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 사람을 판단하는 저마다의 기준

작성일
2018-01-04 06:23
조회
9080

[725] 사람을 판단하는 저마다의 기준


 

20160321024710485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이제 무술년(戊戌年)이라고 하니까 무술년인가 싶기도 합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또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게 한 해를 즐겨보라는 뜻이겠거니 싶기도 합니다. 오늘 문득 어느 벗님이 놀러 와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한담에 쓸 이야깃거리를 하나 찾은 것 같아서 미끼를 덥석 물었습니다. 말이 되든 말든 뭔가 하나 쓰기는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하하~!

 

1. 소동파(蘇東坡)의 저울질


우선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송대(宋代)의 명문장으로 당송팔가(唐宋八家)에 오른 사람으로 소동파가 있습니다. 이름은 소식(蘇軾)이고, 아호(雅號)가 동파(東坡)인데, 이 호는 그가 황주로 귀양을 가서 살았던 지역의 이름을 따서 붙였던 모양입니다. 여하튼 그가 마지막에 자신의 초상화에 붙여놓은 시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心似已灰之木(심사이회지목) 마음은 흡사 타버린 숯과 같고
身如繫繫之舟(신여계계지주) 몸은 마치 얽혀있는 배와 같았노라
問汝平生功業(문여평생공업) 너의 평생 업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黃州惠州儋州(황주혜주담주) 황주 혜주 담주로 떠돌았을 뿐

이와 같은 자평(自評)을 붙여놓은 것을 보면 아마도 허허(虛虛)롭게 자유를 즐겼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던가 싶습니다. 그런 소동파가 한창 혈기왕성할 적에 벼슬이 좌천되어서 형주자사(荊州刺史)로 발령을 받아서 부임한 다음에 백성을 다스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지 인근의 옥천사로 승호(承皓) 화상을 찾아갔습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나름 고승(高僧)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던지라 지까짓게 고승이면 벽만 바라보고 앉아서 뭘 했으랴 싶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심심한데 산골 화상이나 골려주자는 심산(心算)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하~!

화상 : 대인은 뉘시오?

동파 : 아! 예, 저는 칭가입니다.

화상 : 칭가라면....?

동파 : 저울 칭(秤)자 칭가올습니다.

화상 : 오, 그 저울로 뭘 하는 것이오?

동파 : 이 저울을 들고 다니면서 도인들을 달아봅니다. 하하하~!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승호 화상이 갑자기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습니다.

“으학~~~!!!”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동파가 화상을 바라보자, 화상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1346164507-2441551885

화상 : 그래, 달아보니 몇 근이오?

동파 : ??????

노승의 외마디 비명 소리에 소동파는 귀가 먹먹하고 머릿속은 아득해서 도무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더랍니다. 한 방 오지게 얻어맞은 것을 비로소 깨닫고는 절하고 물러나서 말을 타고 가면서도 계속 그 화상의 말이 맴돌았지요. ‘몇 근이오?’ ‘내 공부가 몇 근이냐고~!’

동파는 계속 뇌까렸습니다. ‘몇 근이지?’  ‘도대체 몇 근이냐고....’

그러다가 말이 길을 멈췄습니다. 흠칫 놀란 동파가 앞을 바라보자 길이 끊긴 앞에는 거대한 폭포가 쏟아지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그 소리에 갑자기 막혔던 귀가 뚫리면서 문득 승호 화상의 공부가 예사롭지 않아서 감히 자신의 공부로는 저울질하는 것은 고사하고 하룻강아지 노릇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그길로 말을 돌려서 다시 화상을 찾아서 정중하게 3배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2. 취미생활(趣味生活)로 기준을 삼는 사람


흔히 취미생활(趣味生活)이라고 하나요? 뭘 즐기면서 사느냐는 것으로 사람의 평가를 하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품성이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가까이했다가는 내 돈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경계할 수도 있습니다.

