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5.미인박명(美人薄命)

작성일
2023-03-20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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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제36장. 동평객잔(東平客棧) 


5. 미인박명(美人薄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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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의 활약으로 인해서 마음속의 고민이 말끔히 사라진 고윤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참, 오늘 저녁에 가설극장에서 연극(演劇)이 있어요. 꽤 유명한 배우들이 경극(京劇)을 하고 있는데 볼만하다고 소문이 파다해요. 어제는 바빠서 생각을 못 했네요. 오늘도 공연한다니까 오늘은 손님을 보지 말고 구경하면서 쉬시는 것이 좋겠어요. 괜찮죠?”

고윤화의 말에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현지였다.

“그래요? 경극을 보고 싶어요. 무슨 내용인지도 아시나요?”

“내용은 패왕별희(霸王別姬)라고 해요. 경극이라고 하면 패왕별희만 한 것도 드물잖아요. 재미있어요.”

고윤화의 설명에 진명도 좋아했다. 그래서 다들 푹 쉬고는 이른 저녁을 먹고는 연극을 보러 가기로 했고 우창도 경극을 본 적이 없었는지라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시간이 될 때까지 저마다 편한 방법으로 휴식을 취했다. 우창은 호반을 거닐다가 생각을 할 것이 있으면 또 앉아서 쉬다가 하면서 보냈고, 진명은 주인과 수다를 떨면서 더욱 가까워졌고, 염재는 보고 들은 것을 열심히 기록하면서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진명이 하는 말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전생의 흔적과 금생의 모습이 어딘가에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가 해가 기울자 주인이 다시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렸다. 저마다 든든하게 먹고 나자 고윤화가 데리러 왔다. 같이 가서 구경하자는 것이었다. 모두 그를 따라서 공연한다는 동평희원(東平戱院)으로 갔다. 이미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으로 봐서 인기가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우창은 기대감으로 지켜보다가 내심 감탄했다. 처음에는 경극 특유의 고음(高音)이 거슬렸으나 많은 사람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니까 오히려 또렷하게 전달되는 내용이 좋게 들렸다.

배우들의 연기도 실감이 나게 잘해서 자꾸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극적인 장면에서는 구경하던 사람들과 같이 웃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분위기에 동조하다가 보니까 잠시 현실 세계를 잊어버리고 극 중의 초한전(楚漢傳)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한(漢)의 군사들이 부르는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울려 퍼지는 대목에서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박감(緊迫感)이 넘쳐났다. 특히 항우가 체념하면서 부르던 「해하가(垓下歌)」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力拔山兮氣盖世(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불서)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힘으로는 산도 뽑겠고 기세는 세상도 덮으련만
때를 얻지 못했으니 오추마조차도 걸음을 멈추네
말조차도 나아가질 않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우희야 우희야 어떻게 하느냐 이와 같은 상황에...

천하를 휘잡고 강산을 누비던 항우에게 이와 같은 결말이 다가올 줄이야 생각이나 했으랴 싶다. 이렇게 탄식하는 항우에게 애첩 우미인(虞美人)의 화답이 절절하게 울려 퍼졌다.

漢兵已略地(한병이략지)
四方楚歌聲(사방초가성)
大王意氣盡(대왕의기진)
賤妾何聊生(천첩하료생)

 온천지가 한나라 병사들이고
사방에서는 초나라 노랫소리
대왕조차 의기가 사라졌으니
천한 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이렇게 말하고는 항우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오강(烏江)에 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항우(項羽)와 우희(虞姬)의 이야기지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느끼는 새로움이 오히려 가슴을 절절하게 했다. 이야기에 빠져들다가 보니 연극은 순식간에 끝나고 잠시 그 허전함에 앉아있는데 진명이 우창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보고서야 일어났다. 객잔으로 돌아와서 과일을 먹으면서 저마다 소감을 나눴다. 진명이 먼저 말하는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극을 보는 내내 눈물이 자꾸만 흘렀어요. 왜 미인(美人)은 모두 박명(薄命)이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스승님 이것은 재미있으라고 만들어 놓은 이야기여서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미모가 출중하면 운명은 나쁜 것일까요? 한편으로 진명이 미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호호호~!”

우창이 진명의 말을 들으면서 극적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진명은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았는지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추는데 코맹맹이 소리가 되기도 했다.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쳤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미인의 팔자라고 해서 따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되지는 않네. 외모는 부모의 소산(所産)일 따름이니까. 다만 외부에서 가만두지 않기 때문에 삶을 순탄하게 살기가 어려웠던 것으로도 생각해 봤지. 그리고 또 이야기에 나오는 여인들은 모두 절세가인(絶世佳人)인데 그것은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사람에게 더 강한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더군.”

우창의 말에 염재가 보충해서 거들었다.

