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단동자2022년
작성일
2022-05-20 11:01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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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단동자(羽緞童子) 2022년
해마다 피는 우단동자이고 예전에도 들여다 봤기 때문에 그렇겠거니.... 했다. 그러다가 또 한 마음이 동하면 다시 그 일을 반복하게 된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가뭄이 너무 심하다. 그래서 거의 매일 물을 줘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그 바람인지 우단동자는 철을 알고서 꽃을 곱게 피워간다. 그래서 또 기특하다.
이렇게 온통 털 속에 감싸여 있어서 우단(羽緞)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우단은 벨벳이라고도 하고 비로드라고도 하는 그 천에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꽃만 들여다 봤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피지 않은 꽃봉오리도 눈에 들어온다.
한쪽에서는 이미 개화가 한창이다. 앙증맞은 우단동자의 고운 색은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매력이 있다. 눈길이 가면 카메라가 따라가기 마련이다.
문이 열리고 꽃잎이 밖을 향해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습에서 꿈을 실현시키려는 열정이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호들갑이려나.....ㅎㅎ
아름답다고 느껴서 아름다운 건지, 아름다워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인지는 때로 구분이 모호해 지기도 한다. 작아서 예쁜 것인지 여하튼 우단동자가 피어나는 계절이면 자꾸만 눈길이 간다.
다행이다. 한 송이만 있었다면 다양한 모양을 담기 위해서 마냥 기다려야 할 텐데 말이다. 동시에 피기 전의 봉오리에서 시든 꽃까지 모두 볼 수가 있어서 그것도 좋다.
팝콘이 생각난다. 어떻게 그 좁은 곳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톡톡 튀어 오르듯이 피어나는지 언제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생명력의 조화가 시시각각으로 작동하고 있는 순간을 볼 수가 있어서 즐거운가 싶기도 하다.
그니깐......
한 녀석이 자기가 찜했다고 우긴다. 메뚜기인가? 여치는 아닌 것 같고.... 여하튼 네가 먼저 맡았으니 네 것인가 보다. ㅋㅋㅋ
너도 곱다. 꽃이 따로 없구나. 출연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문득 배추 포기가 생각난다. 대만의 고궁박물원에 있는 그것 말이다.
그래 이것이 떠올랐다는 말이다. 옥으로 자연을 빚은 장인의 솜씨에 감탄을 했었는데 우단동자에 메뚜기라니 이것이야말로 옥보다 더 멋지지 않은가? 생명이 숨 쉬고 있으니 말이다. 고맙구로~ ㅎㅎ
마악 피어난 꽃송이에는 암술 호위병들이 창을 꼬나 들고 삼엄한 경계를 하는 모습이 자못 서슬이 시퍼렇게 보이기도 한다.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안 보인다.
그러다가 경비병의 창날은 여왕의 명을 받으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깊은 궁궐의 속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서서히 벌어지는 그 모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소리없이 진행되는 것도 신기하다.
너무 깊어서 그 속을 들여다 보려면 한 참을 지켜봐야 한다. 불과 10mm의 속임에도 그 깊이는 아득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꽃은 부지런하다. 잠시도 가만히 멈추는 법이 없이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잠시도 게을리 할 수가 없다는 압박도 살짝 스쳐 지나간다. 그래 열심히 공부해야지. 암. 조금만 더 놀고. ㅋㅋ
늘 보면서도 감탄하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있을 것은 다 있다는 것의 경이로움으로 인해서인 모양이다. 화분이 한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보면 조물주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지 싶다.
문득 몇 해 전에 빅토리아 연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겠다고 한 여름에 모기에 뜯기면서 궁남지를 배회하던 생각도 든다. 이렇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크기가 궁금해서 자를 갖다 대 보니 대략 3cm로구나. 그 중심부는 불과 3~4mm인데 그 은밀한 속의 풍경은 가히 우주와 같다고 할만 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예전에 우단동자를 봤을 적에는 궁남지의 빅토리아까지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오늘은 그것까지도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아차~! 아침의 풍경에만 취해 있다가 진정으로 우단동자의 절정을 놓칠 뻔했다. 오후에 다시 혹시나 하고 들여다 보니까 이렇게나 화분이 만개했던 것을 말이다.
이 순간의 절정이었구나. 꽃게나 가재의 배에 가득한 알처럼 뭉텅이로 매달린 수술의 화분이라니~!
이제 확실하게 알겠구나. 겉으로 나왔던 것은 수술이었고 암술은 그 속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자칫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그래서 벌나비도 필요로 하지 않았구나. 이렇게 엄청난 화분을 안으로 들어 부었으니 말이지. 오호~!
이렇게 털어붓고서도 마지막 한톨까지도 알뜰히 넣으려고 수술은 여전히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람이 살랑인다. 접사렌즈 앞에서는 태풍이 된다. 그래서 또 바짝 긴장해야 하는데 다행히 잠시 지나가고는 멈춰줘서 놀이를 계속 할 수가 있어서 고맙다. 바람이 돕지 않으면 사진놀이도 맘대로 안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꽃노래를 하고는 다시 결실로 향해서 치닫는다. 잎은 말라붙고 본래의 우아한 모습은 간 곳이 없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속도 들여다 봐야 한다.
비록 잎은 시들었어도 밖의 수술들은 여전히 자신의 몫을 다 하려는 듯이 아직도 생생하게 자태를 유지하고 끝까지 화분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니..... 그래서 다시 한 번 감탄을 하고는 놀이를 멈춘다. 그리고........
다시 나갔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우단동자를 방문했다가 바로 옆의 끈끈이대 나물 꽃으로 향한다. 나비는 화분이 필요치 않은 까닭이다.
문득, 끈끈이대나물꽃도 들여다 볼까 싶은 생각이 났지만 오늘은 아니다. 아직 더 봐야 할 것이 남아 있어서이다.
호기심천국을 위해서 꽃 한 송이를 희생했다. 그 속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뭄에 물을 줬으니깐.... 이렇게 위로했다. ㅋㅋㅋ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씨방과 암술의 모습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이다. 오호~~~~~ 감동이다. 자연의 정교함이란......
겉에서 보이는 대로 본 것이 전부가 아님을 확인했다. 그래도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지, 미안해~! 대신 물 많이 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