Y008535000001_1_1

 

낚시를 즐긴다고 하면 스님들은 살생(殺生)을 일삼으니 반드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사람을 악우(惡友)라고 하기도 합니다. 취미로도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012020101033443011002_b

그렇다면 봉사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다고 하면 매우 선량(善良)한 마음을 갖고있는 사람이라고 판단을 하겠네요. 등산(登山)을 좋아한다고 하면 자연과 더불어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연마하는 기백(氣魄)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고,

casino-7759911

도박(賭博)을 즐긴다고 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할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여유로운 경제적인 환경에서 얼마나 자신을 절제하고 취미를 즐기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고 이렇게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겠네요.

이러한 판단은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낚시만 해도 선량해서 남들과 잘 어울려서 그들의 부탁을 다 거절할 수도 없어서 그냥 홀로 물을 바라보면서 수양하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잡은 고기는 귀가하면서 모두 풀어주고 돌아서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봉사할 돈을 걷어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그 사람의 취미만 보고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도 반드시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th

취미가 골프라고 하거나, 만화를 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반응도 같을까요? 아마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다만, 놀이에 따라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에는 골프놀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왠지 급이 높다고 생각하고, 만화를 본다는 사람은 어린아이로 취급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9746382

그리고 취미를 통해서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골프를 치러 다닌다고 하려고 비싼 골프채를 준비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봤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그것이 단순하게 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면 그만입니다. 축구나 골프나 다 같은 놀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남에게 과시(誇示)하기 위한 목적으로 골프 가방을 차에 싣고 다닌다면 이미 그것은 놀이가 아니고 짐이겠네요.

1033186_092036093295_2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낭월도 취미가 바둑이라고 하면 왠지 사유(思惟)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장기(將棋)라고 하면 투쟁(鬪爭)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느껴지기는 하네요. 다만 이러한 것을 통해서 심리적인 성향을 읽는 용도라면 몰라도 그것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것은 좀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출신학교(出身學校)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


아마도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대학은 스카이로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부모들이 밤잠을 아끼면서 자녀들을 채찍질하는 것을 결코 아낄 마음이 없는 것이려니 싶습니다. 그 사람의 절대적인 평가 기준은 무슨 대학교를 졸업했느냐는 것으로 삼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요 인사들의 학력을 보면 거의 서울대학교 출신들이기도 합니다.

ga4_871390_166_-

또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는 미덕(?)을 발휘하여 계속해서 이 순환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고 노무현 대통령이 상고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기도 했었네요. 이러한 분위기만 봐도 출세를 하고 자신의 지위를 높은 곳으로 올려놓으려면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할 사회적인 선택사항(選擇事項)을 넘어서 필수(必須)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습니다.

0130000

 

그러다 보니까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공식화(公式化)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처음 만나면 대뜸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부터 묻고 싶어지는 것은 이 시대의 보편적인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물론 전문분야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노력한 사람이겠지만 특히 무슨 박사가 아니면 일단 대상에서 제외되는 모양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만연(漫然)한 까닭에 누구라도 뭔가 해 보려고 하면 그 분야에서 해당하는 대학교를 졸업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을 받지 않을 수 없는가 봅니다.

IE001453241_STD

그것을 명함(名銜)이라고 하나요? 명함을 내밀려면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서는 손이 부끄럽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이 시대가 만들어 놓은 교육상품(敎育商品)의 미신(迷信)을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으려나 싶기도 합니다. 여하튼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름 성적순으로 배출되는 대학교의 출신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보이네요.

예전에 어느 스님과 동행을 했더니 그분이 동행한 스님에게 묻기를, 어느 대학을 나오셨느냐고요. 당연히 스님도 대학을 나왔으려니 하고 무심코 던진 말이었겠지만 그 스님께는 참 웃기는 이야기였죠. 동진출가(童眞出家)로 8세에 입산해서 강원과 선원을 누비면서 수행을 한 사람에게 속인들이 어줍잖은 명함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대학을, 그것도 단정적으로 묻는 것을 보면서 미소를 짓더니만 낭월에게 말했습니다. ‘그만 갑시다.’라고요. 그래서 낭월도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학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박사님은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하하하~!

