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87) 만장굴

작성일
2021-07-02 12:27
조회
781

제주반달(87) [23일(추가7일)째 : 5월 31일(월)/ 3화]


만장굴(萬丈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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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일정은 만장굴을 탐사하는 것으로 정했다. 지상을 전후 23일간 누비고 다녔으니 마지막은 지하에 대해서 공부를 하자는 생각이 들어서 만장굴을 둘러보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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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에서 만장굴까지는 29분이 걸리는 거리다. 그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에서의 30분은 방에서의 1시간에 맞먹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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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에는 공부할 꺼리가 많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고, 그래서 구경이 아닌 견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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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도 해당하는 사람들은 내면 되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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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니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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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의 환선굴은 위로 올라가고 정선의 화암동굴은 옆으로 들어가는데 만장굴은 아래로 내려간다. 울진의 성류굴도 아래로 내려가는 셈이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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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와 봤던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이 없으니 초행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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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의 제1구간 입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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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의 동굴입구는 천장이 함몰되면서 입구가 드러난 형태이며, 입구 주변에는 천장에서 무너진 암석(암괴)들이 분포하고 있다. 동굴입구 주변에는 동굴내부와 외부의 온도차로 인하여 톡특한 식생이 분포하고 있다.
만장굴의 제1구간은 상층굴과 하층굴로 구분되며, 상층굴은 길이가 약900m, 하층굴은 약 1.5km이다. 만장굴 1구간은 안전상의 이유로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가 제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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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지 못하는 동굴 사진이나 찍어보자. 보이는 것도 없구나. 상층과 하층으로 되어 있다니 그것도 장관이겠다. 문득 장가계의 황룡동굴이 떠오른다. 규모가 엄청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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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萬丈窟)

만장굴은 총 길이가 약 7.4km이며, 부분적으로 다층구조를 지니는 용암동굴이다. 특히 주 통로는 폭이 18m, 높이가 23m에 이르는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의 동굴이다. 전  세계에는 많은 용암동굴이 분포하지만 만장굴과 같이 수십만 년 전에 형성된 동굴로서 내부의 형태와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용암동굴은 드물어서 학술적, 보전적 가치가 매우 크다. 만장굴은 동굴 중간 부분의 천장이 함몰되어 3개의 입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는 제2입구이다.
만장굴내에는 용암종유, 용암석순, 용암유석, 용암유선과 용암선반, 용암표석 등의 다양한 용암동굴생성물이 발달하며, 특히개방구간 끝에서 볼 수 있는 약 7.6m 높이의 용암석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알려져 있다.

아, 신경쓰지 않았던 이름이 이제야 구분을 하게 되는 구나. 강원도 등지에서 봤던 동굴은 물이 만든 석회암 동굴이었지. 여기는 불이 만든 용암동굴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식하다니 그냥 동굴은 다 같은 것으로 생각하던 얄팍한 지식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용암동굴과 석회암동굴도 구분하지 못했었구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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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의 전체 길이는 4,000여 m인데, 공개되는 구간은 1,000m정도인 모양이다. 제1구간은 상하층으로 되어 있고, 제2구간은 단층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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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잘 나타내어서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는 짐작을 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것도 둘러보고 난 다음에 가능한 이야기지 이렇게 봐서는 무슨 의미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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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에 대한 설명을 '만장굴홍보관'에서 본 다음에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되었기로 겸해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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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홍보관은 꼭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동굴만 본 것은 만장굴의 몸을 본 것이고, 홍보관까지 보면 마음까지 본 것으로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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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긴 구간을 표현하느라고 설명 글이 작아서 나눴다.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면 아무래도 지도를 보는 것처럼 대략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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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미굴처럼 느껴져서 실감이 좀 아쉽다고나 할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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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나 말거나 전체적인 이해에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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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이나마 그림을 통해서 이해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땅속의 사정은 볼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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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사진은 항상 우중충하고 컴컴하다. 그래서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래도 열심히 찍어야 한다. 기왕이면 환하게 밝혀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희망사항은 사진가의 바램일 뿐이다. 동굴을 밝게 하지 않은 이유는 빛이 있으면 이끼가 자라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동굴을 망치게 되기 때문에 이 정도가 최대한의 밝기인 까닭이다. 그래서 바랄 것만 바라고 바랄 수가 없는 것은 주어진 대로만 즐기면 그뿐이다. 동굴구경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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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는, 그러니까 제2구간의 입구에서는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구나. 처음에 동굴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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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으로 가장 먼저 만장굴을 탐사한 사람은 1946년 김녕초등학교에 재직 중이었던 부종휴 선생님과 학생들이다. 이들은 조명기구와 탐사장비도 없이 짚신을 신고, 횃불을 들고 지금의 제1입구(김녕미로공원 주차장 뒤편)에서 탐험을 시작했다. 또한 2m 길이의 노끈을 이용하여 만장굴의 길이를 측정하였고 수차례에 걸친 탐험 끝에 1947년 지금의 제3입구를 발견했다. '만장굴'이라는 이름은 제3입구의 옛 제주어 이름인 '만쟁이거멀'의 '만쟁'을 따서 붙여졌다.

