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變數 - 올바른 해석에 틀린 결과라면...

작성일
2007-09-12 13:25
조회
4683
학자를 두렵게 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사주가 틀리지는 않았는지도 살펴보고 생일이 정확한지도 다시 묻게 되기도 하며 또 더러는 출생시에도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질문을 하게 되는 일이 흔히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오류를 바로잡게 되는 일이 상당히 많은데, 주로 출생시에서의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게 된다.

 

한번은 공부를 하는 학생의 사주로 하루 공부를 하기로 했는데 낭월이 보기에는 심리적으로 그러한 성분이 있는 것 같았는데 사주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확인을 해본 결과 辰時가 아니고 巳時라는 결론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뭔가 개운치 않은 경우도 가끔은 있다. 그래서 그러한 경우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장으로 마련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빗나가는 현상이 단지 자신의 공부가 부족해서거나 낭월이 온갖 신살론이나 십이운성 또는 육합이나 충파해 등등을 버린 까닭이라고 생각을 할 후학도 계실 듯 싶어서 오해를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한번 버린 것을 다시 끌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실제로 그로 인해서 정확하게 답이 나오기만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로지 생극제화로 추명을 해서 적중하지 않는 경우에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부근에 대해서는 『알기쉬운 용신분석』에서도 약간 언급을 했는데, 다시 정리를 해서 생각해 보도록 한다.

 

 

1. 개인적인 느낌과 주변의 관점

 

 

임상을 하게 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본인이 직접 답을 하는 경우와 대리인이 답을 하는 경우에 서로 오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본인은 그 해에 고통이 많았다고 대답을 하는데, 주변의 가족은 그 해에는 재미있었다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차이점에 대해서 과연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길흉의 기준은 본인의 행복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겉으로는 뭔가 진급을 하든 돈을 많이 벌든 간에 자신이 생각을 하기에는 실로 고통이 따랐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든다면 말이다.

 

어느 사람이 그 해에는 10억의 재물을 벌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주변의 그 누구도 그의 성공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명리학자가 그 해의 상황을 나빴다고 해석한다면 과연 주변 사람들이 그 판단을 올바로 받아들이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적인 사람들의 심리에는 그렇게 큰 재물을 확보한다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낭월은 생각이 좀 다르다. 스스로 과연 그만큼의 행복이 있었느냐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철저하게 개인의 행복 기준으로 운의 좋고 나쁨을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누구는 왕의 비위를 맞춰주고 땅을 만평 얻고 누구는 왕의 발가락에 난 종기를 빨아주고 보상으로 애첩을 얻었으며, 또 누구는 왕을 도와서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하고 제후가 되었는데 당신은 지금 보니 말이 수천 마리에 땅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받았으니 도대체 왕의 엉덩이에 난 종기라도 빨아줬는지도 모르겠군. 어디를 빨아줬기에 그렇게 많은 보상을 받았느냐?"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재산과 명예를 좀 얻었다고 거들먹거리니까 비위가 상해서 쏘아붙인 내용이 아닌가 싶기는 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말과 땅을 얻었을 적에 과연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겠는데, 남들이야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고 하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대법원장을 수십 년간 역임하고 정년퇴임을 하는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기자가 물었단다.

 

"대법원장님 영광스런 일을 마친 소감을 부탁합니다."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영광된 자리에서 일을 하셨잖아요."

"영광은요.... 치욕의 나날이었지요. 이제 홀가분합니다."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했다고 전해들었다. 물론 그 말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낭월도 모르겠다. 다만 그럴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객관적으로만 해석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더욱 이 말이 귓가에 울린다. 과연 겉으로 나타나는 영광이 무슨 행복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도 실로 권선징악의 막중한 사명감과 영광으로 늘 행복했다면 그러한 말을 그 자리에서 했을 리가 없다고 하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서 그렇게 말을 했다면......

 

구태여 벗님의 소견을 묻고 싶지는 않다. 낭월의 생각만 전해드릴 참이다. 이러한 경우에 당해서 과연 운의 해석을 함에 있어서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이냐는 점에 대해서 의견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너무도 당연하게 본인에게 물어봐야 하겠다는 것이다. 대리인이 답을 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발생 시킬 수가 있음도 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부모나 자녀의 생각조차도 정확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부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늘 그 기준은 본인의 기분에서 정하시기 바란다는 말씀을 드린다.