 

4. 지위(地位)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사장님, 회장님, 총장님, 교수님, 원장님, 추기경님, 종정님 등등의 호칭이 그 사람의 품격에 대해서 일부분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점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직업에 대한 단순한 호칭일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권력이 되었을 적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어쩌면 이미 상상할 수가 있는 온갖 현상들이 일어나게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 봅니다.

1457753471660863

‘스님이 그럴 리가 있느냐?’는 무슨 의미일까요? 스님도 사람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바라보면 생기지 않을 일도, 지위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게 되면 그 지위를 이용해서 온갖 못된 짓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그러한 현상들을 주변에서 늘 접하고 있는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80893_6

그러한 꼴을 봤으면 각성(覺醒)을 하고 지위에 속지 말고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데 여전히 지위는 또 다른 권력(權力)이 되고 있다는 것을 줄기차게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뭘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마도 암암리에 그러한 현상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라도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기를 쓰고 그러한 지위를 얻어내려고 또 아등바등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접할 수가 있습니다. 지위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때는 취미 생활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귀엽기조차 하다고 하겠네요. 이와 같은 현상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도 적용이 되어서 학교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계급의 서열화가 유지되고 있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또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점점 오염되고 병들고 썩어가는 과정이 아니겠나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5. 생각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


어떤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생각하는 세계를 이해하기 전에는 판단을 보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굴만 봐서도 모르고, 지위만 봐서도 모르고, 경제력만 봐서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부류들이지요.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분류법의 종합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전혀 다른 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판단을 유보(留保)하는 것은 언뜻 보면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머뭇거리는 것이 맞기도 합니다. 왜 머뭇거리느냐면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판단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분이라고 봐야 할 것인지를 단언(斷言)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저께 봤을 적에는 돈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오늘 보니까 깨달음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 ‘엉? 뭐지?’라고 했는데 오늘 보니까 도박에 푹 빠져있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누구라도 혼란스러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학교는 명문 대학을 나왔는데 허름한 배낭을 하나 짊어지고 천하를 유람하는 것을 보거나, 완전히 일자무식(一字無識)인데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논하는 것에서는 완벽해 보이기조차 한다면 말이죠.

그래서 머뭇거리면서 판단에 확신이 설 때까지는 결정하지 못하는 형태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느냐면 그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서 낭월도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렸기 때문입니다.

 

6.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


아는 사람 중에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김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연말이라고 사업을 하는 제자인 정 사장의 초대를 받았답니다. 그는 모 대학의 교수이고, 제자가 초대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더랍니다. 어느 근사한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 갔더니 문 앞에서 기다리던 제자가 반겨 맞으면서 안으로 안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 교수와 동행한 일행도 두 명이 있어서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일상 있는 일이었답니다.

그런데 정 사장과 김 교수는 따로 테이블을 마련하고 메뉴도 비싸 보이는 것으로 주문을 했는데, 정작 동행한 사람들에게는 자리를 따로 마련하고 메뉴도 저렴한 것으로 주문하는 것을 보면서부터 심기가 불편해졌더랍니다. 예전에는 사려(思慮)가 깊은 사람이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날 하는 행동을 보고서 실망을 했다는 것이지요.

교수 : 낭월 선생, 이런 사람은 어떤 형태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일까요?

낭월 :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지위(地位)로 분류하는 것 같습니다.

교수 :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얻은 지위가 그 사람의 기준인가요?

낭월 : 그렇게 보입니다. 중천(中賤)한 사람이 바라보는 기준이죠.

교수 : 중천하다고 단정하시는 이유라도....?

낭월 :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하천(下賤)입니다.

교수 : 그건 무엇을 말하는 거죠?

낭월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교수 : 이를테면 재물, 주택, 자동차와 같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씀하나요?

낭월 : 그런 셈입니다. 자신이 확실하게 그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물질이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죠.

교수 : 아하, 그래서 하천한 사람은 물질로 판단하는 것이었군요.

