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31) 선왕당

작성일
2021-05-06 17:22
조회
611

제주반달(31) [7일째 : 3월 14일(일)/ 1화]


서귀포항의 선왕당(船王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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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요일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유명한 관광지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정을 한가로운 곳으로만 잡기로 하고 날이 밝아오자 오늘 아침에는 두부찜을 해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어났다.

낭월 : 두부 사올까? 찜 해 줄래?
연지 : 그래요. 난 안 나가도 되지?
낭월 : 그래 혼자 살살 산책삼아 나가 볼란다.
연지 : 그럼 더 쉬고 있을께 갔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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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수산물 공판장까지로 잡고서 우선 사거리에서 슈퍼로 들어가서 두부를 두 모 샀다. 나중에 오다가 두부가 떨어지고 없으면 또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고 다닐 생각에 귀찮기는 했지만 융통성이 없는 낭월이 미리 사놓는 것이 최선이려니 생각했다. 융통성이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느냐고? 그야 사놓고서 이따가 오다가 들고 가도 되겠느냐고 한 마디만 했으면 괜시리 두부 봉다리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거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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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들고 나와서 보니까 또 나름대로 쓸모가 있었다. 한참 초심으로 음양공부에 분발하는 제자가 궁금한 것이 있었던지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언제라도 밤낮없이 궁금하면 카톡으로 물으라고 했더니만 카톡찬스를 잘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딱히 보낼 것도 없고 해서 이렇게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카톡이 울린다.

제자 : 이 아침에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참 기발하십니다.
낭월 : 그래? 아침에 찜을 해 달랄라고 산 겨요.
제자 : 산 거는 사신 건데 하루방이 두부모자를 쓸 생각을 하셨다니요. 호호~!
낭월 : 바닥에 놓기도 그렇고 해서 이렇게 해 봤구먼요.
제자 : 둠비는 제주도 말로 두부라고  하네요.
낭월 : 그 사이에 이름을 검색하셨남요? 빠르시네. 
제자 : 여행 잘 하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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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의 이야기는 시간대가 아니라 흐름을 따르기로 한다. 그 동안 이 길을 몇 차례나 지나쳤는데 이 큰 나무가 오늘에야 눈에 들어오는 것도 무슨 인연이지 싶었다. 뭐라고 써있나 싶어서 다가갈 밖에. 뭐든 멈춰야 보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산책(散策)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오늘은 산책을 나왔더니 이러한 것도 보이는 구나.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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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도 안내판이 자세하다. 어디 또 읽어 봐야지.

이 곳은 용왕신을 모셨던 곳이다.

당시 신목은 소나무였다. 신목은 둘레가 7m 정도로 우람했었다 하나,
1939년경에 벼락을 맞았는데, 이러한 사연으로 하여
이곳을 「벼락마진듸」라고 부른다.

왼쪽 사진은 1953년경에 촬영된 사진으로 현재 김경호 님이 소장하고 있다.
또한 정자가 세워진 곳은 제를 지내던 초가집(당집)이 있었다. 
지금은 바로 옆에 팽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어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모시고 있는데 「할망당, 용왕당」이라 부르고 있다.

새마을지도자 송산동협의회에서는 2002년 월드겁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환경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이곳을 정비하여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마련하였다.

