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으로 달려간 까닭은.

작성일
2019-08-20 15:47
조회
706

논으로 달려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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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늦여름날이다. 올해는 벼꽃을 꼭 봐야지.... 했는데 이제사 그 시절이 도래했다. 그래서 10시경에 피기 시작한다는 벼꽃을 보러 들판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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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벼꽃을 본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예쁜 벼꽃을 찍어다가 액자에 담아서 벽에 걸어놓고 오가면서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것이 벼꽃의 전부겠거니.... 했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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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벼꽃을 봤다고 생각했던 것이 제대로 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벼꽃이 진 다음의 모습을 벼꽃이라고 사진을 찍어다 놓고 즐거워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때가 되어야 볼 수가 있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해야 하는 사진가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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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꽃은 언제 피는지부터 공부를 해야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핀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찾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맑은 날을 가려서 부지런히 내달렸다. 들판은 상월의 대명리 앞 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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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들이 예쁘게 패고 있다.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벼를 찾아야지.... 그러나 모두가 어제 핀 꽃들만 보이고 아직 오늘 피는 꽃은 발견되지 않는다. 너무 일찍 나왔나 보다. 상월의 벼들은 좀 늑장을 부리는 모양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10시 기준이 남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긴 중부지방이니까 조금 더 늦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웃기웃... 왜가리가 개구리를 찾듯이....

예쁜 벼이삭들이 고개를 내밀거나 혹은 이미 꽃을 피우고 나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도 보인다. 시간의 차이에 따라서 먼저 핀 벼들과 앞으로 필 벼들의 모습들이 또 같은듯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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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속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는 소식이겠군. 고개를 숙여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올해도 풍년이 들 모양이다. 아직 빳빳하게 쳐들고 있는 녀석들은 다음의 기회를 보면서 속으로 암술과 수술을 준비하고 있으려니..... 상상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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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미 구면이다. 어제쯤 핀 꽃이려니 싶다. 껍질을 굳게 닫고서 알을 품은 암닭처럼 긴 인내심의 계절로 들어간 모습일게다.... 그리고 이게 전부인 줄 알았었다. 벼꽃은 이렇게 피어서 수분한 다음에 결실을 이루는 것으로 알았더란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제의 관점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또 새로운 모습을 찾아 온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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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반가워라~!
강아지풀 줄기에다가 메뚜기를 잡아서 목덜미 뒤쪽을 주욱~ 꿰어서 집으로 갖고 가면, 어머니께서 기름을 넣고 볶아주셨던 기억이 겹친다. 그러나 이젠 먹거리가 아니다. 그땐 먹거리였고, 지금은 볼거리이다. 같은 메뚜기지만 환경이 달라지고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귀엽다. 여기저기에서 화드덕거리고 날아오르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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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무리 서둘러도 추석의 젯상에는 오르기 어렵지 싶다. 추석이래야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그래도 열심히 땡볕을 받고 여물어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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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 구경꾼이구나.
넌 나를 보고,
난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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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하나를 다 훑어도 개화하는 벼꽃은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너무 일찍 나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들판에 공급하는 수로를 바라본다. 시간은 기다리면 흐르기 마련이다. 다만 그냥 멍~하게 하늘만 볼 수는 없는 일인지라 이렇게 수로의 수문이라도 들여다 봐야 한다. 놀면 뭐하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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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도 사냥꾼이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명당을 선점하고서 먹이가 걸려들기만 바라고 있는 거미집이 줄잡아 여섯 개는 된다. 잠자리나 모기가 찾아왔다가는 밥이 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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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빈 그물인 것으로 봐서 간밤의 사냥이 신통지 않았거나, 부지런해서 보수를 잘 했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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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녀석들이 6층 아파트로 그물을 쳐놓고 있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잠시도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하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자연이니 행운을 빌어 줄 밖에. 아차~! 거미랑 놀다가 벼꽃이 피는 것을 놓치면 안 되지~! 허겁지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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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10시부터 기다렸던 개화가 11시가 되어서야 시작되는구나. 뙤약볕이야 괜찮다. 드디어 오늘은 벼꽃을 만나게 되는구나... 설렘설렘~~~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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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오기를 1년 이나 기다렸다. 드디어 입을 활짝 벌린 벼꽃을 만났다. 인터넷으로 아무리 봐도 직접 실물을 대하는 감동과는 사뭇 다른 법이다. 그래서 여행지 사진을 보면서 그곳으로 가보고자 하는 것인게다.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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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대여섯개의 수술과, 안에서 바람에 수꽃의 가루가 날아들기를 기다리는 암술 두어 개가 보인다. 우야든둥 다시 벼꽃을 보러 오지 않으려면 기회가 주어졌을 적에 제대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 몰입해서 즐기면 되는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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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본다.
최대한 그 안의 풍경도 담아보려고 애를 쓴다.
바람이 건듯 불면 또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한손으로 벼목을 잡고
나머지 한손으로 카메라를 들기도 한다.
초점이 요동을 친다.
마음이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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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500컷 정도를 찍었다.
어디에서 그림이 나올지 모르니깐. 찍고 또 찍는다.
볼수록 신기하다. 어쩜.... 이렇게도 정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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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흰곰팡이에 취해서 즐거웠고, 오늘은 벼꽃에 취해서 또 행복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제서야 벼의 껍질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익은 벼를 보면서 왜 중간에 갈라진 금이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확연이 깨닫겠다. 왕겨가 중간으로 벗겨 진다는 이치를. 그러니까 수분이 된 다음에 결실을 이룬 쌀은 다시 그 곳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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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하다. 그 안에서 그냥 수분을 주고 받으면 될 일이다. 그런데 구태어 밖으로 나와서 위험을 무릅쓰고 바람을 기다려서 다시 수분을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러한 설계는 누가 했단 말인가? 궁금한 만큼 신기하고, 신기한 만큼 경이롭다.