우와~! 그 선생님과 아이들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었을 것으며 또한 많이 무서웠을까? 상상만으로도 스릴리 넘쳤지 싶다. 부 선생과 아이들의 이야기만으로도 멋진 다큐멘터리가 한 편 나오겠는데 그러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없는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노끈 길이가 좀 의심스럽다. 겨우 2m의 길이로 뭘 할 수가 있었을까? 20m라면 또 몰라도 말이지. 뭔가 오류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짐작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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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종휴 선생은 또 어떤 사람인가 싶어서 뒤적뒤적.... 호는 한산(漢山)이었고, 실로 그 업적이 대단했던 것으로 나오는 구나. 꼬마탐험대와 같이 만장굴만 뒤지고 다녔던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겨서 사진전도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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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파려면 끝까지 파봐야 한다. 선생(1926~1980)은 만장굴만 발견한 것이 아니라 김녕굴, 발레못굴, 수산굴, 미악 수직굴도 발견했다는 것으로 봐서 땅위와 땅아래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330종의 식물도 발견했다니까 자연학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셨던 것으로 봐야 하겠다. 선생의 이야기를 보니 떠오르는 글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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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은 땅 위(上)만 보고 다니면서 감탄했는데 부 선생은 지상(上)과 지하(下)를 누비고 다녔으니 그의 안목은 어디까지였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구나. 온통 암흑천지였을 태고적 신비를 찾아서 등불과 끈을 의지해서 아이들과 탐사했을 그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제주도에서 서성일 때가 된다면 다른 굴도 둘러보면서 선생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서 공개된 동굴은 만장굴 뿐이란다. 이것은 홍보관에서 관리인에게 물어서 알게 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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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처물동굴-당처물동굴(洞窟)/용천동굴(龍泉洞窟)

당처물동굴은 1994년 인근주민이 밭농사를 위해서 터고르기를 하던 중 발견되었다. 동굴의 총길이는 290m이며, 동굴의 폭은 5-15m, 높이는 0.5-2.5m정도이다. 동굴 내부에는 탄산염 종유석, 종유관, 석순, 석주, 동굴진주 등이 분포하고 있어, 용천동굴과 함께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 세계적인 동굴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 당처물동굴은 용천동굴과 함께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2007년 유네스코는 제주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의 아름다움을 유네스코에서 표방하는 뛰어난 보편적 가치(OUV)로 인정하였고, 특히 동굴 내부 경관이 아주 뛰어난 점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이 서로 붙어있는 모양이다. 동굴이 1,2구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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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땅 속을 가봐야 땅 위를 알지. 이렇게 연달아서 표시되어 있는 동굴을 전혀 모르고 지나다녔구나.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이 이웃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네. 홍보관 관리인에게 물었다.

낭월 : 수고 하십니다. 
관리 : (뭐든 물어보라는 듯이 ) 예~!
낭월 : 당처물동굴은 가볼 수가 없는 것입니까?
관리 : 당처물 만이 아니라 어디도 비공개입니다.
낭월 :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관리 : 보호를 위해서 아직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낭월 : 아마 앞으로도 공개는 되지 않겠지요?
관리 : 그렇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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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매력이 자꾸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도처에 자연유산들이 널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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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세계지질공원