그러니까 할망당이라고도 하고 용왕당이라고도 하는 팽나무가 지금 보이는 이 나무라는 이야기구나. 그러니까 서귀포의 어민들이 마음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곳이라는 뜻임을 대략 짐작으로 알겠다. 어촌에는 어디를 가도 그렇게 풍랑과 풍어를 위한 기도처가 있기 마련이다. 안면도의 황도에도 뱀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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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무가 서있는 옆에서 바라보니 서귀포항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마음이 새연교에 가 있을 적에는 목적지만 생각하느라고 과정을 생략했더니 이렇게 여유를 부리니까 내려다 보는 그림을 얻게 되는 구나. 이것도 보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는 사진이다. 눈길이 머물지 않으면 카메라도 셔터가 끊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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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교도 내려다 보이고 매어놓은 배들도 잘 보이는 구나. 그 너머로는 아침의 바다까지 고스란히 다 들어오는 풍경이라니 이런 일에 괜히 감동하는 낭월이다. 뭐가 바빠서 이러한 것도 못 보고 지나쳤느냐는 호통도 치면서 말이다. 두부 두 모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걷는 시간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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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아오는 아침의 상쾌한 기운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 길가에 뭔가 구조물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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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란다. 그러니까 할망당이 있다고 하더니 이렇게 구조물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옆에는 설명도 되어 있었다. 이런 것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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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망당이 맞았구나. 그런데 할망당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제주도 스러운 조각상이 나그네를 반긴단 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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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청소차는 음악을 울리면서 본연의 업무를 다 하느라고 분주하다. 일찍 나서면 이러한 풍경조차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늘 보는 것이지만 이른 아침에 봐야 제대로 그 맛이 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청소차로 인해서 시선을 둘 곳을 찾게 되는 것도 인연이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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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차 너머로 뭐가 보인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돌집이구나. 필시 용왕당이겠거니 싶었다. 언덕 위에는 신목이 있고, 그 아래에 바위벼랑에 붙여서 기도처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이 용왕신께서 낭월을 초청한 것임이 분명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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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당이 아니고 「선왕당사(船王堂祠)」였구나. 그야 아무렴 워뗘. 중요한 것은 어부들이나 해녀들이 안녕을 빌었고, 또 빌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 중요할 따름이니까. 돌이 많은 제주도라서 돌로 벽을 감쌌나보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쪽부터 돌아봐야 겠군. 신목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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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모습으로 팽나무 아래에 지어진 사당이었구나. 그 뒤는 암벽으로 되어 있으니 기도를 열심히 하면 기도발이 있지 싶기도 했다. 뭘 아나, 그냥 바위가 보이면 기운이 서려있을 것이라고 넘겨짚는 낭월일 따름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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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보니까 선왕당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데 그야말로 좁은 공간을 잘 활용해서 해신을 모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구나. 어쩌면 해신께서 그 자리를 원했을 수도 있을 게다. 참으로 한적해서 목신이 앉아서 어민들의 소원을 들어주기에 좋아보이는 장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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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석이 입구의 양쪽에 서 있는 것은 분명히 뉘댁 집이라는 의미임을 알겠다. 그리고 구멍이 셋이 있는데 정랑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주인이 안에 계신다는 뜻이로구나. 맨 아래에 하나만 걸쳐 있으면 잠깐의 외출이고, 두개를 걸쳐놓으면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고, 셋이 다 걸쳐져 있으면 오늘 중으로 안 들어올 수도 있다는 의미 정도라고 이해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막대기를 왜 정랑이라고 하는지도 궁금한데 어디에 설명을 해 놓은 곳이 있나....

원래 정랑(靜廊)이라고 하는 것은 어린 시절에 고향에서 변소를 이르던 말이라서 다소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식자우환일게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제주도의 문에 걸쳐놓은 막대기로 떠올릴텐데 말이다. 정랑은 아무래도 한자에서 온 말이지 싶기는 한데 뜻을 풀어놓은 곳을 찾으면 수정하기로 하고 일단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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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는 방문자의 주의사항이 써있구나. 내용을 읽어보니 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굿을 하지 말라는 것은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것에 대해서 못을 박은 것으로 보면 되겠으니 맘에 드는 항목이다. 그런데 제물로는 술이나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못한단다. 왜 그럴까? 문득 황도에서는 뱀신 사당을 모시고 있어서 돼지를 키우지 않는 섬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어디 낭월사전을 뒤적여 보자. 띠띠띠~~!! 띠리릭~~!!

낭월 : 알려줘 낭월잡학사전~!
사전 : 삐비빅~ 지금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삐비빅~
낭월 : 그런 거지? 진해(辰亥)가 원진살이라서 그런거 맞지?
사전 : 삐비빅~ 말해서 뭣합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삑~
낭월 : 왜 삑~이냐?
사전 :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입니다. 삑~
낭월 : 난 아직 덜 물었단 말이다.
사전 : 말씀하십시오. 삐빅~
낭월 : 왜 진해가 원진이냐? 갑자기 그게 궁금하구나.
사전 : 용은 돼지의 코가 자신을 닮아서 미워한답니다.
낭월 : 그럼 돼지는 용의 무엇이 맘에 안 든다더냐?
사전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일방인 모양입니다.
낭월 : 원, 엉성하기는. ㅋㅋㅋ 그래도 괜찮다. 알겠네.
사전 : 뱀은 돼지에게 물려 죽어서 충(沖)이지 않습니까?
낭월 : 그래 맞아. 그런데?
사전 : 아마도 옛 사람들은 용도 뱀과 사촌이라고 생각한듯 싶습니다.
낭월 : 그래?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 낭월잡학사전 맞아?
사전 : 낭월사전도 자동으로 진화하는 AI를 탑재했습니다.
낭월 : 그랬구나. 알았다. 고마 쉬거라~!
사전 : 옙! 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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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주의사항을 잘 읽어보고는 문안을 드렸다.

