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 12mm에서 봐야 10mm가 보이는 법이다.

작성일
2018-07-24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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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 12mm에서 봐야 10mm가 보이는 법이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연일 볶아 대는 폭염에 심신이 피곤하시지요? 계룡산도 대단합니다. 그래도 하늘의 이치는 하늘에 맞기고 그냥 책이나 읽으면서 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려니..... 하고 있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도 하고요. 하하~!

제목이 무슨 뜻인가 싶으신 벗 님도 계시지 싶습니다. 몇몇 분은 짐작하셨겠지만 카메라 렌즈 이야기입니다. '또 카메라 이야기야?'하셔도 뭐, 할 수 없습니다.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생각을 쫓아가다가 한 조각을 잡아서 수다를 떨려고요. ㅋㅋㅋ

 

1. 카메라가 원하는 것


사실 카니카지 카메라가 뭘 원하겠습니까. 카메라 주인이 원하는 것이라고 해야겠네요. 여기에서 카메라는 자성(自性), 본심(本心) 정도로 초점을 맞춰 놓으면 적당하지 싶습니다. 카메라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벗님도 당연히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상식을 밑밥으로 깔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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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주체입니다. 수행의 존재일 수도 있고, 태어날 적에 함께 했던 그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카메라를 볼 때마다 늘 그런 생각에 휩싸이곤 하네요.

카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몸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몸이 없으면 귀신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몸을 잃은 귀신은 그렇게도 인간의 몸에 집착하듯이 카메라는 몸에 해당하는 렌즈가 없이는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셈이기도 합니다.

카메라가 원하는 것은 무슨 종류가 되었던 간에 렌즈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렌즈가 하나 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습니다. 혹 사진놀이를 하신다면.... 아마도 세 개 정도의 렌즈는 보유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 이하면 아직 필요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실 것이고, 그 이상이라면 마음이 푸근~하실 것으로 짐작해도 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도 세 개가 되는 까닭입니다. 예? 뭔 말이냐고요? 그니깐요. 마음이 어떤 때는 보살처럼 하해같이 넓기도 하고, 또 때로는 좁쌀처럼 옹색해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다가는 또 순식간에 보통의 사람처럼 돌아오기도 하죠.

이것이 마음이라면 이러한 마음을 표현할 도구인 렌즈도 당연히 최소한 세 개는 되어야 기본적인 놀이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바닥에 깔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살심이 될 적에는 광각렌즈를 사용하고, 좁쌀영감이 될 적에는 망원렌즈를 사용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보통은 일상의 표준렌즈를 사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낭월의 사진놀이 벗으로 갖춘 렌즈는 12mm에서 600mm까지입니다. 그만하면 꽤 투자를 했다고 봐도 되겠네요. 말하자면 마음에 해당하는 카메라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사물을 담을 수가 있을 만큼의 도구는 갖춰 놨다는 이야기네요. 문제는 영혼의 수준이 형편없어서 이 좋은 연장으로도 제대로 된 그림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하하~!

대체로 카메라의 렌즈에서 표준이라고 하는 것은 50mm를 말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정도의 각도라고 합니다. 대략 47도 정도의 넓이라고 하네요. 보통 눈으로 봐서 사물의 형태가 뚜렷하게 보이는 정도가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표준렌즈라고 기준으로 정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더 넓게 보면 광각렌즈라고 하고, 좁게 보면 망원렌즈라고  하게 됩니다. 표준렌즈의 화각을 보통 사람의 관점이라고 한다면, 광각렌즈의 화각은 보살의 넓은 마음이라고 하고, 망원렌즈의 화각은 중생의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해가 되시죠?

망원에서 광각까지 모두 담는 렌즈는 없느냐고 하실 벗님이 반드시 계십니다. 편재의 기질이 농후하신 마음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네요. 그래서 나온 것이 있습니다. 낭월의 카메라에서 붙박이로 항상 따라다니는 렌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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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mm부터 105mm까지를 감당합니다. 그러니까 상당한 광각에서 쓸만한 망원까지 모두 사용할 수가 있는 렌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다목적의 렌즈인 셈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맥가이버라고 할 수가 있겠네요. 그러면서도 성능도 꽤 괜찮아서 F4로 전 영역을 감당합니다만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2. 도덕경을 읽다가 문득 해 본 생각입니다.


새벽에 잠이 깨어서 책이나 보자고 손을 뻗었더니 손 끝에 도덕경이 딸려 나왔습니다. 탄허 스님께서 풀이하신 도덕경인데 마음이 가는 대로 펼친 곳이 41장이었고 여기다가 탄허 스님께서는 「문도장(聞道章)」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으셨네요. 풀이하면 '도를 듣다.' 정도가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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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실행이 무지무지하게 어려울 뿐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네요. 여튼 여기에는 상사(上士), 중사(中士) 그리고 하사(下士)가 등장을 합니다. 이 대목을 읽다가 렌즈를 떠올렸고, 그래서 날도 더운데 벗님들께 이런 이바구나 해 드릴까 싶은 마음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하~!