세계지질공원은 지질학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지역을 보호하면서 이를 토대로 관광을 활성화하여 주민소득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네스코 프로그램이다. 2004년 유네스코와 유럽 지질공원의 협력으로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가설립되었으며, 제주도는 2010년 10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다양한 화산지형과 지질자원을 지니고 있는 제주는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지질명소는 섬 중앙에 위치한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 수성화산체의 대표적 연구지로 알려진 수월봉, 용암돔으로 대표되는 산방산, 제주 형성초기 수성화산활동의 역사를 간직한 용머리해안, 주상절리의 형태적 학습장인 중문 대포주상절리대, 제주 형성과정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지층이자 100만년 전 해양환경을 알려주는 사귀포패류화석층, 퇴적층의 침식과 계곡 폭포의 형성과정을 전해주는 천지연폭포, 응회구의 대표적 지형이며 해뜨는 오름으로알려진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의 가운데 유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만장굴 등 9개의 대표명소가 있다.

멋지군~! 과연 자랑할 만한 제주도의 세계지질공원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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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훑다가 다시 거문오름까지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뭉클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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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지하의 풍경이 궁금했고, 그래서 만장굴을 찾았을 뿐인데 만장굴의 인연이 끈이 되어서는 이렇게 의식은 사방으로 뛰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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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이 궁금해 지고 나서야 매표소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에 눈에 들어온다. 뭐든 알아야 보이는 법이니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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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용암동굴계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가 지표를 흘러가면서 형성시킨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을 말한다.
이 동굴들은 생성시기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굴의 내부구조와 동굴생성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누가 알았나. 이렇게 의미가 큰 거문오름인 줄을 알았더라면 사진을 따로따로 찍었을텐데 말이지. 항상 미련함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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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6,100만 화소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되니까 이렇게 따로 잘라내도 대략 알아볼 정도는 되어주니 말이다. 앞으로 1억화소가 나온다는 설이 있는데 구미가 살살 동하고 있다. 그 정도면 망원렌즈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환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냥 찍어서 잘라내면 될테니까 말이지. 아니 그보다도 그 정도의 화소라면 망원렌즈로 찍어서 키워놓으면 또 어떤 그림이 나올지도 상상이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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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뒤굴(천연기념불 제490호, 비공개동굴)

벵뒤굴은 약 4.5km 길이이며, 작은 동굴들이 여러 갈래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미로형 동굴이다. 벵뒤굴은 다층구조가 발달하며 용암주석, 제방구조, 낙반 등과 같은 동굴지형이 잘 나타난다.

아니, 만장굴을 들어가다가 말고 이기 뭐하는 짓이고? 그게 아니지. 만장굴을 들어가는데 입구에 왜 이런 안내문을 붙여놨겠느냔 말이지. 그러니까 당연히 이렇게 훑고 있는 것이 정상이라는 이야기로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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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천연기념물 제98호)

만장굴은 약 7.4km 길이며, 부분적으로 다층구조가 발달한 용암동굴이다. 만장굴은 동굴 중간 천장이 함몰되어 3개의 입구가 형성되어 있고, 현재 제2입구만 개방중이다.

길이가 대략 20리 가까이 된다는 말이구나. 일부분이라도 개방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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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굴 (천연기념물 제98호 비공개)

김녕굴은 길이가 705m이며, 꾸불꾸불한 동굴 형태 때문에 '김녕사굴', 혹은 '사굴'로 불려왔다. 김녕굴은 우리나라의 천연동굴 가운데 제일 먼저 만장굴과 함께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니까 김녕사굴(金寧蛇窟)은 뱀처럼 구불구불해서 붙은 이름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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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 (천연기념물 제444호)

거문오름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형성한 모체로알려져 있다.
거문오름의 정상부 해발고도는 약 456m, 둘레는 4.5km이며, 정상에는 깊게 패인 화구가 있고, 그안에 작은 봉우리가 솟아 있으면서 북동쪽 산 사면이 터진 말굽형 분석구의 형태를 보인다.

그러고보니 거문오름에 가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구나. 오름의 무리 속에 들어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진즉에 만장굴에 왔었더라면 열 일을 젖혀두고서라도 거문오름에 올랐을텐데 말이다. 그런데 거문오름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해설사와 동행해야 하며 바쁘게 이동하는 바람에 등산장비를 단단히 챙겨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둘러봐야 할 곳에 또 하나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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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동굴 (천연기념물 제466호)

용천동굴은 3.4km길이로, 깊이 7-15m인 호수가 나타난다. 동굴 내에는 석회질 종유관, 종유석, 석순,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의 생성물이 장관을 이루며, 전복껍질, 동물뼈, 부서진 토기와 돌탑 등의 유물이 분포한다.

