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하나의 괘상으로 다양한 해석을 하는 방법도 있다.

작성일
2013-07-1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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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나의 괘상으로 다양한 해석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제,  팔괘에 대한 생각은 해 봤으니 64괘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겠다. 삼효로 구성된 팔괘에 대해서 의미를 두기 위해 6효로 구성이 된 것은 대성괘(大成卦)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삼효의 팔괘는 소성괘(小成卦)가 되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64괘는 8괘를 겹쳐놓은 것이므로 상괘와 하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일단 서로 포개어 진 다음에는 여섯 괘의 효는 한 덩어리가 되어서 붙어다니게 되면서 각각의 팔괘가 갖고 있던 의미에서도 멀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건괘(乾卦)를 포개놓아서 중천건(重天乾)이 되었다면 하늘이 두 겹이나 겹처 있으므로 엄청 높은 하늘이라는 의미가 있어야 할텐데 실제로 주역에서 그러한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아서이다.
  
                            
   이렇게 육효를 형성하게 되면 상하의 괘는 서로 붙어버려서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된다. 이 기본괘는 뇌풍항(雷風恒) 괘이다. 그러니까 위는 뢰괘이고 아래는 풍괘인데 이 두 괘를 겹쳐놓으니까 항괘(恒卦)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여섯 효가 모이게 되면 맨 아래의 두 효는 땅을 의미하고 가운데 두 효는 사람을 의미하며 맨 위의 두 효는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에서 인간을 의미하는 가운데 두 효는 하늘과 땅에 걸쳐있는 것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두 괘를 묶어서 하나의 대성괘가 됨으로 해서 전혀 다른 그림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천지간(天地間)에 인간이 최귀(最貴)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상괘와 하괘를 연결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뭔가 의미가 있을 듯 싶다.
 
  오른쪽의 그림은 상하로 나눠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괘는 외괘라고도 하고 이에 대비해서 하괘는 내괘라고도 한다. 이것이 주역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위는 우레이고 아래는 바람이 될 경우에 그 의미는 널리 미친다는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우레 아래에 바람이 있는데 왜 그것이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냥 재료를 그렇게 가져다가 함괘를 만들었을 뿐이므로 원래의 재로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관점일 수도 있겠다.
 
  기본적인 이치에 충실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해석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시작된 주역의 괘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로 다각도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타났던가 싶다. 그렇게 해서 대표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분류를 할 수가 있겠다.
                                
   기본적인 항괘와 함께 변화하여 나타난 세 가지의 괘를 함께 생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상수학(象數學) 쪽에서 대입하는 방식일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의리학(義理學)에서는 본괘에 대한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에 관심을 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해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현장에서 실제로 임상에 치중했던 역술가(易術家)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역학과 역술로 나눠서 이야기를 한다면 의리파는 역학이라고 하겠고 상수파는 강호에서 직접적인 질문을 받고 괘를 풀이하여 적중해야 하는 일을 하는 역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학(學)과 술(術)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다만 이것도 세월이 흘러서 많은 시간이 경과하면 서로 다른 영역으로 확장이 되어서 나중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서로 사이가 매우 나쁜 것과 비교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 가정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일어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 처음에는 잘 지내지만 각자의 살림을 하게 되면 서로 원수처럼 으르릉대면서 자신의 몫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가나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팔괘와 육십사괘의 다른 모습도 이해가 된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본괘인 뇌풍항을 음양만 바꿔서 놓으면 풍뢰익이 된다. 이것을 착괘(錯卦)라고 한다. 서로 음양을 섞어놨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런가 하면 180도로 돌려서 놓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뒤집히는 형태가 되므로 택산함괘가 된다. 그리고 이것을 종괘(綜卦)라고 하게 된다.
 
  이 둘을 묶어서 착종이라고 하는데 적천수에서 착종이라는 말이 나와서 무슨 뜻인가 했다가 주역에 대한 글을 보고서야 그 의미를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착종은 가로(錯)로도 얽히고 세로(綜)으로도 얽힌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느 탁월한 천재가 하나의 득괘를 놓고서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을 했던 것으로 짐작을 해 본다. 그렇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요령부득이다. 그냥 그 사람의 비법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만 해 본다.
 
  왜냐하면 하나의 괘가 나온 것은 그것으로 이미 하늘과 땅의 조짐이 드러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것을 음양으로 뒤집고 거꾸로 엎어서 숨은 뜻을 찾아낸다는 것은 점술(占術)의 차원에서는 이해를 못할 바도 없지만,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괘를 갖고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의리파는 상수파들을 싫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뜬다. 뒤집고 엎어서 풀이를 해도 뭔가 부족했던지, 이번에는 아예 괘를 해부해 버린다고 해야 하나? 그야말로 황당한 방법으로 또 하나의 괘를 찾아낸 것이다. 이것은 해부학의 절정이라고 해야 하지 싶다. 물론 주역에 완전 초보자인 낭월의 좁은 소견이니 탁월한 감각의 고수는 널리 헤아려 주시기 바란다.
 