 

 

2.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제 낭월이가 느껴본 점에 대해서 소감을 말씀드려 보고자 한다. 남이 봤을 적에 느끼는 점과 본인이 느끼는 점에 대해서 얼마간의 차이가 있겠느냐는 점을 느껴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많이 달라질 수도 있더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고 하는 의미도 포함이 된다.

 

  時日月年

  癸己甲丁

  酉未辰酉

44 34 24 14 04

己 庚 辛 壬 癸

亥 子 丑 寅 卯

 

여기에서는 낭월의 丁卯년은 어떠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당시의 나이는 31세가 되고 대운은 丑土에 해당하고 있음은 명백하게 알겠다. 대운은 기신이고 세운은 구신이다. 丁卯년이면 丁火의 힘이 대단할 것은 뻔하고 더구나 사주에서 희용신에 해당하는 酉金이 충돌을 당하면서 丁火에게 부담을 받는 것도 포함한다면 실로 엄청 나쁜 운이라고 해석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시에 어느 할머니의 굿당에서 일이 들어오면 아내인 연지님은 돼지 머리를 삶고 낭월은 징을 치면서 굿도 같고 불공도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월 수입은 아마도 10여 만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냥 연명을 했다고 생각하면 딱 적당할 상황이었다. 이런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을 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공식적인 일외에 땔나무를 하는 것까지 처리가 된 다음에는 오로지 적천수를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행복감에 취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살펴가던 적천수였지만 점차로 시간이 경과해 가고 회수를 반복하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글자의 여백에 대해서도 의미가 전달되고 점차로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가고 그 악조건의 상황들이 모두 잊혀지고 오로지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만 집중이 되어서 날이 가는지도 모르고 글만 읽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써놓은 글들을 살펴보면 뜻을 익혀 가는 재미에 밖의 고통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흔적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인성의 운에서는 공부를 하게 된다는 말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丁火는 바로 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만약에 그러한 운에서 무슨 장사라고 하려고 했다면 얼마나 고통이 심했겠느냐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자신의 명식을 정확히 알고 오히려 공부를 하는 것에 집중을 하다 보니까 고통은 사라지고 희열감이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직접 느껴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감을 잡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정묘년에는 어떻게 보냈느냐고 한다면 오히려 담담하게 '적천수삼매(滴天髓三昧)에 젖어서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가 있겠다. 그리고 실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흉운의 작용도 이렇게 달리 인식이 될 수가 있음을 생각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인도 운의 작용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마음에 남기지를 않으므로 실제로는 의미가 없다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본다. 실로 낭월의 당시 기분으로는 좋은 책을 만난 행복감으로 충만되었던 것이 지금도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운의 다른 해석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고통도 행복으로 느낄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말씀드리게 되는 것이다. 즉 운이 나쁘다고 해서 기분도 나빠진다는 것은 절대적인 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현실은 그렇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서조차 그렇게 느낄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가 되는 현상도 생각해 볼 수가 있겠다.

즉 남들이 보기에는 손님도 많고 돈도 잘 번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늘 시간에 쫓기고 심신이 피곤하다면 과연 스스로 운이 좋다고만 느끼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물론 사회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매우 만족할 것이고 아마도 대체적인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성취감에 흐뭇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일부의 별종으로 타고난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되면 문을 닫고 배낭을 의지한 채로 어디론가 훨훨 떠나고 싶은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이 괴로울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을 하기에 따라서 같은 운의 다른 기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겠고 이러한 차이점을 읽어 보려면 용신의 상황도 중요하겠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용신이나 기신을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필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역시 세상은 보기에 따라서 좋게도 보이고 어둡게도 보인다는 말이 명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벗님도 부디 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현실을 인식하시라는 권유를 드리고 싶다.