동굴에 우물이 있어서 용천(龍泉)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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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처물동굴 (천연기념물 제384호)

당처물동굴은 1994년 인근주민이 밭농사를위해 터 고르기를 하던 중 발견되었다. 당처물동굴은 길이가 260m로 짧고 종유석, 종유관 석순, 석주,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의 2차 동굴생성물들이 나탄난다.

그러니까 거문오름으로부터 쏟아져 내린 용암이 이렇게 동굴을 만들었고 그 길에 생긴 동굴들을 늘어놓고 설명한 것으로 보면 되겠구나. 단지 용암동굴만이 아니라 석회암동굴도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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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은 용암동굴이지만 당처물동굴은 석회암과 용암이 같이 어우러져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형태는 용임동굴에서는 불가능하고, 석회암동굴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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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렇게 사진으로라도 보는 것이 어디냔 말이지. 제주도의 김녕에는 땅 속에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조차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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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다가 이러한 것을 발견했을 적에 그 농부는 또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하다. 미증유의 세계를 처음으로 들여다 본 그 느낌... 영화 「레이더스」에서 본 인디아나 존스 박사가 생각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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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이렇게 생긴 것이 공개된다면 얼마지 않아서 석순도 사라지고 엉망이 될 가능성이 많겠군. 차라리 사진만 공개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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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은 걸음을 옮길 수도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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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갈 수가 없을 적에는 사진에다가 상상을 덧씌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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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멋진데 뭘. 길이는 가장 짧아도 작품은 그곳에 모두 모아놓은 듯한 풍경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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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있는데 설명판이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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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내려간다. 시원해서 움직이기는 만고 좋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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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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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이 훑고 지나가면서 여러 가지 흔적을 남겨놓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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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가능하면 하나라도 잘 보려고 라이트룸의 도움을 받아서 밝은 부분은 어둡게 하고, 어두운 부분은 밣게 해서 그 중간 어디쯤의 풍경을 만들어 보려고 없는 솜씨에도 나름 애 썼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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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 눈이 쌓여서 쇠눈이 되었을 적에 물이 흘러가면서 만드는 자국과도 닮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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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수평으로 흘렀는지 석공이 깎은 듯이 수평선이 잘 맞아 있는 부분도 있구나. 신기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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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젠타로' 카드에서 '불'은 빠르게 나타나고, '물'은 더디게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겹쳐진다. 용암은 솟구치는 힘에 가속도를 붙여서 순식간에 훑고 지나가면서 굳어지고 다시 그 위를 지나가면서 또 굳는데 실제로 시간은 순식간에 이뤄졌을 테니까 말이다. 반면에 물이 만드는 석회암의 종유석은 일년에 2mm를 만들면서 수억만년을 걸려서 석주(石柱)를 하나 만들게 되는 것으 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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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불카드의 강렬(强烈)이고, 오른쪽은 물카드의 순저유주(順著流走)이다. 강렬은 광속으로 움직이는 느낌이고, 용암이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순저유주는 흐름에 맡기고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이다. 이것이 불과 물의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런데 동굴에서도 이러한 이치는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것이 참 재미있어서 혼자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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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동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설명했다. 모쪼록 그 과정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 보여서 둔한 낭월도 이해를 하려고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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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비교적 낮은 지형을 따라 흘러가는 용암류의 표면부가 서서히 식으면서 굳어 표층부에 용암층이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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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초기 용암동굴의 천장이 형성된 이후, 계속해서 흘러가는 뜨거운 용암류는 기존의 바닥암석(bedrock()을 녹여내어 용암통로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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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용암튜브내를 흘러가는 용암의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안 새로운 용암층이 생겨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다층구조의 용암동굴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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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용암동굴을 흘러간 마지막 용암은 동굴의 바닥과 벽에 달라붙어 남아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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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용암동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동굴지붕이 붕괴되어 새로운 창구조(window)가 생기거나 커진다. 
동굴내부의 약한 부분은 부분적으로 붕괴되어 막히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줬는데도 이해를 못하면 안 되지 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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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유선

