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 사주쟁이로 살아남기

작성일
2018-10-17 10:19
조회
7598

[740] 사주쟁이로 살아남기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쌀랑~한 기온이 너무 좋은 10월의 호시절입니다. 환절기에 건강만 챙기시면 되겠습니다. 미세먼지.... 잊지 않아야 할 숙제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뭔가 생각을 해 볼까 하다가 이 문제를 떠올려 봤습니다. 누구나 고민이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못하는 문제일 수도 있는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것도 좋아하는 오행 공부를 하면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 없을까.... 하는 점으로 고민을 해 보신 벗님께 드리는 작은 안내이기도 합니다. 하하~!

 

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정(熱情)


낭월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명리학을 공부하더라도 이것은 예외일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단언컨대, 천하에서 이뤄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홉의 쌀로 밥을 짓더라도 불이 있어야 하고,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사주쟁이가 되면 먹고 살 길은 해결이 될 것인지를 묻기 전에 우선 자신에게 이 길을 완료할 수가 있는 열정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시라고 권합니다.

열정이 없다면 더 이상 진행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결과는 없기 때문입니다. 열이 있으면 발효(醱酵)가 되지만 열이 없으면 부패(腐敗)가 될 뿐입니다. 발효가 되면 신기한 영약이 되지만 부패가 되면 버리는 것조차도 번거로울 따름이니까요.

열정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정이 있으면 그는 변화합니다. 새로운 학문을 하나 익히는데 웬만한 열정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몸을 불사른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옳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열정이 있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방문했던 손님이 생각나네요.

낭월 : 인연이 되셔서 반갑습니다. 궁금하신 점은 뭔가요?
손님 : 실은 스님의 책을 좀 읽었습니다.
낭월 : 아이구~ 그럼 독자시네요. 더욱 반갑습니다.
손님 : 그러다 보니까 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낭월 : 마음을 내셨으면 망설이지 말고 시작하시면 됩니다.
손님 : 그런데.... 나이가 이미 많이 들어서 걱정입니다.
낭월 : 나이요? 몇이신데요?
손님 : 예순셋이나 되었습니다. 환갑 진갑 다 지났지요.
낭월 : 그럼 공부를 못하시겠네요? 어떡해요?
손님 : 마음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몸이 늙어서 자신이 없습니다.
낭월 : 열정은 있으시고요?
손님 : 열정이야 있죠. 열정 만으로 된다면야 뭐..
낭월 : 열정 만으로 됩니다. 이미 다 갖추셨네요.

물론, 이러한 말을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기에 낭월학당을 찾아 주시는 많은 벗님 중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실 것으로 짐작을 해 봅니다. 20세든 70세든 열정이면 됩니다. 이것은 스스로 겪어 봤고, 지켜봤고, 확인했습니다. 믿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2. 열정 다음으로는 노력(努力)


열정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불타는 의지면 되는 까닭입니다. 다만 노력에는 돈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책을 사 보거나, 인터넷으로 동영상 강의를 유로로 보거나, 혹은 직접 지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노력이란 이러한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3년 전에 상담을 하셨던 여성이 다짜고짜 수업료를 입금시켰습니다. 무슨 일인지를 확인해 보니까, 겨우겨우 3년을 걸쳐서 만든 수업료인데 행여 무슨 일이 생겨서 또 공부하러 못 가게 될까봐 적금을 찾자마자 바로 송금부터 했더랍니다. 이러한 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라고 할만 하겠습니다.

다만, '돈'이 아니고 '노력'이라고 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반드시 돈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노력에는 책을 읽는 것이 포함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여기저기 잘 뒤져 보면 공부를 하는데 크게 아쉽지 않을 정도의 자료들을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조차도 노력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죠? 하하~!

저마다 말 못할 여건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두를 다 만족하면서 공부를 할 상황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당연히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노력(努力)의 노(努)에는 종노(奴)가 머리에 얹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처럼 노력을 했느냐는 물음이 아닐까요? 주인의 분부를 이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종처럼 학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3. 열정과 노력이 있다면 표준(標準)


열정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 표준은 왜 묻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느냐?'지요. 사주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묻는다면 다시 물어야 합니다. 열정과 노력은 하고 있는지를 말이지요. 대부분 표준을 묻는 사람은 아직 마음에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으로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간을 보고'있는 상태거든요. 이것을 해도 될지... 어떤 선생을 찾아가야 할지... 무슨 책을 봐야 할지... 동영상을 봐야 할지... 참으로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은 흔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휴대폰을 충전하려고 해도 표준의 규격이 맞아야 꽂을 수가 있는 것인데 학문을 공부하는데 표준도 없이 닥치는 대로 한다는 것도 자칫하면 세월을 물처럼 사용하고서도 정작 살아남는 도구로는 사용을 못하고 있는 모습들을 드물지 않게 보게 됩니다.

