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11.전생(前生)과 현생(現生)

작성일
2023-04-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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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11. 전생(前生)과 현생(現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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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패를 조용히 음미하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난 우창이 임인(壬寅) 여인이 처음으로 뽑은 패를 짚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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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겠습니다만, 이것은 무술(戊戌)입니다. 지금 본인의 입장이 나타나는 패로 보면 됩니다. 무토(戊土)가 술토(戌土)를 만난 형상이라는 것을 보면서 이 패를 풀이해 보니, 자신의 소신이 뚜렷하고 마음속에는 상처가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치유가 되어서 담담해진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주변의 영향으로 인해서 좌절(挫折)하거나 흔들리는 단계는 지났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큰 산과도 같은 굳건함이 깃들어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여인을 바라보자 여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참으로 갈등이 많았습니다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나이가 서른셋이네요.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보면서 저마다 안고 있는 상처가 저만 못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야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제가 뽑았지만 설명하시는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기가 막힌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의 패는 계미(癸未)네요? 이것은 또 어떻게 풀이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임인 여인의 마음속에는 정사 여인의 조짐에 관심이 큰 것으로 보여서 우창도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을 꺼냈다.

“그렇습니다. 이 패는 함께 오신 분의 상황입니다. 계미(癸未)네요. 계수(癸水)가 미토(未土)에 앉아있는 모습이니 좌불안석(坐不安席)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뵙기에는 평온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패가 잘못 나온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다소곳한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두 여인이 모두 깜짝 놀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한 반응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우창이 생각했던 모습에 근접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말을 이었다.

“실제로 어떤 상황인지는 알 바가 없으니 계미(癸未) 패(牌)에서 의미하는 대로만 설명하겠습니다. 아마도 삭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단비를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과연 그래도 되는지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군요. 함께 하는 사람이 나에게는 주인과 같은 격이니 비록 상대방이 여인이기는 하지만 흡사 남편을 대하는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는 뜻으로 풀이하게 됩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임인 여인을 바라봤다. 언제까지 좋은 말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 그녀가 말했다.

“맞습니다. 도사님의 예지력이 뛰어나면서도 훌륭한 말씀을 들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보이시는 그대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우창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져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살아가다가 보면 때로는 ‘여기까지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러한 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계미(癸未)패가 말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두 갈래의 길을 만나서 오른쪽으로 가려니까 남자를 놓치기가 안타깝고, 왼쪽으로 가려니까 남겨져서 고통을 받게 될 인연이 마음에 걸려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정사 여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에 처한 자신을 이렇게도 명쾌하게 짚어주는 설명을 듣자, 지옥문 앞에서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만난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책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반짝이는 눈으로 우창을 바라보는데 이슬이 가득 맺힌 모습이 참으로 매혹(魅惑)적이었다. 임인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로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우창이 나머지 한 장의 패를 뒤집었다. 우창이 뽑은 패였다. 모두 그 패는 어떤 간지인지 궁금한 마음에 눈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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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패를 뒤집자 경자(庚子)가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온 패는 경자(庚子)입니다. 경금(庚金)과 자수(子水)의 만남으로 이뤄진 패가 됩니다. 그 사람은 경금(庚金)과 같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겠습니다. 이것은 금생수(金生水)의 관계가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남자의 인연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운명의 끌림과 같아서 억지로 통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쇠붙이가 자석(磁石)을 만나서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는 것과 같을 것으로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게 끌려가면서도 마음은 이러면 안 된다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7할은 경금(庚金)을 따르기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우창이 혼자만 떠들 수도 없어서 잠시 말을 끊고서 정사 여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에 잠긴 여인이 말을 꺼냈다.

“말씀하신 대로 그와 같아요....”

긴말이 필요 없었다. 우창의 풀이에 그대로 공감한다는데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싶어서 우창도 그대로 수용하고는 임인 여인을 향해서 말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경(庚)이기 때문에 무술(戊戌)에게도 결코 서운하게 할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한집에서 같이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남자의 마음속에서는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처형(妻兄)과 함께 사는 듯한 풍경이 떠오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임인 여인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는 우창에게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괜히 위로하시려고 돌려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알아들을 만큼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있는 그대로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말씀을 주셨는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무술(戊戌)은 무토(戊土)가 주체이고, 경자(庚子)는 경금(庚金)이 주체입니다. 이 관계는 토생금(土生金)의 이치에 의해서 서로 양대양(陽對陽)이라는 것은 알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배짱이 잘 맞아서 함께 살아간다면 더욱 즐겁고 죽이 잘 맞는 남동생을 하나 얻은 것만큼이나 즐거울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의미로 인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여기에 계미(癸未)의 계수(癸水)는 다시 금생수(金生水)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봐서 오히려 이 남자는 아내보다도 처형을 더 좋아하고 아껴 줄 수도 있다는 것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품게 되는 까닭입니다. 왜냐면 금(金)의 어머니는 토(土)가 되니 말입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임인 여인도 정사 여인도 마음에 진한 감동의 물결이 여울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명쾌하면서도 서로에게 기쁜 일이 된다는 설명을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서로 얼굴을 보면서 말을 잊지 못하고 감동하는 표정을 짓자 우창이 다시 설명을 보탰다.