상사는 도를 들으면 묵묵히 실행하고 
중사는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 하고
하사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문득, 광각렌즈는 상사와 유사하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의심하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를 뿐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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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광각다운 렌즈입니다. 12mm부터 24mm까지를 담당합니다. 화각으로는 122도에서 84도까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좌우로 다 본다면 180도라고 할 수가 있으므로 상당히 넓은 영역을 보고 수용할 수가 있으니 이만하면 정신세계에서는 보살심(菩薩心)이라고 할만 하지 싶습니다.

보살심은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지장보살도 있네요. 이들은 중생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 구제를 원하면 손길을 내미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으로 보면 희생과 봉사를 아까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하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아는 것만 믿는 사람들이려니 싶습니다. 전혀 소통도 원치 않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망원렌즈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망원렌즈도 어느 지점을 겨냥하면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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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mm까지 당겨올 수가 있는 망원렌즈입니다. 이런 망원에는 앞에다가 초(超)자를 붙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12mm급에다가도 초를 붙이기도 합니다. 초광각, 초망원이라는 이야기네요. 600mm의 화각은 4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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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얼마나 시야가 좁겠느냔 말이죠. 내가 본 것이 아니면 믿을 수가 없고, 내 생각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웃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크게 웃는다는 말을 노자가 했던가 싶습니다. 도를 이야기하는데 크게 웃으면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음... 하사로군...'하고 말이죠. 하하~!

물론 더 좁은 렌즈도 있습니다. 1000mm도 있고, 1200mm도 있으니까요. 다만 그 정도가 되면 일반적으로 카메라에 부착하는 용도에서는 벗어난다고 봐서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고 가격도 무지무지하게 비싸진다는 것만 생각하고 통과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마도.... 고집불통이라고 할 수가 있지 싶기는 합니다. 예전에 사진공부 하러 다닐 적에 누군가 해 준 말이 생각나네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처녀'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그만큼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지 싶습니다.

왜 처녀인지를 물어봤더니 아이를 키워보면 사람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도 하더구먼요. 그러니까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아이를 키우게 되면 무서운 사람은 아니라는 말도 되나요? 가끔 떠오르는 이야기였습니다. ㅎㅎㅎ

 

3. 중사가 되어야만 상사를 이해한다.


'가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다.'는 말은 들어 봤습니다만, 이 말의 의미가 대략 그런 뜻이겠거니.... 싶습니다. 수박 맛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박을 먹어본 사람은 수박 맛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자신이 먹은 수박이 어떤 수박이냐에 따라서 또 하나의 선입견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여기에서 문득 말 같잖은 유행어를 하나 만들어 봅니다.

어제 먹은 것이 오늘의 내 몸이고,
오늘 읽은 책이 내일의 내 맘이다.

'수박을 먹어 봤어~!' 라고 하는 말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박도 수박 나름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어떤 수박을 먹었는지도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같은 수박을 앉은 자리에서 나눠 먹었더라도 맛이 같지 않습니다. 이건 또 어쩔 건데요?

인식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닙니다. 더구나 똑같은 수박의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을 나눠먹었다고 하더라도 그 느낌조차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것까지도 고려하다가 보면, 참으로 다양한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같은 책을 읽었는데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고, 이해한 것도 다릅니다. 누구는 재미없는 책이라고 하고, 누구는 깨가 쏟아진다고 합니다. 누구는 이런 책을 돈 주고 샀느냐고 하고, 또 누구는 이런 책은 가보로 물려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이고, 이것이 마음입니다.

이것을 노자는 삼사(三士)로 설명하려고 했던가 봅니다. 벗님은 어디에 해당하시는지요? 아마도 낭월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중사쯤에서 상사가 되려는 문턱을 넘나들고 있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그래서 렌즈로 치면 12mm에서 24mm정도가 된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4. 중사(中士)의 영역에서 도약하면...


수행자는 모두 중급상사(中級上士)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사람에서 약간 상위에 있는 정도라고 해도 뭐 크게 틀리진 않았을 것이라는 정도입니다. 렌즈로 치면 24mm 전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자연의 이치를 넓게 이해한다면 12mm쪽이라고 하겠고, 특별히 어려운 이야기만 아니라면 대략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는 정도에서는 24mm에서 70mm정도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삶의 애환도 어느 정도 알고, 옹졸한 마음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서 보살의 마음도 품고 있는, 보통 말하는 선량한 수행자라고 이해를 하면 크게 무리가 없지 싶습니다.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롭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러한 수준의 사람은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무슨 말인지는 알아 먹는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이야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이고, 도(道)에 대한 이야기임은 두말을 할 나위도 없겠습니다.

