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9] 노후 대비로 사주공부를 하신다고요?

작성일
2018-03-13 10:52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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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 노후 대비로 사주공부를 하신다고요?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어느 사이에 봄 기운이 무르익어 가는 모양입니다. 나뭇가지에 봉긋봉긋 솟아오르는 꽃눈과 잎눈을 보고 있노라면 갑목(甲木)의 기운이 잔뜩 서려있음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외부에 있는 수도꼭지도 녹았는지 틀어보니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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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나이가 50대 중반은 됨직한 남성이 방문을 했습니다. 오늘 문득 생각해 보니까 이에 대한 이야기가 멀리 있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담으로 끌고 왔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시는 것도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살짝 해 봅니다.

낭월 : 어서오세요. 어떻게 인연이 되셨는지요?
손님 :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낭월 : 그러셨군요. 책은 안 읽어 보셨고요?
손님 : 예, 이제부터 읽어 보려고요. 그러기 전에 먼저 뵙고 싶었습니다.
낭월 : 잘 오셨습니다. 궁금하신 점에 대해서 말씀해 보시지요.

이렇게 주객이 마주 앉아서 나누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물론 사주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화한 이야기에 낭월의 소견을 첨부하려는 그야말로 일상의 잡담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혹 기대를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하하~!

손님 : 실은.....
낭월 : 예, 뭐든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손님 : 이제 나이도 먹어가고 해서 노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낭월 :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손님 : 그래서.... 사주를 배워서 노후에 대비할까 싶습니다만....
낭월 :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좀 있으신가 봅니다.
손님 : 그래서 말씀인데.... 제가 사주를 배워서 노후 대비가 되겠습니까?
낭월 : 안 됩니다.
손님 : 예? 
낭월 : 사주를 배워서 노후 대비는 안 된단 말씀입니다.
손님 : 그.... 사이트에서는 지도를 해서 영업하게 해 주신다고....
낭월 : 물론입니다.
손님 : 혹시 제 사주에서 공부해봐야 안 될 것이 보였는지요?
낭월 : 사주 문제가 아닙니다.

가끔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다가 자평명리학을 공부할 마음을 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고단하게 땅을 파는 것도 힘에 겹고, 가게를 벌여서 장사라도 하는 것은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에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상담일 수도 있으니까요.

혹, 벗님의 이웃에서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거나, 스스로 그러한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다면 공감이 되실 것도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낭월의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노후에 살지말고 지금에 살라.


노후(老後)라는 것은 늙고 힘이 없는 상황에서 의지를 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경우에 어떻게 남은 목숨을 유지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의미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노후의 생활자금에 대해서 방송에서도 수시로 압력을 넣습니다. 심지어 낭월조차도 말이죠.

 

「인생의 삼대 악재③ 노후빈곤(老後貧困)」


어딘가에 이렇게 써 놨죠. 그리고 이것은 낭월의 말이 아니라 고래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낭월이 만든 것은 아닙니다만, 공감이 되는 내용이기는 하네요. 늙어서 돈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는다는 말은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젊어서는 이런저런 일들로 열심히 살았지만 이제 나이 50의 고개를 넘고 보니까 직장에서도 정리해고의 후보에 들어가고,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점점 자신감도 떨어지고, 눈은 침침하고, 부부의 정도 옛날 같지 않아서 대접도 소홀하고.....

뭐, 생각하자면 어디 늙어가고 있다는 징조가 한두 가지가 아니겠네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 준비를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길가에서 사주를 보고 있는 노인을 봤더랍니다.

'옳커니~! 내가 할 일이 저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 낭월에게 찾아가서 의논을 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안 된다는 말을 듣고서는 기가 막히셨던지, 잠시 멍하게 있다가 말을 했습니다.

손님 : 그럼 왜 안 되는지나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낭월 : 공부에 인연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손님 : 인연이 되지 않았으면 지금 여기에 왔겠습니까?
낭월 : 몸은 인연이 되셨는데 마음이 아직 안 되셨습니다.
손님 : 마음이라니요?????

낭월의 말 뜻이 얼른 이해되지 않으셨던지 다시 물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그렇게 물어주기를 기다렸던 낭월이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대화는 느낌표(!)로 진행도 하지만, 때론 이렇게 물음표(?)로 진행을 하기도 하거든요.

