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문득 인터넷으로 뱀게의 사진을 찾아 봅니다. 다행히 생생한 기억을 소환할 사진들이 나오네요. 이해의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빌려 온 것들임을 말씀드립니다. 그 후로는 뱀게를 보지 못해서 사진으로 남기질 못했습니다. 사진을 남겨주신 네티즌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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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추억 소환입니다. 이 녀석들이 산비알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보통 게는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만, 바다에 들어가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잡을 수가 있는 해산물(?)이었습니다. 해산물을 산에서 구하다니. 참 묘한 녀석입니다. 혹 이런 친구를 본 적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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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서야 이 아이의 이름은 도둑게로 더 많이 불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당시로써는 그냥 모든 주민들이 '배암거이'라고 했기 때문에 뱀거이라고 했습니다만, 뱀은 배암이라고 불렀습니다. 생긴 것과 이름이 어울리진 않습니다만, 배암거이라고 불리운 것은 뱀처럼 구멍을 뚫고 그 속에서 살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밀물에서 신나게 놀고 있으면 부르십니다. 게가 다 익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새파래진 입술을 하고는 불 가로 모여들어서 열심히 게를 뜯어 먹었습니다. 껍질이 바삭바삭 부서지는 감촉을 느끼면서 기름이 자글자글 흐르는 맛있는 진미였습니다. 배암거이를 구워먹어면서 물장구 치고 놀던 시절의 한 순간이 기억창고에서 슬금슬금 튀어 나오네요. 하하~!

아지매 : 증상두(경상도) 아지씨잖이유?
아버지 : 예, 맞심더~!
아지매 : 여따가 뭐 하실라구유?
아버지 : 집을 하나 지어볼라캅니더.
아지매 : 아... 예.... 좋을 꺼 가티유....
아버지 : 뭐 하고 오십니껴?
아지매 : 개껏 좀 해 오느라구유~
아버지 : 예? 개껏이 뭡니껴?
아지매 : 별거 음씨유. 바카지... 바지락....


우리 형제는 또 그 아주머니의 바구니가 궁금해서 들여다 봅니다. 낯선 먹거리들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지요. 게를 구워먹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 아주머니가 소스라쳐 놀라십니다.

아지매 : 어? 배암거이를 먹내비네유?
아버지 : 예, 많네예. 맛있게 묵었심더.
아지매 : 그... 건.... 뭇 먹는 건디.....
아버지 : 예? 몬 묵는다꼬요?
아지매 : 그러문유~ 우덜은 그건 안 머기유~


어투를 가급적 당시의 분위기로 적어 봅니다. 글자만 보시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중얼중얼 해 보시면 그런대로 이해가 되시리라고 봅니다. 사투리에 괄호하는 것도 멋적은 일이라서 그냥 둘랍니다. 하하~!

도둑게4

그렇게 한 나절을 보내고 다시 귀가를 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놀았지요. 너무나 즐거운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휴양지로 피서를 간 줄로 알았던가 싶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빚을 갚지 못하고 한밤에 도주를 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느냐는 말로 이사 경위는 정리합니다.

아버지 : 그라마 혹 독이라도 있능교?
아지매 : 그건 물루것구유..... 혀튼 안 먹이유~


그러시면서 자신의 갯바구니에서 다르게 생긴 놈들을 몇 개 주고 가셨습니다. 알고 보니 바카지였습니다. 나중에는 돌게라고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안면도 사람들은 아무도 돌게라고 하지 않습니다. 바카지입니다. 이름도 참 특이하지요? 그런데 중얼중얼 해 보면 입에 붙습니다. 바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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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아주머니 생각에는 촌놈들이 먹을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굶은 놈들처럼 뱀게를 구워먹고 있는 것이 딱혔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바다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 아지매를 만난 이후로는 뱀게는 먹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맛있는 바카지 잡는 법을 배웠거든요.