“남자를 의미하는 경자(庚子)의 앉은 자리는 배우자(配偶者)의 궁으로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자수(子水)는 음수(陰水)이므로 천간(天干)에서는 계수(癸水)가 됩니다. 그래서 계미(癸未)를 보면서 자신이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이 흡사 어머니가 자식을 보면서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계미(癸未)의 배우자 자리에 있는 미토(未土)는 토(土)가 되므로 무술(戊戌)의 토를 남편처럼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보겠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그와 동시에 경금(庚金)의 보호도 받게 됩니다. 더구나 무술(戊戌)의 술토(戌土)에는 신금(辛金)이 들어있습니다. 즉 남편과 같은 역할을 해 줄 사람으로 금(金)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스스로 혼인은 원하지 않으므로 옆에서 동생처럼 제부(弟夫)가 챙겨주고 힘든 일은 다 살펴준다면 이것이 과연 슬퍼만 할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을 마친 우창이 다시 남은 차를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말하기 어려운 말도 해야 해서인지 목이 마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진명을 바라봤다. 그러자 진명이 엄지손가락을 살짝 들어서 우창에게만 보여줬다. 잘하셨다는 의미로 보면 되지 싶었다. 그래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두 여인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우창을 향해서 합장하고 말했다.

“머릿속의 먹구름이 말끔히 사라지고 채운(彩雲)이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과연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그 사람의 품성을 생각해 봤을 적에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때로는 여인만 둘이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주변의 눈초리도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부터는 그러한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의 가르침이야말로 30여 년을 살아오면서 들었던 말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말씀이었지 싶습니다. 과연 그 말씀대로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생각하겠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오늘의 은혜는 평생을 못 잊지 싶습니다.”

우창도 마주 합장하고서 말했다.

“과연 그러셨다면 저도 큰 보람으로 알겠습니다. 부디 앞으로의 삶에서도 더욱 즐거움이 가득한 나날이 되시기를 축수(祝手)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임인 여인이 일어나자 정사 여인도 따라서 일어나서는 진명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사례한 것으로 보고 우창은 모른 척하고 손님을 전송했다. 염재가 문 앞까지 가서 배웅하고는 돌아와서 말했다.

“아니, 스승님 육갑패가 그렇게 쓰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염재가 자기도 모르게 감동한 목소리로 외치자 다른 방에서 담소하고 있던 현지와 유하도 손님이 갔다는 것을 알고는 얼른 나왔다. 그러자 주인이 과일을 수북하게 깎아서 들고 올라왔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간식이에요. 호호호~!”

그렇게 말하는데 점원이 올라와서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에 과일 쟁반을 내려놓고는 얼른 내려갔다. 일행이 과일을 먹으면서 저마다 생각에 잠겼을 적에 현지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러한 조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언뜻 들었는데 참으로 신통방통한 육갑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창도 웃으면서 현지의 물음에 대해서 답했다.

“난들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잖은가. 참으로 놀랄 따름이라네. 그래서 또 다른 믿음이 생겼다네.”

“예? 그것은 무엇인지요?”

“그러니까, ‘마음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이지. 한마음이 일어나서 답을 구한다면 또 한 마음이 그에 대해서 부합하는 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더니 서로 마음이 맞닫는 곳에서 해답이 있을 줄이야. 과연 우리의 수우산에서 수행한 공덕이 이렇게나 큰 것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되었네.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염재도 감동을 한 듯이 말했다.

“정말 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스승님의 깨달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간절(懇切)한 물음일 뿐이고 방법(方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연월일시분(年月日時分)의 흐름을 읽어서 풀이하는 것과 이렇게 염원을 담아서 손길이 가는 대로 한 장의 육갑패(六甲牌)를 뽑는 것이 다를 바가 없다는 말씀에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이치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염재도 그 느낌을 알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새삼스럽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면서 합장하는 염재를 보면서 우창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명이 물었다.

“진명이 생각하기를 처음에는 다섯 장의 육갑패를 뽑으실 것으로 여겼어요. 왜냐면 처음에 목적이 다음 손님을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생각한 것이 육갑패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갑자기 세 장을 뽑는 것을 보고서 내심 놀랍기도 하고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면 그대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혹 여기에 다섯 장을 뽑았더라면 해석이 어땠을까요? 더욱 상세하게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진명은 역시 여인의 심성답게 깐깐했다. 이렇게 그렇게 육갑패의 변칙적(變則的)인 응용(應用)에 대해서 내심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는 진명을 바라보던 우창이 그 말에 대해서 생각을 말했다.