 

 

3. 여인은 남편따라 간다

 

 

원래가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했지만, 운명에서도 이 법칙이 존재하리라고는 미쳐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임상을 해 가면서 틀림없이 운세도 여필종부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말씀 언급을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확대해석 한다면 운은 활동을 하는 사람을 위주로 흐른다는 것이다. 즉 남자가 살림을 하고 여자가 밖에서 활동을 한다면 운의 흐름은 여인의 사주를 기준으로 흐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필종처(男必從妻)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운은 활동하지 않으면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식을 적용하게 되면 여러 가지 운세의 변수를 생각하게 되니까 잘 이해를 해야 하겠다. 사업을 하는 사람과 직장을 다니는 사람의 운을 비교해보면 사업을 하는 사람이 운에 민감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운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즉 운이 좋으면 사업을 하고 운이 약하면 직장생활을 하면 된다는 결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을 응용하게 되면 타고난 적성은 사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이 되더라도 운이 약하다면 사업을 자제하고 직장생활로 방향을 잡으라는 조언을 해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망해도 좋으니까 사업을 해보겠다고 한다면 전혀 말릴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명리연구가는 조언자일 뿐이지 명령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늘 생각하게 된다. 여하튼 스스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게 되면 좋겠지만 운이 약해서 실패를 할 암시가 있다고 한다면 신중히 검토를 해서 스스로 판단을 하시라고 권유를 하게 된다.

 

 

4. 어린 자식은 부모 운을 따라 간다

 

 

앞의 이야기와 유사한 의미가 되겠는데, 여기에서 강조를 하고 싶은 것은 대체로 20세 이전에 대한 운세는 그렇게 선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특히 부모님의 슬하에서 있는 경우에는 개인적인 운의 작용보다는 가장의 운에 따라서 길흉이 많이 달라지는 것으로 봐서 어린아이의 운이 작용을 할 여지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다. 즉 어릴때의 운을 참고용으로 확인할 적에는 이 점도 고려를 하시라는 말씀이다. 그렇지 않고서 너무 개인적인 운에 대해서만 집착을 하게 되면 혹 운에 대 해서 혼란을 느껴서 용신이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려해서 드리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어린 사람의 사주를 볼 적에는 운세를 참고하면서 너무 현실적인 대입을 하려고 하지 말고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서 적성 등에 대해서 해석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점만 주의를 한다면 편안하게 상담을 하실 수가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실은 아무리 어려도 자신의 운에 대해서 느낌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초등학생이라도 운이 나쁜 해에는 친구의 시달림을 받거나, 혹은 학교에서 피곤한 일을 겪게 될 암시가 있겠다는 것은 충분하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사회생활에서의 희노애락은 느낄 수가 있다고 봐서 본인에게 물어볼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 운을 대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운의 작용도 기껏 성적이 올라서 기분이 좋다거나 혹은 용돈이 생겨서 신난다는 정도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그 사람의 입장에서 대입을 한다면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보겠다. 낭월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대략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낭월이 8세가 되었을 적에는 甲辰년이었고, 9세에는 乙巳년이다. 그리고 당시의 대운은 卯木이 시작된 상황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전후의 사정을 살펴볼 적에 아직은 어리므로 부친의 운이 작용을 했을 것으로 대입을 해보게 되는데, 당시의 부친은 희망을 찾아서 안면도로 야산을 개간하러 들어갔으니까 식상의 작용을 받은 것으로 봐야 하겠다. 癸水일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가 있겠다. 대운은 생략하고 나름대로 희망이 있어서 보따리를 싸짊어지고 안면도의 나룻배를 탔던 것이다. 癸水가 군겁쟁재를 만난 사주에서 식상이 왔으니 아마도 서부개척의 수레 행렬에 낀 기분이 아닐까 싶다. 이 사주는 다음의 『적천수강의 3권』에서 상세히 다루도록 할 예정이다.