  그러니까 맨 위와 맨 아래의 두 효를 제외하고 5효, 4효, 3효를 갖고 하나의 괘를 만들어서 태괘가 되고, 다시 4효, 3효, 2효를 갖고 하나의 괘를 만들어서 건괘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찾은 것을 호괘(互卦)라는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하는 것이 역경의 어느 곳에 나와있는지는 심히 의심스러운 감이 있다. 그러나 강호에서 실전을 하는 고수들은 이러한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모양이니 방법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다. 그저 문외한이 바라보기에는 곡예사가 공중그네를 타는 것처럼 신기하게 보일 따름이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본괘에다가 동효(動爻)라고 하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래도 상당히 고전적인 방법이었던가 싶다. 특히 동전 세 개로 득괘를 할 경우에 속하는 방법이라고 하겠는데,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점괘를 얻었다고 한다면, 괘상으로 변경하게 된다. 참고로 세종할배가 나온 쪽을 양으로 보고 숫자가 있는 쪽을 음으로 보게 되는데 또 다른 의견으로는 숫자가 돈의 핵심이므로 이것을 양으로 봐야 한다는 설도 있다. 각자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할배가 있는 쪽이 그 동전의 얼굴이 아닐까 싶어서 이것을 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하튼 이렇게 얻은 점괘를 보면, 상괘는 양음양으로 리괘가 되고, 하괘는 양음음으로 간괘가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것을 나타내면 다음과 같은 괘가 된다.
 
                                                                          
  이렇게 화산려(火山旅)괘를 얻었으므로 이에 대한 해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 괘가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지를 봐야 하느데 변화의 조짐을 갖고 있는 것은 두 번째의 3음과 세 번째의 3양이다. 이렇게 되면 극약(極陽)이나 극음(極陰)이 되어서 음극즉양생(陰極卽陽生)하고 양극즉음생(陽極卽陰生)하는 이치에 따라서 양은 음으로 변하고 음은 양으로 변한다. 이렇게 된 것을 또 지괘(之卦)라고 부른다. 그렇게 하면 하괘의 양음음은 음양음이 되므로 감괘가 되어서 변하게 된다. 이것을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본괘와 지괘를 놓고 려지미제(旅之未濟)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토정비결이다. 본괘는 현재의 상황으로 대입하고 지괘는 결과의 상황으로 읽게 되는데 이렇게 보는 것은 가장 고전적인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도 동전을 던지는 것이 번거로워질 때쯤이면 간편하게 하나의 변화만 표시하는 것으로 편법을 만들어서 해석하기도 한다.
 
                            

  기왕이면 토정비결에서 려지미제괘를 보여드렸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토정비결에는 려지미제괘가 없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또 나름대로이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으로만 이해를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싶다.
 
  이렇게 다양한 변괘(變卦)를 찾았던 것은 복잡한 상황을 보다 정밀하게 읽어내기 위한 선현들의 노력이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찬성하는 입장도 있는가 하면, 또 길길이 뛰면서 반대하는 입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학자간의 견해차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고, 학자와 술객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낭월은 학자의 입장에 서서 바라봤으면 싶은 생각을 해 본다. 왜냐하면 원형이 중요하지 변화는 설명을 위한 편법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실로 요즘은 대운의 존재에 대해서 자꾸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하다. 원국의 팔자에서 답을 찾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원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둑기사였던 오청원도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바둑판에서의 일은 바둑판에서 해결하면 될 것을 왜 법을 만들어서 살았느니 죽었느니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서이다.
 
  사주의 일은 사주팔자에서 해결하고 주역의 일은 주역 본괘에서 해결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는 것과 서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곡사궁이니 귀곡사니 하는 말로 불리는 이 법칙은 한국과 일본은 법칙으로 다루고 중국은 실전으로 다룬다는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더 현실에 부합되는지는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바둑이야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현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옳듯이 점괘가 나왔으면 그것을 분석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착괘(錯卦) ,종괘(綜卦), 지괘(之卦), 호괘(互卦)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인데 이것도 실전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어 있는 조짐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는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술수(術數)라는 것이 그렇게 신기막측한 풀이가 나오는 것은 일상적인 분석법을 뛰어 넘은 곳에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엇? 변화의 괘가 넷이라니? 그렇다면 본괘까지 하면 다섯이렸다~! 오호~ 문득 드는 한 생각은 이것이야말로 오주괘가 아닐까 싶다. 이유는 논하지 말고 다섯 가지의 변화를 정리해 본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 보자. 이러한 것이 바로 '발상즉행동(發想卽行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자, 이렇게 놓고 보니 서로 많이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쩌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그림이 또 있을까 싶다. 하나의 괘상은 상하로 결합이 된 것도 육갑의 간지가 결합된 것과 비교해 보니 그것도 절묘하고, 본괘를 가운데에 놓고서 좌우로 네 가지로 변화하는 괘상을 배치하는 것도 연월과 시분을 배열하는 것과 서로 통하지 않는가 싶다. 왠지 갑자기 오주괘가 더욱  사랑스러워지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뭐지?
 
  참고로 지괘는 임의로 3효가 동한 것으로 했을 뿐이다. 그렇게 디면 뢰수해(雷水解) 괘가 되는데 이러한 것을 해석하는 방법은 나중에 다시 각각의 괘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우선 직관적으로 본 느낌은 상당히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주풀이를 하다가도 사주에서 보이지 않는 조짐을 찾기 위해서 오주괘를 들여다보면 신묘한 이치가 그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그러한 것도 본론은 간지학의 깊은 이해에서 나오듯이 주역도 다양한 해석을 하는 것은 그만큼 깊은 이해가 있은 다음에서야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원래의 주역에 대한 해석을 중시하는 경학파(經學派)의 관점으로 본다면 번잡하고 소란스럽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의미로 정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러한 변화를 읽으려고 시도를 할 것이 아니라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익힌 다음에 응용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