낭월 : 물질적인 것 외에는 평가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수 :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 정 사장은 중천이라고 본 이유가....?

낭월 : 물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위로 보는 까닭입니다. 지위로 보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권력을 믿는 것이죠. 이런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의 지위가 교수라고 하면 그것만으로 등급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만으로도 훨씬 높은 관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잖아요? 하하~!

교수 :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천(上賤)도 있습니까?

낭월 : 상천이 어디 있겠어요. 하천한 것보다는 낫다는 의미일 뿐이죠.

교수 : 아, 그렇겠습니다. 그럼 중천보다 윗 단계가 뭘까요?

낭월 : 아마도, 변화하는 것으로 분류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교수 : 예? 변화하는 것이 뭐죠?

낭월 : 지금의 자리가 어떤 곳이거나 관계없이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죠. 말하자면 수행(修行)을 하거나, 독서(讀書)를 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귀(下貴)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교수 : 교수 노릇을 한 지도 20년이 지났지만 ‘하귀’라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낭월 : 아마도 그러실 겁니다. 낭월도 처음 해 보는 말이니까요. 하하~!

교수 : 왜 하귀가 됩니까? 조금만 더 설명을 부탁드려야 하겠네요.

낭월 : 오늘은 바쁘지 않으신가 봅니다?

교수 : 예, 종강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놀러도 다닙니다. 하하~!

낭월 : 참 좋은 직업인 것은 분명합니다. 부럽네요.

교수 : 부러울 것도 없습니다. 여기도 알고 보면 층층시하(層層侍下)거든요.

낭월 : 하긴.....

교수 : 하귀가 무슨 뜻인가요?

낭월 : 귀(貴)하긴 하지만 아직은 급이 낮아서 겨우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교수 : 아, 그러니까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천(賤)한 것은 면하나요?

낭월 : 김 교수는 전공이 공학(工學)이지만 틈만 나면 철학(哲學)에 관심을 보이시잖아요?

교수 : 그렇다면 저도 하귀는 되는 겁니까?

낭월 : 면학(勉學)에 대해서 깨달은 것은 최소한 하귀는 된다고 봐야죠.

교수 : 에구, 그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데요?

낭월 : 그래서 ‘최소한’이라고 하잖아요. 하하하~!

교수 : 그런데 귀(貴)의 글자 뜻이 뭘까요?

낭월 : 글자를 풀이해 보자는 말씀이세요?

교수 : 낭월 선생의 글자 풀이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거든요. 하하~!

낭월 : 재미있으시다면 얼마든지 풀어 드리죠.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교수 : 우선 보기에 돈을 나타내는 패(貝)가 보입니다. 귀하려면 돈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돈이 없이는 귀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낭월 : 하여튼 김 교수는 못 말려요. 답을 유도하는 능력은 그대로 제자들에게도 활용하시겠지 싶습니다.

교수 : 아이들이 어찌나 교활한지 논문 과제를 해 오는 것에서 자신이 궁리한 생각인지, 어딘가에서 훔쳐 온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보니까 유도신문(誘導訊問)을 하는 방법이 가끔은 필요합니다. 하하하~!

낭월 : 아하~! 그러실 만도 하겠네요. (끄덕끄덕~)

교수 : 고인들도 돈의 가치를 귀하게 평가했다는 것이죠?

낭월 : 그렇게 볼 수도 있고요.

교수 : 그럼,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낭월 : 우선 귀(貴)는 세 개의 글자가 조합되어 있다는 것이 보이나요?

교수 : 세 글자요? 두 개가 아니고요?

낭월 : 언뜻 보면 두 글자 같지만, 자세히 보면 세 글자입니다.

교수 : 그러니까, 가운데 중(中),  한일(一),  조개 패(貝)로 봐야 한다는 말씀이죠?

낭월 : 그래서 낭월이 김 교수를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척’하면 ‘착’하시니. 하하하~!

교수 : 중(中)은 무슨 뜻일까요?

낭월 : 치우치지 않음을 뜻하겠지 싶습니다.

