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10.두 여인의 방문(訪問)

작성일
2023-04-1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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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10. 두 여인의 방문(訪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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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도사의 등장으로 인해서 소란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자 다시 평소대로 안정을 되찾았다. 잠시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주인이 과일 쟁반을 직원에게 들려서 올라왔다.

“이상한 도사가 다녀가셨나 봐요? 가끔 보이는 분인데 평상시에는 멀쩡하거든요. 그런데 도사님에게 꼼수를 놓다가 혼나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쌤통이었죠. 혹시 마음 상하신 것은 아니죠? 호호호~!”

“꼼수가 아니라 환상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으니 괜찮습니다. 하하~!”

“정말 도사님의 도량이 넓으셔서 모두 헤아리시니 다행이요. 아니면 싸움이 났을 건데 말이에요. 호호호~!”

이때 극단으로 정리하러 갔던 우희, 아니 이제는 고윤옥으로 바뀐 제자가 보따리를 하나 들고 와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윤옥이 왔어요. 그동안 극단에서 살았던 몫으로 얼마간의 돈도 받고 결산(決算)했어요. 이제는 스승님만 의지하고 공부할 거예요. 사형(師兄)들께서도 어여삐 여기시고 아낌없이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이것은 스승님으로 모시는 약간의 학비(學費)에요. 관리는 누가 하시나요?”

지금은 염재가 관리를 하고 있으므로 대신 받았다. 묵직한 은자를 주기에 확인하니 30개였다. 놀랍게도 오행원의 공식 학비의 비용을 맞춰서 준비했던 셈이다. 염재가 우창을 바라보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자, 이제 새로운 도반이 생겼으니 모두 아껴주고 잘 가르쳐 주기만 바라겠네. 세상의 나이에 따라서 호칭을 정할 뿐이고 미리 공부하고 말고는 논하지 않겠네.”

그러자 고윤옥이 말했다.

“그건 아니죠. 스승님을 찾아오는 인연대로 정하는 것이 맞는 것이잖아요?”

이 말에 염재가 답했다.

“보통은 그렇게 합니다만 우리 오행원에서는 그렇게 정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미 아득한 과거세(過去世)부터 수행했을 텐데 이번 생에 인연의 앞뒤에 따라서 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스승님의 말씀으로 인해서지요. 다만 나이대로 호칭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고 누님께서는 염재에게 하대(下待)하시면 됩니다. 하하~!”

이번에는 현지가 말했다.

“겨우 이름을 새롭게 얻었으니 그것도 불러줘야 하겠으나 공부하는 학인은 정신의 이름인 아호(雅號)를 써야만 맛이 나는데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지의 말인즉 고윤옥의 아호를 하나 지어 주자는 이야기였다. 우창이 그 말을 듣고서 찬성했다.

“그야 당연하지. 그래 어떤 호를 쓰고 싶은지 말해 보게.”

우창이 편하게 말을 하자 고윤옥도 가족이 된 것이 실감 나는지 감격하면서 말했다.

“아호는 선비들이나 사용하는 것인 줄 알았어요. 광대들에게는 이름만 불러줘도 감지덕지(感之德之)니까요. 그러니 아호는 당연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요? 누가 좀 도와줘요. 호호~!”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명은 서른두 살, 현지 언니는 마흔 살, 염재는 스물여섯이니까 언니가 되네요. 앞으로 세상의 재미난 이야기 많이 기대할게요.”

“아, 그런가? 예쁜 동생을 얻었네. 고마워. 그리고 현지 언니 잘 부탁해요. 염재 동생도~!”

한바탕 각자의 나이를 말하면서 인사를 나누자 다시 진명이 말했다.

“아호는 자기 마음에 붙여주는 이름표인데, 그 말은 언니가 앞으로 공부해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해 봐요. 그러면 아호는 자연스럽게 나오니까요.”

“아 그래? 난 또 오행을 따져서 지어야 하는 줄로 알았잖아. 그렇다면 나는 여태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천하를 떠돌면서 목마른 사람들에게 감로수(甘露水)를 나눠주는 것을 꿈꿔왔는데 이러한 의미로 호를 붙인다면 어떤 글자가 좋을까? ‘자유롭게 노닌다’는 의미에서 유(遊)자를 넣었으면 좋겠어. 흘러 다니는 유(流)는 정처(定處)가 없어서 고단해 보인단 말이야. 호호호~!”

