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길이 없다
산에는 길이 없다
오랜만에 뒷산을 올라가 볼까 싶어서 슬슬 나섰다.
산에 살면서 산을 잘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길이 사나워서다.
어둠이 내려깔리면 돼지들이 먹거리를 찾아서 슬슬 내려오는 까닭도 있기는 하다.
계룡산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는 산돼지들이기도 하다.
길은 딱 여기 까지다.
그나마 산소가 있어서 그 덕분에 효자효녀들이 만들어 놓은 까닭이다.
오늘은 조금 더 올라가 보려고 신발도 나름 챙겨 신었는데....
이 산골에 웬 전기울타리인가 싶지만 이또한 돼지들의 난동을 막기 위해서임을 안다.
뭐든 그냥 두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 하긴 먹을 것이 없을 계절이기도 하지만서도.....
방치하면 이렇게 된다. 명당 흉당이 없다. 거의 파묘 수준이다. ㅠㅠ
그래서 돈들여서 울타리를 쳐야만 했던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여하튼 그 덕에 길이 길로 존재하고 있으니 또한 조상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소가 있는 곳까지만이다.
길로 보이긴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길이 아니다.
어쩌면 돼지들의 통로일 수도 있을 게다.
여기부터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산으로 더 가보려면 노루 길 토끼 길을 찾으면 될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미 심적으로 더 오르고 싶지 않다는 신호가 계속 울린다.
돌 틈에 뿌리내린 생강나무꽃은 이미 향기를 잃었다.
저 위로 올라가면 왠지 돼지네 집을 만날 것만 같기도 하다.
그래서 슬슬 무서운 생각이 뒷꼭지를 잡아 당긴다.
위를 한 번 바라보고 아래를 두 번 바라본다.
가? 말어? 가? 말어?
아직 뱀이 나올 시기가 아닌 것은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그래서 걸음을 돌렸다.
더 갈 마음이 싹~ 가셨다.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폭으로 봐서 노루인 듯 싶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제 저녁에는 장독대 옆까지 먹이를 찾아 왔었던 모양이다.
주둥이로 바닥을 훑고 지나간 흔적이 생생하다.
그래도 운동 삼아 산을 올랐으니 등산한 걸로 퉁치자.
맞아!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야
그냥 마당에서 바라보는 것이 틀림없어!
이렇게 최면을 걸어 놓으면 갈등은 안개가 흩어지듯이 사라진다.
바라보면 저렇게 평화롭기만 한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