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8.애증(愛憎)의 인연(因緣)

작성일
2023-04-05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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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8. 애증(愛憎)의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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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생각에 잠겼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원래 오주괘는 사주(四柱)에서 나왔고, 그래서 점단(占斷)의 시점(始點)에서 득괘(得卦)하는 것이었는데, 그 순서를 무시하고 임의로 괘를 만들어도 되겠느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오주괘가 과연 여태까지 믿고 활용했던 것만큼 영험(靈驗)이 있어서 잘 맞을 것이냐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의 문제에 대해서 해결을 보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는 망상이 될 따름이겠지만 만약에 이것이 실제의 상황에도 여전(如前)히 부합(符合)한다면 이보다 더 편리한 사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탑라패(塔羅牌)의 구조와 의미가 궁금해서 염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염재에게 물어봐야 하겠구나. 그 탑라패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들은 바가 있나?”

염재는 우창이 관심을 보이자, 기억을 더듬어서 다시 말했다.

“그 지역 사람들은 탑라패를 사용하면서 떠돌아다니는 유랑인(流浪人)을 일러서 ‘집시’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주로 일정한 주거가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유랑자라고 할 수가 있지요. 유목민은 소나 양을 데리고 다니는데 그들은 맨몸으로 가족과 이동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공부가 얕은 사람은 탑라패를 사용하고 공부가 더 깊은 사람은 점성술을 통해서 운명이나 점을 봐주고 그에 대한 복채로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아, 이제야 이해가 되네. 그렇다면 그들이 사용하는 화패(畵牌)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사용한다던가?”

“제자도 직접 시연(試演)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설명하는 것으로 들어본 바로는 질문자에게 몇 장의 그림패를 뽑도록 한 다음에 그것을 기본적인 해석법에 따라서 풀이하는 것입니다. 대략 봐도 그들이 사용하는 패는 수십 장이 되어 보였습니다. 이것이 제자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염재가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우창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알고 있는 내용 중에서 이러한 것에 대응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현지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던지 말했다.

“스승님, 곰곰 생각해 보면 주역에서 육효(六爻)를 보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요? 왜냐면 50개의 시초(蓍草)를 사용하는 18변법(變法)의 경우에도 하나를 맨 위에 놓고서 계속 양손으로 나눠가면서 나머지를 가려서 득괘(得卦)를 하니까요. 손으로 나눠서 쥐고 득괘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49개의 시초와 육갑패(六甲牌)를 비교한다면 서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초를 가려서 여섯 개의 음양을 펼쳐내는 것과 몇 장의 탑라패를 뽑아서 풀이하는 것은 서로 통하지 않을까요?”

현지의 말에 우창이 고개를 들고 현지를 바라보자 말을 이었다.

“스승님, 득괘(得卦)를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의 차이일 뿐이고 손에 집히는 대로 뽑는 것과 나누는 것의 차이는 따지고 보면 인위적(人爲的)인 행위(行爲)지만 결국은 그중에서 신의(神意)가 개입하여 점괘(占卦)로 완성되는 것일 테니 말이에요. 그러니까 오주괘라고 해서 반드시 현재의 시각(時刻)을 환산(換算)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지는 말을 마치고 우창의 답을 기다렸다. 우창이 다시 생각해 보니 과연 현지의 말이 육효를 뽑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주인 고윤화가 올라와서는 말했다.

“도사님, 오늘은 점심을 드시고 수고를 많이 하셔야겠어요. 먼저 왔다가 그냥 간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도사님을 뵈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점심을 곧 준비하려고요. 괜찮으시죠?”

주인의 말에 염재가 잘 알았다고 답하자 2각(刻:30분) 후에 내려오라는 말을 남기고 내려갔다. 그러자 염재가 우창에게 물었다.

“스승님, 바로 적용해 볼 기회가 온 듯싶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육갑패를 활용해서 영험(靈驗)을 살펴보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볼까? 결과만 좋다면 획기적(劃期的)이라고 하겠는데 말이지. 하하~!”

