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3-① 대동배 얼굴바위
포항3-① 대동배리(大冬背里) 얼굴바위
(여행일▶2024년 11월 5일)
오늘은 포항에 온지 3일차구나. 구룡포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둘러서 동쪽해안을 다 둘러볼 계획을 세웠었는데 제대로 목적을 달성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탐방했던 독수리 바위까지 마무리하고 푹 쉬었다.
오늘 새벽의 동해 풍경은 어제와 사뭇 다르다. 기다렸던 바 대로다. 하늘이 흐릴수록 풍랑은 거세기 마련이기 때문이고 그래야 구룡소에서 토수(吐水)하는 용을 만날 테니까. 오늘은 풍랑이 제대로 쳐야 한다. 여하튼 같은 하늘을 두 번 볼 수 없고,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도 없는 일이듯이 새벽 하늘도 이와 같다. 그래서 하루가 찬란하면 하루는 우중충한 것이 자연의 이치려니 싶기도 하다. 늘 느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들 숨이 있으면 날 숨이 있고, 바다가 잔잔하면 풍랑이 일어날 조짐이라는 것은 삶의 여정에서 깨달아서 알게 된 삶의 순환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늘이 우중충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다. 백두산에 갔을 때도 첫날에 북파에서 천지를 봤기 때문에 다음 날에 서파에서 천지를 못 봤더라도 크게 아쉽지 않았는데 만약에 어제 구룡포 혹은 동해에 와서 오늘 새벽에 예쁜 하늘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많이 안타깝기도 하겠지만 그 또한 여행이다. 가진(오메가일출사진)자의 여유로움이랄까? ㅋㅋ
일찍 움직이려고 간단한 아침을 먹으러 7층으로 내려 갔더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빵과 계란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정도도 충분하다.
연지님은 빵보다 컵라면이구나. 저마다 자기 좋을 방식으로 아침을 해결하면 된다.
어제 책에서 사진으로 담지 못한 구룡포 주상절리 제2전망대의 사진을 후다닥 찍고는 목적한 곳으로 향했다. 오늘 처음 봐야 할 곳은.....
오늘 여정은 제3장의 역행이다. 왔다 갔다 하는 낭비를 줄여보려고 남쪽의 5장부터 거꾸로 훑느라고 이렇게 가고 있는데 오늘의 첫 여정은 9번에 해당하는 대동배 2리의 얼굴바위를 목적으로 삼는다.
구룡포항에서 대동배2리까지는 14.5km이고 소요시간은 19분이다.
이쪽 방향으로 오니까 죽은 소나무가 더 많이 보인다. 포항시에서 미관과 정비를 위해서 죽은 나무를 베어내고 싶은데 산주들과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서 뜻대로 안 되는 모양이다. 방송에서 언뜻 지나가는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산에서 붉은 빛을 보니까 그 뉴스가 떠오른다.
차를 대 놓고 연지님은 차에서 쉬라고 해 놓고 얼굴바위를 보러 나섰다. 특별히 같이 가서 봐야 할 정도의 절경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어서이고 또 그렇게 말하면 잘 알아듣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다만 금휘에게는 같이 다니는 걸로 입을 맞추면 그만이다. 아빠가 너무 위험한 곳을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혹시 벼랑에서 굴러 떨어지면 신고라도 해 줘야 하지 않느냐고 해서 그런다고 대답할 뿐이다. ㅋㅋ
여기는 호미반도(虎尾半島)의 해안둘레길이다. 언뜻 구룡반도라고 생각했더니 호미반도였구나. 구룡포항이 있어서 그렇게 기억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건 오류인 걸로. 구룡반도는 홍콩에 있는 것으로. ㅎㅎ
왼쪽으로 구룡소길은 다음의 목적지이고, 오른쪽은 독수리바위와 호미곶관광지구나. 이미 둘러 본 곳이라서 글자만이 아니라 그림도 연결이 되는데 여기에는 얼굴바위가 없구나. 아마도 얼굴바위는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곳일 수도 있겠고, 그만큼 특별할 것도 없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여행은 책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라서 안내를 한 곳은 웬만하면 가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그대로 흐름을 따른다.
저만치 보이는 모퉁이의 바위가 낯이 있다. 아마도 얼굴바위 일 가능성이 80%일 게다.
파도가 제법 거세다. 그래서 또 기대가 된다. 그런데.... 데크는 붉은 끈을 두르고 있네? 이게 아닌데......?
3초 망설였다. 그냥 걸음을 돌릴 것 인지에 대해서. 그러나 이내 결론을 내렸다.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읽고 '조심하세요'로 해석했다. 조심하면 되지 뭘. 관풍대에서는 워낙 엄중하게 철제로 경계울타리를 쳐 놔서 차마 넘지 못했지만 이 정도는 능히 헤집고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 아마도 테크의 바닥이 뜯겨 나갔나?
