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치적(理致的)인 연구

작성일
2007-09-10 22:1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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戌土는 가장 철학적(?)으로 생겼다. 그래서 그 위치도 이렇게 느지감치 11위에 지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사실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나이가 들어야 맛이 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과연 그 맛이라고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 세상이 무상해서요~!




절간에서 한참 공부를 한답시고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절에는 어린 꼬마가 한 녀석 있었는데, 나이는 불과 여섯 살이다. 이녀석은 언제 절에 왔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주지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살 때 어느 신도가 데리고 와서 키워주고 있노라고 했다. 그러니까 절밥을 먹은 지는 벌써 3년이 되는 셈이다. 하루는 하도 심심해서 이 녀석과 농담따먹기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낭월이가 물어봤다.

“넌 왜 절에와서 살고있노?”

“스님, 저도 계를 받았으니 말을 잘(높여) 해주세요.”

“그래? 니가 무슨 계를 받았노?”

“올 봄에 사미계를 받았어요. 그래도 절밥을 3년이나 먹었는걸요.”

“그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 네 살이 되어서 사미계를 받을 자격이 있는데 니는 계를 받았다고 해도 가짜다.”

“부처님께 약속을 했으니 스님이 가짜라고 해도 소용 없습니다.”

“그렇군, 그것도 말이 되네... 근데 넌 왜 중이 되었냐?”

“세상이 무상해서요~!”

“세상이 어떻게 무상하던?”

“사는게 다 그런 거지요 뭐”

“엥???”




이렇다. 주변 환경에 의해서 이런 이야기만 주워 듣다 보니까 나이 겨우 여섯 살인데에도 그 하는 이야기는 세상을 한 60년 이상 살고 난 노인네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런데 어린 녀석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참말로 징그럽다 못해서 슬프다. 적어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 놓은 다음에 해야 할 말을 이렇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중얼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술토는 이렇게 어설픈 흉내나 내고 있는 나이가 아니다. 적어도 이제는 세상의 꿈맛(목의 시절)을 거쳐서 단맛(화의 시절)도 본 후에는, 쓴맛(금의 시절)도 다 본 셈이니 더 이상 궁금하고 아쉬운 것이 없는 셈이다. 세상을 사노라면 꿈도 있고 희망도 있지만,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허무감 뿐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텅 비어버린 희망과 꿈들의 자리들을 공허감이 채우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서 이뤄지는 것은 무엇이고, 또 소멸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야말로 가장 철학적인 상태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겠다.

戌土가 있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상황설정이 일리가 있다. 즉 술토는 바로지지 중에서 11번째의 위치에 속해 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증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저물녁의 해걸음이 되었으니 희망을 품어본들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술토의 성분은 마무리를 하는 기분이 든다. 우선 가장먼저 자연으로 눈을 돌려보자. 과연 자연에서는 뭔가를 느낄만 한 자료가 있는지 아니면 낭월이 혼자서만 괜히 기분에 젖어서 하는 독백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지장간의 원리를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이해가 빠를 것으로 생각된다.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