썰물때 주전자를 들고 아지매들을 따라가면 바카지 잡는 법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웬 주전자냐고요? 갖고 갈 것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비암거이 구워먹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세요. 아마 없을 겁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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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돌을 살살 들면..... 그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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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바카지가 잔뜩 움츠리고 숨어 있습니다. 요것을 잡는 재미로 시간은 잊어버리곤 하기가 일쑤입니다.

이렇게 문득 뱀게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 한 끄트머리를 잡고 생각해 봅니다. 농거이나 능쟁이도 있었습니다만, 그 아이들은 맛이 없어서 먹지 않았습니다. 농거이는 농게이고, 능쟁이는 칠게입니다. 갯펄 냄새인 해큼냄새가 거북해서 그 맛은 도저히 정히 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섬 친구들은 그것을 잘 먹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이웃 집에 가셨다가 맛있다고 하는 바람에 게젓 담는 법을 배우셔서 농게젓을 담아 보셨는데, 딱 한 마리 먹어보고는 바로 상에서 퇴출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웃 아주머니가 오셨을 적에 버리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시면서 어디 맛이나 보자고 하면서 아삭아삭 잘도 드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줘 버렸지요.

그후로,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재미있는 노래를 배웠습니다.

찍께다리 두다리
양다리 여덟다리
두리삥삥 고기사소~!

경상도에 살면서 떠돌이 장삿꾼이 외치던 소리를 들으셨더랍니다. 그래서 그게 뭔가 했는데 게를 팔러 다니면서 그렇게 외치더라지요. 참 리얼하지요? 그냥 '게 사이소~!' 하면 될텐데 재미있으라고 그랬는지, 게가 뭔지도 몰라서 그랬는지 이렇게 외치더라면서 알려 주셨습니다. 경상도 사람은 게를 뭐라고 하는지 몰라도 아버니께서는 '끼'라고 하셨습니다.

 

2. 깍따구에게 항복하시다.

우리가 신나게 노는 동안에 아버지께서는 열심히 땅을 고르셨습니다. 터를 닦고 집을 지을 요량이셨지요. 절골에 집을 지었더라면 그냥 부처님 모시고 절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물론 그 공사는 나중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애써 찍어 놓은 흙벽돌이 긴 장마에 모두 녹아내리면서 공사는 중단되었거든요. 주로 만나는 사람은 갯바닥에 오가시는 여인네들입니다.

아지매 : 깍따구가 물잖으신대유?
아버지 : 그기 뭔교?
아지매 : 깍따구라구 있씨유....
아지매 : 모기 말잉교?
아지매 : 아~뉴~ 모기도 있구유.....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솟았습니다. 긁고 또 긁었습니다. 그래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나중에는 하도 긁어서 헐기조차 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사람들이 말합니다.

주민 : 깍따구가 물어서 그리유~
부친 : 하루살이만 비던데.....
주민 : 아뉴~ 하루살이랑은 달르지유~
부친 : 아, 그래요?
주민 : 헐었네유. 아푸겄씨유~
부친 : 무슨 방법이 없능교?
주민 : 땡꼴나무잎을 쪄서 발르면 되유~


그러면서 약초를 알려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까마중잎이었던가 봅니다. 인디언들이 약초를 찾아서 사용하듯이 나름대로 해결책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그것을 찧어서 문지르면 무척 따갑습니다. 열매는 따먹기도 했는데.... 맛은 없지요. 그냥~ ㅋㅋ

평생을 살아오신 부친께서도 깍따구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섬에 사는 하루살이는 이렇게 독한 모양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셨지요. 그 후로는 절대로 맨살을 내어놓고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전에는요? 런닝에 사리마다를 입고 일하셨거든요. 얼마나 덥던지요.

사리마다에 대해서 주석이 필요한가 싶어서 네이버를 쳐 보니까 친절하게도 다 설명이 나와 있네요. 그래서 그냥 통과 합니다.

얼마나 깍따구에게 혼이 나셨는지, 그 후로는 소매도 동여매시고 바지도 동여매셨습니다. 그 더운 폭염에 이렇게 동여매도록 한 것을 보면 깍따구가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깍따구는 깔따구로도 불립니다. 이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아갈재비 일원에서만 통용되는 전설일 지도 모릅니다.