암벽 노두가 있고 걸어갈 방법이 없으니까 데크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구나. 이러한 것을 해 놓기 전에는 그냥 바라보기만 했겠구나. 그래서 여행도 적절한 타이밍을 타면 여정이 편한 법이다. 설악산 대청봉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개통하면 가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저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낭월은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해서 자연환경이 엄청나게 파괴되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대체로 낙천적이라서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기를 쓰고 말릴 일이 아니라 힘이 넘치고 고통을 즐기고 감내할 사람은 걸어가면 되는 것이고, 가고는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케이블카라도 타고 가겠다는데 뭐하러 구태여 반대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주의이기는 하다. 이것도 나름대로 주관이다. 그런다고 자연이 파괴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언젠가는 무너진다는 것은 절집에서 배웠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이치를 생각해 보면 험한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노동자도 품값을 받아서 생활하고 여행자는 편리하게 자연의 경관을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중국 장가계를 둘러보면서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데크는 괜찮고 케이블카는 안 될 필요는 없지 싶어서다. ㅎㅎ
오늘도 해국이 홀로 지나가는 나그네의 눈을 풍요롭게 한다. 가운데 노란 씨앗 집을 보니 계란 꽃과 닮았구나. 풍년초 말이지. ㅎㅎ
벽을 바라보노라니 선화(禪畵)를 보는 듯하다. 이러저리 얽히고 설킨 세상의 인연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또 멋지다. 역시 철학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인문학(人文學)이다. ㅎㅎ
지질도를 불러보자.
유문암(流紋巖)이었구나. 무늬가 이러저리 흘러간다고 유문이랬던가? 과연 벽을 보니까 유문암이라고 할만 하네. 삼정리유문암이었구나. 지질이 의외로 다양해서 고개 하나 넘고, 해안 모퉁이 하나 돌면 또 다른 지질이 나타나는 것이 재미있다. 어쩌면 여기 이 자리는 아랫쪽일 수도 있겠군. 그렇다면 봉화봉 응회암이 되겠구나. 응회암일 수도 있는 걸로.
「해도활성(海濤活聲)」
반대쪽에서 걷는 사람들도 위험에 빠지지 말라고 여전히 붉은 줄을 띄워놨다. 그런데 이것도 참 지극히 형식적인 것일 뿐이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해변에서 오도가도 못한다는 말인가? 입구에 쳐 놓은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중간에도 쳐 놓은 것은 다분히 탁상행정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길을 걷는 사람의 관점에 대해서는 1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갈들이 물결에 휩쓸리는 경겨쯤에 도시락 하나가 놓여있구나. 낭월을 위해서 용신님이 마련한 것이려니 싶었다.
그래서 잠시 용왕님과 소꿉놀이도 해 본다. 하얀 자갈 푸른 자갈 얼룩진 자갈들을 물 말아서 퍼먹고 신나게 놀아야지. 재미있네. ㅎㅎ
걸을 수가 있는 공간은 데크가 없다. 그게 맞지 싶다.
지질에 대 해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 적에는 이러한 언덕은 그냥 지나쳤다. 어려서도 많이 봤던 흔한 자갈이 섞인 흙 언덕일 뿐. 그리고 의미없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안단구(海岸段丘)에 대해서 이해를 하면서 그냥 지나칠 것도 눈 여겨서 보게 된다. 자갈층은 안 보이고 토양층으로 구분이 되어 있구나.
신생대 제4기겠거니. 아래쪽은 회색을 띄고 위쪽은 붉은 색을 띄는구나. 딱 여기까지다. 참 습자지(習字紙) 같은 지질의 상식이라니. ㅠㅠ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 대견해서 흐뭇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까닭이다. 뭘 몰라도 아는 척하면 된단 말이지. 만약에 이러한 것을 지나가는 더문외한이 보고서 묻는다고 차자.
행인 : 뭘 보고 계세요?
낭월 : 아, 해안단구를 보고 있습니다.
행인 : 어머나, 그런 것이 있어요? 뭔데요?
낭월 : 이것을 보시면 위와 아래가 다르잖아요?
행인 : 예, 보여요. 이 차이는 뭘 의미하나요?
낭월 : 세월의 차이지요. 회색의 토양은 신생대 3기에 쌓인 것이고, 위의 붉은 색은 4기에 쌓인 것일 겁니다.
행인 : 와! 지질 박사님이시네요.
