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開運 - 개운은 가능하다

작성일
2007-09-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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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운이 불리한 사람이 매달리는 것은 개운의 부분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과연 있을지에 대해서 간곡하게 묻는다면 딱 잘라서 가능하다는 말로 답변을 한다. 다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팔자에서 뭐가 불리한지를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은 해주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뭐가 고쳐야 할 점인지를 모르고서 덮어놓고 개운을 한다고 하면서 팔자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말로 폼을 잡는 사람에게는 그냥 속으로만 비웃음을 머금게 되는 것이 낭월의 속마음이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차를 고치려면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다못해 어린  아이가 땀을 흘려도 어째서 땀을 흘리는지를 알아야 해결이 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이야기인데, 어찌 어리석게도 팔자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않고 고칠 수가 있다면서 무모하게 달려드는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즉 팔자의 나쁜 암시를 무시하겠다는 심리야 어찌 모르겠는가만 그게 그렇게 억지를 쓴다고 해서 해결이 될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으며, 누가 팔자를 두려워하겠느냐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그렇게 가소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원인을 부정하고 결과에 대해서 변화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있겠느냐고 생각을 해본다.

 

『알기쉬운 용신분석』에서도 약간 언급을 했지만 여기에서 다시 생각을 해보도록 한다. 실로 이 부분은 명리학의 전체를 망라해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이다. 벗님의 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기대하면서 개운에 대한 낭월의 생각을 좀더 부연설명 해보는 것이다.

 

 

1. 부디 글자를 바꾼다는 생각은....

 

 

가끔 엄청난 오해가 사주팔자와 연관해서 있음을 본다. 글자를 바꾸면 운명이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오해를 두고 드리는 말씀이다. 이게 무슨 착각일까? 참으로 기가 막히지만 그러한 일은 현실적으로 발생을 하고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과연 팔자란 무엇인가? 글자인가?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야 이미 다 알고 계신 내용일텐데 어째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물론 그 이면에서는 보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의 희망이 포함되어 있음은 당연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러면서도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는 것은 그렇게도 기본 수준이 어리석으냐는 것이다. 이미 태어난 순간의 연월일시를 간지로 바꿔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 팔자이다. 그렇다면 글자에서 나쁜 암시가 있다고 하여 그 글자를 다른 것으로 바꾼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뭔가 보다 행복한 방향으로 삶이 수정이 된다면 낭월이는 실로 발을 벗고 나서서 나쁜 암시를 개선해 드릴 것이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천만의 말씀이고 얼토당토않은 망상일 뿐이다. 그러한 것은 이미 이 책을 읽으시는 실력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언급을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런 사람이 의외로 있어서 함께 생각을 해보자는 의미임을 헤아려 주시면 충분하겠다. 실제로 낭월에게 찾아와서 '사주를 200만원 들여서 샀는데 얼마나 좋은지 한번 봐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바뀐 사주가 왕후장상이 될 사주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만 그것도 우스운 것이 그렇게 바꾼 사주도 역시 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도 당연할 것이 이미 사주를 바꿔줄 정도의 사기성이 농후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오행의 바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기에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되겠는데, 부디 벗님의 주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깨우쳐서 허황된 말에 속지 말기를 당부해 주시면 되겠다.

 

 

2. 마음으로 글자를 바꾼다고 생각을 한다면....

 

 

이러한 방법을 취한다면 상당히 개선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린다. 실제로 감로사에서 명리공부를 하신 선생이 입산을 하기 이전과 하산 후의 자신에 대해서 관찰한 소감을 들려주었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대략 들었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적인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다만 실화라고 하는 점은 말씀드릴 수가 있겠다.