교수 : 예? 귀(貴)에 그런 뜻이 있었다니 뜻밖입니다.

낭월 : 치우치지 않아야 귀한 것인데 그것도 지속성(持續性)이 필요하죠.

교수 : 지속성이라면 일관성(一貫性)을 말하는 것이군요. 그래서 한 일(一)?

낭월 : 맞습니다.

교수 : 그렇다면 치우치지 않은 일관성으로 돈을 귀하게 여긴다?

낭월 : 어허~! 이거 왜 이러십니까? 김 교수 답지 않쿠로. 하하하~!

교수 : 아니, 말이 되지 않아서 갸우뚱거립니다.....

낭월 : 패(貝)를 오직 돈으로만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교수 : 그럼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낭월 : 패(貝)는 돈도 되지만 중요(重要)하게 여긴다는 뜻도 됩니다.

교수 : 그렇다면, 치우치지 않고 일관성이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낭월 :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귀(貴)한 것이죠.

교수 : 그렇다면 천(賤)한 것은 어떻게 되는 거죠?

낭월 : 천(賤)은 돈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죠.

교수 : 돈은 앞의 패(貝)를 봐서 알겠는데, 싸우는 것은 왜죠?

낭월 : 과(戈)의 뜻을 생각하면 될텐데요?

교수 : 과(戈)는 창이잖아요? 창이 두 개네요. 왜 창이 두 개죠? 칼이 될 수도 있잖아요?

낭월 : 역시 김 교수십니다. 하하하~!

교수 : 예? 무슨 뜻인지.....?

낭월 : 창에서 칼을 떠올리시니 말이죠.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글자를 만들어 보시죠.

교수 : 그러니까.... 패(貝)에 칼 도(刂)를 붙이면 칙(則)이 되네요. 법칙(法則)인가요?

낭월 : 맞습니다. 강제성(强制性)이 있죠. 제(制)에도 칼이 보이잖아요. 칼은 공격하는 것입니다. 율법(律法)에 따라서 공격하면 법칙(法則)이 되고, 이치에 따라서 공격하면 원칙(原則)이 되는 거죠.

교수 : 와우~! 낭월 선생의 글자 풀이는 언제 들어도 신기하단 말이죠. 하하하~!

낭월 : 그야, 김 교수가 알아들을 줄 아니까 말하죠. 하하~!

교수 : 그런데, 칼이 붙으면 법칙이 되는데 창이 붙으면 천하게 되죠? 칼과 창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가요?

낭월 : 오호~! 감 잡으셨네요. 맞습니다. 창과 칼의 차이를 아시면 답이 나옵니다.

교수 : 그건 병법(兵法)을 공부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요? 설명해 주세요.

낭월 : 아니, 낭월인들 병법을 연구해서 알겠어요? 그냥 무협(武俠) 영화만 두어 편 보면 바로 알 수가 있는 건데요.

교수 : 원래 무협 영화나 소설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으로 읽지를 않아서.... (긁적긁적)

낭월 : 물론 시간 낭비이긴 하죠. 그래도 시간과 바꿀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항상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라고 봅니다.

교수 : 맞아요. 늘 해 주신 말씀인데, 자꾸 깜빡깜빡합니다.

낭월 : 칼은 공격(攻擊)하는 무기(武器)이고, 창은 수비(守備)하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법칙이든 원칙이든 공격적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칙(原則)에 맞게 법칙(法則)을 만들어 놨는데, 이것을 어기면 엄벌(嚴罰)이 따르고, 그 벌(罰)에도 칼[刂]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교수 : 정말..... 감탄입니다.

낭월 : 감탄하지 말고 즐기시면 됩니다. 그냥 글자놀이잖아요. 아이들이 카드에 자동차 그림이 있는 것을 보면서 자동차라는 글자를 배우듯이 말입니다. 하하하~!

교수 : 창에 대한 비유도 좀 해 주세요.

낭월 : 창은 지키는 것이고, 지키는 것 중에서도 지구를 지키는 글자로 무(戊)가 있습니다. 무에 창이 보이시나요?

