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4.전생록(前生錄)의 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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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5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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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제35장. 우성암(牛聖庵) 


14. 전생록(前生錄)의 누설(漏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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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던 진명은 목이 마르자 물을 한 잔 마시고는 자기가 본 것에 대해서 말했다.

“참으로 진명이 본 것이지만 믿어지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또 분명한 것은 생생하게 본 것도 맞아요. 그래서 말씀은 드려 볼게요. 그리고 어쩌면 정신이 나가서 착란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여하튼 판단은 스승님과 화련 보살님께서 해 주세요.”

진명의 말에 우창도 거들었다.

“그렇게 뜸 들이지 않아도 우리는 진명을 다 믿으니까 괜한 걱정은 말고 어서 말이나 해 봐. 그리고 또 이해되지 않으면 이따가 태옹 선사가 오시면 여쭤보도록 하면 될 일인 것을 무슨 걱정인고.”

“아, 그렇겠네요. 실은 진명이 본 것은 거대한 팽(彭)나무였어요. 그리고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 나무가 진명이었다는 것이죠.”

이렇게 말을 하고는 아직도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마음이 들어서 우창을 쳐다봤다. 그러자 우창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명도 더 들어보자는 의미인 줄을 알고는 말을 이었다.

“그 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기도하는 신목(神木)이었어요. 그 자리에서 1천 년을 살면서 온갖 소원을 들어주고 때론 기뻐하고 또 때론 슬퍼하면서 애환(哀歡)을 함께 했었네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진명의 말을 들으면서 저마다 그 풍경을 상상하느라고 몰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풍경을 본 것이 전생의 풍경일까요? 아니면 그냥 환상(幻想)을 본 것일까요?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들었으나 동물도 아니고 초목이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화련 보살님께서 혹 도움이 될 말씀해 주실 수가 있을까요?”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던 화련 보살이 진명의 말에 고개를 들고 진명을 바라봤다. 진심으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말했다.

“나도 진명의 말을 들으면서 기이하다고 생각했네. 동물이 인도환생을 하더라도 바로 하지는 못한다고 했어.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나기 직전에 거치는 과정이 개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했거든. 그래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개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네. 하물며 개를 죽이는 것도 하지 않지.”

화련 보살의 말에 염재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렇다면 불교에는 그에 대한 연유가 있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정신세계와 영감도 공부하니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과 그 이치가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그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야 어려운 일도 아니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적에 제자 중에 목건련(目揵連)이 있었어. 그의 모친이 생전에 허물을 많이 범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고, 목건련 존자의 지극한 효심에 의해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게 되자 인도환생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입정(入定)하여 살펴보니까 이웃 동네에 사는 개의 배에 들어가 계신 거야. 그래서 부처님께 물었지. ‘이것이 어찌된 것이냐?’고 말이야. 그러자 부처가 말씀하셨어. ‘바로 사람으로 태어나면 인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태어나서 인간이 주는 음식을 먹고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면서 공덕을 닦은 다음에서야 비로소 인도(人道)로 태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라고.”

“아, 그런 고사(故事)가 있었습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입니까? 다시 생각해 보면 죽어서 몸도 사람에게 제공하면 더 공덕이 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염재가 이렇게 말하자 화련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그야말로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나온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닐까 싶네. 호호호~!”

“그렇습니까? 염재가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하하하~!”

“보통 그렇게 생각할 것이니 비단 염재의 탓도 아니지. 보통 사람들이 개를 키우다가 고기를 먹고 싶으면 마당 가의 살구나무에 매달아 놓고 몽둥이로 두드려 패서 죽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

“아니,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가 있습니까? 주인을 위해서 도둑도 지켜주고 보호했던 동물을 그렇게 학대한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모습이 하도 참혹하여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봤었지. 그랬더니 ‘그렇게 두들겨 패서 죽이면 고기가 연하다’고 하더군. 그렇게 죽은 개는 인도환생을 한다면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까? 과보가 있다면 아마도 그 개의 환생한 사람에 의해서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두려운 생각조차 들었다네.”