무슨 책을 봐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책은 많지만 어느 책이 기준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시콜시리즈를 보시라고 권합니다. 나름대로 입문서(入門書)의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저술한 까닭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무슨 책을 보더라도 혼란의 구렁텅이에서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표준이 없이 되는 대로 집적거리다가는 아까운 시간을 탄식하면서 방향을 전환하는 많은 입문포기자들입니다. 삶의 여정에서 꽤 재미있을 것으로 보이는 명리학을 배워보겠다는 마음을 먹고서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포기하는 장면은 아무래도 안타까울 수밖에요.

그러니까 사주쟁이로 밥을 먹고 살아 남으려면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표준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표준이냐고 묻고 싶으실랑가요? 그렇다면 일단 잘 따라오고 계신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4. 자평명리학의 표준은 오행(五行)


뭐, 표준이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발한 비법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오로지 필요로 하는 것은 오행입니다. 오행으로만 표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치는 오행을 기준으로 해서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오행을 떠나서 대입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비표준(非標準)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떻게 연결을 해서라도 오행과 선(線)이 닿아야 합니다.

만약에 주역(周易)을 공부하는 표준이라고 하다면 당연히 음양(陰陽)입니다. 주역은 음양으로 바탕을 이루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변화를 주시하고 대입하고 해석하는 방면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화무쌍(變化無雙)은 세상이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음양의 관점으로 풀이한다면 살펴 볼 여지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음양이냐 오행이냐 그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낭월은 오행학입니다. 음양의 변화무쌍한 것에는 흠뻑 빠져들 수가 없었는데 오행의 요지부동(搖之不動)한 것에는 완전히 매료가 되어서 어느 사이 30년의 세월을 그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는 것만 봐도 학문의 인연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표준은 일관성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표준만 잘 세워 놓으면 혼란에 빠지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보면 개울도 만나고 언덕도 만나고, 때로는 높은 산도 넘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여정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나침반(羅針盤)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더라도 항상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고 진행을 하니까요.

길을 가다가 참으로 답답한 상황은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질 경우입니다. 앞은 캄캄하고 뒤는 막막할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앞으로 가자니 무섭고, 물러나자니 아깝고, 그래서 그 언저리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동동거리고 있는 모습이지요. 부디 그런 상황에 처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행자에게는 나침반이 필요하고, 자평학인(子平學人)에게는 오행이 필요합니다. 그 외의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입니다. 다만, 오행을 놓친다면 공부는 그걸로 끝입니다. 오행을 확장해서 십간(十干)까지 포함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십간에는 오행의 변화인 음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음양은 오행을 알고 난 다음에서야 필요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처음도 오행
다음도 오행
끝에도 오행
오로지 오행

오행을 알게 되면 점점 자연의 모습이 오행으로 치환(置換)이 됩니다. 그리고는 그 신기한 조합에 스스로 감동하고 희열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이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멈출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을 일러서.

「오행신(五行神)의 강림(降臨)」

이라고 부릅니다. 그냥 낭월이 그렇게 지었습니다. 특별히 어느 신령이 감응한다고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흥겨우면 신명(神明)이 나듯이, 그렇게 오행의 공부가 즐겁다는 의미이니까요. 하하~!

5년이 된 제자가 톡을 보냅니다. 오행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을 왜 진작에 몰랐느냐는 감탄사입니다. 물론 고맙지요.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생각했던 오행이 날이 가고 달이 깊어지면서 점점 자연의 모습과 하나가 되어가는가 싶습니다. 이것이 매우 정상적인 흐름입니다. 만약에 사주 공부를 했는데도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아마도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가 싶습니다. 하하~!

 

5. 내 연장을 믿는 두둑한 배짱


침쟁이는 침을 믿습니다. 목사는 십자가를 믿고, 화상은 목탁을 믿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연장이 있고, 그것은 믿을 만 해야 합니다. 목수는 대패를 믿고 석수는 정을 믿습니다. 그래야 그 연장도 믿음에 대한 보답을 합니다. 그럼 사주쟁이는요? 그야 당연히 오행을 믿어야죠.

