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견광⑫ 구문소(求門沼)

작성일
2023-05-18 11:43
조회
962

지질견광⑫ 태백(太白)의 구문소(求門沼)

구문소 전기 고생대 석회암층(링크) 


(2023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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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그나마도 위안이 되는 것은 남쪽마을에는 200mm가 왔다는 뉴스도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푹 자고 새벽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오늘의 하늘이 어떤지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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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06시에 본 하늘의 풍경은 쏟아지던 빗줄기의 끝자락을 보는 듯하다. 남쪽에서는 여전히 많은 비가 올 모양이지만 태백은 빗줄기 사이로 잘 피해 다니면 그런대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여하튼 하늘과 무관하게 일정은 진행될 뿐이다. 구문소를 거쳐서 가능하면 태백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도 갔다가, 황지를 거쳐서 검룡소를 둘러보고는 용연동굴까지가 일정상의 예정이다. 상황에 따라서 변동이 있으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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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구문소까지 8시에 도착하려면 07시 까지는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해야 한다고 미리 일러 뒀더니 모두 그에 맞춰서 준비하는지 한바탕 분주하구나. 언제라도 여정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아서 좋다. 가타부타 말이 많으면 그것도 힘들텐데 고맙게도 고분고분하게 따라주니 이끌고 다녀도 그로 인해서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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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렸다가 6시가 되기 전에 카메라 산책을 나섰다. 저녁에 주변을 둘러봤을 적에 4시부터 움직일 분위기는 아니어서 방안 검색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제법 밝아졌을 적에 슬슬 뒷쪽으로 나가봤다. 그냥 앉아있다가 출발하기는 또 아쉬움이 남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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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 된 1차선의 도로는 산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듣자 하니 이 길의 끝에는 자그마한 암자가 있다고 했는데 거기까지 걸어가기는 제법 멀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아예 맘을 내지 않았다. 현지인이 제법 멀다고 하면 아마도 가까워도 2km는 되리라고 짐작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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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밭 모양이다. 이렇게 생긴 밭은 강원도에나 와야 만날 수가 있는 땅이지 싶다. 겉으로는 흙반돌반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돌이고 흙은 조금 밖에 보이지 않는 밭이었구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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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빠짐은 좋겠다. 그래서 건조한 곳에서 잘 견디는 옥수수가 제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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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돌밭, 혹은 경사밭이 계속해서 이어지겠다는 생각으로 위쪽도 살펴봤다. 경사가 가파르다보니 평지밭은 기대하기 어렵겠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밭뙤기에서 아라리를 부르며 한 여름을 보내는 아낙의 표정이 슬쩍 지나가기도 한다. 기계를 들이대기도 쉽지 않아 보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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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어가서 짐 정리하는 것을 거들어 7시가 되기 전에 출발을 하게 되니 다행이로구나. 이제 목적지를 향해서 이동해 봐야지. 서두르는 것에는 구문소 유람과 9시에 개관하는 박물관의 시간을 안배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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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이 슬쩍 지나가는 것이 게으른 머슴이 일하기 싫을 만큼이고, 부지런한 머슴 일하기 딱 좋을 만큼이구나. 태백 고생대 지연사 박물관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고, 그래서 이렇게 서둘렀다. 09시에 입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전에 구문소를 둘러보고 딱마춤으로 박물관을 훑어보면 되겠다는 혼자만의 계산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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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구문소(求門沼)구나. 구문소에는 볼 것이 많아서 계획도 많이 세웠지만 하늘의 마음은 낭월의 뜻과 다른지라 다 포기를 하면서도 박물관 만은 둘러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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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노두 150선에서 다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당연하겠지만 지면은 양면(兩面)에 불과하고 더 자세한 것은 직접 가서 보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그래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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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구문소의 풍경이로구나. 다른 책과 영상에서도 하도 많이 봐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미 많이 왔었던 것 같은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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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은 얼른 살펴봐야 한다. 혹시라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번까지 훑어야 하겠구나. 이번에는 물이 불어나서 전부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우선 1번에서 9번까지는 필히 둘러보고 자개루까지 올라가 보고는 비가 쏟아지면 박물관으로 가고 아니면 나머지도 둘러보면 되겠다는 계산을 열심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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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은 스트로마틀라이트이고, 13번은 스트로마트라이트네? 서로 다른 건가? 실은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둔한 머리를 두드려가며 외웠는데 여기에서는 또 다른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서로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혼란스럽기는 하다. 그런데 확인차 네이버에 검색을 해 보니 아무렇게 쳐도 결론은 '스트로마톨라이트'로 연결이 되는구나. 그래서 알 것은 필히 알아야 한다는 것도 겸해서 배운다. 아마도 외래어라서 표기법이 서로 달랐나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나의 같은 안내판에서조차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음.... 성의부실(誠意不實)로 밖에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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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문? 이건 무슨 의미이지? 그래서 또 조사를 해봐야 하겠군. 그냥 한자로 써놨으면 바로 알아볼 것도 많을 텐데 이렇게 확인해가면서 글을 쓰려니  시간이 몇 초라도 소모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ㅎㅎ

