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因果 - 운세와의 공존

작성일
2007-09-12 13:25
조회
4246
실은 명리학 공부를 하면서 종종 느끼는 것은 바로 인과법이라는 존재이다. 원래 인과는 스스로 씨앗을 심어서 결과를 거두는 것이라고 하는데, 운명의 길흉도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드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어쩌면 인과법보다 운의 길흉이 우선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근래에 와서 드는 생각은 그렇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선후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좋은 운과 나쁜 운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혹 운이 좋아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운이 나쁜 경우에 퇴직금을 받아서 사업에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결과는 팔자의 운에 따를 것이고 100% 자신이 만든 일이다. 운이 좋으면 돈을 벌 것이고 운이 나쁘면 망하게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운만 존재하지 인과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은 운이 좋아도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돈을 벌 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인과의 법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새 알 수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다만 운이 나빠도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돈을 까먹지 않을 수가 있겠다는 결과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재수가 없으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진다고 하니까 아마도 다른 일이라도 생겨서 돈을 까먹게 될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부득이 사람이 아파서 병원비를 지출하는 것과 스스로 일을 벌려서 실패를 한 다음에 느끼는 패배감이 같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결국 불가항력은 어쩔 수가 없지만 스스로 일을 벌려서 겪는 고통은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모처럼 강 위에 배를 띄우고 그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누군가가 배를 타고 와서 자신의 배와 부딪치는 것이다. '쿵' '쿵' 처음 한두 번은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계속해서 부딛쳐 오는 바람에 그만 기분 좋은 잠에서 깨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부아가 슬며시 치밀게 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일 게다. 그래서 욕이라도 한번 해주려고 뛰어 나갔다. 그 순간 그렇게 자신의 배를 치고 있는 배는 바람에 떠밀려서 자신의 배에 걸린 빈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만 혼자 웃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느끼는 기분은 바로 자신의 탓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빈배의 진로를 막고 있으면서 남을 탓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바로 이해하고 나면 한 순간 의혹은 사라지고 자신이 멍청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우화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데,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운명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는다고 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내 탓이기 때문이다. 고시를 10년씩이나 해도 낙방을 한다면 경쟁자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놀라운 일은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운명의 해석에 대해서 더 집착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는 점이다. 최고의 이성으로 공부를 해서 적용을 해야 할 사람도 이렇게 운명의 작용에 대해서는 궁금할 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여하튼 낙방을 하는 사람은 낙방을 할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합격을 하는 사람도 그에 대한 인연을 맺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인과의 법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인과의 법과 운명의 길흉은 별개로 움직이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겠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인과의 법칙을 바탕에 깔고 그 방법론에서는 길흉의 작용을 취하게 되는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즉 인과가 존재를 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모두 노력을 함에도 그 결과는 왜 달라지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신다면 서로 음양의 법칙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의 톱니바퀴와 같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