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장간의 원리(原理)

작성일
2007-09-10 22:14
조회
5380




















출   처


내           용


항신재 역설


辛 9일 7분


丁 3일 1분


戊 18일 6분


연해자평 정해


辛 9일 3분


丁 3일 2분


戊 18일 6분


명리정종 정해


辛 9일 3분


丁 3일 1분


戊 18일 6분


삼명통회


辛 7일


丁 


戊 18일


적천수 징의


辛 9일


丁 3일


戊 18일


자평진전 평주


辛 9일


丁 3일


戊 18일


명리신론


辛 9일 3분


丁 3일 1분


戊 18일 6분


명학비해


辛 9일 3분


丁 3일 1분


戊 18일 6분


사주첩경


辛 9일 3분


丁 3일 1분


戊 18일 6분


컴퓨터 만세력


辛 9일 3시간


丁 3일 1시간


戊 18일 6시간


적천수 상해


辛 9일


丁 3일


戊 18일


사주정설


辛 9일 3시간


丁 3일 1시간


戊 18일 6시간








★ 月律分野의 사용결정표











형   태


내                  용


원칙적 공식


辛 9일 3분


丁 3일 1분


戊 18일 6분


실용적 공식


辛 9일


丁 3일


戊 18일








지장간의 성분을 음미해보면 辛丁戊의 배합이다. 이것은 다른 地支의 토에 해당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간단하지만은 않은 복잡한 암시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배합의 원리를 차근차근 관찰해본다.




1) 辛金의 입장




우선 신금은 월령의 흐름으로 볼적에 지난 달(유월)의 영향으로 넘어온 신금은 여기(餘氣)라고 하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까 그 위치가 분명한 셈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냥 단지 餘氣라서 들어있다고 생각을 해버리면 오묘한 맛을 보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라고 하는 명칭에 구애를 받지 말고 그냥 그대로 戌土에 들어 있음으로 해서 공동 운명체라고 하는 사슬로 묶어 놓은 다음에 신금이 그 속에 들어있는 이유를 관찰해봐야 그래도 뭔가 품값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선 술토 중에 들어있는 9일 만큼의 신금은 아무래도 결실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酉金에서도 말했듯이 辛金은 그렇게 압축하고 응고하는 매우 견고한 성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는 뭔가 냉정하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보는 것이다. 응축하고 저장하고 갈무리 하는 그런 분위기를 갖고 있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술토에서는 가장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성분이기도 하다. 냉혹한 성분이 되어서 일생동안 이리저리 널어 놓았던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사슬들을 냉정하게 베어버린다. 그래서 울부짖듯이 외치는 한마디는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이와 같은 시를 읖조릴 형편이 되려면 적어도 사랑이 무엇인지 고통이 무엇인지를 모두 직접 맛을 보고 난 다음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저 달콤한 행복감에 잠겨서 하루하루를 꿀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러한 글을 읽으면 너무 세상을 어둡게 본다고 빈정거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중얼거리는 한마디는 ‘이렇게 깨가 쏟아지는 것을 말이야... 뭘 알겠어 그러니까 고독하게 혼자서 살지... 쯧쯧쯧~!’ 이렇게 나와야 정상이다.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헤어지고 난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고통의 전주곡이 시작되고 나면 이제는 울고불고 난리법석을 떤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인양 생각되고, 자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때에는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면 콧방귀를 뀐다. ‘흥, 그래 잘해보라 이녀석들아. 그게 눈물의 씨앗이라는 것을 머지 않아서 알게 될것이니까...’ 이 정도가 된 사람에게는 비로소 앞의 싯귀를 들려줄 때가 된 것이다. 그 쓰라린 고통과 환희의 사랑을 모두 느껴본 다음에는 비로소 그것이 부질이 없다는 것을 일러줘서 자유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할 일도 되게 없네,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그러다 보면 세상 사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을 뭐하러 또 시를 들려준담... 그냥 내버려 두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갈껀디...”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뭔가 한가지가 빠진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것은 바로 연민심(憐憫心)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남을 불쌍히 여겨서 헤어지고 난 쓰라린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된다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줄 시기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인연이라고 봐야 하겠다. 어제까지는 인연이 아니었는데, 오늘 그 사랑이 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진리와 인연이 닿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신금의 역할이라는 것이 바로 이렇게 쓰리고 아린 마음을 정리하는 단계라고 보았다. 이렇게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데에는 9일 만큼(대략 30%)의 냉정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2) 戊土는 무엇을 위해서?