낭월 : 선왕님께 문안 드립니다. 놀러 오라고 하셔서 찾아왔습니다.
선왕 : 아, 그래 질 왔네. 들어오게나.

안에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 할망당이라고 했으면 할머니 신이 계시는 것이 아니었어? 그냥 신은 모두 할망이었나? 한라산도 할망신이라고 했는데... 여신인 것은 확실한데, 왜냐면 남신은 하루방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지. 아마도 원래는 할망당이었는데 노후에 새혼을 하셔서 영감님이 계셨을 수도 있으니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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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었더니 안에는 누군가 소원을 비느라고 켜놓은 것으로 보이는 촛불이 타고 있었다. 그래 분위기가 참 좋구나. 이러한 곳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낭월에게도 신령들과 소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누구는 무섭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냥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집에 놀러온 듯이 편안하니 말이다. 무슨 조화 속인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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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는 조촐하지만 정갈하게 신당에 위패가 있고, 한쪽에는 선풍기도 있었다. 기도하면서 더우면 사용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공간도 한 평 남짓해 보였다. 그야말로 사당으로 갖출 것은 다 갖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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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째 이런 우연같은 필연이~!

왠 일로 두부를 사서 덜렁덜렁 들고 오고 싶더라니 그 두부는 그러니까... 「황제명덕대왕(黃帝明德大王)」께서  청하셨던 것이로구나. 대왕님의 식성이 낭월과 닮아서 반가웠다. 이렇게 마음이 이끄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우연같은 필연에 소름이 돋는 일도 수시로 있는 일이니깐. 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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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월 : 황제대왕님을 뵙습니다. 삼배 올립니다.(절...절...절...)
대왕 : 그래 심심하던 차에 널 보니 반갑구마. 잘 왔데이~!
낭월 : 이렇게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계룡산 자락의...
대왕 : 다 안다카이~ 제주도에 바람이 일면 감로사에도 바람이 불제?
낭월 : 그러니깐요. 그래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왕 : 그게 다 내가 그카는 거 아이가. 지켜보고 있데이~
낭월 : 아, 그러셨습니까? 그러신 줄도 모르고 이상타고 했습니다.
대왕 : 내가 조푸를 먹고 싶었던기라. 
낭월 : 그럼 비닐을 벗기고 드릴까요?
대왕 : 다 알민서 그카노. 느낌으로 흠향( )하는 거 다 알제?
낭월 : 그런데 왜 이름이 할망당이라고......
대왕 : 아, 할망은 어데가뿌릿는지 궁금하다 이 말이가?
낭월 : 예, 그렇습니다. 같이 계시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대왕 : 같이 있다가 황혼이혼해뿌고 백록담에 산신할망캉 있다.
낭월 : 아니, 어쩌다가....?
대왕 : 너무 깊이 알라카지말거래이 우리도 나름 사정이 있시니..
낭월 :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낭월을 불러주셨는지요?
대왕 : 그야 고향사람이라서 아이가. 너그 50대 조모(祖母)가 내 모친이다.
낭월 : 아니, 그렇습니까? 그러면 할배가 아니십니까? 
대왕 : 하모하모~! 할배다. 자손이 많아도 놀로 오라칼 놈이 없대이.
낭월 : 몰랐습니다. 이렇게 뵙지 않았으면 전혀 모를 뻔했습니다.
대왕 : 세상에 우연이 어데 있더나? 헐헐헐~!
낭월 : 그런데 우째 여기까지 와서 선왕신이 되셨습니까?
대왕 : 내도 니캉 똑같다 아이가.
낭월 : 예? 무슨.....?
대왕 : 니도 늙으막에 이 근방에 와서 살게 될끼다.
낭월 : 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살아보니 참 좋습니다.
대왕 : 그캐도 알고 안그캐도 안다. 얼굴에 씌여있구마는.
낭월 : 할배께서 여기까지 온 연유도 있겠지요?
대왕 : 그야 신라(新羅)에서 탐라(躭羅)를 동생으로 여긴거 아이가.
낭월 : 아하~! 그래서 라로 돌림자인 것이었습니까? 몰랐습니다.
대왕 : 암만캐도 역사서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실끼다.
낭월 : 형제나라여서 탐라를 지켜주러 오셨던 거네요?
대왕 : 하모~! 