교수 : 무(戊)는 별(丿)과 과(戈)로 된 글자인가요? 그렇다면 별(丿)을 창으로 지킨다는 말인가요? 삐침 별(丿)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낭월 : 무슨 뜻인지 모를 적에는 글자로 보지말고 그림으로 보면 됩니다.

교수 : 그림으로 보면.... 칼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낭월 : 맞습니다. 무(戊)는 칼과 창으로 지구를 시키는 것이니까요. 칼[丿]로는 침입자를 공격하고, 창[戈]으로는 지구의 생명체를 지키는 것이니까요.

교수 : 정말 무궁무진(無窮無盡)합니다. 그래서 천(賤)은 돈을 지키는 것이라는 뜻인 거죠?

낭월 : 맞습니다. 그것도 창을 하나만 들고 지키면 도둑이 들어올지 몰라서 두 개를 겹으로 들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우스쾅스럽겠어요. 칼을 두 자루 들고 있는 것은 그래도 ‘쌍칼’이라고나 하지만, ‘쌍창’이라니 말이죠. 하하하~!

교수 : 정말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렇다면 돈은 노리는 자들이 워낙 많다는 의미도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가 되나요?

낭월 : 그렇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돈으로 역사가 시작되고 또 망하면서 흘러온 세월이니까요.

교수 :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까 귀천(貴賤)의 의미가 다시 새롭게 다가옵니다. 같은 조개 패(貝)인데도 전혀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는 것도 겸해서 배우고요.

낭월 : 맞습니다. 이것이 한자(漢字)의 매력이기도 하죠.

교수 : 치우치지 않지만, 일관성이 없다면 귀한 것이 아니네요?

낭월 : 아하~! 이제 일(一)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죠? 맞습니다. 일관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가장 일관성이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물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그러한 현상을 법(法)이라고 이름을 붙였겠죠?

교수 : 물 수(水)와 갈 거(去)를 붙여서 법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라고 한 고승의 말도 이러한 맥락(脈絡)과 닿아 있네요? 그렇다면 도는 귀한 것이라는 의미가 되겠네요?

낭월 : 아니, 여태 이야기했는데 도(道)와 귀(貴)가 둘로 보이셨단 말입니까?

교수 : 예? 그러니까...... 아, 그 둘은 같은 것이었네요. 그렇다면 도를 생각하는 사람은 최소한 하귀(下貴)라도 된다는 말씀이고, 그 도는 변화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정리가 되는 것이었네요. 제가 잘 이해한 것인가요?

낭월 : 제대로 정리하셨습니다. 역시~!

교수 : 그렇다면 내친김에 빈부(貧富)에 대해서도 조금만 설명을 해 주시죠. 원래 대부분의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지에는 부귀빈천(富貴貧賤)이 자리 잡고 있잖아요?

낭월 :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데 그래도 괜찮겠죠?

교수 : 괜찮다 뿐이겠습니까? 언제부터 한 번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걸요.

낭월 : 그렇다면 어디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부(富) 자를 분석해 보시죠. 그건 김 교수도 가능할 것 같으니까요.

교수 : 부(富)는 네 개의 글자로 조합되었네요. 집 면(宀),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인데, 이것을 조합하면, 집 안에 입이 하나이고, 밭이 있으면 1가구에 1세대에 땅이 있다는 뜻인가요? 와우~ 부자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는 조개 패(貝)가 없죠?

낭월 : 돈 대신에 뭐가 있습니까?

교수 : 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보다 가치가 큰 것이 밭이라는 말인가요?

낭월 : 왜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동산(動産)보다 부동산(不動産)에 관심을 두고 몰입하는 이유도 그것이라고 봅니다만....

교수 : 아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것이었군요. 부자는 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네요. 땅이 있으면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수가 있으니까 말이죠. 동산은 돈이고, 돈은 패(貝)인데, 부동산은 땅이고, 땅은 전(田)이 되는 거죠?