용암유선은 동굴 속을 흐르는 용암의 양이 줄어들면서 용암의 높이가 벽면에 선으로 남겨진 구조를 말한다. 만장굴의 벽면에는 타당한 높이의 용암유선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동굴 내에서 용암의 수위가 지속적으로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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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윗층의 선이 만들어 지고 다시 용암이 줄어들면서 흘러가고 그로 인해서 또 아래의 줄이 만들어지기를 반복했다는 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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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알겠네. 그렇게 해서 생긴것이었구먼. 그냥 휩쓸고 지나가다가 흔적을 남긴 것인 줄로 알았지 뭐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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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통로와 넓은통로

만장굴 내에는 통로가 넓은 부분과 좁은 부분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용암동굴은 내부로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용암의 열에 의해 바닥은 녹고 천장에는 용암이 달라붙어 매우 불규칙한 동굴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특히 통로가 좁아지는 곳을지나면 천장이 높아지고 위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지형들이 나타나는데 이와 같이 위로 오목하게 높아진 천장의구조를 '큐폴라(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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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좁은 곳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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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곳도 있게 되었구나. 이해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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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표석

용암표석은 용암이 동굴 속에 흐르고 있는 동안 천장이나 내층이 무너져 낙반이 발생한 후 용암과 함께 떠내려가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굳어져 형성이 된 구조를 말한다. 용암이 낙반을 완전히 둘러싸서 공이나 낮은 언덕모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용암표석을 용암구라고 한다.

용암구의 구조가 공처럼 나와서 용암구( 巖球)인가 했더니 용암구( )였구나. 생긴 것이 공처럼 생겼으면 공 구(球)를 써도 되지 싶기는 하구먼시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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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희미해서 다시 확대해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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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바위(용암표석)

거북바위는 제주도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는 용암표석으로 만장굴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바위이다.
용암표석은 동굴 내부의 용암이 흐를 때 바닥으로 떨어진 천장의 암석이 용암에 떠내려 가다가 정지한 암석을 말하지만, 거북바위는 용암표석이 바닥에 정지한 후, 뜨거운 용암이 표석의 가장자리에 달라붙어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북바위의 옆면에 남아 있는 용암유선은 동굴벽면에 남아있는 용암유선의 높이와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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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굴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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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또 잘 살펴본다.제주도를 닮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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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그럴싸~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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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발가락

용암발가락은 만장굴의 상층굴을 따라 흐르던 용암에 상층굴 바닥의 무너진 틈(창구조)  사이로 쏟아져 내려 하층굴의 바닥을 흘러갈 때 용암 가닥이 겹쳐서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구조를 말한다. 각각의 용암 가닥은 코끼리의 발가락 형태와 유사하여 용암발가락이라 불린다.

사진이 심각하게 흔들렸구나. 뭐 우짜겠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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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발가락이라는데 왜 공룡발가락으로 읽히는지 모를 일이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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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든 말든 사진이나 한 장 담아 두자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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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온도는 12.5도이고, 습도는 99.9%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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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유석

용암유석은 동굴내부로 용암이 지나갈 때 뜨거운 열에 의해 천장이나 벽면이 녹아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가다 굳어 생긴 구조이다. 벼면을 따라 흘러내린 용암은 온도와 공급량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용암유석을 만든다. 용암동굴이 형성된 후 동굴 벽 속에 굳지 않은 용암이 벽면의 작은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며 용암유석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진이 신통치 않아서 홍보관의 설명문을 끼워넣는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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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용암유석이라고 한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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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석주

용암석주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으면서 쌓여 마치 기둥모양으로 만들어진 동굴생성물을 말한다. 용암 석주는 여러 용암동굴에서 발견되지만 높이가 7.6m에 이르는 만장굴의 용암석주는 그 규모가 세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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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해를 돕는데는그림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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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용암석주가 길을 막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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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돌아 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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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가 쏟아져 내린 천장의 구멍도 한 번 들려다 보고 발길을 돌린다. 갔던 길과 오는 길이 같으니 나오면서는 볼 것이 따로 없구나. 이내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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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적에는 못 봤던 모양이다. 화산이 용암이 넘쳐흐르는 형태를 만들어 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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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되돌아 오니 동굴 입구는 결국 동굴 천장이었다는 것을 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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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오행산에 갔을 적에 동굴 천장에 구멍이 있는것을 본 적이 있는데, 여기는 아예 입구였구나. 마침 오후의 태양이 동굴을 들여다 보고 있어서 그것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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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선반

용암선반은 동굴 내부를 흐르던 용암의 일부가 벽면에 달라 붙어 굳어 마치 선반과 같은 형태로 남겨진 구조를 말한다. 용암 선반은 생긴 모양에 따라 용암발코니, 용암벤치 등으로 다양하다.