고윤옥의 말을 들으면서 우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遊)가 좋다면, 어디에서 노는 것이 더 좋을지를 생각해 봤다. 물론 떠돌아다니는 것이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도 남에게 유익한 약수(藥水)가 되고 싶다는 말이 고맙고도 감동적이었다. 우창이 생각하는 것을 보자 모두 조용히 기다렸다. 반드시 이름에 대해서 뭔가 찾아서 말해줄 것 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우창이 입을 열었다.

“오호~! 멋지군. 우선 감동부터 하게 되어서 뭔가 잘 어울릴 만한 글자를 생각해 보느라고 하하하~!”

그러자 고윤옥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정말 스승님께서 한 글자를 주신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받아보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거예요. 뭐라고 하셔도 다 좋아요. 호호~!”

“곰곰 생각해 봤는데 유(遊)와 짝을 지을만한 글자 중에서 윤옥과 잘 어울릴 만한 글자를 생각해 보니까, 노을 하(霞)가 좋아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아니면 넉넉할 우(優)를 넣을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예쁘게 노을이 진 하늘을 보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을 하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우창이 이렇게 말하면서 고윤옥을 바라봤다. 혹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또 다른 것을 찾아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고윤옥의 눈에 이슬이 맺히면서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머~! 아침이나 저녁에 물드는 노을을 보면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죠. 항상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에는 불이 꺼진 무대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곤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새벽이 되어서 붉은빛으로 물이 드는 하늘을 보면서 감동하곤 했어요. 그러면서도 이것을 제 이름에 넣어도 된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요? 정말 맘에 쏙 들어요. 유하(遊霞)가 스승님께 감사드려요~!”

이렇게 말하고는 두 번을 말할 겨를도 없이 바로 합장하고는 깊이 허리를 굽혔다. 그것을 보고는 모두 손뼉을 쳐서 환영했다. 가장 먼저 진명이 말했다.

“아하~! 유하언니 사바세계에 놀러 나온 단하(丹霞)의 선녀(仙女)~!”

“정말 동생이 그렇게 불러주니 더욱 좋아. 내 이름 같잖아. 호호호~!”

모두 축하하는 것을 다 듣고 난 우창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유하로 부르도록 하지. 이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서 천하를 유람(遊覽)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노을 되시기 바라네. 하하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음꽃이 피었는데 주인이 다가오면서 말했다.

“새롭게 도사님의 문하생이 되신 것을 축하드려요. 그런데 아까부터 도사님을 뵙겠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어쩌죠? 이제 정리가 되셨으면 다음 손님을 좀 봐주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호호호~!”

주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을 떠 올린 일행이었다. 모두 유하의 입문을 반기느라고 잠시 잊고 있었다. 다시 심기일전(心機一轉)해서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우창이 말했다.

“자, 그만하고 방문자와 상담하도록 해야지.”

주인은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서로 아무런 바람도 계교(計巧)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나누고 있는 풍경에 자신도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그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따름이었다.

“그럼 잠시 후에 다음 손님을 들여보내도록 할게요. 차도 마련해 드리도록 하겠어요~!”

경쾌한 말을 남긴 주인이 잠시 후에 상담실로 차를 보내고는 이내 상담하러 온 사람을 보냈다. 두 명의 여인이었다. 진명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두 분이 오셨네요. 잘 오셨어요.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이렇게 말한 진명이 우창에게 인도한 다음에 자리를 권하고는 현지와 염재에게 눈짓했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유하도 같이 옆의 방으로 옮겼다. 여인들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우창이 잠시 기다려서 자리를 잡은 것을 보면서 미소를 띠고 물었다.

“잘 오셨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셔서 이렇게 찾아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활발해 보이는 여인이 말했다.

“소문을 듣고서 뵙고 싶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오래도록 함께할 수가 있을 것인지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여인의 말에 우창은 잠시 얼떨떨했다. 분명히 두 사람은 여인인데 말로 들어봐서는 부부처럼 말하는 것으로 느껴져서 혹 잘못 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요? 편하게 말씀을 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창이 다시 이해하기 쉽게 말해 달라고 하자 예의 활발한 여인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마음의 부부랍니다.”

그제야 우창도 무슨 뜻인지 짐작이 되었다. 예전에도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인이 남자를 거부하고 여인과 함께 부부처럼 살아간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없어서 약간은 당황했다.