낭월 : 그냥 취미로 돌아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원래 호랑이 없는 숲에는 여우가 왕 노릇 하는 법이니까. 설마 이 자리에 지광 선생이 나타나실 리는 없을 테니까 뭐. ㅋㅋㅋ
얼굴바위의 실루엣이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여지없이 접근금지줄을 쳐 놨다. 그러니까 조심해서 다니란 말이지. 고맙구로. ㅎㅎ
데크 아래로 몰아치는 파도가 볼만하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헬기 소리가 진동을 한다.
뭐지? 갑자기?
아니, 원 놈이 위험한 곳에 돌아다닌다고 신고가 들어갔나? 역시 포항은 해병대지. 내려다 보고 있는 얼굴이 겁난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렌즈를 들어서 맞짱을 떴다. 362mm로 확 잡아 당겼다. ㅎㅎ
그래도 괜히 캥긴다. 119에 연락해서 구조대라도 보내면 큰일인데.....
조심하라고 할만 하다. 바람과 풍랑에 뜯겨 나갔구나. 참 대단하다. 그러니까 여기에 발이 빠져서 부상을 당하면 안 되니까 금줄을 쳐 놨단 말이지. 조심해야지. 만약에 부상을 당하여 방송에 뉴스라도 나오면 또 여지없이 나오잖아.
'꼭 저런 사람이 가지 말라고 하는데 가거든요 참 한심하다니까요.'
조심하면 된다. 나무가 썪어서 발이 빠질 정도는 아니니까.
비행기는 제 갈 길로 갔다. 그리고 걸음을 옮김에 따라 점점 다가오는 거대한 얼굴 형상이다.
최적의 포인트구나. ㅎㅎ
모아이상 얼굴이라고 이름을 붙였구나. 뭐 굳이 외제의 이름을 갖다 붙이느라고, 그러면 더 있어 보이나? 모아이상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의문만 던질 뿐이잖은가? 그냥 얼굴바위면 충분한데 말이지. 너무 지나치게 멋있어 지려고 하면 오히려 어색할 따름이다. 그래서 지광 선생 승!!
언제나 그렇듯이, 두어 걸음 다가가면 이내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멋진 노두구나. 아마도 시간이 좀 더 흘러가고 나면 주변은 모두 파식(波蝕)으로 사라지고 나면 이 바위만 홀로 남아서 독수리바위와 함께 명물로 남겠구나. 어쩌면 그 무렵에는 독수리바위도 물속으로 녹아들고 말겠지....
사실, 거북바위 촛대바위 얼굴바위는 별 관심이 없다. 형상에 물형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그냥 관점일 뿐이다. 정확한 말은 「삼정리 유문암」이다. 가만, 삼정리가 어디더라? 안면이 있는데..... 아, 삼정도(三政島)에서 봤구나. 관풍교 건너 있는 섬 말이지. 비록 여기는 대동배2리지만 암석의 지질은 삼정리유문암이란 말이지. 거리가 꽤 떨어졌는데도 지하의 흐름은 같이 갔던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삼정도의 서쪽 해안에서 본 풍경과 닮기도 했구나. 희고 붉은 것이 말이지.
이것도 뭔가 닮기는 했네. 제멋대로 생긴 바위에 이름 짓기는 싫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서 이내 일구이언(一口二言)이다. 에라 모르겠다.
"얼굴바위를 뒤에서 보면 메뚜기가 물먹으러 내려오는 것이랍니다. 풍수적으로 보면 황충급수형(蝗蟲給水形)이라고 하여 여기에 묘를 쓰면 자손만대에 영화를 누릴 수가 있다고 합니다." 아니 무슨, 사기지. 하얀 사기라고 얼버무린다. ㅎㅎ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더 가지 않아도 되지 싶어서 걸음을 돌린다.
가면서 봤다고 해서 다 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돌아 오는 길에 만나는 이런 풍경은 또 처음 보는 듯하다.
절리다. 주성잘리는 아니고 그냥 절리다. 이런 것에 붙이는 이름이 있는지 모르겠네. 그냥 '삼정리 유문암 절리'라고 해 두자.
기록은 꼭 중요한 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본 것을 본 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 가치는 지금 다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한 장의 사진이 또 어떻게 요긴한 역할을 할지도 모르니까.
이건 응회암으로 보인다. 각력(角礫)이 박힌 것도 보이고....
얼굴바위 쪽은 삼정리 유문암이고, 마을쪽은 봉화봉 응화임이다.
이렇게 얼굴바위까지 오가면서 훑어 본 지질노두이고 충분히 즐기면서 걸어도 될 만한 풍경이다.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해병대 장병들이 열을 지어서 그 길을 간다. 저들도 금지된 줄을 타고 넘어가겠구나. 그리고 비로소 조금 전에 하늘을 날았던 해병 헬기의 의미가 이해된다. 나를 감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훈련하는 장병들의 길을 조사했던 모양이다. 여하튼 한 코스는 무사히 완료했다. 대동배 2리 얼굴바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