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주역의 큰 맥락은 의리(義理)와 상수(象數)로 나뉜다.

작성일
2013-06-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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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주역을 큰 맥락은 의리(義理)와 상수(象數)로 나뉜다.






  주역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주변의 상황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다. 본론으로 진입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또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다시 살펴볼 수는 있겠지만 우선은 주변의 소식부터 정리를 하면서 본론으로 들어가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이다.

  어떤 관점으로 나누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크게 나눈다면 의리(義理)와 상수(象數)로 나누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상수를 묶어서 하나로 보고 그야말로 철학적으로 궁리하고 자연적인 관점에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의리로 분류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론적이거나 역사적인 방면에서 연구하고 실제로 점괘를 얻어서 길흉을 논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를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상리와 수리의 관점보다 더 넓게 본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주역은 어차피 점을 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철학적인 이론은 한가로운 자들의 소일꺼리로 생각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관점에서 정확한 점괘를 얻어서 풀이하는 것에 몰입한다면 이것을 모두 상수역(象數易)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상수는 점괘를 풀이하는 방법에 대해서 약간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의리역에서 본다면 모두 같은 것으로 분류를 하게 된다.   

             

  증사강 선생의 이야기로는 상(象), 수(數), 리(理)가 서로 순환하면서 주역의 변화무쌍한 이치를 드러내고 있다는 설이다. 상리와 수리와 의리로 본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이해를 해도 될 것으로 보는데 이론적인 부분만 따로 논하면 의리역이 되므로 이렇게 분류하는 것도 간명하겠다.