자개문(子開門)은 자시(子時)에 용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것이란다. 오호~! 그런 재미있는 뜻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자정(子正)이 되면 문이 열릴 적에 그 문을 따라서 용궁을 구경할 수가 있다는 말이었어. 좋군.

 


용궁으로 통하는 문 — 태백 구문소 




구문소 옆에 있는 자개문석벽에 뚫린 문으로 옛날에는 자시(子時) 이후에만 통행할 수 있었다.

태백시 동점동, 황지천이 굽이쳐 흐르다 거대한 바위산이 가로막자 이를 뚫어 석문을 만들고 그 주변에 깊은 못을 이룬 구문소가 있다. 이 석문을 현지에서는 ‘뚫은 내’라는 뜻으로 ‘드브내’라고 하고, 구멍이 뚫려 깊은 소()를 이루었다 하여 구멍소 또는 구문소라고도 불린다.


옛날 안동에 영호루를 건축할 때 그 대들보감을 이곳 화전동 금대산에서 벌목하여 황지천을 통해 운반하였다 한다. 그런데 한 번은 목재가 급류에 휘말려 석벽을 강타하면서 뇌성벽력과 함께 산이 무너지고 바위에 구멍이 뚫려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구문소 옆에 있는 석문은 옛날 울진·정선·봉화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반드시 자시()에만 열렸기 때문에 자개문()이라고도 불린다.

구문소에 얽힌 이야기는 전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실화에 가깝다. 약 350년 전의 일이라 한다. 이 못 부근에 엄종한()이란 어부가 노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하루는 못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만 실족하여 물에 빠지고 만다. 엄종한이 깊은 물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면서 이젠 죽었구나 체념하는 가운데, 그는 또 다른 세계 즉 용궁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태백 구문소황지천이 석벽을 만나 이를 뚫는 과정에서 형성된 깊은 못. 이 고을에 살던 어부가 이곳에서 백병석(白餠石)을 가지고 온 이후로 용궁으로 통하는 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상야릇한 향내 속에 화려한 의상을 걸친 인어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별천지, 용궁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용왕 앞으로 끌려와 심한 문초를 받는다. 엄씨의 죄목은 다른 게 아니라 용궁의 닭을 잡아갔다는 것인데, 그가 늘 잡던 물고기가 바로 용궁에서 기르던 닭이었음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부모에 대한 효행은 그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모양이다. 엄종한이 부모 봉양을 위해 고기를 잡았다고 아뢰자 용왕은 노여움을 풀고 오히려 거창한 주연까지 베풀어 주면서 인간세계로 되돌려 보낸다.


엄씨는 흰 강아지의 안내로 물 밖 곧 인간세계로 나올 수 있었는데 떠날 때 음식상에 놓인 떡 하나를 몰래 집어 주머니에 넣고 나왔다. 굶고 있을 노부모를 위해서인데, 그러나 물 밖으로 나오자 그 떡은 돌처럼 굳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돌이 조화를 부릴 줄이야. 엄씨는 돌을 무심코 쌀독에 넣어 두었는데 독의 쌀이 퍼내어도 퍼내어도 절대 줄지 않는 요술을 부린 것이다.