화련의 말을 듣고 있던 염재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참으로 끔찍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호남(湖南)의 통도현(通道縣)에 우씨(虞氏) 집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1년이 되자 아이를 마을로 데리고 갔더니 푸줏간을 하는 용(容)씨 성을 쓰는 사람을 보자마자 무섭다고 울면서 엄마에게서 떨어지지를 않더랍니다. 한 번 그러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볼 때마다 그러니까 괴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세 살이 되어서 말을 하게 되자 길가의 풀을 보면서 ‘저 풀은 맛이 있다’고 하거나, ‘저 풀은 억세기만 하고 맛이 없다’고 하면서 이상한 말을 하기에 자초지종을 물어보니까 그 연유를 말하더랍니다.

‘나는 전생에 외할아버지 집에서 자란 흰 돼지였는데 어느 날 용씨가 사람을 데리고 돼지를 사러 왔는데 잡혀가면 죽을 것을 알고는 기를 쓰고 산으로 도망을 갔지만 결국은 잡혀서 팔렸으며 용씨에게 죽었고 전생에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인연으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실제로 정황을 알아보니까 과연 용씨가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돼지를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더군요. 이렇게 돼지가 인도환생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당시에는 그냥 살생하지 말라는 교훈이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련 보살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과연 허언(虛言)만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염재의 말을 듣고 난 화련이 말했다.

“그런 말도 있었구나. 돼지도 사람과 가까이 지내니까 인도환생 할 가능성도 있겠네. 그래서 전생의 원한으로 만났다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상해(傷害)를 가할 수도 있으므로 전생의 인연을 알게 된다면 어찌 함부로 살생하겠어? 그렇지만 초목이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것은 생소해서 나도 의아한 거야. 그래서 흥미가 동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네.”

화련 보살의 말을 듣고서 진명이 지광에게 물었다.

“사부님은 견문이 넓으시니까 말씀해 주세요.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왜 눈으로 본 듯이 선명하게 봤는데도 선뜻 믿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화련 보살님의 말씀을 듣고서 곰곰 생각해 봤는데 그냥 숲속에서 자란 나무라면 혹 모르겠으나 신목이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관계를 많이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미 인간의 수업을 했다고 봐도 될 것이고, 오히려 더욱 오랜 세월을 두고서 인간들의 모든 욕망을 다 알게 되었으니 오히려 돼지나 개보다도 더 깊은 공부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지광의 말에 진명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이네요~!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까 비로소 이해되었어요. 그런데 또 이어서 드는 생각은 그렇게 인간의 애환을 들어주면서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왜 그렇게도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에요.”

우창은 문득 통인사(通印寺)에서 처음에 진명을 만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영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면서도 밝게 웃던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는데 그사이에 많은 공부가 되어서 이렇게 밝아진 것을 보니 내심 뿌듯한 마음도 생겼다. 이렇게 생각게 잠겨 있는데 현지가 말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진명이 신묘한 능력을 얻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겠어. 전생에 쌓아놓은 선업(善業)으로 인해서 숙명통을 얻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축하해야 할 일이잖아. 그런데 내 전생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데 어떻게 여기에 대해서 좀 살펴 줄 수 있을까? 나도 과거의 삶이 어땠는지, 또 이렇게 태어난 인연도 있을 텐데 그것은 또 무슨 인연인지 많이 궁금해서 말이야.”