여하튼 부친의 개척욕으로 인해서 자녀는 학교를 중단하고 전학을 해야 했는데, 물론 낭월만 그에 해당되었다. 아시는 벗님도 계시겠지만 천성이 내성적인 성품에 경상도 창원에서 충청도의 서산 땅으로 이동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타국으로 가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언어의 장벽(!)이며 동료들의 핍박을 생각하면 무지하게 힘들었던 甲辰년과 乙巳년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나면서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대운을 보면 卯木으로써 식신이 충을 만났다. 물론 酉金이 충하므로 흉하다고는 할 것이 아니지만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세운에서도 관살이 들어오고 있으니 이것은 억압이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암암리에 하게 되었는데,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피곤한 시간을 보냈던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운명의 탓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이전까지는 참 편하게 잘 살았던 것이다. 부모님이야 빚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거나 말거나 개인적으로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전혀 어려움없이 잘 살았는데, 癸水의 운이 작용을 하고 있는 동안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렇게 대입을 하니까 결국은 金水의 운은 좋지만 木火土의 운은 좋을 일이 없다고 하는 해석을 하게 되는데 비록 그렇다고 해도 고향에서 그냥 학교를 다녔다면 그렇게까지 힘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가능한 생각이겠다. 그러니까 부모의 운에 의해서 낭월은 억울하게 그 부담감을 더 크게 느낀 것이라고 해석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이 전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절대로 재학 중에는 전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대했다. 현재까지 무리없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자식들을 보면서 애비의 고통을 어찌 알겠느냐고 하는 마음이 가끔은 든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자식들은 부모의 운이 안정을 찾게 됨으로 해서 스스로의 운이 다소 약하다고 해도 큰 무리 없이 잘 보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어린 시절의 운은 개인적인 것으로만 해석을 할 것이 아니고 부모의 운을 살펴서 대입을 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게 된다. 그리고 그 한계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로 하면 어떨까 싶다. 참고를 하는 것이 해롭지 않으리라고 봐서 긴 말씀 드렸다.

 

 

5. 늙으면 자식 운을 따라 간다

 

 

이번에는 앞의 경우와 반대가 되는 입장이다. 자신이 활동을 하지 않고, 자식이 벌어다 주는 상황이 된다면 자신의 운은 작용을 하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자식의 운에 따라서 길흉이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까 늙어서 생활력을 상실한 노인의 운명을 볼 적에는 사업의 운을 보는 것이 아니고 기껏 건강에 대한 정도를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는데, 실은 자평명리에서 다루는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극히 제한적인 오장육부의 균형 정도이므로 그 이상의 접근은 당분간 어려우리라고 보고, 실제로 노인의 사주 해석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응용하게 되면 60이 넘어서 다소 기운은 있더라도 자식의 운이 좋고 자신은 운이 쇠약해 진다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는 조언을 할 수가 있겠다는 것이다. 재벌의 모습을 보면 늙어서 몸도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도 영업에 개입을 하는 것을 더러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이 웅장하지 못하고 초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적인 연민심이다. 운명적으로는 물러날 때를 놓친 것으로 해석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식의 운도 쓸모가 없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적절한 사람을 찾은 다음에는 과감하게 물러나야 하겠는데, 그래서 중국의 고대에서도 자신의 왕 자리를 아들에게 주려고 하다가 보니 아들의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하고서는 그대로 다른 현인에게 물려주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어진 임금이라고 하게 되는데, 장자님은 물론 그러한 왕들을 비난하고 겉치레에 팔려서 자식을 굶어죽게 만들었다는 말도 했지만 운명적으로 본다면 좀 딱하기는 하나, 억조창생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자식하나 굶어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을 그렇게 무능한(스스로 목숨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의 무능한 인간이었다면....) 사람이 통치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겠느냐는 생각도 해봐야 하겠기 때문이다.

젊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늙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붙잡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여인도 마찬가지이다. 시어머니가 어느 시기에 며느리에게 곳간의 열쇠를 맡기느냐는 것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그만 찬밥이 될 가능성도 있는데, 실은 그렇게 찬밥이 될까봐 적절한 시기에 살림살이 운영권을 넘겨주지 못한 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찬밥이 된다는 것이 참 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세상 만사는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를 명리학자는 운세를 통해서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운을 봐서 약하다고 판단이 되면 운이 가장 강한 자녀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은 계속 활기차게 운영이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대우도 잘 받게 되리라고 본다. 이미 운이 다했는데에도 그냥 추한 몰골로 운영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여러 사람이 따분한 것이다. 그러니까 늙어서 물러나는 것이 늙은이의 가장 큰 숙제라고 해도 되겠다. 이것은 세간의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운으로 구분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다.