“보통은 사대미녀(四大美女)라고 하면 왕소군(王昭君), 양옥환(楊玉環), 서시(西施), 초선(貂蟬)을 들기도 하고 여기에 조비연(趙飛燕)을 포함하여 오대미녀라고도 합니다만, 우희(虞姬)는 여기에도 들지 못한 미녀인 셈입니다.”

염재의 말에 진명이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아니, 그런 이야기도 있었던가? 들어봤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없네. 와~! 재미있겠다~! 동생이 자세하게 설명을 좀 해 줘봐. 그래야 왜 미인박명이란 말이 나왔는지를 알지 않겠어? 명학(命學)을 핑계 삼아서 항간(巷間)의 이야깃거리도 모으고 말이야.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본래의 밝아진 모습으로 말하자 염재도 알고 있는 내용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역사적인 세월로 본다면 서시가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원래 이름은 시이광(施夷光)이었습니다. 동쪽에도 시(施) 낭자가 있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서시를 미인이라고 칭송하자 자신도 서시가 하는 행동을 무조건 따라 해서 빈축(嚬蹙)이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분하다가 보니까 동시의 구분하기 위해서 서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춘추시대의 말기에 오월(吳越)이 쟁패(爭霸)하던 시절의 이야기니까요. 월왕(越王)인 구천(勾踐)이 오왕(吳王)인 부차(夫差)에게 크게 패하고는 와신상담(臥薪嘗膽)으로 복수의 기회를 보고 있을 적에 대신 중에 범려(范蠡)가 알고 있던 서시를 소개하게 되었고 이것은 미인계가 되어서 부차에게 보내졌습니다.”

염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명이 물었다.

“잠깐, 그런데 와신상담은 무슨 뜻이야?”

“아, 그것은 짚으로 된 자리에서 잠자고,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심을 지키려는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정말 어지간히도 복수심이 불탔었나 보다. 그래서?”

“서시는 오왕에게 보내졌고, 온갖 교태(嬌態)를 부려서 부차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오자서(伍子胥)가 장군으로 있으면서 미인계(美人計)를 알아차리고 아무리 만류해도 이미 마음을 빼앗긴 부차는 그대로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가 결국은 구천에게 패하고 말았답니다.”

“그렇다면 서시는 공신(功臣)이 된 셈이네?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는 잘 살았던 거야?”

“이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합니다. 태호(太湖)의 여호(蠡湖)에서 범려와 행복하게 여생을 살았다는 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다른 이야기로는 오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망친 요녀라고 해서 강에 빠뜨려서 죽였다는 말도 있고, 미인계로 들어갔으나 나중에는 부차를 사랑하게 되어서 그가 죽자 따라서 죽었다는 말도 있는데 사람들은 처음의 이야기를 믿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염재의 생각으로는 부차를 사랑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하하~!”

“와~ 그렇구나. 말년을 잘 보냈다면 박명이 아니잖아? 그런데 왜 미인박명이라는 거지?”

“아니, 자신이 좋아하던 사람인 범려와 자식을 낳으며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적국으로 가서 거짓 웃음을 웃으면서 몸을 바치는 것이 호명(好命)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꽃다운 시절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지 싶습니다. 더구나 오나라 사람들이 익사시켰다고 하면 그야말로 박명에 썩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네. 딱해라~!”

“다음으로는 한대(漢代)의 왕소군(王昭君)이 있습니다. 그녀는 인물이 출중하여 궁녀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서한(西漢)의 원제(元帝)는 궁녀들을 선택할 적에 초상화를 보면서 결정했는데 왕을 맞이하기 위해서 궁녀들은 초상화를 그리는 화공(畫工)에게 웃돈을 주면서 예쁘게 그려 주기를 부탁했지만, 왕소군은 자신의 미모를 믿고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러자 화공은 얄미워서 못생긴 여자로 그렸다지요. 그래서 번번이 왕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당시 간신들의 득세로 국력이 허약해지면서 흉노(匈奴)의 왕인 호한야(呼韓邪)가 평화협정을 하러 와서는 자신에게 궁녀를 달라고 하자 왕인 원제가 마음대로 골라가라고 했는데 그가 왕소군을 골랐고, 왕소군을 본 원제는 깜짝 놀라서 내일 데려가라고 하고는 하룻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화공에게 극형을 내렸다는데 이미 왕소군은 흉노로 돌아갔고, 마음은 한없이 처량했다고 합니다. 봄이 되었으나 꽃이 없는 흉노의 땅을 보면서 ‘봄이 되었건만 마음은 차가운 겨울과 같다’는 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더구나 흉노의 풍습은 왕이 죽으면 다음 왕과 부부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해서 그 마음은 어땠을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랬구나. 박명이 맞네. 고향을 떠나서 머나먼 타국에서 볼모나 다름없는 삶을 살면서 하룻밤의 은총(恩寵)을 그리워하면서 살았다면 말이야.”