오행이 연장이고, 십간이 응용입니다. 십이지(12支)는 활용이고, 십성(十星)은 비유입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연장을 사용할 수가 있으면 공부는 제법 깊어졌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자신의 연장을 못 믿으면요? 그야 꼴이 우습게 되는 거죠. 바로 책을 덮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가야죠. 미적거리고 머뭇거려봐야 국물도 없습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입니다.

낭월은 부처와 보살은 못 믿어도 오행은 믿습니다. 오행의 이치를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어보면 그것은 모른다고 밖에 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믿습니다. 어떻게 오행을 믿느냐고 물으면, 춘하추동을 믿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춘하추동으로 미뤄서 오행을 유추하는 까닭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대신해서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렵사리 간판을 달고 월세를 걱정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모처럼 찾아 온 사람이 앞에 앉아 있을 적에 그 떨림이란.... 겪어 본 사람만 안다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공부를 할 적에는 이만하면 되었지 싶어도 막상 손님을 받으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생각은 하나도 나지 않기 마련입니다.

손님이 가고 나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등에는 땀이 배고, 목은 바싹 마르기 십상이지요. 비록 이러한 상황일지라도 잃으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오행입니다. 오행의 관점으로 풀이하고 맞고 말고는 그 다음의 문제라고 생각하겠다는 뚝심이 필요합니다. 초보상담가의 3대 원칙입니다.

오행은 믿는다.
손님은 안 믿는다.

손님은 믿는다.
손님의 말은 안 믿는다.

손님의 말은 믿는다.
손님의 기억은 안 믿는다.

처음부터 맞고 말고에 신경을 쓰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상담을 못 합니다. 맞거나 말거나 그것은 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신도 엉망이고 운세도 엉망이고 가족도 엉망진창입니다. 표준이 흐트러졌기 때문에 아무 것도 사용하고 적용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요즘도 제자들의 그러한 하소연이 심심찮게 날아옵니다.

제자 : 스승님, 자신이 없어서 상담을 못하겠어요.
낭월 : 왜? 뭔 손님을 받았길래 그려?
제자 : 생일을 불러주길래 배운대로 강약을 보고 용신을 찾았죠.
낭월 : 그랬겠지. 일러준 대로 질 했구먼 뭐가 문제야?
제자 : 근데 그게 안 맞다는 거예요. 미치겠어요... ㅠㅠ
낭월 : 원 미칠 일도 참 많다.
제자 : 스승님께 공부를 할 때는 즐거웠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낭월 : 공부를 할 적에 즐거웠으면 법을 펼적에도 즐거워야지. 하하~!
제자 : 근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서 문제죠. 어떡해요? 
낭월 : 사주는 정확한지 확인해 봤어?
제자 : 그럼요. 엄마가 저녁 9시이라고 했다 잖아요. 그럼 술시죠?
낭월 : 그 말이 사실이라면 술시네.
제자 : 예? 무슨 말씀이세요?
낭월 : 자기가 태어나면서 시계를 본 것은 아니잖아?
제자 : 그야 당연하죠. 스승님도 참... 호호~!
낭월 : 만약에 시간이 9시 30분 근처라도 시계가 9시 부근에 있으면?
제자 : 그야 아홉시라고 하겠지요.
낭월 : 실제로는 이미 해시(亥時)라도 그렇게 될 수 있겠지?
제자 : 엄머머머~~!!! 정말요. 해시로 보면 딱딱 맞아요.
낭월 : 원칙만 알고 융통성이 없으면 그렇게 스승을 원망하지. 하하~!
제자 : 다시 확인해 봐야 겠어요. 고맙습니당~!

그리고 잠시 후에 확인했다고 전화 하면서 신나 하던 제자가 떠오릅니다. 이런 것입니다. 기본형에 충실하고 자신의 학문에 대해서 표준을 세워 놓고 그것을 밀어야 합니다. 밀면 프로이고 못 밀면 아마추어입니다. 그리고 아마추어는 절대로 손님을 못 받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이지요.

 

6. 예언하려 들지 말고 상담(相談)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하다 가도 조금 자신감이 붙으면 꼭 사고를 치는 단계가 있습니다. 마치 처음에 운전을 할 적에는 살살 하다가 1년 정도 지나고 나면 사고를 치게 되는 경우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하겠네요. 그래서 늘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만, 그게 자신감이 붙어버리면 자만심과 합작을 해서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신감(自信感)과 자만심(自慢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신감은 많을 수록 좋지만, 자만심은 행여 그 자리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방비를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언뜻 봐서는 유사한 바람에 자칫하면 스스로도 속기 쉽거든요. 두 손으로 핸들을 꼭 잡고 운전하면 자신감이고, 한 손으로 휙휙 돌리면 자만감입니다.