낭월 : 그 몸을 위해서 노후에 대한 방법을 생각하신 것은 잘 하셨습니다.
손님 : 그러니까요. 저는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낭월 : 물론 칭찬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손님 :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낭월 : 오늘의 칭찬이 내일의 고통이 되면 안 되거든요.
손님 : 예? 그건.....??
낭월 : 지금 손님께서 상상도 못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 : 그건 각오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요.
낭월 :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손님 : 그럼....요?
낭월 : 미쳐야지요.
손님 : 예? 제가 지금 미치도록 공부를 하고 싶거든요.
낭월 : ......
손님 : 왜 그러십니까?
낭월 : 이미 늦으셨습니다. 오늘은 인연이 아닙니다.

손님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밍기적거렸습니다. 모처럼 노후에 대한 묘안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수업료도 준비하고 왔는데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보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하하~!

손님 : 그러시다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낭월 : 먹고 살기 위한 공부는 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손님 : 왜요? 제 이웃에 사는 선배도 사주 배워서 먹고 사는데요?
낭월 : 지금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의 이야기입니다.
손님 : 그러니깐요. 제가 뭘 어쨌다고요?
낭월 : 그 마음으로 10년을 즐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님 : 예? 시....십...년이라고요?
낭월 : 그렇습니다. 사실은 10년도 짧습니다. 
손님 : 아니, 6개월 정도면 공부는 다 되고, 간판 달면 되잖아요?
낭월 : 낭월은 그렇게 가르쳐 드릴 능력이 못 됩니다.
손님 : 광고를 보면, 다른 곳에서는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요?
낭월 : 아마도.... 잘... 못... 찾아 오신 것 같습니다.

노후대비로 사주공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또 말씀드립니다. 그 손님께서는 그냥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복덕방이라도 하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그렇게 해봐야 노후의 대비가 될 턱이 없기 때문에 거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노후를 위해서 오늘을 허비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나이도 중요하지 않고, 환경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중요합니다. 오늘 즐기지 못하는 공부는 내일도 즐겁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손님께는 매정하게 들렸겠지만, 그렇게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노후를 대비해서 많이도 준비합니다. 늙어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것을 담보로 하는지 둘러보면 흔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도 어쩌면 노후대비에 대한 기대감이 몇%는 있을 것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단순히 조상님의 은혜를 생각해서 대를 잇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보험회사에서는 노후를 담보로 돈을 뜯어내고 있습니다. 오지도 않을 노후를 위해서 온갖 두려움으로 분위기를 몰아갑니다. 노후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여기에서부터 사업가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물론, 노후에 쓸쓸한 삶을 살면서 천덕꾸러기로 비참한 나날을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들을 크게 확대해서 전시를 합니다.

'이런 꼴을 면하려면 노후를 대비하세요~!'

물론 완전히 틀렸다고는 하지 못할 말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렇게 대비하면 노후가 비참해지지 않을 확실한 보장이 될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낭월의 소견으로는, '오늘을 즐기지 못하면 노후도 비참하기는 매한 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오늘을 마음껏 즐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혜로운 분들의 말씀으로는 오늘을 살으라는 말씀만 남겨 있으니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보고 나서 죽기 전에 남긴 글들입니다. 오죽하면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게 했을까요?

'노세노세 젊어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이렇게도 명료하게 선지식(禪知識)이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노후를 위해서 인생을 탕진하는 것일까요? 그 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20년 후에 올지도 모르고 불행히도 명이 짧으면 영영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저당잡히고 머리가 지끈지끈한 오행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요?

 

2. 오늘을 살아가는 열정이 보물.


어제는 나이가 더 드신 손님이 방문을 했습니다. 68세였습니다. 사주공부를 하고 싶어서 찾아 왔다고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에 방문했던 손님이 겹치면서 이번에는 뭐라고 둘러대서 거절하나.... 하는 것이 낭월에게 주어진 당면과제였습니다.

