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3) 요선암이랑 놀기

작성일
2016-08-03 21:36
조회
2075

강원도(3) 요선암()이랑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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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원래 집을 떠나면 이리도 마음이 바빠진다. 아직은 팔팔하다는 의미일까? 하하~

요선암지도

요선암은 법흥사에서 불과 10km정도 떨어진 거리이다. 법흥사를 가노라면 왼쪽으로 요선암 가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요선암과 요선정이 같이 있는데 요선정이야 특별할 것도 없어 보여서 요선암에서나 놀다가 갈까 싶어서 다음 목적지로 삼았던 것이다.

법흥사 부터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들릴 수가 있으므로 별도의 시간을 허비하여 찾아가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겸해서 둘러보게 되는 곳이라고 해도 될 모양이다. 다만 이미 접수한 사전의 정보에 의하면 천변에 바위가 돌개구멍을 이루고 있어서 재미있다는 정도이다.

그러니까 바위에 물과 자갈의 힘으로 만들어 놓은 자연의 조각품을 감상한다고 해도 되지 싶다. 물도 좋아하고 바위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만고에 놀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사주 말로는 '금수용신(金水用神)에게 딱 좋은 곳'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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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차를 대 놓고, 길로 나서면 바로 만나는 안내판이 큼직하게 세워져 있다. 영월군에서도 나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보자..... 요선정에 대한 소개의 부분이 잘 안 보이잖여.... 확대~ 더 크게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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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잘 해 놔서 이해에 도움이 팍팍 된다. 아쉬운 것은 양사언의 글이라는 것이 물 속 어딘가에 잠겨 있어서 볼 수가 없겠다는 것이다. 물과 자갈이 합작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라는 것이니 수석합작품(水石合作品)이라고 해도 되겠구먼. 차량은 출입하지 말라는 바리게이트를 지나서 조금 걸어가면 만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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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정은 요선암에 들렸다가 올라가는 것으로 하고 좌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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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으로 조금만 돌아가면 아내 눈길을 끄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근데.... 이게.... 뭔.... 놀잇감이 되겠나.... 싶은 생각이 선수를 친다. 그래도 내심 범위가 제법 넓어서 한참을 놀아도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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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이라고 해 봐야 불과 20~30m쯤 되나? 그 정도의 공간이 요선암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괜히 소문만 푸지게 나고 실제로는 별로 볼 것도 없는 것이려니.... 싶어서 기대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끓는 두부솥에 찬물 한 바가지 끼얹은 듯 하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깨어진 기와조각과 목수가 버린 나무토막 하나로도 근사한 궁궐을 짓는 법이다. 순간적으로 낭월 명언록이 등장한다. ㅋㅋㅋ

놀줄 아는 아이는 재료를 탓하지 않고,
기술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적응 하는 낭월은 풍경을 탓하지 않는다. 

가운데 줄은 표절이다. 뭐 어쩔껀대~~!! 이러고 놀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냔 말이지. 그래서 일단 첫 인상의 섭섭함을 달래고 이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신속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낭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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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석호(石湖)이다~~!!

여기에서 배를 띄우고 낚싯대를 드리운 채로 꾸벅꾸벅 졸다가 보면 하루 해는 이내 서산으로 기울고, 소슬한 바람에 잠을 깨어 장작불 붙여서 차를 달이면서 밝은 달빛과 더불어 한가로운 어둠을 맞아하는 거다. 이 얼마나 신선 놀음인가 말이지.

당연히 요선암에 왔으면 신선을 맞이해야 할 것이니 둘러봐도 신선이 보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신선이 되는 수밖에. 잘 논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작은 것도 크게 보고, 큰 것도 작게 보고, 먼 것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가까운 것도 멀리 떨어져서 바라다 보노라면 그 사이에서 온갖 재미들이 태백의 황지에서 맑강물이 마구마구 솟구치듯이 솟아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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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호수에 달님이 솟았네~~!!

달님은 무슨, 그렇게도 쏟아지던 비구름 사이로 잠시 빼꼼 얼굴을 내민 해님이다. 그런데 놀이에 빠진 아이는 그것이 달님으로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우기면 된다. 저건 분명히 달이란 말이야~!!

밝은 달빛을 벗삼아서 『노자(老子)』를 읽는거야. 노자는 하루의 분주함을 다 잊어버리고 고요가 주변을 휘감을 적에 펼쳐야 제맛이지. 암~!!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以不辭 生以不有 爲以不恃 功成而弗居 未唯弗居 是以不去​


[어느 놀기 좋아하는 벗님의 해석....]

세상에서 모두가 아름답다고 알고 있는 것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악함이 될 뿐이고,
모두가 알고 있는 선함으로 선으로 삼는 것도
그로 인해서 선하지 않음이 될 뿐이니.....


그러므로 있고 없음으로 서로 생하였고,
어렵고 쉬운것으로 서로 이루어졌고,
길고 짧음으로 서로 틀이 되고,
높고 낮음으로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성으로 서로 조화롭고,
전과 후가 서로 따른다.


이에 성인은 '무위'를 일삼아 있으며,
행동하되 가르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만물이 만드는데 어렵다하지 않고,
생하는데 가지지 않고,
함에 있어 의지하지 않으며,
공을 이룸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음을 하지 못하면,
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문득 이러한 구절이 떠올라서 혼자 흥얼거려 본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진실락(眞實樂)이 그 중에 밝았구나. 조~오~타~!! 그냥 신나면 혼자 중얼거리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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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석호가 아니냐고 하실 벗님도 계실지 모르지만, 모르시는 말씀이다. 이것은 깊은 계곡의 선녀탕(仙女湯)이다. 호수는 이렇게 벽이 높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선녀탕을 옅보는 앞산의 소나무들을 봐하니 틀림없는 12선녀탕이로구나.