대왕이 심심하던 차에 낭월을 만나서 모처럼 말상대를 만나셨는지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명덕대왕(明德大王)의 이름은 김효양(金孝讓)으로 아들은 신라 38대 임금인 원성왕(元聖王)의 아버지로 내물미립간의 11세손으로 증조부는 대아찬 법선(法宣)이고, 조부는 이찬인 의관(義寬)이며, 부친도 이찬을 지낸 위문(魏文)이고, 부인은 계오부인(繼烏夫人) 박씨이며 지위는 대각간(大角干)이었더란다.
아들 경신(敬信)이 원성왕으로 즉위하게 되자 부친을 명덕대왕으로 추봉하게 되었고, 증조부인 법선은 현성대왕(玄聖大王)이 되고, 조부 의관은 신영대왕(神英大王), 부친 위문은 흥평대왕(興平大王)이 되고 부인 박씨는 소문태후(昭文太后)로 함께 추봉이 되었으며, 신라의 보물이었던 만파식적(萬波息笛)을 간직하고 있다가 아들이 왕이 되자 원성왕에게 전하기도 했단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만경창파를 헤치고 제주도까지 와서 용왕신으로 바다를 오가는 어선을 지키고 있으니 만파식적을 갖고 있었던 인연이겠거니 싶었다.

낭월 : 대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태후께서도 박씨였네요.
대왕 : 태후의 고향이 이서국(伊西國)의 공주 아이가.
낭월 : 이서국이면 지금의 청도가 아닙니까? 
대왕 : 맞지~! 그래서 널 보고 반가워서 오라안캤나. 헐헐헐~
낭월 : 인연이란 참 오묘합니다. 감동이네요.
대왕 : 오랜만에 니캉 이바구를 하니 기분이 상쾌고마는.
낭월 : 다행입니다. 후손도 할배를 뵈어서 즐거웠습니다.
대왕 : 혹 바라는기 있시마 말해 보거라. 들어주꾸마.
낭월 : 엄씸니다. 이대로 충분히 다 가졌습니다.
대왕 : 그래 그것보다 더 귀한기 어데 또 있겠노.
낭월 :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그것이 즐거울 따름입니다.
대왕 : 고마 가보거라. 난제 또 온나~!
낭월 : 예~! 그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대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데 대왕이 다급히 불러서 얼른 돌아다 봤다.

대왕 : 조푸는 가가거라~ 나는 다 묵었다. 갖다가 아즉 해묵어라.
낭월 : 아, 두고 가지 말라고 앞에서 봤습니다. 그럼~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작별을 고하고는 밖으로 나와서 문 앞에서 합장배례하고 문을 닫았다. 할배가 내다 보면서 손을 흔들어 주셨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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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옆에는 부적이나 소지를 태우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작고 좁아도 있을 것은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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벛나무에서 새들이 아침을 먹으러 나왔는지 꽃속을 헤집고 다닌다. 꿀을 먹는 건 아닐테고... 뭘 먹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냥 사랑놀일랑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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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활기찬 날갯짓과 지저귐을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밥솥에 밥이 다 되어서 김을 내뿜고 있었다. 문득 대왕이 생각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한 그릇 퍼다가 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마음으로만 공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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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차려 진 아침 밥상의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잡은 두부찜의 사연을 아는 사람만 아는 것으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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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 제주도 두부도 맛있네.
낭월 : 그렇지? 특별히 맛이 있을 거야.
연지 : 왜? 비싼 것을 샀어?
낭월 : 꼭 비싼 것을 샀다기 보다는... ㅎㅎ

그 내막에 대해서는 모두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지 싶어서 그냥 웃고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제주도 7일째의 일요일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또 행복했다.

(여행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