 

"사부님 말씀이지요. 예전에는 처에게 군림을 하는 입장을 적어도 20년 정도 유지해 왔습니다. 이제 낼 모래가 나이 50인데 그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해 왔었지요. 그런데 사주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사주를 살피고 아내의  사주에 대해서도 관찰을 하면서 역시 인간은 운명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의 살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부님의 사주를 관찰하게 되고 그러면서 과연 사람이 자신을 바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하산을 하면 자신이 바뀌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달라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할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도 따라가고, 옷을 쇼핑할 적에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좋아 나쁘다는 평가도 해주고 저녁으로는 다리도 주물러 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되고 그래서 이제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그런데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아내가 그야말로 종의 그 자세처럼 늘 저의 말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그래서 스스로 주인이라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근래에는 처의 행동이 몰라보게 부드러워져서 마치 20년은 젊은 여인과 살아가는 듯한 착각을 하기까지도 합니다. 과연 사주팔자의 공부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고 하는 사부님의 말씀이 허언(虛言)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몸소 느꼈습니다."

 

대략 요약을 하면 이러한 요지의 내용을 들려주면서 자신이 스스로 팔자를 고치게 되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줬고 낭월이도 그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실로 학자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실행해서 행복해졌다는 확인하게 되면 그보다 더한 보람이 있을까 싶은 것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글자를 바꿀 수는 있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서 본다면....

 

사주에 정편재가 많아서 자신도 그 영향으로 가족을 엄하게 다루고 자기 마음대로 통제를 하는 마음이 발달해 있다고 할 때, 스스로 그러한 작용을 잘 깨닫고 가족이 자신의 눈치를 보느라고 얼마나 피곤하겠느냐는 것까지 생각을 한다면 이미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편재의 강력한 통제성이 있다고 한다면 스스로 그 글자를 편관이라고 생각을 하고 오히려 강제봉사를 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또는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식신의 성분으로 변화를 시켜서 보다 논리적으로 가족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족들은 상당히 다른 변화를 느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아마도 짐작이 되시리라고 본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팔자를 바꿀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실은 이미 이렇게만 된다면 그 사람의 운명도 많이 달라질 수가 있다고 하겠다. 문제는 자신의 사주를 몰라도 가능하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로써는 사주를 몰라도 된다. 즉 자신이 평소에 낭비가 심하다면 사주를 보지 않아도 이미 알뜰함이 없다고 하는 것을 미뤄서 짐작하게 되는 것이므로 알뜰하게 살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사주를 봐야 한다는 것은 사주를 봐야 실제하는 상황을 믿는다는 의미도 포함이 된다. 그렇게 사주를 통해서(또는 빙자해서) 자신의 단점을 이야기 해줘야 비로소 그러한 것을 인정하려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음을 보면서 사주를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지, 스스로 자신의 일부 문제로 인해서 가족이 불편해 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만 한다면 사주를 아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냐고 하겠고, 이미 그 가정에는 화목한 기운이 감돌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이 낭월이 생각하는 운명개선론은 실제로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나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의견을 드린다.

 

3. 이미 마음에서 평정을 얻었다면....

 