실로 자연계에서 동물들은 가장 운세가 강한 놈이 리더가 되는 것으로 법칙이 정해진 모양이다. 그래서 일년에 한 번씩 경쟁을 하기 위해서 수놈들은 목숨을 걸기도 하는데, 역시 가장 강한 무리로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할 수가 없는 숙제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스스로 운이 약해져서 힘이 빠지면 그냥 물러나거나 용감하게 한판 붙어서 후배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사정이므로 누가 더 잘했다고 하기 어렵겠지만 사람은 그렇게 칼부림을 하는 것이 결코 현명하지 않으므로 물러날 줄을 알아서 양보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 이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6. 장애자의 운세

 

 

예나 지금이나 신체나 정신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다소 편리해지기는 하겠지만 장애자를 없애지는 못할 것으로 봐서 언제나 사회적으로 이 점은 고려를 해야 하겠는데, 자평명리 학자의 입장에서는 장애자의 운세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했다고 할 참이다.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소 낭월이 생각하던 점을 전해드린다.

 

 

1) 정신장애

 

 

우선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을 경우에는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겠다. 어디에서도 무슨 일도 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정신병자는 사회적으로도 격리를 시키는 것이 보통이겠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언제 사나운 흉기로 변할지 또는 장애가 발생할지 몰라서 곤란한 지경에 처할 가능성이 많다고 봐서일 것이다. 그리고 일리가 있겠다. 사주에서 정신장애를 읽을 수가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도 여러 가지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경우가 많아서이다. 몇 가지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도록 하자.

 

가) 선천적인 정신 장애

 

이 경우에는 저능아라고 하는 말을 가능하게 하겠는데, 과연 대책이 없겠고, 이러한 사람의 운명은 용신이고 뭐고 찾을 필요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용신이란 것이 사회에서 살아갈 구멍을 찾아내는 것인데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그 수준이 되지 못하니 무슨 용신을 찾겠느냐고 해야 하겠고 물론 사주에서는 용신을 찾을 수가 있겠지만 그 용신을 놓고 운을 대입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다음의 사주를 보면서 말씀드린다.

 

   時 日 月 年

   辛 庚 庚 辛

   巳 辰 子 亥

 

55 45 35 25 15 05

甲 乙 丙 丁 戊 己

午 未 申 酉 戌 亥

 

子月의 庚辰일주가 매우 왕성한 구조이다. 子辰으로 합이 되어서 신약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時干의 辛金이나 年干의 辛金 또는 月干의 庚金까지 가세를 하는 것으로 봐서 절대로 약하지 않다고 해야 하겠고, 그래서 음기가 너무 강한 것을 고려한다면 時支의 巳火를 용신으로 하고 木의 운을 기다리는 것으로 답을 내면 되겠다. 용신은 火, 희신은 木, 기신은 水, 구신은 金, 한신은 土가 되는 구조라고 하면 되겠고, 25세부터의 丁火대운이 기대가 되고, 丙火대운은 합이 되어서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乙未 대운과 甲午대운은 기대가 된다고 하겠다. 물론 천간의 木이 현실적으로 原局의 庚金과 辛金에게 눌리는 것을 고려한다면 큰 기대는 하기 어렵다고 해도 비교적 좋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그런데 이 사주의 주인공은 선천성 저능아이다. 정신연령은 약 6세 정도로써 스스로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극히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당시 어머니가 상담을 신청했는데, 丁卯년이어서 낭월이가 보기에 火木이 들어왔으니 올해 운이 좋다고 해석을 했다. 그런데 실은 전혀 소용이 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공부와는 담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피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내린 결론은 정신장애자에게는 운의 해석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생활을 할 그릇이 아니니 어떻게 쓰일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이 사주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으로써 정신장애자가 아니었다면 정묘년은 공부도 잘되고 좋았다고 해석을 해도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능하겠다는 정도이다. 이런 식으로 대입을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본다. 정신장애자를 사주로 읽을 수는 없겠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으신 벗님이 많으시리라고 생각이 되는데, '하하~ 글쎄올시다' 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여하튼 그러한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낭월이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말씀만 드린다.