모든 꽃은 꽃잎이 있는데 벼꽃은 꽃잎이 없다. 원래 꽃잎은 자신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벌과 나비를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바로 이해가 된다.

"끄덕끄덕~~!"

벼꽃에 화려한 빨강 노랑의 꽃잎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별과 나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벌이 지구상에서 멸종을 하더라도 쌀밥은 먹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바람만 있으면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수고롭게 힘을 소비하면서 쓸데 없는 꽃잎을 만들 필요가 없었더라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낭비가 없는 자연의 설계도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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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화(禾)이다. 이제 여유가 생겼으니 글자놀이를 해도 되겠다. 사실 벼는 옛날에 창힐 할부지가 글자를 만들 적에도 특별대우를 했던 것이 분명하다. 누가 봐도 초본(草本)인데 목(木)이라고 표시를 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파격적인 대우라고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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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 벼화(禾)이다. 벼도(稻)자도 있다. 뭐든 붙지 않은 것이 원형이라고 봐서 禾를 기준으로 본다. 벼는 풀이지만 나무이다. 누가 풀인 줄을 모르랴. 그러나 그것을 먹어야 살아갈 수가 있는 인간에게 벼는 풀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을 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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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익어서 쌀이 되면 쌀미(米)이다. 이미 쌀이 되었는데도 나무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신기하다. 나무에서 달리는 열매 중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쌀알을 두개 붙여놓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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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아직 이삭을 내보내지 않으면 이렇게 표현한다. 아직미(未)이다.

아직.... 때가 덜 되었다는 뜻이다. 12지지에서도 미(未)는 아직 가을이 덜 되었다는 말이고, 결실을 거둘 때가 덜 되었으니 기다리라는 말이고, 그 말은 미월(未月-양력7월경)에는 아직 벼를 먹을 수가 없다는 뜻이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확장해서 미성년(未成年), 미완성(米完成)으로 사용하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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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가니까 걷잡을 수가 없이 꽃들이 솟아난다. 이것은 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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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서 여기저기에서 마구마구 터져나오는 벼꽃의 수술을 본다면 아마도 공감할 수 있으실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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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자가 하나 더 떠오른다. 본(本)이다. 이것은 벼의 뿌리를 말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글귀를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냥 나무의 뿌리라고 해도 그만이긴 하다. 그러나 이 나무는 그냥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니라 벼나무였던 것이다. 뿌리에 도(道)가 있으면 근본(根本)이 되고, 이삭이 줄기 속에서 자라고 있으면(未) 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도가 되는 것이다. 나무 중에서 가장 소중한 나무는 벼나무였을게다. 쌀이 주식인 우리 나라에서의 이야기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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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당겨서 찍어보지만 역부족이다. 접사렌즈의 한계를 다시 아쉬워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으로 즐겁게 놀면 된다. 아쉬워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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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얼른 수분하고 다시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 너희들이야말로 도를 이행하는 자연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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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하도 불어서 삼각대를 펼치고 간격촬영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바람만 잔잔하다면 그렇게 두어 시간 찍어서 보면 벼꽃이 피어나는 예쁜 장면을 새롭게 볼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기왕 맘을 낸 김에 그것도 한 번 해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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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꼭데기에 핀 벼꽃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만하면 충분히 벼꽃 공부는 잘 했다고 봐도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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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머지는 자연에게 맡기고 오늘 놀이는 여기에서 마무리 한다. 가을에 황금물결이 넘실댈 적에 다시 나들이를 하고 싶구나.

 



[벼꽃이 피는 EBS영상] https://youtu.be/HiFCT66Yj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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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논에서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