동굴 내부에서는 보지 못한 설명이 홍보관에 있어서 참고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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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유선과 같은 원리인 모양인데, 뭔가를 남기고 흘러가서 생긴 것으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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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종유

용암종유는 동굴 내부로 용암이 흘러갈 때, 뜨거운 열에 의해 천장과 벽면의 표면이 부분적으로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동굴생성물을 말하며 바닥으로 떨어지면 촛불의 촛농처럼 바닥에 쌓여 용암석순을 형성하기도 한다. 만장굴에서 용암종유는 주로 통로가 좁아지는 구역의 천장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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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다. 이해가 잘 되는 설명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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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편

만장굴의 암석은 대부분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내부에는 간혹 현무암과 구별되는 백색이나 회색을 띠는 암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암편은 크기가 약 1-5cm 정도로 용암이 자표로 올라올 때 제주도 기반을 이루고 있는 변성암류(규암)가 함께 끌려올라와 용암과 함께 굳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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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동굴 내부의 규암편 설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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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글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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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왼쪽은 정태라고 쓴 것으로 보이고, 오른쪽은 하주로 읽혀진다. 음... 누군가 여기에 와서 자신의 이름을 정으로 쪼아서 새겼다는 말이로군. 뭐 그럴 수도 있었겠지. 지금이야 불가능하겠지만 옛날 언젠가는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은, 경치가 좋은 계곡의 석벽에도 이름을 새겨놓은것을 하도 많이 봐서이다. 어쩌면 등산스틱의 끝으로 콕콕 찍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혹, 남녀가 사랑의 맹서를 했을 수도 있겠지.

여러 의미를 생각하면서 동굴을 둘러봤더니 허기가 진다.

호연 : 저녁은 시절 횟감으로 준비해서 숙소로 가겠습니다.
낭월 : 좋도록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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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횟집이 유명하단다. 그렇겠지. 난 모르니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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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꺼리를 준비하는 동안 차에서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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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다렸다가 담아주는 것을 챙겨서 귀가했고,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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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든든하게 먹었다. 대방어? 뭐 그런 비슷한 것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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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밥 남은 것에 계란을 부쳐서 저녁 만찬을 누렸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또 흘러간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

아참, 인사이드제주에서 취재한 내용을 첨부한다. 만장굴의 숨은 이야기여서 지금 여기에 붙여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70년 전 꼬마탐험대의 시간여행 ... 만장굴을 보다[인사이드제주] 꼬마탐험대 증인 김두전 옹 ...부종휴 등이 발굴한 굴 스토리 | 박수현 기자  |  psuhyun@jnuri.net

70년 전 꼬마탐험대의 시간여행 ... 만장굴을 보다 - 제주를 여는 창! 제이누리 (jnuri.net)


승인 2016.10.19  15:29:29
꼬마탐험대

1945년 가을 꼬마의 손에 횃불이 들렸다. 어두운데다 발 아래의 무언가 때문에 넘어지기도 수차례. 호루라기 소리와 선생님의 외침이 유일한 나침반이다.

어딘가에 있을 빛을 찾아 전진, 또 전진했다. 그러나 빛을 찾지 못했다. 그러기를 1946년까지 3차례. 드디어 빛을 찾았다. 이제 탈출이다. 만장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손에 횃불을 쥔 꼬마는 김두전(82)옹. 그는 1945년 스승 부종휴 선생과 함께 만장굴로 떠났던 꼬마탐험대원 중 한 사람이다. 꼬마의 더벅머리는 이제 멋스러운 백발이 됐다. 스승인 부종휴와 함께 했던 30명의 꼬마탐원대원 대부분은 이제 세상에 없다. 남은 대원은 4명 뿐이다.