평소에 헛된 말을 하지 않던 현지가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진명도 감히 사양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현지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뭔가 보인다면 그대로 알려줄 생각이었다. 잠시 암흑의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밝아졌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나타난 풍경은 전장(戰場)이었다. 깃발의 글씨를 봐서 초(楚)라고 쓴 글자가 보였다. 상대는 누구인지를 살펴보니 또 다른 깃발에는 한(漢)이 보였다. 현지의 전생은 초나라의 장수였다.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창을 휘두르면서 말을 몰아서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한나라의 병졸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마주 싸우던 한나라 병졸들이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퇴각(退却)했다. 도망가는 적을 쫓다가 문득 불타는 집을 들여다보니 가족이 모두 죽었는데 5~6세쯤 되어 보이는 남아(男兒)가 눈물을 흘리다가 마주 보는 눈빛을 접하고서는 잠시 생각하다가는 그 아이를 말 등에 태우고는 막사로 돌아가서 아이를 보살펴 주라고 하고는 다시 적들을 쫓는 장면이 생생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현실로 돌아왔다.

“휴~!”

진명이 한숨을 토해내자 현지가 긴장하면서 진명을 바라봤다. 그 표정은 결코 도화낙원(桃花樂園)을 보고 온 표정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동생, 뭐 봤길래 표정이 그렇게 어두워? 본 대로 말을 해 줘.”

“언니의 전생을 본 것은 맞아요. 그런데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혹하네요. 언니는 초나라의 장수였던가 봐요. 상대는 한나라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대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진명이 이렇게 말을 하면서 다시 그 장면이 떠올라서 몸서리를 쳤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염재가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봐서는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초한대전이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초나라 장수였다면 그 결과는 패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다음의 이야기는 말하기 어렵겠습니다.”

염재의 말에 현지가 물었다.

“아, 그렇다면 그 전쟁에서 나는 죽었겠네. 아니면 몇 년은 더 살았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어린애를 구하는 장면을 보았을까?”

현지가 이렇게 말하자. 진명이 다시 현지를 한 번 보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다시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있고 나서 드러나는 풍경은 천봉만학(千峯萬壑)의 산속이었다. 나이가 많이 든 도사(道士)와 남자가 보였다. 도사는 현지의 전생인 무장이었고 남자는 그때 구해 준 아이였다. 그 모습을 본 진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중은 진명의 표정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표정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대략 무슨 상황인지 상상을 할 뿐이었다. 잠시 후 깨어나는 듯한 진명이 다시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는 듯이 굳어있었다.

대중들도 진명의 표정의 변화에 따라서 같이 분위기를 느끼는 듯했다. 새롭게 전개된 풍경을 만나게 되었을 적에 이번에는 재판관(裁判官)의 앞으로 좌우에 나졸들이 서 있는 가운데 묶여서 끌려온 남자가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 남자가 현지였다. 자기의 아내를 겁탈하던 현령(縣令)을 칼로 살해하고는 결박되어 나왔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이 되어서 남자는 방면(放免)되었고 그 고마움을 고두백배(叩頭百拜)로 사례(謝禮)하고는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시 앞이 캄캄해졌다.

“언니의 전생은 그래도 계속해서 인도(人道)에서 노닐었나 봐요. 호호~!”

진명이 밝은 표정으로 말하자 현지도 기뻤다. 그런데 무엇을 보고 왔는지는 말해 주지 않아서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 생각을 정리한 진명이 말을 이었다.

“언니가 어린 소년이었을 적에 구해준 장수가 노인이 되어서 옆에서 시중을 드는 장면이 보였어요. 초한의 전쟁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깊은 산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서 마음이 놓였어요. 언니는 준수한 청년으로 자란 것으로 봐서 대략 전쟁으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것으로 보여요.”

진명은 여기까지만 말하고 두 번째로 본 장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크게 즐거울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현지가 다시 물었다.

“정말 고마워, 그렇게 과거의 삶에 대한 흔적을 보러 다니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문득 혜암 스승님과의 인연이 궁금해지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가 있을까?”

“언니가 부탁하니까 다시 살펴볼게요. 잠시만.....”

다시 눈을 감고 어둠의 터널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현지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정신력을 집중했으나 어둠의 터널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 흐르자 진명도 포기를 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는 말했다.

“언니, 그 부탁을 들어드리려고 노력했지만 보이지 않아요. 마치 전생으로 가는 통로를 누군가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미안해요.”