“아,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아들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긴가민가했는데 그랬군요. 그러니까 몸은 여인이지만 남자의 역할을 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던 우창이 다시 묻자. 활발한 여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동행한 한 여인은 조용히 앉아서 부끄럽다는 듯이 말없이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창이 보기에 그 여인은 본래 대로 여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러한 모습이 생소했던 우창이 두 여인에게 차를 권하고는 진명에게 물었다.

“혹 이분들의 인연에 전생에서 맺어진 것이 보인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어떤지 봐줄 텐가?”

우창은 차를 권하고는 진명을 바라봤다. 사주를 볼 것인지, 혹은 점괘를 살펴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숙세(宿世)의 인연을 살펴볼 것인지를 묻는 의미였다. 그러자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바라보시는 뜻은 진명에게 답을 부탁한다는 의미시네요. 그렇다면 변변치 못한 졸견(拙見)이지만 한 말씀 드리도록 할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진명이 미소를 짓고 말하자 물었던 여인도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요. 무슨 말씀이라도 경청(傾聽)하겠습니다. 기탄(忌憚)없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명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짓는 두 여인을 향해서 말을 꺼내자 우창도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서 진명을 바라보자,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언니들 앞에서 되는대로 말씀을 드려볼게요. 호호~!”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귀담아서 듣겠습니다.”

“제가 본 것은 한 쌍의 남녀입니다. 고대광실(高臺廣室)의 아씨와 떠돌이 엿장수 총각이네요. 장날에 구경을 나갔다가 엿을 팔고 있는 총각을 보는 순간 인연임을 알았고, 총각도 일생에 두 번 다시 만달 수가 없는 여인임을 알고서는 아예 그 마을의 장에서 엿을 팔면서 아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으니 이뤄질 수가 없었던 안타까움을 어찌해야 할까요.....”

말을 하던 진명이 더 말을 잊지 못하고 느낌으로 전했다. 우창까지도 그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진명의 말이 가늘게 떨렸다. 두 여인도 진명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격정(激情)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진명의 말이 이어졌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한 염원만 갖고서 일생을 보내면서 다음 생에는 부디 같은 신분으로 태어나기만을 간절히 원했지요. 그래서 다음 생에는 같은 신분으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또 무슨 장애물이 있었기에 진명이 말을 잊지 못하고 잠시 두 여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누나와 동생으로 태어났군요.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참으로 안타깝고도 기이한 인연이었네요.”

진명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뭔가 느낌이 있다는 듯이 진명의 말을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제야 진명도 확신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금생(今生)에는 모든 것이 자유로우시죠? 축하드립니다. 함께 그대로 한세상을 누리시면 되겠네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자처럼 활발한 여인이 우창에게 물었다.

“전생에 그러한 인연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약간의 문제가 생겨서 그것이 고민입니다.”

그제야 우창은 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온 것은 전생을 알고자 함이 아니라 당면(當面)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서 다시 물었다.

“무엇이든 말씀해 주시지요. 들어보고서 판단하겠습니다.”

그러자 활발한 여인이 다시 말했다.

“제 마음은 굳건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마음이 가끔은 흔들리고 있어서 그것이 고민입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는데도 자꾸만 다른 남자들이 와서 집적거리니까 그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과연 제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인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특히 근래에 관청에서 일을 보는 관리(官吏)가 매우 적극적으로 혼인하자고 쫓아다니면서 애원하다가 제게도 와서 혼인할 수가 있도록 잘 말해 달라고 하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앉은 여인을 가리키자 우창도 비로소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과연 미모(美貌)의 모습에 품격까지도 있어 보이는 모습에서 누가 봐도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결을 해야 할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녀의 사이라면 간단하겠는데, 여인들인지라 남자 역할의 여인에게 관성(官星)을 부여하고 여인의 역할인 여인에게 재성(財星)을 부여해서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같은 동성(同性)이니 비견(比肩)으로 대입을 해야 할 것인지부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난감해하는 우창에게 진명이 말했다.

“스승님, 육갑패(六甲牌)를 사용할 때인가 싶어요.”

“아, 그래. 아무래도 그렇겠지?”