“오호~! 역시 예리한 진명이로군. 맞아.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할 생각이었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든 생각이었다네. 그러니까 다섯 장으로 설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면 각자 한 장씩만 갖고서도 자신의 상황을 읽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지. 그리고 만약에 뭔가 미흡하다면 다시 더 뽑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지. 그런데 어떤가? 여기에 무엇을 더 추가한다고 하더라도 이보다 명쾌하게 답을 얻는 것에서 더 유익한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겠나?”

우창이 이렇게 반문하자, 진명도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스승님의 생각이 이미 자연의 이치와 부합되어서 하늘의 계시(啓示)를 그대로 따라서 행하시는 경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단 말이에요.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겠어요. 호호호~!”

진명의 말에 우창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자신도 모르게 행한 것조차도 놀랍다는 것도 이제야 새삼스럽게 인식했다.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했는지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일을 진명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화들짝 놀랐지 뭔가. 과연 큰일을 저지를 뻔했다는 생각조차 들면서 등골이 오싹한걸. 하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염재가 말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서 생각해 보니까,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육갑패를 몇 장으로 답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조차도 생각할 필요가 없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오주괘로 답을 구할 적에는 다섯 개의 패(牌)를 사용하겠습니다만, 질문을 받고서 마음에 동한다면 단패(單牌)도 가하고, 쌍패(雙牌)도 능히 답을 얻을 수가 있을뿐더러 삼패(三牌)도 당연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사주(四柱)를 물었는데 연월일시를 모른다고 하면 오히려 사패(四牌)를 이용해서 사주를 풀이해도 되겠다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그리고 정황에 따라서 오패(五牌)가 필요하다면 비로소 오주괘(五柱卦)의 이치를 통해서 답을 찾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은 일리가 있겠습니까?”

우창은 염재의 생각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뻐서 말했다.

“내 마음도 또한 바로 그러하다네. 우리가 서로 통했구나. 하하하~!”

우창이 유쾌하게 웃자 모두 마음이 흥겨웠다. 다만, 유하는 아직도 이러한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러자 현지가 유하에게 말했다.

“동생은 아마도 얼떨떨하게 들릴 수도 있겠네. 그래도 조금만 지나면 약간의 공부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함께 웃으며 즐길 수가 있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고마워요. 현지 언니가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그래서 유하도 어서 함께 웃고 즐기는 것에 동참하고 싶거든요. 호호호~!”

그렇게 담소(談笑)하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염재가 열어보니 중년의 남성이 문 앞에 서 있다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밑에서 주인이 가봐도 된다고 해서 올라왔습니다만, 말씀을 나누시는데 잘못 온 것이나 아닌가 싶습니다만....”

염재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예의가 반듯했다.

“아, 잘 오셨습니다. 한담을 나누고 있었으니 괜찮습니다.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할 것은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스승님으로부터 공부하는 제자들인지라 말씀하시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참관해도 될지요?”

“그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참 좋아합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예, 어서 이리 앉으시지요.”

염재가 들어가서 자리를 권했다. 남자는 스스럼없이 들어와서는 권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가 찾아온 목적을 바로 말했다.

“소생은 증립창(曾立昌)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찾아뵙는 목적은 형님뻘이 되는 지인이 응천부(應天府:남경)에서 벼슬을 하고 있는데 윗사람에게 천거(薦擧)해 주겠다면서 오라고 하는 전달(傳達)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부친께서는 반드시 기회가 왔을 적에 응천부로 가서 출세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저는 도저히 갈 마음이 들지를 않습니다. 물론 나중에라도 이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서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없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가부(可否)를 좀 알아봤으면 싶은데 마침 도사 일행이 이 객잔에 머문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꼭 한마디만 듣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답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창이 이 남자를 바라보니 벼슬해서 출세하는 것보다는 산중에서 처사(處士)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은 정도로 탈속(脫俗)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호감(好感)이 생겼다. 잠시 생각하더니 육갑패를 들고서 말했다.

“잘 오셨고, 잘 물어주셨습니다. 이렇게 가부에 대해서만 알고자 한다면 또한 그에 대한 답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봐하니 글을 읽으신 선비로 보이는데 육갑패(六甲牌)라고는 들어 보셨는지요?”