우창도 그 결과가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염재와 진명이 종이를 손가락 두 개를 겹친 정도의 크기로 자르고 현지는 주방으로 가서 풀을 끓여 갖고 와서는 세 겹으로 배접(褙接)을 한 다음에 똑같은 크기로 60개를 만들었다. 손이 많아서 그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풀이 마르기를 기다려서 빳빳해진 다음에 염재가 육갑을 순서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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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는 염재가 써놓는 대로 탁자에 먹물이 서로 묻지 않도록 펼쳐놓았다. 이렇게 해서 육갑패(六甲牌)가 만들어졌다. 육갑을 다 쓴 염재가 붓을 빨고 있는데 점심이 마련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모두는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으로 내려갔다. 상에는 돼지갈비를 불에 구운 요리가 중앙에 놓여있고, 양껏 먹도록 밥도 큰 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 저마다 양껏 배를 채웠다. 그러면서도 오늘 오후에 전개될 일에 대한 흥분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보다도 염재가 가장 기대하는 듯했다.

“실은 예전에 이렇게 활용할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승님께서는 반드시 질문자의 말이 떨어진 시간에 오주괘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셔서 잠시 생각만 하고 말았었는데 막상 이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까 이것이 틀림없이 영험(靈驗)한 능력을 보여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왜 처음의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염재는 우창이 다른 것은 너그럽게 수용하면서도 유독 점괘에 대해서는 완고(頑固)한데도 이러한 방법을 수용한 것에 대해서 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했다.

“그런가? 실은 우성암에서 기감(氣感)을 공부하면서부터 사고력(思考力)이 유연(柔軟)해졌나 싶군. 예전에는 흑백의 구분이 분명한 것이 좋았는데, 우성암에서 백일을 지내면서 그러한 경계선이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고 생각하면서 꿈과 현실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옳고 그름도 어찌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가 있느냐고 생각하게 되었지 싶네.”

“맞습니다. 스승님의 말씀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유연해지셨다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제자도 그러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지광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이렇게 전혀 다른 곳에서 효과를 발휘하게 될 줄은 또 몰랐습니다. 하하하~!”

염재도 자기의 생각이 예전에 비해서 완숙(完熟)해 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변화가 혼자의 생각인가 했는데 우창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자 지광의 가르침이 이렇게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는 손님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 사이에 육갑패는 빳빳하게 건조되었다. 약간 울어있는 것을 모아서 염재가 꾹꾹 눌러서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자 손에 쥐고 섞기도 좋고, 바닥에 펼쳐놓기도 적당했다. 주인에게 말해서 두꺼운 천을 하나 얻었다. 탁자에 펼쳐놓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시험 삼아서 진명이 뽑아보겠다고 했다. 모두 책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우창이 패를 손에 들고 섞어서는 바닥에 부채처럼 펼쳐놓고는 물었다.

“손님은 무엇이 궁금하셨습니까?”

그러자 진명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언제나 낭군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게 될 것인지 궁금하여 용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뵈었어요. 호호호~!”

진명이 재미있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아, 그러셨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점괘를 봐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다섯 개의 패를 뽑으시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펼쳐놓은 육갑패를 가리키자. 진명이 긴장되는 표정으로 다섯 장을 뽑아서 오른쪽부터 나란히 놓았다. 그리고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야말로 재미 삼아서 뽑아보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점괘를 본다고 하니까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우창이 가운데에 있는 패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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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뒤집은 것은 병인(丙寅)패였다. 그것을 본 우창이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진명에게 말했다.

“오호! 낭자께서는 지금 철학을 공부하고 있으십니까? 점괘에 편인(偏印)이 나왔는데 이것은 종교(宗敎)나 철학(哲學)에 대한 것을 공부하는 것으로 해석이 되는 까닭입니다.”

“와우! 기막히게 용하시네요. 실은 훌륭하신 스승님을 만나서 매 순간이 안타까울 정도로 공부에 빠져있답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호호호~!”