신선을 부른다는 요선(邀仙)이 아니던가~! 그러니 당연히 선녀가 목욕하는 욕탕도 만들어 놔야 암신선을 보려고 숫신선들도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 아니냔 말이지. 참으로 대단한 기술로 멋지게 조각을 해 놓은 선녀탕이다.

선녀탕 청소 머슴이 청소를 안 했는지 탕 속에 돌이 들어있다고 한다면 촌자(村者)랄 밖에. ㅋㅋㅋ

바로 저 돌들이 만들어 놓은 선녀탕인 줄을 모르고 하는 생각이란 뜻이다. 큰 물이 날때마다 물살이 치고 들어왔을 것이고, 그 물살로 돌들이 소용돌이를 치면서 10년, 100년, 1천년을 돌고 돌아서 돌은 다 달아 없어지고, 또 물살에 굴러온 돌이 그 다음의 역사를 맡아서 갈고 갈아서 만든 작품이란 걸.

경남 언양의 작천정이 떠오르고, 전북 부안의 채석강이 떠오른다. 모두 이렇게 돌개구멍이 만들어 놓은 경관들을 자랑하는 곳인데 작천정도 언제 지나는 길에 한 번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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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선녀탕이다. 수용 선녀 인원은 대략 2천명.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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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고~~?? 선녀탕을 옅보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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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여인의 속살 같은 질감이 정취를 불러 일으킨다. 곡신불사(谷神不死)이다. 황하의 발원지이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는 곡(谷), 이 물이 흐르고 흘러서 산천을 적시고 만물을 키우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서 신선이 되는 것이다.

물에 비친 반영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누가 금생수(金生水)라고 했던가, 이건 수생금(水生金)이다. 물이 바위를 낳았다고 우기는 생떼이다. 그래도 즐겁기만 하다. 사진을 찍다가 말고 손을 뻗어서 만져보는, 물에 씻기고 깎여서 묘한 질감을 내는 석피(石皮)의 감촉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것을 인공으로 만들어서 효과를 낸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 할 것이다. 석수장이가 천년을 다듬어서 하나 만든다고 해도 그 세월감을 살리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식으로 그라인더를 메워서 윙윙대고 갈아내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정정적정(靜靜寂靜)의 순간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앉아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찬 물소리도 사라지고 허공의 구름안개도 사라진 곳에 오직 고요한 본성만이 성성(醒醒)한 채로 홀연히 드러난다. 극락(極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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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늘 내린 비로 구멍마다 새로운 물이 가득가득이다. 이건 무슨 탕이라고 할 참이냐고? 이건 탕이 아니다. 그냥 물의 휴게소이다. 풀 한 포기가 눈길을 끌어서 담아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풀이 없는 편이 더 나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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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애매할 적에는 조금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또 뭐가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서 다시 바라본다. 오호~! 역시 휴게소가 맞구먼.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게 될 수로가 옆을 지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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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암이라고 해서 바위구멍만 봐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으랴~ 이렇게 격랑을 이루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수선(水仙)도 볼만 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래에서는 또다른 돌개구멍이 만들어 지고 있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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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물살은 바위에 부딪혀서 생긴 멍이라고? 에구~ 썰렁~!!

이런 풍광에서는 두번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발을 담그고 소양강 처녀를 읊조리는 것으로 이미 반선(半仙)이다. 그래서 이러한 맛으로 계곡을 찾는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정동류(動靜同流), 움직이는 것과 안 움직이는 것이 같이 흘러간다. 바위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부단히도 흘러가고 있음인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모두 다 흘러가게 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인생도 당연히 모두 다 흘러갈 것이다. 그 최종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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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를 잊어버렸다. 16mm의 광활함으로 담은 풍광으로 인해서 처음에 느꼈던 협소한 요선암에 대한 생각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넓은 호수가 수십 개나 널려 있으니 말이다. 그냥 생각없이 바라보게 되는 것, 어쩌면 바위에 「邀仙」을 새겼던 옛적의 양사언도 지금 낭월이 앉은 이 자리에서 넋을 놓고 바위의 풍경에 취했을 것이라는 환상에 잠겨든다.

역시, 아름다움은 양이 아니라 질임을.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품고 있음인 것을 또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얼마나 속물 스러운 생각을 했었던가 싶은 부끄러움이 앞선다. 대만의 고궁박물원에서 주먹만한 상아에 새겨진 신기에 가까운 작품을 봤던 생각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움에 매료된다는 것을......

그리하면, 박박 얽은 곰보 색시의 얼굴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고인의 지혜가 가득 담긴 명언을 새삼 떠올린다. 단언컨대, 이러한 풍광은 요선암을 벗어나서는 다시 만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새삼스럽고 경이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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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선녀가 홀연히 하강하셨다~! 갤럭시 폰을 들고 신선의 자태를 담고 있는 홍선녀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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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야깃꺼리도 슬슬 바닥이 드러나는 구나. 이렇게 여러 가지 상상으로 현실과 공상을 넘나들면서 놀다가 보니 어느 사이 5시가 넘어간다. 오늘의 목적지가 아직 남아 있음을 생각하고 화들짝 놀라 용수철(龍鬚鐵)처럼 튕겨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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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암의 끝에서는 요선정으로 오르는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마도 옛적의 신선들도 이렇게 물가에서 술마시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노닐다가 해가 저물면 정자로 올라가서 자리를 깔고 2부를 즐겼지 싶은 생각을 하면서 노닐었던 요선암을 내려다 본다.

다시 본래의 자그마한 그 공간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억 속에 새겨진 요선암은 실제의 면작보다 50배로 확대가 되어서 기록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실과 공상의 사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끔은 회상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