더 이상 운의 길흉에 대한 암시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고 본다. 운이 좋거나 말거나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요인에서 길흉의 작용이 더 민감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로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누락된 사람의 마음에는 매우 큰 갈등이 존재함은 이미 그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겠다. 그런데 그 마음에서는 '또 누가 압니까. 지금의 불행이 오히려 다행이 될지...' 라고 말을 한다면 아마도 이 사람은 거의 흉운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많겠고, 그렇게만 된다면 운이 나쁜 것은 개인적으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이다. 그 영감님의 심리상태는 이미 평정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실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평정된 마음으로만 삶을 꾸릴 수가 있다면 어찌 용신의 운이라고 해서 좋아하고 기신의 운이라고 해서 불평을 하고 사주쟁이를 무시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것은 모두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렸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이 되기만 한다면 사주쟁이도 밥을 빌기 위해서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사주쟁이도 역시 자신의 운명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니 누구를 원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한 세상을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될 것은 틀림없다고 장담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4. 길흉의 운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늘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재성이 기신에 속하는 사람이 재성의 운이 오면 대체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은 팔자의 탓이라고 해도 되겠다. 다만 그 마음에서 자신은 재물에 인연이없음을 잘 알고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다면 나쁜 운이라고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상관이 견관을 하여 흉허물이 발생할 암시가 있다고 한다면 또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입을 중하게 지켜서 무리한 발언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흉한 운이라고 해도 결코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운이 되면 스스로 자제력을 상실하고 무리하게 동분서주하면서 화다닥거리다가는 결국 자승자박으로 얽혀드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인생의 경영은 난제중의 난제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낭월이도 또한 자신의 팔자에 대한 암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희노애락을 그 속에서 느끼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이렇게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나마 이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 운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戊寅년과 己卯년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법당을 지어야 하겠다는 말을 해주고 갔다. 그 말은 다시 하면 '절이란 것이 이렇게 조립식으로 되어서 될 일인가? 주지의 무능함을 보이는 것이니 빨리 털고 법당을 근사하게 지어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한 어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누군들 그렇게 멋진 기와집에 부처님을 모시고 싶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참으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로 낭월이도 그렇게 하면 좋을 줄이야 당연히 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당면한 현실이다. 그 돈이 일이백만원도 아니고 적어도 2~3억 많으면 10억도 적다고 하는 액수이다. 이러한 돈이 어떻게 마련되겠는가... 그 속을 모르고 말로만 거드는 모양인데, 실로 갑갑한 사람들이 그네들이다. 그래서 낭월은 그냥 웃으면서 말한다.

 

"왜요? 부처님이 좁다고 하던가요? 그냥 편안하게 계신 것으로 보이던데...? 하하~"

 

이 정도에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마주 보고 웃으면 그래도 현명한 사람이다. '그래도 말이지요...' 하면서 다시 길게 말하면 그만 말을 하기 싫어진다. 실로 노자님의 말씀마따나 집은 그 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것인데, 법당이 비록 조립식이기는 하지만 공간은 그만하면 충분한데 달리 뭘 어쩌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좁다면 넓히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단지 껍질을 화려하게 가꾸는 것이야 과연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낭월이 알기에 청주의 어느 도반은 멋진 껍질을 얻기 위해서 터를 잡혀서 농협에서 돈을 융자해서는 터를 닦고 아름드리 나무를 사 날라다가 목수를 시켜 깎았다. 그렇게 한 것은 중국의 어느 교포가 10억원을 시주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낭월이에게 그의 운을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5년간은 꼼짝도 말고 기도만 하라고 권유를 했는데, 어느 날 기존의 법당을 헐고 새로 공사를 시작했노라는 전화를 해서 잘했다고는 했지만 참 답답했다.

앞으로 운이 불리한데 어쩌려고 그렇게 일을 저질렀느냐고 하고 싶었지만 남의 큰 공사에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그 후에 공사가 70%나 진척이 된 상황에서 울상이 되어서 전화를 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 교포가 사업이 악화되어서 돈을 보낼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생각이 들면서 참으로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로 스님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공사를 거창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로 신도님들의 시주금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미리 정한대로 일이 잘 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착오가 생기면 결국은 절을 팔아서 일꾼의 품값을 줘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두 껀이 아닌 모양이다. 다들 자신의 운을 살피고 관리를 잘 했더라면 이러한 봉변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면 스님이라도 해서 운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하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하겠다.

낭월에게 누가 시주를 할테니 법당을 짓자고 한다면 현금을 손에 쥐어주기 전에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할 참인데 실은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없는 셈이다. 하하~

 

여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운이 불리하면 근신하고 자중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점만 살핀다면 그야말로 망상으로 인해서 자신도 피곤하고 주변의 친지들의 돈까지 말아 넣고서 고통을 받는 일은 벌리지 않을 수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서 겪는 현실일 뿐이다. 다만 그 시발점에는 항상 운의 작용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떠오르는 용어가 있으니 이른바 '因果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