사주를 적어 놓고는 여러 가지 정황을 함께 살펴서 조심스럽게 판단을 하되 확실한 기준으로 풀이를 하면 되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하다가도 어느 시기가 되면 착각에 빠져서 자신이 예언가인 것처럼 행동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한 과정이라고 봐서 특별히 허물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 안주하게 되면 인생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한 자리에서 간판을 달고 2년을 버틴다면 자신감이고 못 버티면 자만감입니다. 물론 하나의 기준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으면 그 정도는 버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주를 풀다가 손님들의 눈치를 봐서 이상하다 싶으면 타로카드도 꺼내 보고 하다하다 토정비결도 꺼내보고 하면...  다음에 그 손님이 찾아 오고 싶겠남요?

예언은 '모'아니면 '도'로 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99.9%의 확실한 그 무엇을 얻기 전에는 절대로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0.1%는 도사도 헛다리를 짚을 수가 있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있으면 하셔도 좋습니다. 장안에 스타가 되어서 방송에도 뜨고 기사가 쏟아져 나오면 즐거우시겠습니다. 하하~!

상담은 80점만 얻자는 것입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삶에 유익한 정도의 조언은 할 수가 있다면 되는 점수입니다. 예언가라고 취재를 온다고 하면 막아야 합니다. 방송국 사람들은 도의가 아니라 흥행입니다. 소위 말하는 대박이지요. 그것만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놀음에 놀아나면 누굴 탓하겠습니까?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일 뿐입니다.

방송국에서 찾는 모델은 학자가 아니라 도사입니다. 그러니까 그 레이더에 걸리지 않으면 됩니다. 혹 걸렸더라도 잘못된 정보라고 버팅기면 됩니다. '옳지~! 이제서야 세상에서 날 알아 주는 구나~! 때가 왔구나~!'하다가는.... 그 다음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문득 노자의 추구(芻狗)가 생각나네요.

세상은 인간을 추구로 삼는다.
잘 모셔 놓고 받들다가
쓸모를 다 하면 던져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길바닥에 짓밟히게 되리라.

대략 이런 뜻이려니 싶습니다. 나름대로 이러한 기준이 있다면 사주쟁이로 3년 여의 내공이 쌓인다면 밥은 먹고 살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3년이 아니면 5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수는 없고, 그런 법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으로 낭월은 알고 있습니다.

 

7. 자연의 이치를 즐기는 자유인(自由人)


상담을 한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이치를 들이대어서 방문자로 하여금 기를 죽게 하거나 두려움으로 떨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와는 십만팔천리일 뿐입니다. 그냥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바탕에 두고서 약간의 오행을 섞어서 전달하면 그것 만으로 멋진 그림이 되는 것을 말이지요.

상담에서 사주로 풀어야 할 경우는 대략 절반 정도 된다고 봅니다. 그 나머지는 삶의 이치로 풀어야 할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렇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보면 사주에서 답을 줄 때도 있고, 오주에서 답을 줄 때도 있습니다만, 역시 핵심은 오행의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만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인이고, 자유인이고, 도인이려니 싶습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즐기면서 살아도 됩니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사주쟁이로 밥을 먹고 살 수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셨다면 오늘의 어쭙잖은 한 말씀들이 약간은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론은 오행입니다. 오행의 나라에서 오행으로 집을 삼고, 오행으로 밥을 삼고, 오행으로 옷을 삼고, 오행으로 놀이를 삼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산을 봐도 오행, 물을 봐도 오행, 사람을 봐도 오행, 밥을 봐도 오행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비로소 오행학자라고 할만 하지 싶습니다.

낭월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몇 가지로 기준을 삼아 본 말씀이었습니다. 날은 춰지고, 나이는 먹어가고, 할 수가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오라는 곳도 없어지고, 가족들 눈치도 보일 즈음에서... 앗~! 이런 것이 있었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황혼에서 오행과 더불어 노닐 수가 있다면 그것도 꽤 쏠쏠한 말년이 아닐까 싶거든요. 하하~!

자유로우십니까? 도인이십니다.
불행하십니까? 중생이십니다.
불행하기도 자유롭기도 하십니까? 학인이십니다.
불행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으십니까? 사람이 아니무니다. 

 

한줄요약 : 열정+노력+표준+오행+배짱+상담=밥 

모쪼록 이 가을에 멋진 결실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또 이렇게 헛소리를 늘어놓고 물러갑니다. 무슨 일을 하시더라도 그 일에 열정을 불태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뤄질 것이 없는 까닭입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18년 10월 17일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