 

나) 후천적인 충격에 의한 장애

 

이런 경우도 많을 것이다. 어느 날 자동차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거나,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 자신도 실신한 상태가 된다거나 또는 강간범에게 욕을 당한 후로 정신적으로 대인기피증이 발생해서 병원 신세를 지는 등등의 온갖 일들이 세상에서는 늘 일어나고 있다. 또는 마약의 중독자가 되어서 이성을 상실할 수도 있겠다. 그 경우의 수는 부지기수여서 일일이 열거를 할 수가 없겠고 그럴 필요도 없겠다.

이러한 경우에는 정상적일 경우만 운의 대입이 해당하고 사고가 나서 비정상적인 상태가 지속된다고 한다면 그때부터는 운의 대입이 필요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즉 사고를 당해서 식물인간이 되어 의학적으로는 일어날 가망이 없다고 한다면 용신운이면 뭘하고 희신운이면 뭘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야 하겠다. 이러한 사람의 가족들은 답답한 마음에 상담실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정황을 숨기고 이야기한다면 그대로 운의 대입을 하게 되지만 그 상황을 알게 된다면 대입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즉 운이 좋다고 해서 의학적으로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시켜 줘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환자의 사주를 보러 다니지나 말도록 해주고 오히려 초자연의 현상에 의지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더 현명한 조언이 된다고 하겠다. 이런 사람을 놓고서 '운이 좋으니까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을 할 수도 있겠으나 예언자가 되지 말고 상담사가 되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과 늘 일어날 수가 있는 변수에 대해서 함께 설명을 하는 것이 현명한 상담이 되리라고 생각되어서 언급해 드렸다.

 

 

2) 신체장애

 

 

이번에는 정신적으로는 매우 정상이라고 하고 신체적으로만 장애가 있는 경우를 생각해본다. 물론 정신이 성하다는 것만으로 사회생활을 잘 할 수가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장애라도 어느 부위가 장애인지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가령 하체가 장애라면 두 손을 이용한 일이라면 뭐든지 가능할 수가 있겠고, 실로 그러한 일은 무수히 많을 것이며 특히 요즘같이 컴퓨터와 관련된 일이 많아진 상황에서는 집에서 자신의 일을 맡아서 처리할 수도 있겠으므로 상당히 활용이 폭이 넓다고 하겠다. 다만 출근하고 퇴근을 해야 하거나 수금원이나 방문판매와 같은 일은 인연이 없다고 해야 하겠고, 그에 따라서 자신의 영역을 한정하면 충분히 운의 작용이 있을 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주학 등의 명리학을 배워서 상담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 상담을 하는 것도 많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어쩌면 올바른 명리학을 지체장애자용 교육시스템으로 개발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상처를 경험으로 살려서 남에게 따스한 조언을 해줄 수가 있다면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장애는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실로 낭월의 주변에서도 지체가 불편한 벗님이 더러 계신데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명리학의 전문가로써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그를 장애자라고 무시하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현명한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운의 작용은 그대로 살아난다.

혹 자신의 장애를 잊고 방향을 잘못 잡는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왜냐하면 손이 하나가 없는 장애자가 워드를 하겠다고 한다면 이미 50%이상은 손해를 보는 것이다. 한 손으로 필기를 하는 것은 충분하겠지만 두 손으로 글자판을 두드리는 것에서는 남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방향을 잡는다면 운의 작용은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도 무리가 없으리라고 본다.

 

 

7. 개인보다 그룹의 운이 우선한다

 

 

