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의미

작성일
1999-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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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의미.....



陰陽五行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맨 처음 암기해야 할
대목이 생극(生剋)이다. 그러니까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에 대해서 먼저 이해를
하고 부터 음양오행의 공부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리고 보통 생각하기에 생의 흐름은
좋은 것으로 보고 극의 흐름은 나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주입을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러한 방식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다.



1. 상생(相生)이라는 말의 의미



'서로 생(生)해준다'는 말이 상생(相生)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그런가를 생각하게 되면 별로 그렇지 않다고 하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즉 일방생(一方生)이 원칙이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목생화(木生火)라고
했을 적에 목이 화를 생한다는 말이지 화도 목을 생한다는 의미, 즉 서로 생한다는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방으로 생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용어를 만들면서
어째서 상생이 된다고 했느냐는 점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는 심리적인 인과법칙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생을 해주는 것이 일방이라고 하더라도
생을 받은 쪽에서는 다시 뭔가 보답이 있어야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에도 부합이 되는 까닭에 과연 무슨 법칙이 존재를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타나는 결론은 은혜를 갚는다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생조를
하는 것은 일방적이었지만 결국 그로 인한 대가는 어딘가에서 주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를 든다면 어머니가 자식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일방적인 생일  뿐이고 어머니는 그로 인해서 자꾸만 늙어간다는 것으로 본다면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면을 보면 어머니의 그 행복한 표정에서
뭔가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어머니의 기분에서도
생기운이 돈다는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되지 않으면 완전한 여성이 되었다고 할 수가
없다는 말이 어딘가에 있고, 그 의미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러니까 상생의 법칙에서는 자식이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이미 스스로 그 생의 대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젖을 물리면서 어머니로써는 이미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고 보면 되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겹친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자녀를 7~8명
두는 것이 예사였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일 속에서 지쳐 살았다. 그런데 요즘 어머니들은
모두 다는 아니겠지만 자녀는 많아야 2~3명 정도이다. 그 이상 두는 것이 사회적인
분위기로써도 어렵지만 실은 어머니 자신으로써도 자식이 많은 것은 고통만 가중될
뿐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생극의 법칙이 존재한다면 과연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살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자녀를 많이 뒀을 경우에 육신도 병들로 허약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자녀를 조금 둔 사람이 그에 따른 어떤 대가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려를
해보게 되는데 실제로 자녀를 7~8명 둔 어머니보다 자녀를 하나만 둔 어머니가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묘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건강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자녀를 조금 뒀다고
해서 건강이 더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 것을 주변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이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자녀를 적에 둔 여성이 오히려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유방암 등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고 할 적에 과연
자녀를 많이 둬서 늘 젖이 흘러가면서 건강한 어머니와 비교해서 어떤 것이 잘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을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생을 많이
한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들의 보살핌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 특히 장모님께서 딸을 7명 뒀는데, 과연 자녀들이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살으실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서 결국 일방생이 아닌 상생이라고
하는 깊은 철학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에서도 자식이 어머니를 구한다는
말이 있다. 일명 '아능구모(兒能救母)'이다. 아이가 능히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다.
상황은 겨울에 태어난 나무의 입장에서 물로 인해서 얼어버릴 지경일 때에 불에 해당하는
자식이 있으면 하늘을 녹여줘서 어머니로 하여금 생동감을 갖도록 한다는 구조로써
한목향양격(寒木向陽格)이라도도 부른다. 이런 경우에는 틀림없이 내가 낳은 자식이
나를 살려준다는 말이 가능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이렇게 상생하는 이치를 보면서
현재의 자녀관과 연관을 시켜 보면서 문득 떠올려본 생각들이다. 그러니까 너무도
당연히 일방적인 생이 될 수가 없고 상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겠다는 것이다.



2. 상극(相剋)이라는 법칙의 의미



상생을 배우고 나서는 상극을 배우는 것이 보통 순서이다.
그래서 목극토(木剋土) 토극수(土剋水) 하고 외우게 되는데, 여기에서 보통은 극은
나쁜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만법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을 하다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상당히 자연스럽다고 하게 된다. 그런데
또한 다시 생각을 해보면 극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이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극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방해요소에 해당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앞산을 바라다보는 사이에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극(剋)은 한(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 민족을 두고 하는 말에도 한이 많다고 하는 말을 한다. 그래서 한(限)민족일까?
여하튼 우리는 우리를 한이 많다고 하니까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어째서 한이 많으냐고
한다면 각기 생각은 다르겠지만 뭔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극을 받아서라고 말하면 될 것이다.
극을 받아야 한이 맺히게 된다. 한이 많으면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게 되고 결국은
한이 맺힌 사람은 한을 풀어야 하는 것이고, 사주에서도 그렇게 극으로만 배합이
된 사주를 보면 한이 많은 사람이라고 단정을 해도 과히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이 쌓이게 되면 한이 많다고 하는데 그 한들이
쌓여 있는 채로 해소를 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면 한많은 삶을 살다 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한이 극이라고 생각을 해보는데, 실제로 사주에서 극이 많은 사람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時 日 月 年


