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

작성일
2017-03-11 08:25
조회
5889

[710]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며칠간 싸늘한 공기가 감돌던 계룡산에도 다시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온화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서 연둣빛의 봄을 만나지 싶습니다. 오늘은 문득 머물다 떠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1. 구름이 머물다 간 자리


하늘의 구름이 모여서 노닐다가 일진광풍이 건듯 불면 어디론가 떠납니다.

_DSC6312

구름이 노닐다 간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떠난 자리가 깨끗한 것은 구름에게 사심이 없기 때문일까요?

_DSC6325

까마귀 한 마리가 허공을 맴돕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그렇게 배회하다가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텅 빈......

자연은 그렇게 나타나서 머물다가 떠나갑니다.

이것이 아마도 거래법(去來法)이려니.... 합니다.

그런데 래거법(來去法)이 더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 우리는 래거라고 하지 않고 거래라고 할까요?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일까요?

왔다가 가는 것일까요?

현실은 왔다가 떠나는 것 같은데..

말을 하기에는 갔다가 오는 것인가요?

그래서...

"내 금방 갔다가 올께~!"
라고 하나요? 어쩌면.....

거래는 인간의 관점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떠나보내는 벗에게 하는 말이고,

떠나가는 연인에게 하는 말일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부모님의 임종에서 하는 말일 수도....

어쩌면 그렇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편히 가셨다가, 내가 보고 싶거든 다시 오소서~!"
아마도 '거래'라는 말 속에서는 이러한 희망사항이 있나 싶습니다.

다시 못 올 줄을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차마, 잘 가시라는 말을 못하고서.

갔다가 다시 오라는 말을 하는 게지요....

어려서 늘 들었던 말입니다.

장사하러 나가시는 어머니께서 하신 말입니다.

"주현아, 엄마 얼릉 갔다 오꾸마~!"
그리고 그 얼른은 3일도 걸리고, 보름도 걸렸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확인을 합니다.

"몇 밤 자고 올껀데?"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애꿎은 손가락만 곱작거리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2.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


삶이란 어찌 보면,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거래법이라고 하지 않고, 인연법이라고 합니다.

인연이 있어서 만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헤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난 자리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문득, 예전에 추억이 한 자락 떠오릅니다.

청도 운문사의 사라암에서 바라는 바가 있어.

100일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는 하산을 하지요.

그렇게 머물다가 떠나게 됩니다.

걸망을 짊어지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습관이 있습니다.

왜냐고요?

그건 떠나보낸 사람을 경험한 마음이 잘 압니다.

30미터를 가서,

뒤돌아다 봤을 적에....

배웅하던 사람이 안 보이면, 섭섭합니다.

그래서 작별을 한 다음에 첫 걸음을 옮겼다면,

그 다음에는 절대로 뒤를 보지 않습니다.

 

떠난 사람이 뒤돌아 보지 않으면...

보내는 사람이 섭섭합니다.

그래서 작별을 한 다음에는 바로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갑니다.

떠난 사람에게 떠나는 법이 있듯이

보내는 사람에게도 보내는 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작별을 한 다음에 돌아서면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앞만 보고 갑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사리암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나섰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함께 했던 스님이 소리를 지릅니다.

"어쩜 그리 냉정하세요~!"
분명 떠나는 낭월에게 하는 말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돌아다 봤습니다.

"한 번 쯤은 돌아보고 가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서 손을 흔들어 줬습니다.

그 여승은 헤어지는 방법을 몰랐던 모양입니다.

 

3. 떠날 때는 말 없이....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도 말아요.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유행가 가사입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랑했었다."
이런 말보다 더 상처를 주는 말도 없을 겁니다.

"사랑합니다."
이런 말보다 더 아름다움을 주는 말도 없을 겁니다.

"사랑합니다."라고만 하고,

"사랑했었습니다."라고는 하지 마세요.

그보다 잔인한 말이 또 어디 있겠어요......

남겨진 사람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도 생각해 봅니다.

사랑을 받는 존재감,

사랑을 잃은 존재감.....

그리고 사랑을 잃었을 적에는 말없이....

머물던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떠나는 거죠.

그것이 떠나는 방법입니다.

 

4. 자꾸만 미적거리는.....


떠나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떠나라고 하기 전에 떠나야죠.

그런데.....

그녀 에게는 떠나보낸 경험만 있고,

떠나가는 공부는 하지 못했던가 봅니다.

그래서 어찌 할 줄을 모르는가 싶기도 합니다.

떠나가지 말기를 바랄 적에 떠나는 것이 미덕입니다.

'저거.... 왜 안 가고 미적대냐....'

이렇게 되면......

 

4.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가을이 되면 낙엽수는 낙엽이 집니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낙엽이 지는 모습이 서로 다릅니다.

은행나무는 한꺼번에 쏟아져 버립니다.

단풍나무는 버틸 수가 있는 데까지 버팁니다.

결국은 봄이 되면 다 떨어져 나갑니다만....

오늘 아침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어떻게 떠나야 할까?

떠나는 이의 욕심....

 

그래도 내가 떠난 자리를

아쉬워하는 사람 하나 쯤 있었으면....

 

2017년 3월 1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