다음으로 본기(本氣)에 해당하는 戊土의 입장을 한번 생각 해보도록 하겠다. 무토는 이미 辰土에서도 본기로써 그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여기에 다시 등장을 했다. 그리고 이것은 토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혜(?)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렇게 토가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것은 오행의 변화를 유도하고 조절하는 기능이 부여된 때문일 것으로 본다. 우리는 간단하게 환절기(換節期)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것은 바로 오행의 변화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간이역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간이역에 도달한 천지자연의 흐름은 기차를 바꿔타는 셈이 된다. 즉 戊土의 역(驛)은 두 번 거치게 되어 있는데, 辰土와 戌土에서이다. 진토의 무토는 木이 기차를 내리고 火가 올라타게 되어있다. 그리고 여기 술토역에서는 金이 기차에서 내리고 대신 水가 올라타고서 겨울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 스케줄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 배차시간표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보니까 무토는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역이기도 하고, 또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역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로 가는 열차라...’ 왠지 쓸쓸한 맛이난다. 마치 죽음을 맞이한 인생들을 한가득 싣고서 연기를 뿜으면서 저승을 향해서 출발하는 그런 기분도 든다. 승객들은 모두 무표정 한 채로 그렇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고... 기관사는 부지런히 경적을 울려댄다. 겨울로 가는 열차이다.




3) 丁火는 난로에 해당할까?




겨울로 가는 열차에는 스팀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구닥다리 완행 열차에는 스팀은 생각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난로라도 피워야 하겠다. 날은 추워지는데, 온기도 없는 썰렁한 열차를 타고 먼 여행을 떠나기에는 너무나 쓸쓸하다. 이러한 기분을 너무도 잘 헤아린 천지자연은 고맙게도 열차에다가 난로를 설치했다. 그래서 고독한 여행객들은 그래도 난로 옆에 모여서 자신의 몸을 녹이면서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때로는 화려한 무용담을, 또 때로는 쓰디쓴 인생의 패배담을 들으면서 자신은 과연 어떻게 살았는지를 회상하면서 그렇게 겨울여행을 하게 된다.

정화는 화려한 불빛은 없다. 그저 붉으레한 열만 가지고 있는 탄이다. 옛적에 교실에서 보던 조개탄으로 피운 불과도 같다. 그래도 열기는 상당해서 한 칸에 하나씩이면 손가락이 어는 것은 막을만 한 화력이다. 장작불은 아닌 셈이다. 만약에 지장간에 木이 있었다면 장작이라고 하겠는데, 목의 성분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辛金은 조개탄에 해당한다고도 볼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무토는 난로가 될 수도 있겠다. 난로라기 보다는 화덕78)에 가깝겠다. 토로 만들어진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까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열차에는 에어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래서 진토를 더듬어 보니까 과연 癸水가 그 자리에 들어있다. 그렇다면 그 계수는 에어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예전에 무슨 에어콘 씩이나... 그냥 선풍기 정도로 봐두자. 그래도 그게 어딘가? 찌는듯한 무더위를 통과하면서 옆사람의 몸에서 나는 쉰듯한 땀냄새를 날려버리는데는 너무나 훌륭한 기능을 수행한다. 똑같은 자료를 놓고서 이러저리 뒤집어 가면서 새로운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 이것이야말로 연구하는 학인(學人)의 자유라고 할만 하지 않겠는가? 벗님도 낭월이의 이야기에만 끌려 다니지 마시고 스스로 멋진 이야기를 꾸며서 그 속에 배어있는 의미를 음미하는 여유를 갖어 보시기 바란다. 이 즐거움은 완전히 나만의 것이다.




나름대로 지장간에 포함된 의미를 되씹어 봤다. 지장간의 이치는 아무리 씹고 또 씹어봐도 그 여운이 남는다. 과연 어느 눈밝으신 도인이 관찰을 하셨는지 항상 감탄만 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기만 하다. 과연 이 지장간의 본의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