아득한 옛날에 아갈재비에는 마구할멈이 살았답니다. 보통때는 수애로 가서 창리 가는 나룻배를 탑니다만 옛날에는 그런 것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사리때에 바닷물이 많이 빠지면 얕은 곳으로 해서 육지로 건너다녔습니다. 그것을 창기리 사람들은 '감 건넌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당시의 어휘를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는 것은 혹 누군가 글을 쓰는데 자료로 쓰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조금은 있습니다. 그야말로 구전(口傳)의 자료라고 할 수도 있지 싶습니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어서 추억을 적어놓으면 또 누군가에게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되살아 날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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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리의 먼재골에서 감을 건너면, 육지인 남면의 함바위가 됩니다. 함바위는 어쩌면 한바위일 수도 있습니다. 지명은 남면 당암리입니다. 당바위가 한바위라고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귀할멈이 그 감을 건너가면서 입에는 미숫가루를 가득 물로 있었더랍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지요. 물이 다 빠지기 전에 준비하고 있다가 물이 빠지고 나면 20~30분 사이에 얼른 건너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내 또 밀물로 바뀌어서 밀어닥치거든요.

그런데 마귀할멈도 기력이 쇠잔하여 동작이 예전 같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아직 감을 다 건너지 못했는데, 참, 문득 '감건너기'는 검색해봐도 '강건너기'만 나오네요. 아마도 사라져가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깽마람'과 함께 멀지 않아서 없어지지 싶습니다.

갑자기, 물때가 바뀌어서 불어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다급해진 마귀할멈이 화를 냈습니다. 원래 썰물이 밀물로 바뀌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불과 10여분? 그러니까 서두르지 않으면 해난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중간의 도도록한 모래섬에 갖혀서 물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게를 잡다가 떠내려 간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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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리때는 물이 급하게 많이 들어오고, 또 반대로 급하게 많이 빠집니다. 반대로 조금때는 천천히 조금 들어오고, 또 천천히 조금 빠지지요. 그래서 바카지를 잡으려면 조금때는 안 되고, 사리때가 되어야 합니다. 낚지를 잡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하겠네요. 조금때 물에 잠겨있던 부분이 사리때 드러나야만 제대로 잡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마귀할멈이 화가 나서 폭발했습니다. 그 바람에 입에 물고 있던 미숫가루가 모두 허공으로 분산되었지요. 그런데 마귀할멈의 독기(毒氣)가 가득 서린 그 미숫가루는 모두 날개가 달려서 날아다니다가는 피를 빨아먹는 깍따구로 변했습니다. 육지에는 모기가 있지만 안면도에는 무시무시한 깍따구가 있습니다.

위력은..... 모기의 열 배? 적어도 그 이상입니다. 크기는 보기보다 열 배는 작은 녀석들이 살을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산다는 아버지의 표현은 조금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여하튼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하하~!

한참 후의 이야기입니다. 1969년에 처음으로 몽산포 해수욕장이 개장되었습니다. 열세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던 모양입니다. 해수욕장이 만들어 졌다는 뉴스였지요. 물론 연대는 검색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연륙교는 1970년에 개통되었지만 공사하느라고 흙으로 쌓아놓은 둑을 이용해서 주민들은 건너다닐 수가 있었던 시절입니다.