“만장굴(萬丈窟)은 그냥 생겨난 이름이 아니에요. 꼬마탐험대원이 지은 이름이죠. 그 때 우리가 만쟁이거멀(만장굴 제3입구)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만장굴’이란 멋진 이름도 없었죠. 만장굴은 ‘만쟁이거멀’과 ‘대장군굴(꼬마탐험대와 부종휴 선생이 지은 만장굴의 가칭)’의 합성어니까요. 허허”

그는 백발을 긁적이며 더벅머리 시절을 읊기 시작했다.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 생전의 부종휴 선생.“부 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셨지요. 사상의 혼란으로 사회가 어지러웠던 시기였는데, 오로지 교육에 열중했었지요. 선생님께선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김녕초로 왔더랬죠. 그해 2학기부터 5학년 2반, 우리반을 맡았어요.”

과학반·음악반·탐험반. 5학년 2반은 그 안에 세개의 반이 또 존재했다. 아이들의 특기를 살리기 위해 부 선생이 만든 반이다. 주입식보단 자율 학습을 지향한 부 선생의 철학이었다.

그는 탐험반에 들었다. 다부진 체력에 호기심이 많던 그다. 탐험반은 그에게 딱 맞아 떨어졌다.

탐험반의 첫 자연학습장은 궤내기굴. 궤내기굴은 학교에서 1㎞ 떨어져 있다. 횃불 솜 묶음 10개와 등유 한 통, 20m 줄자, 측량노트 그리고 탐험반 학생 30명이 운동장에 모였다.

부 선생은 ‘책임 완수’를 주문했고 학생들은 ‘탐험 완수’로 답했다. 첫 동굴 탐사는 성공적이었다.

“첫 탐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지. 지금(나이가 들고 난 뒤) 생각해보니 그것은 개척정신이었어.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지.”

이듬해인 1946년에도 그는 부 선생과 함께 탐험에 나섰다. 6학년 1학기 첫 탐험지는 한라산. 등산 전날 관음사에 머물렀다. 그러나 하늘이 허락하지 않아 오를 수 없었다. 일기예보가 없어 하늘을 보고 날씨를 관측했던 시절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1946년 4월 20일 오전 9시, 횃불과 등유, 줄자, 연필, 도시락을 챙긴 학생들이 다시 운동장에 모였다. 2차 동굴탐사의 날이자 김녕초 6학년생들의 봄소풍 날이다. 평소 부 선생을 응원했던 교장선생님은 김녕초 6학년생 봄소풍을 '동굴탐사'로 정했다.

   
▲ 반세기 만에 재회한 꼬마탐원대원 김두전씨(좌)와 故 방원정씨.
“본래 계획은 김녕사굴과 무명(無名)굴 탐사였지요. 김녕사굴은 6학년생 전원이 들어갔지만, 무명굴에는 선택된 10명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중에 저도 포함됐었죠. 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낙석으로 뒤범벅돼 있었고 굴 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보이질 않았죠. 겨우 낭떠러지 돌 바위틈을 찾아 아슬아슬하게 길을 만들었더랬죠. 그리곤 추가로 20명의 학생을 불렀고 30명만이 굴에 들어갔죠.”

선두 횃불 2개를 시작으로 측량반의 횃불 2개와 후미 횃불 2개가 천천히 행진하기 시작했다. 2시간쯤(약 700m) 걷다보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 선생은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빛이 비추는 곳을 향해 올라갔다. 다시 돌아온 부 선생은 “오늘은 이만 철수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2차 탐사는 끝났고 탐험반은 휴식기를 맞았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놀랄까봐 선생님께서 말을 하지 않으셨다고 해요. 당시 선생님께선 빛이 들어오던 장소(제2구간 입구. 지금의 만장굴 입구)에서 변사체를 발견했더랬지요. 이웃마을 월정리에 살던 지적장애인이라던데.. 발을 헛디뎌 추락사한 분이셨더라구요. 다행히 선생님의 발견으로 유가족에게 인계될 수 있었던 거죠.”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1946년 10월 5일 최종 탐사 계획이 잡혔다. 그는 들뜬 마음에 도시락과 짚신, 횃불 등을 챙겨 운동장으로 갔다. 맡은 준비물을 챙긴 학우들이 보였다. 출발 전 ‘꼬마탐험대’의 정식 명명식을 거행했다. 교장선생과 부 선생, 그리고 탐험대원들만 참여한 소소한 명명식이었다.