“예, 기본적인 글공부는 했습니다. 다만 골패(骨牌)나 위패(位牌)는 들어봤으나 육갑패는 금시초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육갑으로 점괘(占卦)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것을 펼쳐놓을 텐데 그중에서 손길이 가는 대로 단패(單牌)를 뽑으시면 됩니다. 그 패에 적힌 간지(干支)가 선생의 미래에 대한 암시가 될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보고서 따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가 있습니다. 즉 ‘응천부로 가게 된다면 그다음의 일은 이렇게 된다’는 의미입니다만, 이해되셨습니까?”

남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했다.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처음 보는 것이라서 흥미가 동합니다. 어디 얼른 패를 보고 싶습니다.”

남자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서야 우창이 육갑패를 부채처럼 펼쳤다. 남자는 잠시 둘러보고는 한가운데에서 한 장을 뽑아서 펼쳤다.

442-3

남자가 얼른 패에 적힌 글자를 읽고서 말했다.

“을유(乙酉)가 아닙니까?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간지는 알고 있으나 그 안에 들어있는 현기(玄機)는 모르니 말씀을 청합니다.”

남자가 이렇게 말하자 우창이 시(詩)로 답했다.

‘허공을 자유로이 날던 작은 새가
미끼를 쫓다가 조롱(鳥籠)에 갇히도다.’


우창이 이렇게 풀이하자, 증립창은 화들짝 놀라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 표정에는 경이(驚異)로움과 감탄(感歎)과 의혹(疑惑)이 뒤섞여 있는 얄궂은 표정이었다. 우창은 그가 말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도사님, 말씀은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새는 보이지 않고 새장은 더구나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풀이를 하실 수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을유(乙酉)의 간지를 보며 생각하기에는 을목(乙木)과 유금(酉金)으로는 알고 있으나 이와 같은 풀이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말씀인지 설명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 자신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창이 가장 좋아하는 대화이니 사양할 까닭이 없었다. 곧바로 설명했다.

“을(乙)이 목(木)이라는 것을 알고 계실 줄은 알았습니다. 『역경(易經)』을 읽었다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을(乙)을 다른 뜻으로는 새로도 대입한다는 것도 아실 겁니다. 형상이 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니까요.”

“아, 그렇습니다. 기억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유(酉)는 오행으로는 금(金)이고 의미로는 주(酒)와 통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새 장으로 본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가능한 풀이입니까?”

“그래서 육갑패가 아닙니까? 어떤 풀이든 가능합니다. 물론 그것이 전혀 엉뚱하지만 않다면 말이지요.”

“말씀은 그렇게 하십니다만, 듣기에는 엉뚱하다고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의혹만 생길 따름입니다.”

증립창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것을 본 우창이 손을 들어서 밖을 가리켰다. 추녀 끝에는 새장이 있고, 그 안에서 작은 새가 씨앗을 까먹느라고 정신이 없는 것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것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듯이 다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창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증 선생이 육갑패를 들여다보고 있을 적에 내가 문득 창밖을 내다봤더니 새 한 마리가 밖에서 놀다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뽑은 패가 을유(乙酉)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러한 조짐을 보여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창의 설명을 듣고 있던 증립창의 눈이 커졌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아니, 그것은 소강절(邵康節)의 매화역수(梅花易數)가 아닙니까?”

“아!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니까요. 하하하~!”

“오호~! 오늘 역학(易學)의 고인(高人)을 뵙다니 과연 제가 복이 없진 않았나 봅니다. 하하~!”

“아닙니다. 간지로 부려보는 잔재주일 따름이지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응천부로 가게 된다면 처량한 새장 속의 작은 새가 될 뿐이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잘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꺼림칙했거든요. 이제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자 그는 은자 하나를 꺼내놓고서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차를 마셨다. 그래서 우창도 뭔가 할 말이 있나 싶어서 잠시 기다렸다.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실은 세상의 벼슬에는 관심이 없고 집을 짓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번거로우시겠습니다만, 저를 위해서 한 번만 더 수고를 해 주시겠습니까? 부친의 뜻을 어기게 되면 집에서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집을 떠나서 절간의 대웅전(大雄殿)이나 대궐(大闕)의 전각(殿閣)을 짓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취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지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진즉에 말씀해 주실 일이지요. 당연히 그에 대해서도 답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사주를 적어 볼까요?”

우창의 말에 듣고서 증립창이 말했다.

“아닙니다. 사주보다 육갑패로 보고 싶습니다. 어떤 간지가 뽑혀 나올지 참으로 궁금해서 발길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딱 뽑아봤으면 싶습니다.”

우창은 다시 육갑패를 섞어서 증립창의 앞에 펼쳤다. 그리고는 잠시 기다렸다. 이번에는 잠시 망설이다가는 맨 위에 있는 한 장을 뽑았다. 우창이 다른 패는 접어서 한쪽으로 치워두고서 그 패만 남겨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