낭월 : 잘 오셨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오셨는지요?
노인 : 어떤 인연이긴요. 선생에게 공부하고 싶어서 왔소.
낭월 : 공부는 해서 뭘 하시게요? 노후 대비라도...?
노인 : 노후 대비가 다 뭐여.
낭월 : 아니,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 공부하신다니까....
노인 : 공부하는데 나이를 보시는 겨?
낭월 : 뭐, 절대적이진 않지만 공부하시려는 뜻은 물어봅니다.
노인 : 왜 진작에 이 공부를 몰랐던가 싶어서 말이오.
낭월 : 그렇게 재미가 있으신가요?
노인 : 아! 재미가 다 뭐여. 오행을 생각하느라고 잠도 잊었구만.

'어? 이 어르신은 또 뭐지?'싶었습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낭월이 거절을 할 빌미를 찾기가 어렵잖아요. 말씀인즉 꼭꼭 맞는 말씀만 하시는데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오행 공부에 미쳐서 찾아오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낭월 : 그러시면 공부 하셔야 겠습니다.
노인 : 이 늙은이도 제자로 받아 주시려오?
낭월 : 당연하죠. 더욱 즐거운 오늘이 되도록 도움을 드릴 수가 있지 싶습니다.
노인 : 아이구~ 난 거절하시는 줄만 알고 쫄았지 뭡니까. 허허허~!
낭월 : 가끔은 노후를 대비하려고 공부하러 오시는 분도 계시거든요.
노인 : 아,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고 거절하시려고?
낭월 : 예. 하하~!
노인 : 그렇잖아도 잘 본다는 곳에 갔다가 툇짜를 맞았더랬소.
낭월 : 그러셨습니까?
노인 : 늙은 사람에게는 안 가르친다지 뭐요. 
낭월 : 참 서운하셨겠습니다. 
노인 : 낭월 선생도 거절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오.
낭월 : 즐겁게 공부해 보십시다.

벗님께서도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시죠? 이런 느낌입니다. '나는 지금 오행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미치겠단 말아야. 누군가 조금만 거들어 주면 더욱 신날텐데...'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뭐라고 하겠습니까. 꼼짝없이 사제의 인연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요? 저마다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젊음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라면 결국은 재미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재미가 있는 인생이야말로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 재미있으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을 것으로 확신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후 대비?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냥 오늘을 살다가 보면 노후도 되겠지요. 그리고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노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는 것은 인과의 논리에서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대비?

누가 오늘을 대비합니까? 하하하~! 그냥 오늘은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쌀독에 쌀이 떨어졌으면 쌀을 벌면 되고, 쌀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가한 소리 한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살 하는 사람은 내일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니까요.

내일을 생각하면 살아야지 왜 자살을 하느냐고요? 그니깐요. 이것이야말로 삶의 수수께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항상 즐겁고, 내일을 사는 사람은 항상 우울합니다. 그리고 자살을 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재미없는 일이 어디 또 있을까요?

미투로 인해서 자살을 한 연기자를 생각해 봤습니다. 대학에서 교수로 출세하여 명성을 얻었으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보겠고, 오늘을 즐긴답시고 제자들을 추행이나 폭행을 했으면 당연히 그 결과가 돌아올 것도 알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곶감꼬지에서 곶감을 빼 먹듯이 달콤하게 즐기다가 또 내일이 두려워서 자살을 하나 봅니다.

자살은 내일이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내일이 두려워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에 산다면,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하고, 고통을 즐기면 될텐데.... 죽을 사람은 죽을 길만 보인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오늘이 고통스러운데 즐길 수가 있겠느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낭월도 고통스러운 오늘을 적지 않게 보내봤습니다. 그렇게 정색을 하고 꾸짓지 않으셔도 알아 듣습니다. 하하~!

그런데 말이죠.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오늘을 즐길 방법을 생각지 못하는 사람과, 비록 오늘이 백 가지로 봐도 고통으로만 남을 상황임에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마약에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즐기자는 생각을 해 본다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노후를 대비하느라고, 고통스러운 사주팔자 공부를 하지 않아도 오늘을 즐겁게 살 길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괜히 묘비에다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쓰라는 유언을 남길 시간 조차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보낼 수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수03-경축

모쪼록 이 순간이 즐거우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8년 3월 1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