기왕에 육갑패의 실습을 하더라도 재미있게 노는 것이 더 즐거울 것은 당연하기에 서로 놀이 삼아서 대화를 나눴다. 일주(日柱)를 먼저 봄으로 해서 모두 내심으로 놀라운 마음을 품으면서 우창이 연주(年柱)와 월주(月柱)를 뒤집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서 시주와 분주도 뒤집었다. 모두 나름대로 육갑에서 보여주는 의미를 생각하느라고 일순간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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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눈이 육갑패로 꽃힌 가운데 우창의 손에 의해 뒤집혀서 드러난 육갑패 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연주(年柱)의 경신(庚申)을 보니 과거에는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하겠고, 월주(月柱)의 임신(壬申)을 보니 마음도 갈피를 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병인(丙寅)을 보니 종교나 철학의 인연으로 해서 마음에 안정을 얻게 되었는데 장차 갑인(甲寅)의 시주(時柱)를 보니 내공(內功)이 증진되어서 높은 법력을 얻게 될 것이고, 분주(分柱)의 병오(丙午)는 높은 하늘의 태양처럼 도법(道法)을 세상에 펼치게 될 것으로 풀이합니다. 미리 축하를 드려도 되겠습니다.”

우창은 이렇게 풀이하면서 진명을 바라보고는 깜짝 놀랐다. 진명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고 눈에는 이슬이 맺혔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서 뽑아본 육갑패인데 그 풀이를 들으면서 감정이 복받쳤던 모양이다.

“아니, 표정이 왜 그래? 진명은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가?”

“스승님, 그냥 재미로 보는 것이니까 별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제 삶의 여정을 되짚어 보게 되는 말을 듣게 되자 감정이 울컥했어요. 정말 신기한 육갑패에요. 신묘(神妙)함을 인정하겠어요. 호호호~!”

이내 웃는 모습을 되찾은 진명이 말했다. 그러자 염재도 생각했던 대로라는 듯이 말했다.

“스승님, 하늘의 조짐이 손끝에 도달하면 그 손으로 뽑은 패로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숫자가 적힌 막대기를 뽑는 것과 십팔변법(十八變法)을 사용해서 복잡하게 팔괘를 뽑는 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如實)히 증명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누나의 표정을 봐서도 그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점괘(占卦)는 장난으로라도 뽑으면 안 되는 것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고윤화가 들어와서 말했다.

“벌써 손님이 왔는데 쉬실 틈도 안 주네요. 어떻게 할까요? 더 기다리라고 해도 얼른 뵙고 싶다고 난리를 치네요.”

객잔 주인이 신명이 나서는 말했다. 어서 들여보내서 자기 객잔에 머무르는 도사가 용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예, 그래도 됩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도사라고 하지 말고 선생으로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낯이 간지러워서 말입니다. 하하~!”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세요. 사람들은 도사라는 말에 더 호기심을 보이거든요. 선생은 왠지 글방의 훈장과 같아서 말이에요. 그리고 진짜로 귀신같이 알아맞히시는데 도사님이 맞으시기도 하고요. 호호호~!”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는 내려가면서 찾아온 손님을 올려보냈다. 잠시 후에 중년의 곱게 생긴 여인이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염재가 준비하고 있다가 여인을 우창의 앞으로 안내하고 차를 따라서 권했다.

“여기 차를 드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예, 고마워요.”

여인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차에는 마음이 없는 듯이 우창의 앞에 앉아서는 잠시 창밖을 내다봤다. 어디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것으로 보이자 우창도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그러자 진명이 우창의 옆으로 다가앉으면서 말했다.

“아주머니의 온몸에 멍이 든 것도 알고 보면 전생 빚을 갚느라고 그런 거니까 누굴 원망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난데없이 불쑥 던지는 진명의 말에 여인이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진명을 바라봤다. 아마도 진명의 숙명통에 보이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을 한 우창이 자리를 슬쩍 비켜줬다. 그러자 진명이 우창의 자리에 앉아서 다시 말했다.