용궁에 다녀온 효자 엄씨가 졸지에 큰 부자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도깨비 방망이와도 같은 이 돌떡을 후세인들은 백병석()이라 부르는데 그 보물의 행방은 지금 알 수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한양조씨에게 시집 간 딸이 빌려 갔다는 소문이 있고, 또 다른 딸이 쌀독 째 훔쳐 가다가 황지천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져 다시 용궁으로 되돌아갔다는 소문도 있다. 만약 그 백병석이 실제 남아 있다면 구문소 엄씨 이야기는 전설이 되지 못했으리라. 이런 이유로 하여 용궁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구문소에 와 보면 한번쯤 못 속으로 빠져들고픈 충동을 느낀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궁으로 통하는 문 — 태백 구문소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역시 아는 것이 많은 지식백과다. 천소영, 김동현 선생께 감사하면서. 구문소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는 제외했다. 백병석(白餠石)의 이야기까지 들려주니 더욱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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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귀한 재산을 공공을 위해서 기증을 하는 귀인도 있으셨구나. 한번쯤 봐줘야지. 아무렴. 재산은 이렇게 쓰고 가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으니 쉽지 않은 일을 하셨구나. 그래서 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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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구문소를 찾아왔구나. 여기가 구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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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구멍 뚫린 소'가 변해서 구문소가 되었더란 말이지? 그건 일리가 있구나. 그야 아무래도 상관이 없으니까. 다만 연유를 모르면 구문소(求門沼)를 보고서도 문을 구하는 물웅덩이 정도로 이해를 할 수밖에 더 있느냔 말이지. 차라리 자문소(子門沼)라고 했으면 자시에 문이 열리는 소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은 이제 외웠다. 구문소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물이 흐르는 구멍이다. 그것부터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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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소개를 보면 누구라도 빼지 않고 담는 장면을 낭월도 담았다. 물이 뚫은 구멍과 사람이 뚫은 구멍이 엇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 위의 자개루(子開樓)는 나무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구나. 그냥 있을 것으로 짐작만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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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구나. 암층(巖層)이 보이는 것도 세월감이 있어서 좋다. 고생대에 형성된 암벽이라는 말이겠구나. 그리고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것은 누군가 초서(草書)로 멋지게 써 놓은 글이로구나. 필시 구문소의 찬탄가겠거니 싶어서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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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동천자개문(五福洞天子開門)」

동굴의 이름은 오복동천이고, 자개문은 이미 앞에서 살펴봤으니 무슨 의미인지 짐작이 되는구나. 이렇게 어려운 글자를 옥편을 펴놓고 찾는다고 해서 쉽게 나오지 않는다. 먼저 자료를 조사하고 수고롭게 기록으로 남겨준 블로그의 도움을 받으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괜히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은 고생하지 않고 선험자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ㅎㅎ

그런데 「五福洞天」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가 또 궁금해서 뒤적뒤적.....

이 글귀는 「정감록(鄭鑑錄)」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정감록에 이르기를 '낙동강 위에 오르면 더 갈 수가 없는 석문이 나온다. 이 석문은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도 없고 삼재가 들지 않는 이상향이 나타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정감록에 그런 말이 있었구나. 대충 훑어보기는 했지만 이런 글귀가 있는 줄은 몰랐다. 정감록이 어딘가 있을텐데 싶어서 서가(書架)를 살펴봤으나 얼른 보이지 않는군. 뭐든 찾으면 보이지 않는 책찾기법칙(머피의 법칙어럼 ㅋㅋ)이 있으니 더 찾으려고 하지 말고 누가 썼는지나 알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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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원월(戊辰元月) 
김강산(金剛山) 사(寫) 끝자는 사가 맞겠거니...

무진년은 까마득하게 먼 무진년인가 했더니 1988년이었더란다. 원월은 1월이고, 김강산은 태백에서 한국문화역사연구원을 운영하는 대표라고 하는구나. 올림픽이 열리던 해의 1월에 이 글을 새겼다는 의미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1997년도에 왔던 사람은 이 글귀를 보지 못했다는 말이네? 剛자도 알아보기 어렵고, 金도 언뜻 黃인가 싶기도 했는데 대략 앞뒤를 맞춰보니까 이렇게 보면 되지 싶다.