진명이 이렇게 애를 쓰고서도 미안해하자 오히려 현지가 부담스러웠다.

“아니야,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싶네. 이미 알려 준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말이야. 그만하면 충분해. 적어도 전생에 도사를 따라서 공부를 했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잖아. 아마도 그 도사를 따라서 계속 공부를 했을 것이고, 도사는 혜암 스승님이었을 것 같네. 그리고 이렇게 훌륭한 수행의 벗들을 만나게 된 것도 모두 선연(善緣)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수고 많았어. 고마워~!”

현지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서 진명도 뭔가 큰 도움을 준 것 같아서 내심 흐뭇한 보람이 느껴졌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해가 기울면서 석양의 황금빛 햇살이 창을 물들였다.

“이런,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있었네. 저녁 공양을 준비해야 하겠어요. 호호호~!”

진명이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 듯이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러자 모두 저마다의 역할을 찾아서 흩어졌다가 저녁상을 마련하고서 목탁이 울리자 밥을 먹고는 저마다 자신의 방에서 오늘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에 잠겼다.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고 저녁 예불을 마친 화련 보살이 장명등(長明燈)에 불을 붙이다가 말했다.

“태옹 선사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저녁 공양을 준비하겠어요.”

화련 보살의 말에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합장으로 태옹을 맞이했다. 태옹은 등에 바랑을 짊어지고 와서는 그것을 평상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저녁은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과일을 좀 얻어왔으니 먹으면서 담소하면 되겠소이다. 허허~!”

향기로운 과일의 향이 큰방을 가득 채웠다. 모두 태옹을 상석에 앉게 하고서 빙 둘러앉아서 과일을 먹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먼저 진명이 물었다.

“선사님께서 베풀어 주신 숙명통으로 인해서 이러저러한 경험을 했어요. 너무 신기하고 놀랍네요. 감사드려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혀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자 태옹은 진명을 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그러다가는 제명에 못 죽지. 내가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 준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군.”

진명은 의외의 말을 하는 태옹을 보면서 물었다.

“아니, 선사님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러면 안 되는 건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대는 이미 지쳐있지 않은가? 많이 힘들겠군.”

“예, 이상하게 폭염에 산을 오른 듯이 온몸이 나른한 느낌이 들었어요. 선사님 왜 그렇죠?”

“왜긴 뭐가 왜인가. 과거를 보기 위해서는 열 배의 힘을 써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내공이 연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가는 명줄까지 갉아먹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지자무언(知者無言)이라고 하는 것이라네. 지자무언이 아니라 실은 지자불언(知者不言)인 거야. ‘아는 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까. 허허허~!”

“그런가요?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라한이 그러한 놀이에 빠져들어서 수행을 게을리하는 바람에 부처가 그다음의 수행(修行)을 말하게 되었던 것이라네. 잔재주를 버리지 않으면 화택(火宅)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그 말씀대로 하겠어요.”

“자고(自古)로 무사(武士)는 칼을 뽑지 않고, 판관(判官)은 붓을 들지 않는 법이라네. 그뿐인가? 명창(名唱)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점사(占師)는 점을 치지 않는단 말이네. 그대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따라다니다가는 오히려 식자우환(識字憂患)의 재앙을 면키 어려울 것이네.”

태옹이 이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현지가 말했다.

“선사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물어도 되는 줄로만 알고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었던 것인데 그로 인해서 진명에게 어떤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어요.”

태옹이 그 말에는 답하지 않고 다시 진명을 향해서 말했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이치를 알겠는가?”