“물론 왕소군이 직접 써놓은 기록이 없으니 후의 사람들이 짐작했을 수도 있지 싶기는 합니다. 오랑캐의 땅에서 무슨 행복이 있었겠느냐는 생각일 수도 있었겠지요. 하하하~!”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까 과연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남편인 왕과 살다가 왕이 죽으면 또 부왕의 자리를 물려받은 태자(太子)와 사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호호호~!”

“맞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으니까요. 저마다 자기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따름입니다. 하하~!”

“다음은 또 누구야?”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초선(貂蟬)이 있습니다. 이 여인도 빼어난 미모로 인해서 미인계의 희생양이 되었으니 미인박명이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원래는 어려서 시장에 팔려 나온 아이를 왕윤(王允)이라는 대신이 사다가 수양딸로 키웠는데 동탁(董卓)이 여포(呂布)를 무한히 신뢰하는 것으로 인해서 동탁을 죽일 수가 없자, 이들의 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해서 초선을 이용하여 여포와 정을 나누게 한 다음에 동탁에게 보내는 작전을 쓰는 바람에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 또한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기도 합니다. 나중에 조조(曹操)가 초선을 보고는 미인이어서 처로 삼았다는 설도 있고, 여포가 죽은 후에 조조가 허도로 보낸 후로는 기록이 없다는 설과 관우(關羽)가 초선을 보고는 미인은 재앙의 근원이라고 생각해서 죽였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변의 정세에 이용이 되었다는 점에서 박명임이 확실하다고 하겠습니다.”

“아하~!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렇게 자세한 것까지는 몰랐지. 오늘 동생 덕에 미인 공부를 제대로 하네.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지?”

“또 한 사람은 가장 늦은 당대(唐代)의 여인입니다. 이름은 양옥환(楊玉環)이지요.”

“양옥환? 그런 사람도 있었어? 처음 들어보는데?”

“아, 흔히 양귀비(楊貴妃)라고 부르는데 귀비(貴妃)는 비의 이름이고 본래 이름은 양옥환이라고 합니다. 이 여인도 현종(玄宗)의 18번째 왕자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가 되었다가 27세 때에 아들의 처인 며느리를 만난 61세의 현종이 한 번에 보고서 눈에 들어서 아들을 변방으로 보내고 며느리를 귀비로 삼게 되었다고 하니 과연 미인박명의 본보기로 삼기에 참 잘 어울린다고 하겠습니다. 인물이 평범했더라면 겪지 않아도 될 시련들을 너무 많이 겪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더구나 후에 안록산(安祿山)과 만나면서 왕을 배반하기도 했으니 기구한 운명인지 자유로운 운명인지는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순탄한 운명이 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결국은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다른 여인들과 비교해서 세월이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양귀비의 사주는 전해진다고 해서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살펴보시겠습니까?”

“와~! 그래? 보여줘 봐. 미인의 팔자는 어떤지 궁금하잖아. 호호호~!”

염재은 휴대하고 있던 기록첩을 꺼내어 뒤적이다가 양귀비의 명식(命式)을 찾아서 적었다. 모두의 이목이 한 곳으로 모였다.

436 양귀비사주

염재가 적어놓은 사주를 보던 진명이 먼저 말했다.

“뭐야, 상관(傷官)도 하나 없는데 어떻게 미녀가 되었지? 사주가 맞기는 한 걸까?”

진명의 말에 염재가 웃으며 말했다.

“그야 사주의 진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느 구석에 뭔가 보이는지 찾아보시지요. 하하하~!”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지가 사주를 보면서 염재에게 말했다.

“오월(午月)의 무오(戊午)이니 매우 강한데다가 연주(年柱)에서도 기미(己未)가 돕고 있으니 용신은 설하는 경금(庚金)으로 삼고 식신격(食神格)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 그런데 주운으로 보면 젊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모두 누렸으니 월간(月干)의 용신이 작용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그 후로는 볼만한 것이 없고 남편궁(男便宮)도 기신(忌神)인 것으로 봐서 부부관계가 행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고, 자녀도 부담이라고 봐서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는 되는걸.”

“맞습니다. 염재가 봐도 그 정도의 풀이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매우 총명했다고 하겠고, 표현도 그만하면 남에게 빠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재성(財星)인 수(水)가 없어서 지나치게 조열(燥熱)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품격(品格)은 떨어지는데 극귀(極貴)의 호사(豪奢)를 누렸으니 팔자가 맞지 않는 것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고는 우창을 봤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우창에게 물어주니 우창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묻는 것에 대해서만 답을 하면 되었다.