자평명리가 개인의 운명을 논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면 그 한계도 명확하다. 극히 개인적인 운의 길흉에 대해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아니고 보다 커다란 그룹이라고 하는 영향권 아래에 놓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운의 앞에서 그 그룹의 영향력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즉 얼마 전에는 약사와 의사간에 충돌이 있었는데 그 의사들은 개인적으로 운이 좋아서 수입이 짭짤하거나 말거나 사회적으로 위태로운 그룹의 운을 맞이하게 됨으로 해서 개인적인 운은 의미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그 농성에 가담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잘 나가는 의사일수록 빠져나가지 못하고 추운데에서 머리를 깎아야 했을 것으로 보게 된다. 여기에서 개인의 운은 접어놓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에도 틀림없이 장래가 촉망되는 좋은 운을 탄 사람이 있었는데, 그보다 큰 백화점이라고 하는 건물이 넘어가니까 개인적으로 운이 좋은 것은 생략되었던 것으로 해석을 할 밖에 없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달리 할 말이 없겠고, 그렇다면 자평명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면 여하튼 현실이 그렇다고 말을 할 참이다. 즉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서 수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개인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달리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그러한 일이 발생할 적에는 우선하는 것이 개인의 운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씨랜드에서 불타죽은 어린 영혼들도 마찬가지이고, 히로시마 원폭에 죽은 고혼들도 마찬가지이고, 비행기가 추락해서 모두 죽는 경우도 같은 의미라고 하겠고, 한참 인기를 끌었던 영화 '타이타닉'에서 구조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체의 운에 휘말렸다고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늘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하고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개인적인 운이 작용한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영향보다는 개인적인 영향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참고가 되셨으리라고 본다.

 

 

8. 그룹보다 국가의 운이 우선한다

 

 

앞의 이야기를 확대하는 이야기이다. 국가의 운이 불리하다면 그룹이든 개인이든 달리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점차 확대해석을 하면 되는 것으로 보겠는데, 더 확대하면 국가보다는 지구의 운이 우선한다고 해도 되겠고, 태양계의 운보다는 은하계의 운이 우선한다고 하면 이해가 되실 모양이다. 참고하여 대입하시기 바란다. 이 부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추가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서 줄이도록 한다.

 

 

9. 이성의 인연에 대한 변수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겠다. 가령 어떤 여인이 있어서 자신의 팔자에서 관살의 운이 전혀 아닌 상황에서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면 과연 이것은 무슨 인연으로 생긴 것이냐고 물었을 적에 명리학자는 뭐라고 답을 할 것인가? 아마도 임상을 많이 해보신 경험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를 접하고 설명을 하기 위해서 땀을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해야 하겠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유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 생각을 해보고자 한다.

 

1) 운과 상관없이 이성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제목을 보고 낭월에게 무책임하다고 말씀을 하고 싶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음의 설명을 들으신다면 그 의미를 파악하실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서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두 남녀가 놓이는 환경이 된다고 생각을 해보자. 물론 모두 심신이 건강한 정상적인 사람임을 전제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랬을 적에 일단 기본적으로 자신에게는 이성의 운이 없으므로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남자에게는 이성의 운이 다가왔다고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여인에게 정을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은 당연할 것이고 그 결과 아마도 여인은 거부만 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만약 두 사람이 모두 이성의 운이 아니라도 한들 또 절대로 좋아하는 감정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있겠느냐고 질문을 드려도 되겠다. 아마도 운명 이전에 본능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답변은 구태여 하실 필요가 없겠다. 이러한 정도는 이미 세상을 살아오면서 많이 느껴 보셨으리라고 생각이 되고 전혀 생각을 해보신 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조용히 그 상황을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여기에서 낭월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운명보다 본능이 우선한다고 하는 생각을 해보자는 점이고, 실은 그러한 본능의 요구를 운에서 자극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종족보존과 연계해서 이성의 이러한 특수한 상황의 연출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아마도 예외라고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이 벗님에게 주어졌다고 생각을 해보자. 특히 남자의 사주에서 이성의 인연이 없는 운에서 여인이 나타났을 적에는 어떻겠는지도 한번 생각을 해보자. 당연히 마음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울 것이며 신체적인 구조에서도 남자는 언제라도 성적인 일을 할 수가 있다는 것도 고려한다면 거의 틀림없이 여자의 유도에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여자보다는 남자의 경우에 더 유혹(?)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고 해야 하겠는데, 그 의미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여하튼 결론은 자신의 운에서는 이성의 운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여인이 이성운이 된다면 유혹을 받을 수가 있겠고, 남자가 여인을 유혹했을 경우와 비교해서 그 성공의 가능성은 더욱 많아진다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그래서 특히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의 운이 없는데 여인이 생겨날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게 된다. 실로 이러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낭월이도 나름대로 14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집중력이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2) 귀문관살과 연관해서...