“어제도 맞으셨네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래도 용케 잘 견디셨어요. 그런데 왜 그러는지 궁금하시지요?”

여인은 눈을 크게 뜨고 진명을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도사님이 맞네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속을 끓이다가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 무슨 해결책이라도 있으려나 싶어서 찾아뵈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군요. 정말 왜 이렇게 맞으며 사는지 궁금해요.”

“그런데 때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술만 먹지 않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남편이니까요. 그러다가도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해서는 욕을 하면서 손찌검을 하는 통에 술만 보면 소름이 돋으시지요?”

이야기가 너무 심각하게 흐르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에서 진명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여인도 다소 긴장이 풀리는지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부터 좀 주제넘은 이야기를 해드릴 텐데 들어보실래요?”

“정말이지 이유라도 알고 맞았으면 좋겠어요. 그 까닭을 알고 나면 해결책이 있으려나요?”

“당연하죠.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으니, 원인을 알아야 결과를 바꿀 수도 있지 않겠어요? 호호호~!”

여인은 마음이 놓였다. 진명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뭔가 해결할 실마리가 보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인의 표정에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는 전생에 농부였어요.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형편이 좋아져서는 이웃 사람들에게도 베풀었어요. 그래서 이번 생에는 구차하지 않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부군(夫君)의 사랑도 받으면서 살고 계신 거죠.”

“사랑을 받는 것이 맞나요? 때론 그런 것도 같은데 또 어떤 때는 그것도 아닌 것만 같아서 말이에요.”

“맞아요. 사랑을 받는 것도 맞고, 미움을 받는 것도 맞아요.”

여인은 진명의 말을 듣고서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잖아요.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늘 혼란스럽답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농부였다면 특별히 나쁜 짓을 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에요.”

“그렇죠. 다만 일할 때면 소를 너무 때렸다는 것을 말고는요. 호호~!”

“예? 소를 때리다니요?”

“습관적으로 소를 너무 많이 때렸어요. 어쩌면 일상에서 쌓인 감정을 소에게 풀이했을 수도 있고요. 때리는 농부는 일 안 한다고 때리고 심심해서 때리고 그러다 보니까 습관적으로도 때리곤 했으니까요.”

“정말인가요?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한 적이 없어요.”

“맞은 소는 그 고통이 뼛속에 스며들게 되지요. 그것은 다시 영혼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영혼은 윤회하면서도 쌓이게 되거든요.”

“어머나~! 소름이 돋아요. 왜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시나요?”

“농부는 원래 그래요. 일하지 않을 적에는 쓸어주고 밥을 주면서 아껴주죠. 거기서는 또 감동하는 것이고요.”

“아니, 남편이 술만 먹지 않으면 너무 잘해 주거든요. 힘들었느냐고 하면서 안마도 해 주고 말이에요. 그래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고 하나 봐요.”

“아마도 이번 생은 그렇게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가야 할 거예요.”

여인이 진명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깊이 쉬고는 말했다.

“정말 매를 맞을 적에는 몸서리가 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때린 다음 날이면 또 약을 발라주면서 자책(自責)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요. 도대체 이러한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그것만 고치면 더 바랄 것이 없겠거든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인과법을 거스르는 것이라서 말씀을 드려야 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건 스승님께 여쭤봐야 하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도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가 갑자기 우창에게 묻겠다고 하니까 무엇을 물어보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진명을 마주 봤다. 그러자 진명이 여인을 한 번 보고서 우창에게 말했다.

“스승님, 그리 깊은 원한은 아닌지라 해결책을 알려 드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음..... 내 생각도 그렇구나. 이미 고통도 받을 만큼 받았으니 말일세.”

우창이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여인에게 말했다.

“예 스승님, 그렇다면 방법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여인의 표정이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 매질만 당하지 않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니까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진명의 말을 기다렸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해요. 절대로 누설(漏泄)되면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하시고요.”

“예, 이미 마음으로 준비를 다 했어요. 말씀만 해 주세요.”