낭월 :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즉 돈으로 논하는 것은 부자와는 연관이 없다는 것이죠. 보통 생각하기에는 돈이 많으면 부자가 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땅이 많아야 부자이지,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인 줄을 고인들은 통찰(洞察)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교수 : 정말 그렇네요. 그럼 가난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낭월 : 가난할 빈(貧)을 보면 되잖아요? 뭐 어렵겠어요. 그 정도는 충분히 해석하시니까 어디 풀이를 해 보세요.

교수 : 그래 볼까요? 빈(貧)은 나눌 분(分)과 조개 패(貝)로 되어 있네요. 가난한 사람은 돈을 헤아리고 있는 사람인가요?

낭월 : 점점 사유(思惟)가 명상(瞑想)으로 이어지십니다. 그런데, 나눌 분(分)도 분석하면 또 재미있는데요?

교수 : 나눌 분(分)은 어떻게 분석하죠? 여덟 팔(八)과 칼 도(刀)인가요? 그렇게 되면 여덟 개의 칼로 재물을 나누는 것이란 말인가요? 정말 참혹합니다. 하하하~!

낭월 : 칼이 나온 것으로 봐서 돈을 빼앗는 의미도 포함되겠네요.

교수 : 그러니까 빈(貧)은 여덟 개의 칼로 돈을 빼앗는 것이고, 천(賤)은 그 돈을 두 개의 창으로 지키고 있는 것인가요?

낭월 : 이제 김 교수도 글자 뜯어먹는 재미에 완전히 푹 빠지셨습니다. 하하하~!

교수 :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를 따지고 그것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이고, 천한 사람이라는 말도 되네요. 그래도 그 재산이 1백억이라고 하면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낭월 : 그렇지 싶기는 한데 고인들은 그렇게 보지 않으셨나 보네요.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헤아리고 있으면 가난한 것으로 봤다는 뜻이니까요.

교수 : 그렇다면 재산의 정도로 등급을 논한다는 것은 가난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셈인가요? 이것은 충격적(衝擊的)인데요.

낭월 : 그래서 천(賤)에도 상중하(上中下)가 있고, 귀(貴)에도 상중하(上中下)가 있는 것이려니 합니다.

교수 : 그렇다면 상귀(上貴)는 어떤 사람이 해당할까요?

낭월 : 그야 낭월도 모르죠. 다만 장자(莊子) 쯤이면 해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수 : 이제야 왜 정 사장이 중천은 된다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네요. 그래도 스승을 대접할 줄은 안다는 뜻이었네요.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인은 이제 한자를 파자(破字)하는 재미를 들이셔서 툭하면 글자를 톡으로 보내옵니다. 자신이 해석한 것이 맞느냐면서, 혹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또 재미있습니다. 하하~!

 

7. 기준이 없는 것이 최상의 기준


물론 낭월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가장 좋은 기준은 분별심(分別心)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되네요. 귀(貴)도 아니고, 천(賤)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머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빈(貧)도 아니고 부(富)도 아닌 그 어디쯤에서 살아간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1557_img23

그래서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을 떠난 자리에 머물면서 도락(道樂)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것이려니 싶은 마음으로 잠시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봤습니다. 분별심(分別心)에도 벌써 칼이 등장하고 있네요. 그럼 누군가는 다치겠죠? 어떻게 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으면서 기쁨만 누릴 수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한 방법이야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다양하겠습니다만 그래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Y314692099

올해는 2018년이고, 태세(太歲)는 무술년(戊戌年)입니다. 무(戊)는 건강을 지키고, 술(戌)은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수(戍)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무술년에는 들어온 돈도 잘 지켜서 곤궁(困窮)을 면하시고, 가정을 잘 지켜서 행복(幸福)한 보금자리가 되시기를 축원(祝願)드립니다. 돈이 없이 남에게 베풀기 어렵고, 가정의 안정(安定)이 없이 마음이 편하기도 어려운 것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또 기쁨이 충만(充滿)된 오늘 하루라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018년 1월 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