 

『알기쉬운 합충변화』의 116~117쪽 사이에는 귀문관살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특히 117쪽 5줄부터 약간의 부연설명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실 수가 있다. 실은 丙寅(1986)年에 잠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면서...) 당시에 대운이나 세운을 아무리 봐도 이성이 생긴다는 암시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어울리지 않게 여인이 생겼었는데, 그 이유를 어느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더니, 과연 귀문관살로 인해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행의 생극제화나 십성의 대입으로 해석이 되지 않음으로 해서 결국은 그렇게 봐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달리 아니라고 떼거지를 써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앞에 설명을 드린 대로 상대방의 사주를 놓고 운을 대입하니까 正官에 해당하는 해였던 것이다. 그 소식을 바로 며칠 전에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실로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귀문관살의 작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확인을 해봐야 하겠다고 했는데, 그로부터 12년을 기다려서 바로 戊寅(1998)年을 겪어본 다음에야 자신 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확인을 하게 된 것은 무인년에도 당연히 귀문관살에 해당하는 寅未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로 해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을 올해까지도 깨닫지 못했는데, 이렇게 머리가 둔한 낭월이 며칠 전에 다시 곰곰 살피다가 비로소 상대의 사주에 있는 官星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인연으로써의 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그때와 지금의 환경이 다르지 않느냐고 한다면 물론 당연한 이야기이다. 다만 신살이 그렇게 환경의 변화까지도 고려해야 할 정도로 구체적인 적중성이 없는 것이라면 무시를 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귀문관살에 대해서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해석의 방법으로써 이러한 설명을 드리는 것이다.

다만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상대방의 운에서도 이성의 암시가 전혀 없는 경우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무슨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인지는 참 난감하고 어쩌면 또 그 일을 규명하기 위해서 2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도 걱정은 없다. 이렇게 말씀을 드림으로써 여하튼 남녀의 관계는 운명이라고만 할 것은 아닌 가능성을 파악할 수가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다시 확인하는 것은 본능의 작용은 운으로만 대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즉 운세의 대입은 사회적인 분야에서 크게 작용을 하는 것이고 본능적인 것으로 근접을 할수록 오차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신다면 충분하겠다. 그 이외의 상황들에 대해서는 또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보도록 하면 되겠다.

 

 

10. 운세를 벗어날 본능의 변수

 

 

내친 김에 본능에 대해서 좀더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본능이라고 하지만 부처님의 생각으로는 '욕망(慾望)의 늪'으로 보신 듯 싶다. 인간에게는 오욕이 있는데, 그로 인해서 생로병사를 끊지 못하고 윤회를 거듭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오욕은 과연 무엇이며 운의 작용과 연관시켜서 어떻게 이해를 할 수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1) 식욕(食慾)

2) 색욕(色慾)

3) 수면욕(睡眠慾)

4) 재물욕(財物慾)

5) 명예욕(名譽慾)

 

이상이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사주팔자의 성격존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모두 갖고 있는 인간 공통이라고 보면 되겠다. 자신이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살고 배부르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성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나면 고단해서 잠을 자고 싶을 것이고, 잠을 자고 나서는 이제 새끼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겠고, 그리고 돈이 모이면 이제 남보다 우뚝하고 싶어서 명예가 탐이 난다는 흐름인데, 그대로 말이 되는 연결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주의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일단은 누구나 내재하는 본능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다는 것을 미뤄서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본능이기 때문에 그만큼 벗어나기 어렵고 그로 인해서 인간을 얽어매는 밧줄로 생각하신 부처님의 견해는 타당하다고 생각을 해야 하겠다. 그 중에서도 모두가 갖춰지고 나서 생각하는 명예욕은 참으로 끊기가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실제로 돈이나 좀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하기만 하다면 명예를 찾아서 국회라도 들어가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경우를 많이 보면서 이해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을 한다면 삼일 굶어서 남의 담장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공자님이 말씀을 하셨다는데, 과연 옳으신 말씀이다. 그대로 인간의 본능을 설명한 대목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군자를 논하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니까 정관이 옆에 붙어 있더라도 삼일만 굶으면 식욕이 동해서 먹을 것을 찾는다고 해야 하겠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수에 대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한번쯤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려하면서 사주에 상관이 없더라도 명예욕은 기본적으로 있으며 다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설명을 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