“예, 선사님의 가르침을 뼈에 새겼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때에 사용해야 하나요? 그리고 네 번째의 전생을 추적하려다가 실패했어요. 여기에도 무슨 이유가 있지 싶은데 그것은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세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숙명을 휘젓고 다녔던 거지? 그것은 그대가 스스로 살아나기 위해서 발휘하는 일종의 보호장치라네. 계속 그러다가는 명대로 못 살지 싶으니까 그대의 부처가 막은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마치 피를 계속 빨다가 배가 터져 죽는 모기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진명은 잠시 혼란에 잠겼다. 능력을 얻으면 다 되는 줄로 알았는데 잠시 경험했던 것과 태옹의 말을 정리해 보면 그것만도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되는지를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말이 없어진 것은 진명만이 아니었다. 다른 대중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내심 궁금한 자신의 전생들이 있었는데 태옹의 말로 들어봐서는 그것을 물을 수가 없다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러자 화련이 합장하고는 태옹에게 물었다.

“선사님께 여쭙습니다. 진명은 언제 숙명을 관하고 언제 관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진명의 능력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줄도 몰랐습니다. 큰 가르침을 주시려고 다시 오셨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아니었으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귀한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진명의 표정을 살폈다. 진명도 그것을 묻고 싶었다는 듯이 화련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시간이 흐른 다음에 태옹이 말했다.

“그래서 숙명통을 얻고 나면 타심통(他心通)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라네. 묻는다고 다 말을 해 줄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었을 적에 비로소 그의 전생을 살펴서 한마디 해 주기 위해서라네. 그런데 그대는 겨우 볼 줄만 알았을 뿐이고 막상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봐야지. 앞으로는 타심통까지는 아니라도 능히 정황을 살펴서 판단할 정도의 지혜는 갖게 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허허허~!”

태옹의 말을 듣고 염재가 합장하고 말했다.

“오늘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는 자는 말이 없다’는 의미를 오해했었습니다. 알고 있으면 당연히 말을 해서 올바른 길로 안내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막상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지를 몰랐습니다. 이제야 그 말씀을 듣고서 확연(確然)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공부가 깊을수록 더욱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보인다고 해서 말하고, 안다고 해서 떠벌리는 것이야 말로 수행자는 반드시 숙지(熟知)하고 있어야 할 내용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말한 염재가 다시 합장하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태옹이 염재를 보면서 말했다.

“그대의 이름은?”

“예, 도대림(陶大臨)입니다.”

“여기에선 뭐라고 부르나?”

“아, 염재(念齋)로 부릅니다.”

“그래 염재로군. 그대는 과거세부터 항상 관리(官吏)가 되어서 백성이 억울하지 않도록 선정(善政)을 베풀었군. 그리고 그중에는 진명이 살펴봤던 장면도 있었는걸.”

이렇게 말하면서 태옹은 진명을 보지 않고 현지를 봤다. 그러자 현지는 의아하게 태옹을 바라봤고, 진명은 얼굴을 푹 숙이면서 혼자 웃었다.

“아, 선사님께서 그것조차도 알고 계셨어요? 호호호~!”

“세상의 이치는 낭비(浪費)가 없다네. 어찌 재판받으러 끌려 나온 사람만 보고, 재판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단 말인가. 물론 아직은 시야가 좁아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긴 하지. 허허허~!”

태옹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는 소리를 듣는 순간 진명도 비소로 그 의미를 깨달았다.

“아니, 그 재판관이 염재(念齋)였었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요? 이제야 명료하게 알겠어요. 왜 그 장면이 보였는지 말이에요. 즐거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 장면이 보인 까닭이 있었네요. 참 신기해요. 호호호~!”

진명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현지도 궁금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것을 물어보기에도 쉽지 않아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창이 오히려 더 궁금해서 태옹에게 물었다.

“우창도 선사님의 말씀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연들이 어떻게 얽혀서 이렇게 수우산에 모이게 되었는지도 말입니다. 선사님께서는 그 모두를 통찰(洞察)하고 계신 것 같으니 자비를 베풀어서 이러한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태옹은 우창의 말을 듣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우창은 뭔가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침을 삼키며 태옹의 말을 기다리는데 문득 귀뚜라미 소리가 침묵의 중간을 타고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