물론 몽산포 해수욕장이 가볼 일은 없었습니다. 멱 감으러 갈 필요도 없었고, 사람 구경하러 가면 가겠지만, 뭐.... 딱히.... 그냥 구두방송을 통해서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동네기자 : 몽산포 해수욕장 이야기는 들었어?
동네주민 : 들었지. 서울 사람들이 겁나게 놀러 온다매?
동네기자 : 말두 말어~
동네주민 : 왜?
동네기자 : 사람들이 다 도망가뻔졌대잖여~
동네주민 : 머시? 아니 왜? 잘 해놨다매?
동네기자 : 깍따구 때매... 하하하~!
동네주민 : 어? 깍따구가 그렇게 미섭댜?
동네기자 : 신나게 놀고는 벌집처럼 되어서 다 도망갔다잖여~
동네주민 : 원래 도회지 사람들은 깍따구를 타지.... 하하~!
동네기자 : 그래서 사람이 하나도 엄땨~~
동네주민 : 있는 것들이 멋몰루구 왔다가 혼 났꾸먼 그랴~
동네기자 : 왜 아녀~ 하하~!


당시에 전해 들은 실화입니다. 멋모르고 멋진 백사장에서 비키니를 입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전에 깍따구 안내를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날씨가 꾸리무리하면 더욱 기승을 떨치는 깍따구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지요. 모기는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깍따구입니다. 뜯겨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하지 말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하하~!

아마도 그 후로는 독한 농약으로 깍따구를 퇴치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처음의 몽산포 해수욕장에서는 그러한 소문도 있었습니다. 신문에 나왔는지는 모를 일이네요. 그냥 동네에서 귀가 밝은 아저씨의 뉴스보도를 접했을 뿐입니다만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온 몸이 송신해서(가려워서) 밤새도록 한 잠도 몬잤따~!"

멋모르고 안면도에서 적응하시는 과정에서 겪으신, 부친의 비명이었습니다. 참, 하도 깍따구로 인해서 고통을 받으시자 배를 부리던 아저씨가 경유를 한 병 선물하셨습니다. 아무리 깍따구가 물어뜯어도 산을 개간해서 산두라도 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산두는 밭벼라고 합니다. 아마도 한자로는 산도(山稻)이지 싶습니다. 호도가 호두로 된 이치려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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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게 쌀밥을 해 먹이려고 산을 파서 밭을 만들고 산두를 심었습니다. 벼는 논벼와 밭벼로 나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데 깍따구로 인해서 작업이 너무 힘들었던 것입니다. 요즘 정글의 법칙을 보면 병만족들이 항상 모기와 개미들의 공격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데 그 장면을 볼때마다 깍따구에게 시달리시던 부친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합니다.

아마도 현지 사람들은 DNA에 면역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은 쓰윽~ 문지르면 끝인데, 부친은 긁고 또 긁어서 헐게 될 까닭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풍토병이 생긴다는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네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경유가 쓰일 줄은 또 몰랐습니다. 새벽에 일을 나가시면서 손발과 목, 그리고 얼굴에 경유를 바릅니다. 적어도 맨살이 드러난 부위는 모두 발라야 합니다. 그것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일단 깔따구에게 물리지 않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도(라고 쓰고 형제라고 읽습니다. ㅋㅋ) 밭에서 일을 거들어야 할 적에는 경유를 찍어 바르고 나갔습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깍따구의 공포는 경유의 독한 냄새를 물리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공감하실지.... 궁금하네요. 하하~!

그렇게 한 동안은 치열하게(부모님께서만)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후에 안면도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동창들이 몇몇은 아직도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거든요. 요즘도 여전히 깍따구가 많으냐고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예전 같지 않다고 하네요. 문득 환경오염은 그 독한 깍따구도 견디지 못하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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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HD라고 찍인 것을 보면 아주 오랜 옛날도 아닌 모양인데 이런 자막이 버젓이 나오고 있었던가 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허탈하게 웃습니다. 이게 방송국에서 제작한 자막이라니..... 목욕하던 깔따구가 기가 막혀서 졸도할 일입니다. ㅋㅋㅋㅋ

단언컨대~!

이 기자가 도대체 뭘 보고 적은 것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하루살이'였을 것입니다. '깔따구'라고 쓰고, '하루살이'라고 읽으면 됩니다. 만약에 진짜로 깔따구를 쓴 것이라면, 그 기자를 10분만 그때 그 절골의 해변에 서 있으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만 요즘은 진짜로 없어졌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하하~!

 

2017년 4월 7일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