辛 丙 癸 丁


卯 申 卯 亥


월간에서 년간을 극한다. 년지에서도 년간을 극하고, 일지에서는
월지를 극하고 다시 시지도 극한다. 일간은 시간을 극하는 배합이니 이 사주에서는
생의 개념이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하겠다. 실제로 본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으로
한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한의 대상은 누가 되었던지 상관이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은 사주에 한이 많다면 아마도 전생에 다 풀지 못한 무수히
많은 한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이다. 그렇다면 사주가 충극이 된
구조를 받고 태어나지 않으려면 한을 품지 말고 죽어야 한다는 말도 가능할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水生木의 구조는 성립이 되어서 유지는
된다고 보더라도 여하튼 생기운 보다는 극하는 기운이 상당히 강하지 않은가 싶은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겠다. 그렇다면 한이 많은 사주로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한을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누가 간단하게 별것도 아닌 말을 해도
한이 맺힌 사람은 그것을 한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인관계에서도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고 물론 그것을 극하는 성분이라고 한다면 말은 되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그러니까 극이 되어있는 사주의 주인공은 스스로 그 마음에 한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하게 해소를 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극의 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지 않으까 싶다.



생극의 원인을 찾아서.....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극이라고 하는 구조가 괜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즉 한은 어떻게 해서 나왔느냐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하겠다.
가령 한 예로써 자식이 어려서 병이 들었는데, 금전적으로 힘이 되지 않아서 죽게
되었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그러한 것이 한으로 응어리가 될 것이다. 이 외에도 모든
원인을 생각해서 참고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이 되었으면 일단 한을 풀어야
하는데, 역시 맘대로 되지 않고 다시 생의 윤회에서 이어지면서 쌓여 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국 사랑을 다 베풀지 못해서 쌓인 한이라고 해석을 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사랑이 한이 되었다고 해도 되겠고, 실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죽었다면 별로 한이라고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사랑이 한을 만든 것이니 한의
원류에는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한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오로지
사랑뿐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문제를 사주 팔자
속으로 끌고 들어오게 되면 극이 많은 사주는 사랑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말도
가능하게 된다. 결국 이렇게 응어리진 팔자를 해소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충분히 생각할 수가 있겠다. 즉 어제오늘 만들어진 구조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단하게 운이 좋은가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고 이러한 심층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한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사주 공부의 표면만 이해를 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아직도 낭월이는 멀었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다.



3. 용신에 한이 맺혔다면......



자신의 사주에 용신이 깨어졌다고 한탄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럴 즈음이다. 아마도 사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용신이 깨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보통 문제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하는
것마다 마음대로 되지를 않아서 한이 된다면 역시 그 사람의 마음도 황폐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을 풀어야 하겠는데, 스스로 그 마음에 이러한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용신을 극하고 있는 한의
실체를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의 실체....



이것은 그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진화시키는 열쇠인지도
모르겠다. 그 실체를 어떻게 읽을 수가 있느냐가 중요하지 읽기만 한다면 해소하는
방법은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사주를 통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앞의 사주에서
보면 용신에 해당하는 卯木이 申金에게 극을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용신이 극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의 실체는 바로 이 申金에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 申金의 실체는 무엇일까? 십성으로 따지면 편재(偏財)에 속한다. 그렇다면 부친에
대해서 한이 맺혔다고 해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보면
재물로 인한 한이 맺혔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여간 돈을 벌어오는 남편에게는 정이
생기지를 않고 더 많은 재물을 모아야 한다고 야단을 하게되면 아마도 그 남편은
질려서 도망을 가버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궁리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한의 실체(용신을 극하고 있는 성분이 되겠지만)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뭔가 사유를 할 힌트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여기에서부터
한번 탐색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몸에 대해서 한이 맺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서 지장간의 편관(偏官)이 문제이니까 다시 남편에
대해서도 암암리에 한이 맺힐 수가 있겠다. 그 속에는 다시 식신(食神)에 해당하는
무토(戊土)도 있다. 그렇다면 그 무토는 자식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또 자식에 대해서도
한이 될 수가 있겠다는 추리도 해보자.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한을 풀어 버릴 실체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러한 것을 찾기 위해서 사주팔자가 동원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관점에서는 한은 사랑이 해소하고 사랑은 한을 만든다는 것도 고려해 보게 되고 다시
확대하게 되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는 세상이 고해라는 말씀이 또 떠오르게 된다. 결국 한은
만들지 않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하겠고, 한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되는 셈이니... 참 어렵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그렇게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이렇게 두서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읽으시는 입장에서는
황당할 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정제된 이론이 아닌 그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문제를
던져보는 정도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어중간한 생각 그 자체가 더 어울릴 것이다.
그 나머지는 함께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한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면
자신의 삶이 보다 풍요로울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결론을 벌써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낭월이 팔자에서 시간(時干)의 편재(偏財) 작용이 아닐까 싶다.



        기묘(己卯)년 추석을 며칠 앞두고서... 낭월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