“이 길로 시장으로 가서 발이 촘촘한 돗자리를 세 장 사세요. 그리고 빗자루를 파는 곳에서 가는 싸릿대로 만든 빗자루를 세 개 사세요. 남편이 보면 안 되니까 잘 숨겨놔야 해요.”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오늘도 모임에 나갔거든요. 그래서 잠시 나온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다음에는요?”

여인은 진명의 말을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다시 물었다.

“다음에는 술을 마시러 나갈 때를 봐야 해요.”

“그건 오늘 저녁에도 술을 먹고 올 것이 틀림없어요. 술꾼끼리 만나거든요.”

“그렇다면 잘 되었네요.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안방의 한 가운데에다가 돗자리와 빗자루를 놓고는 다락방에 숨어있으시면 되겠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밖으로 나오면 안 되고요. 숨소리도 내지 말고 있어야 해요.”

“그런 다음에는요?”

“아마도 아내를 찾다가 화를 내면서 빗자루로 돗자리를 두들겨 패게 될 거예요. 그래도 가만히 기다리세요. 그러다가 잠이 들게 되면 비로소 돗자리와 빗자루를 흔적도 없이 치워놓고는 옆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물론 절대로 내색하면 물거품이 되니까 조심하시고요.”

“그 일이라면 잘 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굿을 한다거나 천도재를 지내지는 않고요?”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굿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 테니까 그만 가보세요. 호호호~!”

“아니, 이대로 가면 되나요? 사례비를 조금밖에는 못 가져왔는데요.”

이렇게 말한 여인은 약간의 동전을 꺼내놓자 고맙다고 하고는 받았다. 여인이 떠나고 나자 우창이 물었다.

“아니, 그건 또 어디에서 배운 비법이지? 나는 처음 듣는데?”

“비법은 무슨 비법이겠어요. 여인과 스승님께서 대화하시는데 문득 영상이 보였어요. 남편이 가슴에 맺힌 원한만 풀린다면 두 사람은 더욱 행복하게 잘 살아갈 것으로 보여서 알려줬을 뿐이에요. 호호~!”

“그냥 보이는 대로 말을 해 주면 되지 왜 갑자기 나를 불러서 당황스러웠잖은가. 하하~!”

“그야, 이야기의 흐름이죠. 만약에 스승님께서 그것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할까 싶어서 여인이 얼마나 긴장하겠어요. 호호호~!”

“그랬군. 그런데 진명이 시켜준 대로만 하면 해결이 되기는 하는 건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였던 아픔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까 싶지는 않은데 말이지. 단순히 위로를 위한 방법이라면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전들 알겠어요? 그렇게 보여서 말을 했을 따름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미리 살펴본 남편의 심상(心象)을 봐서는 해결이 되지 싶어요.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죠. 호호호~!”

진명에 말에 현지도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오늘 저녁에 결과가 나온다면 내일이라도 확인을 할 수가 있겠구나. 나도 그 결과가 궁금하네. 호호~!”

“저도요. 호호~!”

염재가 탁자와 의자를 정돈하고 찻물을 끓이면서 진명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여인이 나가고 잠시 틈이 나자 진명에게 물었다.

“누나가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인과의 이치는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부와 소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생생한 이야기로 듣게 될 줄은 생각 못 했거든요. 누나는 농사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 잘 알고 계십니까?”

“알긴 뭘 알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숙명을 통해서 그러한 장면이 보여서 말을 했을 따름이야. 그런데 이야기는 그럴싸했던가 보네?”

“그럴싸한 것이 다 무엇입니까? 수십 년을 농사지어본 사람처럼 말씀하시던데요? 정말 놀랐습니다.”

“그 정도였어? 그렇담 다행이네. 호호호~!”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그리고 효과가 있다면 나중에도 그러한 상황을 겪는 사람을 만났을 적에 활용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될까요?”

“그건 안 돼.”

“아니, 왜 안됩니까?”

“그야 사람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비슷하다고 해도 속내는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괜히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건 안 된다고 봐. 호호~!”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단순합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