머리로는 도인이고, 감성으로는 평민인 상태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이나 뜻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이 이해하고 있는데 실행력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있는 상태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도 되지 싶습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책을 읽으면 그 말이 어디에 떨어지는 뜻인지,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 먹는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학자의 영역에서 자연의 이치를 궁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이러한 수준에 있는 관점의 사람에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세상이 열립니다. 자신의 관점이면 크게 무리가 없는 이해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휑~!'한 세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렌즈로 치면 이것이 바로 10mm라고 하는 세계입니다. 화각으로는 130도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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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광활한 세상이 또 있으리라는 생각을 미쳐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득 법화경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최상승의 제자인 사리불은 부처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고 하거니와, 간발의 차이로 수보리나 가전연 등의 상수(上首) 제자들 조차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5. 카메라에서 10mm의 세계


엊그제 어느 블로그에서 보게 된 10mm로 찍은 사진을 접하고서 낭월이 이러한 감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낭월의 상식으로는 12mm의 렌즈에 맺히는 상이면 그보다 더 넓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초광활한 세계라니....

그 사진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12mm를 모르는 사람에게 10mm를 말해봐야.....'

'뭐야? 겨우 2mm의 차이잖아? 뭘 그딴 것을 갖고 호들갑스럽기는 참 내~!' 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겠더라는 것입니다. 24-70의 표준렌즈로 충분히 즐거운 사람에게는 12mm도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응이 안 된다고 아우성을 칠 따름이죠.

122도와 130도의 사이는 8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넓은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죽하면, 지척이 천리라고 했겠느냔 생각도 드네요. 그러므로 2mm의 차이는 12mm를 알고 있는 사람에겐 엄청난 큰 차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지 싶습니다.

산마루에 올라가서 봐야 비로소 산 너머의 풍경이 보이는 이치와 같을까요? 산에 오르기 전에는 산너머의 이야기를 아무리 듣는다고 해도 귓가를 맴돌 따름입니다. 일단, 산마루에 올라서서 갑지가 화들짝~ 열리는 풍경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는 것과 같으려니.... 싶습니다.

이미, 24mm로도 자신이 담고 싶은 것은 모두 담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넓은 렌즈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한 들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셈이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2mm를 접했을 적에 그 광활함이란......

'아,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치.'

그래서 사진꾼에게 들려 줄 말이 떠올랐습니다.

'12mm도 모르는데 10mm를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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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니들이 게 맛을 알아?'가 떠오르셨죠?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러한 과정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아마도 할수록 어려운 공부로 느껴지지 싶습니다. 10mm를 담을 수가 있는 렌즈입니다. 참고로, 이 사진의 손은 낭월의 손이 아닙니다. 다만, 낭월의 손이고 싶습니다. ㅎㅎㅎ

어제는 제자가 카톡을 보내 왔습니다.

스승님께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六甲》이
이제야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하네요.
남들은 덥다고 하는데도, 저는 이 책을 읽느라고
밥을 하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빠져들고 있어요.

그 글을 보면서 도덕경의 문도장이 떠올랐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던가 봅니다. 그렇겠구나.... 낭월도 늘 보던 책이지만 어느 날에는 문득 처음 보는 글이었던 것처럼 생소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항상 하고 있으니까요.

늘 보던 풍경이 갑자기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늘 옆에 있었는데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 존재를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럴 때가 사진을 찍을 때라고 합니다. 카메라를 들어야 할 때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음을 움직여야 할 때라는 의미도 되나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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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도의 렌즈를 '물고기 눈 렌즈'라고 합니다. 어안(魚眼)렌즈란 말이지요. 12mm이긴 하지만 화각은 180도입니다. 이건 특수한 렌즈라고 취급합니다. 왜냐하면, 12mm라면 화각은 122도라야 하고, 180도라면, 렌즈는 0mm라야 할텐데 이러한 공식을 부숴버리고 떡하니 180도를 보여 주니까 말이죠.

어쩌면.....

도를 통한다는 것은 이 어안렌즈와 같은 것이 아닐까요? 일반적인 눈으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모두 볼 수가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여전히 눈은 육안(肉眼)인 12mm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렌즈를 보면서 도덕경을 떠올리고, 도덕경을 보면서 렌즈를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어 보이네요. '도는 유연한 것이어서 어느 틈이라도 파고 든다.'고 라즈니쉬가 설명하더니만, 그 말에도 오늘 새벽에는 공감을 하게 되네요.

만법귀일(萬法歸一)이 아니라,
만법회통(萬法會通)인가 싶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햇살이 쨍쨍합니다. 밖에서 외침이 방으로 뚫고 들어 옵니다.

"그만 노닥거리고 화단에 물이나 주지~!"

그래서 수다를 줄입니다. 얼른 나가서 물이나 줘야 하겠습니다. 하하하~!

 

2018년 7월 2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