“염재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덕분에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었으니 고맙네. 양귀비의 사주를 풀이하다가 궁금증이 생겼구나. 어디 생각해 보지. 하하하~!”

“예, 스승님의 말씀을 들어야 정리가 되지 싶습니다.”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얼른 끼어들어서 물었다.

“스승님 말씀이 이런 때에는 더욱 중요해지네요. 명색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일컫는 앙귀비의 사주에 상관도 하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 사주가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진명의 말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지. 왜냐면 사주는 간지(干支)를 낳고 간지는 정신(精神)을 낳기는 하지만 몸을 낳지는 않으니까. 하하하~!”

“아니, 그렇다면 외모(外貌)와 사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진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우창이 말했다.

“당연하지~!”

“스승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설명이 더 필요해요.”

“그런가? 가령 같은 동네에 같은 시간에 두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 볼까? 사주는 같겠지만 외모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예? 음..... 그건....”

“갑(甲)의 집에는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한 혈통이고, 을(乙)의 집에는 왜소(矮小)한 체격(體格)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또 어떨까?”

“음.... 그렇다면 같은 사주라고 하더라도 외모는 같다고 하기 어렵겠어요. 그렇지만 그것도 스승님의 가정(假定)을 빙자한 편견(偏見)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비록 외모가 똑같지는 않더라도 사주의 모습에 따라서 닮은 점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는 부분일까요? 왜냐면 예전부터 외모가 출중한 사람을 보면 사주가 잘생겨서 그렇다는 말을 늘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호호호~!”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생각하네. 사주는 외모가 아니라 내면을 의미한다고 몇 번이나 말을 해야 하겠나? 하하하~!”

우창이 웃으며 말하지만 설명하는 기준은 명료했다. 몸과 정신이 같은 것이 아니라면 사주는 정신을 담당할 뿐 몸과는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답을 한 우창이 이번에는 염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염재가 궁금한 것은, 이렇게 조열하고 재성도 없는 사주를 갖고 태어나서 어떻게 극귀함을 누렸겠느냐는 질문이지? 이것은 논의할 만하겠군. 우선 기록이 된 것은 겉으로 몸이 누린 것에 대한 정보일 뿐이지 않은가?”

“맞습니다. 기록은 몸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적으로는 어떤 추론이 가능하겠습니까?”

염재가 이렇게 묻자 우창도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심리적(心理的)인 부분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항상 속이 끓어올랐을 수도 있겠지. 양귀비가 생전에 여산(廬山)의 화청지(華淸池)에서 온천(溫泉)을 즐겼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조차도 심리적으로 답답한 기운을 시원한 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군.”

“아,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또, 호사(豪奢)를 누렸던 것은 환경(環境)에서 주어진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니, 가령 양귀비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여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래도 현종이 총애(寵愛)한 여인은 양귀비라는 말이니 이 차이는 왕자의 비가 되었던 것이 인연이고, 목욕하다가 현종의 눈에 띈 것도 인연이고, 안록산을 만나서 정을 통하다가 결국은 명을 다 한 것도 환경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적용하고자 하면 모순이 발생하지만, 환경이야 어떻든지 간에 심리적으로 겪었을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군. 하하~!”

우창의 말에 염재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스승님, 혹시 일간(日干) 무토(戊土)가 시주(時柱)의 을묘(乙卯)를 만나서 나무에 비단으로 목을 맨 것은 아니겠지요? 문득 그것이 생각났습니다.”

“어?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구나. 신기하군. 다만 그것은 꿰어맞춘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 하하하~!”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지가 다시 물었다.

“현지도 양귀비의 그 심정이 이해됩니다. 마치 왕소군이 흉노의 왕비가 되었으나 기분이 우울했던 것과도 비교해볼 수가 있겠고, 비록 조용히 살고 있어도 마음은 한없이 평온한 화련 보살님과도 비교가 되네요. 부귀영화(富貴榮華)가 그렇게도 좋은 것이라면 그에 따른 두려움도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에 구중궁궐(九重宮闕)은 항상 바늘방석 위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교할 수도 있겠어요. 오죽하면 어느 황제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출가했겠나 싶기도 해요.”

“맞는 말이지.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저마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 평가는 같지 않을 것이니 본인만이 그에 대한 답을 안고 있을 따름이라고 하겠지.”

우창의 설명을 듣고서야 진명도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진명이 아무래도 잘못 이해하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사주에서 비롯하고 왕비가 되는 것도 팔자에서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라가 하나이고 왕비도 하나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짧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겠어요. 더구나 외모에 대해서도 사주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제야 머릿속이 환해졌어요. 자상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호호호~!”

진명이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이자 우창도 미소로 답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시간이 해시(亥時)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염재가 쉬도록 하자는 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들 작별 인사를 하고는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