   
▲ 만장굴 제2입구 전경 '만쟁이거멀'. 만장굴의 시발점이자 머리이며 미공개 종점.
그러나 그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정식 탐험대원으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미션을 수행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 5시간 정도 걸었죠? 측정치를 보니 만장굴 제1입구부터 7000m(정밀 측정 결과 7416m)를 온 거에요. 만쟁이거멀에 다다른거죠. 만쟁이거멀 천장에서 비춰오던 햇빛을 잊을 수 없어요. 정말 황홀했더랬죠. 그날의 그 감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부 선생과 꼬마탐험대는 무명의 굴 탐사를 마쳤다. 부 선생과 꼬마탐험대는 무명의 굴에 ‘대장군굴’이라는 가칭을 지어줬다. 탐사를 마친 굴을 더이상 무명(無名)으로 부를 순 없으니까.

이후 김녕중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만쟁이거멀의 육상과 동굴에서 “야호”를 외쳐가며 천정이 뚫려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1947년 2월 24일 ‘만장굴’이라는 멋진 이름도 지어줬다. 그렇게 부 선생과 꼬마탐험대도, 만장굴도 지상으로 빠져 나왔다.

   
 "부 선생님은 만장굴 발견 직후 김념초등학교를 떠나셨죠. 제주·부산·서울 등지를 오가며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서울대 연구원으로 재직하시다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부종휴 선생은 그러나 만장굴과 꼬마탐험대원들의 탐험기를 남겼다. "제 인생에서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소중한 인연이자 우연이죠.  선생님 덕분에 세계 최초 '동굴 결혼식'도 참석해봤는걸요?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주셨죠."

1969년 부 선생은 인생의 반려자와 만장굴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세계 최초의 동굴 결혼식이었다. 만장굴을 사랑하던 부 선생 다웠다.
 
“꼬마 탐원대원의 경험을 백발의 노인이 풀어간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요? 어린 날의 추억을 그 나이의 후세들에게 전할 수 있어 행운이죠. 그러나 아쉬움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는 ‘만장굴’이 제주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한 것에는 만족한다. 그러나 만장굴을 알지만 이를 발견한 부종휴 선생을 모르는 관광객이 무색했다. 그보다 만장굴 발견의 공(功)을 몰라주는 제주도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는 “부종휴 선생님의 업적을 알려야 한다”며 신구범 지사 시절부터 끊임없이 제주도에 '기념비 사업 추진'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제각각의 이유로 우근민·김태환 지사도 모른척 했다. 그러다 2014년 원희룡 지사에게 호소문을 전달했다. 원 지사는 ‘만장굴 탐험 70주년 기념 행사’로 답했다. 20일 만장굴이 행사장이다. 오전 10시 만장굴 탐험 70주년을 기념하는 조형물 제막식을 갖는다.

조형물은 만장굴의 시작(제1입구)과 끝(제3입구)을 형상화해 부종휴 선생이 꼬마탐험대를 이끌고 동굴을 탐험하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져 있다. 만장굴의 상징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기존의 안내판도 함께 정비됐다.

제막식에는 꼬마탐험대 생존자(김두전, 김시복, 원장선, 홍재두 등)와 부종휴 선생의 유가족, 부종휴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고민수), 김녕초등학교(교장 양인자) 교직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 70년만에 만쟁이거멀을 찾은 꼬마탐험대원들(왼쪽부터) 김두전씨, 안창규씨(안내자), 김시복씨, 故강남추씨, 홍재두씨.
“제주지역 언론사들과 제주도의회 홍경희 의원이 만장굴 기념 사업을 실시하는데 크게 도와주셨어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죠. 더불어 우리 꼬마타험대원들까지 알려지게 됐으니까요.”

행사를 앞둔 그는 마치 더벅머리 12살 소년처럼 해맑았다.

그에게는 아직도 목표와 꿈이 있다. 만장굴과 부종휴 선생을 더 알리는 목표와 만장굴 관광지구를 만드는 꿈이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는 만장굴인데, 비공개구간까지 공개된다면 더 늘지 않을까요? 또 만장굴 제1구간에 영상 전시관을 만들고 만쟁이거멀에 레포츠 시설을 만들어 종합 만장굴 관광지구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오늘도 그는 감귤밭을 일구며 만장굴 관광지구를 꿈꾼다. 마음만은 아직 12살 더벅머리 꼬마 탐험대원이다.

부종휴 선생과 꼬마탐험대의 만장굴 이야기는 동화와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제이누리=박수현 기자]



'출처 : 제이누리(http://www.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