  주역이 살아온 여정을 생각해 본다면 처음에는 숫자로 점괘를 풀이했다고 봐서 수리가 가장 먼저가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갑골문에서도 팔괘의 형상은 보이지 않지만 숫자로 된 점괘는 등장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괘를 풀이하는 초기단계라고 본다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 다음의 단계로 상징을 적용해서 약간 멋을 부렸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하늘, 땅, 바람, 불과 물 등이 개입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상리가 된다고 이해를 해 본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주역의 존재의미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주역은 점쟁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이치를 담은 위대한 철학이라는 전제로 접근하게 된 것이 의리가 될 것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점괘를 얻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철학적인 영역에서 노닐게 되었고 점치는 방법이 이렇게 된 것에는 도가(道家)와 불가(佛家)의 형이상학적인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러니까 실질적인 주역은 수리와 상리로 분석하는 것이지만 외부의 논리와 부딛치게 되면서 점차로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로 변화를 하게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부분에 가장 큰 공로자는 도가와 유가를 섞어놓았다고 평가를 하는 왕필(王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어린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그의 글은 아직까지도 연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의리와 상수로 나누는 것은 크게 본 것이라고 한다면, 활용의 단계에서는 다시 또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겠다. 그 하나는 상리(象理)가 되고, 또 다른 하나는 수리(數理)가 되는데 그래서 보통 주역은 상수학(象數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학자에 따라서 상학으로 나가기도 하고 수학으로 나가기도 하는데 그것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나눠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을 음양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표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극의 음양혼돈에서 내공이 가득하게 차 오른다면 자연스럽게 분리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마치 말미잘에게서 새끼가 자꾸 돋아나면서 번식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봐도 되지 싶다. 그렇게 나뉘어서 하나는 음이 되고 또 하나는 양이 되었다고 한다면 음으로 자리를 잡는 것은 상(象)으로 이해를 하고 양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수(數)로 이해를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본질을 나누자고 한다면 60억가지로 나눠야 하겠지만 그래도 압축하고 압축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음적인 사람과 양적인 사람으로 나눠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다. 왜냐하면 주역의 관점은 모두가 음양으로 나눠서 관찰하고 또 합해서 살펴보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견으로는 셋으로 나눈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수리에서 도가 튼 사람으로 대표적인 인물은 송대(宋代)의 소강절 선생이 될 것이다. 그는 수에 관해서는 극한으로 확장해서 원회운세(元會運世)로 전개하는데 이것은 도저히 낭월의 판단으로 헤아리기는 역부족이어서 얼른 덮어버리고 만다. 또 숫자로 풀이하는 것으로 초씨역림(焦氏易林)을 지은 초연수가 있는데 이것은 사주팔자를 숫자로 만들어서 역괘로 변환한 다음에 풀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수리로 발전한 분야는 기문둔갑과 육효학, 구성학 등이 있는데 이러한 분야에서 더욱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 장점은 명료하게 콕콕 짚어내는 신통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러한 분야에 관심이 간다면 수리의 분야가 인연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반면에 상리로 연구를 한 학자로 대표적인 인물은 위(魏)나라의 천재라고 불리는 왕필(王弼)이 될 것이다. 그는 16살에 주역에 주석을 달았는데 24세에 명이 다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상리학을 연구한 학자들은 점을 쳐서 맞고 말고에 비중을 별로 두지 않고 기본적인 이치에 관심을 두고 팔괘의 괘상을 통해서 답을 찾으려고 연구하는 분야라고 하겠는데 주역이 점치는 책만은 아니라고 주장한 학자들은 모두 상리에 해당한다고 보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령 《주역선해(周易禪解)》를 저술한 명대의 지욱선사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동영상으로 접하게 된 대만의 증사강 선생도 또한 상리로 주역을 연구하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구분을 가장 쉽게 하는 것은 주역을 강의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상리쪽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어쩌면 토정선생도 수리 쪽에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하나의 괘상을 놓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괘의 이름은 상괘가 수(水)이고 하괘가 화(火)이니 수화기제(水火旣濟)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것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왼쪽의 팔괘의 괘상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면 상리로 흐르게 되고 오른쪽의 1,2,3,4,5,6으로 표시가 되어 있는 방면으로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되면 수리에 통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理)는 오래도록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상으로 스며들고 수로 스며들어서 제각기 자신의 길로 갔던 것은 물론 그러한 관점으로 학문을 연구했던 학자들의 성향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는데 여기에서 문득 낭월은 어느 쪽으로 관심을 두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자평명리학이 수리보다는 상리에 가깝다고 본다면, 낭월의 관점도 필시 상리쪽으로 향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상리(象理)에 관심을 두게 되면 적중(的中)보다는 논리(論理)에 가깝게 될 것이고, 그것은 점괘를 뽑는 희열감보다는 이치를 즐기는 은근함을 즐기게 될 것으로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벌써부터 괘상에 대한 이치에서 의문점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조짐으로 본다면 이 게시판은 주역의 상리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될 것이므로 수리적인 것에 관심이 있는 벗님은 찾아오는 발걸음이 뜸~하게 될 가능성도 많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간단명료한 것을 좋아한다면 상리는 은근하고 오묘해서 명확하게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도덕경의 관점으로 본다면 상도(常道)와 비상도(非常道)로 이해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상도는 항상하여 변화하지 않는 것이니 상(象)에 가깝고, 비상도는 상황에 따라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 수(數)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왜냐하면 음양의 도는 모두가 서로 통하기 때문에 연결을 시켜서 생각해 보면서 그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의미를 많이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음과 양으로 나눠서 생각을 해 보는 그림이다. 음은 불역(不易)이니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양은 변역(變易)이니 변화하여 바뀐다는 뜻이다. 상과 비상은 앞에서 설명한 것이니 생략하고, 음은 본체이며 양은 현상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하겠고, 음은 영원불변(永遠不變)하는 것이지만 양은 순식만변(瞬息萬變)하니 즉 눈 한 번 깜빡이고 숨 한 번 들이쉴 순간에도 만 번을 변화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야구선수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을 던지는 사람의 특징을 본다면 하나는 직구(直球)를 즐겨 던지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변화구(變化球)를 즐겨 던지는 사람이다. 이렇게 둘로 나누지만 직구스타일이라고 해서 변화구를 못던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반대로 변화구스타일이라고 해서 직구는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중에서도 남들보다 더 잘하는 것을 논하는 까닭에 그 사람의 스타일이 생기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리고 그러한 기술의 형태를 보면서 직구는 상리에 가깝고 변화구는 수리에 가깝다고 생각을 해 본다면 서로 비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주역은 상수학이므로 상리와 수리를 모두 이해하는 것인 당연하겠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스타일이 나오기 마련이므로 이론적인 사람은 상리로 가게 되고 실제적인 사람은 수리로 가게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