우창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진명이 짚어주자 내심 깜짝 놀랐으나 표정은 짓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진명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세 장의 육갑패가 필요하겠어요. 첫 번째의 패는 이분의 정황이 되고, 두 번째의 패는 저쪽 여인의 정황이 되고, 나머지 세 번째의 패는 쫓아다니는 관원의 패가 되는 것이지요.”

진명도 말을 하면서 활발한 여인에게는 여인이라고 하지 않고 이분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을 남자라고 여길 법해서였다. 진명의 말을 들은 활발한 여인도 반기면서 말했다.

“그 관계를 보고 싶습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그 관원과 만나서 살아야 할 인연이라면 그렇게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생일은 묻지 않으십니까? 사주를 봐서 두 사람의 인연이 어떤지도 알아보고 싶습니다만....”

손님이 원하면 그대로 해주는 것이 옳다고 여긴 우창은 염재를 불러서 사주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이야기가 궁금했던 염재가 얼른 대답하고 와서는 생일을 물어서 명식(命式)을 작성해서 우창 앞에 조용히 갖다 놓고는 뒤로 물러나자 우창은 사주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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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본 우창이 내심 놀랐다. 임인(壬寅)은 남자의 역할을 하고 정사(丁巳)는 여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사주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서였다. 무엇보다도 정임합(丁壬合)이 마음에 걸렸다. 우선 임인일주의 여인에게 말했다.

“소띠시네요. 아마도 과거에 남자로 인해서 놀라셨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로부터 남자에 대한 혐오(嫌惡)가 생겨서 절대로 혼인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게 되셨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임인(壬寅)의 여인이 갑자기 비분강개(悲憤慷慨)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맞아요. 말로 할 수가 없는 폭행(暴行)을 당했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리자고 했는데 이 친구가 마음을 다독여 줘서 이렇게 살아있으니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 우창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겉으로 봐서는 이상해 보이는 인연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또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정사(丁巳)의 여인은 조용히 앉아있자 우창이 말했다.

“혹 간지(干支)의 이치는 알고 계십니까?”

“글은 좀 읽었습니다.”

“그러시다면 말씀을 드리기가 더 좋겠습니다. 임수(壬水)로 태어나신 것도 알겠군요. 그리고 이쪽 분은 정화(丁火)라는 것도 말이지요?”

“그것까진 몰랐습니다. 어디에서 물어본 적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떤 인연이라고 해석을 하면 됩니까?”

우창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실은.....”

“편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이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제야 우창이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에 남녀의 궁합이라고 한다면 절대로 권할 수가 없는 인연입니다. 집착(執着)으로 인해서 서로에게 상처만 입힐 수가 있는 암시로 인해서지요. 다만 여인끼리의 애정(愛情)에 대해서는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소견으로는 자매(姊妹)의 인연으로 남고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만, 이것을 두 분이 원치 않는다면 또한 어쩔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임인(壬寅) 여인을 바라봤다. 그러자 여인의 표정이 이해하지 못할 모습으로 변하더니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도사님의 말씀으로는 제가 이 친구의 길을 막고 있겠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임인 여인은 정사 여인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어쩐지 그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남자가 추근거리는데도 그것이 싫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보면서 내심으로 분노도 생기고 서운함도 생겼습니다만,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너무 제 생각만 앞세웠던 것임을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창도 안타까웠지만 이러한 장면에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마음에 없는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말없이 육갑패를 앞에 펼쳐놓고서 말했다.

“사주를 봐서는 대략 방향이 나옵니다만, 점신(占神)께서는 어떤 생각이신지 살펴보겠습니다. 한 장을 뽑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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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의 말에 임인 여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한 장을 뽑아서 앞에 내려놨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사 여인에게도 한 장을 뽑아보라고 시켜서 나란히 놓은 다음에 우창이 그 남자의 몫으로 한 장을 뽑아서 가지런히 놓고는 뒤집어서 육갑(六甲)이 보이도록 했다.

임인 여인이 뽑은 것은 무술(戊戌)이었고, 정사 여인이 뽑은 것은 계미(癸未)였다. 과연 육갑패에서도 무계합(戊癸合)이 보였다. 인연이 깊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패를 보면서 우창도 염재도 내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전생부터 이어온 인연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우창이 뽑아놓은 패는 그대로 엎어놓은 채로 두 여인이 뽑은 육갑패를 보면서 설명했다. 두 여인도 기대하는 표정으로 우창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