김강산 선생은 평생을 태백의 문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자료를 찾아서 발표하신 향토 사학자라고 한다. 이런 분과 만나서 차 한 잔 나누며 그간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고생대의 지층을 살펴보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지 싶지만 인연이 닿아야 할 테니 후일을 기약해 보는 걸로 하자.  그나저나 아직도 구문소의 입구에서 이렇게 서성이고 있었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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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소 옆에는 인공으로 뚫은 굴이 있다. 정보에 의하면 일정 때에 왜인들이 뚫었다는데 아마도 뭔가를 뜯어가기 위해서 뚫었겠지. 뭐든 그렇게 필요에 의해서 일을 만드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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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조사에서 인공굴 위에는 글귀가 있다는 말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이러한 것을 놓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대한 훑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그 글자가 있다는 위쪽을 렌즈로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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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하게 글자가 보이는구나. 이런 것도 일부러 무슨 글자인지 찾지 않아도 된다. 눈 밝은 사람들이 다 찾아서 풀이까지 해 주기 때문이다. 아니나 달러? 1937년에 이곳에서 가까운 장성탄광에서 발견한 석탄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갈 목적으로 뚫은 굴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석문 정도?

「우혈모기(禹穴牟奇)」

자료를 찾아보니, '중국 고대의 우왕(禹王)이 홍수가 잦은 지역의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굴을 뚫었는데, 정작 일본 사람들은 석탄을 가져가려고 굴을 뚫어 놓고는 태백의 주민을 위해서 큰 일을 했다고 생색을 내는 뜻'이란다. 참 가소(可笑)로운 놈들이로군. ㅋㅋ

 


 

 천천(穿川)도 있구나. 미리 있다는 말을 듣고서 열심히 찾아야 보인다. 그냥 훑어봐서는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천을 뚫었다'는 뜻인데 이것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나오는 명칭이라고 하는구나. 천천에 대한 시를 쓴 사람은 조선 후기의 권만(權萬)이라는 사람이라는데 시만 썼는지 여기에 글까지 새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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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일필휘지(一筆揮之) 구나. 흥미가 동하면 또 찾아보면 된다.

천천(穿川) 권만(權萬)

완협응장귀부천(頑峽應將鬼斧穿)
석문중활사홍문(石門中豁似虹圓)
분뢰만고삼차폭(犇雷萬古三叉瀑)
불설천심일도천(沸雪千尋一道川)
용기송성추욕우(龍氣送腥湫欲雨)
일광요백벽생연(日光搖白壁生烟)
인간대담유비조(人間大膽惟飛鳥)
비입봉방마유전(飛入蜂房馬乳巓) 전


좁고 답답한 골짜기는 귀신 도끼질로 뚫은 것이 틀림없고
돌문은 둥근 무지개 모양으로 뚤린 골짜기에 걸쳐 있네
천둥치듯 소리내며 오랜 세월 동안 세 갈래 폭포는 쏟아졌고
눈처럼 하얗게 물보라 일며 천길 아래에서 한줄기 냇물로 흘러갔네
용의 기운은 웅덩이에서 비를 뿌리려고 비릿한 입김을 뿜어 대지만
햇빛은 절벽에서 이는 물안개로 하얀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네
사람들이 제 아무리 담이 커사 겁이 없다고 해도
마유산 꼭대기에 있는 벌통에는 오직 날 수 있는 새들만이 날아들 뿐이네. 

바위에 새겨놓은 내용을 대략 입력해 봤다.  마유산이 어디인지는 견문이 짧으니 짐작도 할 수가 없구나. 아무렇거나 구문소를 보면서 읊은 시가 틀림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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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쪽으로 나가보니 제대로 관람하라고 안내문을 붙여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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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이 풍경을 보며 감탄하니 가이드도 보람이 있구나. 더구나 이틀간 줄기차게 쏟아진 비로 인해서 수량이 더욱 불어난 바람에 웅장한 폭포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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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면은 사진만으로 담을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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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때는 물이 얼마나 흐르나 싶어서 자료를 찾아보니 이 정도였구나. 그러니까 비가 와서 물폭탄을 선물한 바람에 제대로 폭포다운 폭포를 감상할 수가 있었으니 이것도 감사~! 그리고, 다음에는 물이 딱 요만큼만 흐를 때 찾아와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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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동영상을 찍어봤다. 우레같은 소리가 생생하구나.




우선은 움직이지 않는 암반보다 움직이는 물에 마음이 동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그렇게 물의 풍경을 보면서 일행들과 감탄을 하고서 바위를 살펴봐도 늦지 않는다. 다행히 하늘에서도 고맙구로 구경할 틈을 주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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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물이 있으니 용은 당연히 등장을 해야지. 어디 여기에서는 무슨 일을 맡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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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소의 전설」


옛날 구문소가 생기기 전에 석벽을 사이에 두고 황지천과 철암천에 큰 소(沼겠지...?)가 있었는데 황지천에는 백룡이, 철암천에는 청룡이 살면서 늘 석벽꼭대기에 올라가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하루는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을 뚫어 청룡을 제압하여 오랜 싸움을 끝내고 승천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구문(구멍)소가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황지천은 지금 여기를 이르는 말일 게고 철암천은 또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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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만나니까 서로 싸운다고 도 할만 하구나. 그나저나 황지천은 백룡(白龍)이 지키고, 철암천은 청룡(靑龍)이 지키고 있었다니, 두 용의 싸움은 이미 황지천 용의 승리고 끝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건 오행의 기초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니 설명은 생략하는 것으로 하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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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의 암벽이 예사롭지 않구나. 이름이 뭐지....? 다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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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6, 7, 8, 9번이 모두 모여 있어서 일일이 구분하는 것은 또 잘 살펴봐야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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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여기에 모여 있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저쪽으로 건너가서 아래로 내려가면 자세히 볼 수가 있겠구나. 천천히 흐름 따라 이동하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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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삼형제 폭포구나. 과연 폭포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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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물이 많지 않을 적에 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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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과 급류가 어우러져서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구문소의 풍경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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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층리(層理)는 구문소의 석회암 층리라고 이름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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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의 위쪽은 2번의 경사층리라고 이름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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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하게나마 암벽 위의 자개루가 보일듯 말듯 하구나. 거기까지는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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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지도의 부정합(不整合)의 위치가 눈길을 끈다. 위로 올라가도 있고, 아래로 내려가도 있으니까 모두 찬찬히 둘러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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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으로도 살펴보니 물이 너무 불어나서 바닥을 보는 것은 어렵지 싶구나. 비가 와서 안 좋은 경우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구문소 지역의 지질도를 찾아봤다. 조선계 대석회암층군이로구나. 막동석회암층까지 써놨지만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아직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할 모양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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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이건 생각지 못 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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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러니까 꼭 들어가서 살펴보고 싶은 사람은 문의하라는 말이구나. 어쩐지 자물통이 숫자로 되어 있더라니. 전화 한 통이면 해결이 될 모양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일행들은 그 사이에 모두 둘러보고 차로 돌아간 모양이구나. 항상 늦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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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구문소와 자연사 박물관은 다음에 물이 빠지고 난 시기에 조용하게 와서 찬찬히 둘러봐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오늘은 사전답사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급해지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일행들은 재미없을 자연사 박물관을 생략하고 그들이 좋아할 법한 통리탄탄파크로 데리고 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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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지질견광(地質見光)이지만 다음에는 지질탐사(地質探査)에 걸맞은 공부를 해야 하겠다. 워낙 아는 것이 일천(一天)하여 전화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고 해도 역시 밖에서 본 것보다 더 큰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자신감도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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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쌓인 시루떡 층을 보면서 다음을 기약하고 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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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소의 깊이는 18m가 넘는다는 이야기를 봤다. 누군가 잠수장비를 갖고 들어가서 바닥까지 훑는 것을 봤는데 수심이 그 정도였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센 물살이 깎아 냈을지도생각해 보면서 구문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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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들은 춥다고 차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낭월을 보자 물었다.

"다음은 탄탄파크로 모시겠습니다~!"

그러자 화인이 물었다.

화인 : 아니, 박물관에 가보시기로 했잖아요?
낭월 : 응, 그랬는데 박물관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화인 : 왜요?
낭월 : 오늘은 물도 많고 날도 궂고 일행도 있어서 약간 변경했지.
화인 : 알겠어요. 그럼 출발합니다~!

 


지질도에서는 고생대 오르도비스키의 조선계 대석회암층군 막동석회암층으로 표시가 된다. 회색, 암회색의 석회암이고 상부에 돌로마이트질석회암과 셰일을 끼고 있는 형태이다. 이렇게 잘 모르는 말들도 많지만 적어 놓는 것도 나중에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