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1.딸의 실종(失踪)

작성일
2022-11-30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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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제34장. 인연처(因緣處) 


31. 딸의 실종(失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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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어쩌면 스승님께서 해결책을 찾아냈으면 좋겠지요?”

“왜 아니겠어.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는 학문이라면 생사가 경각(頃刻)에 달린 문제도 해결을 할 수가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참 좋겠네.”

“그런데 누나의 영안으로 그러한 것까지는 보이지 않아요?”

“그야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 멀었잖아? 지금의 상황이 안개 속에서 보는 것처럼 어렴풋하게만 볼 따름이라서 나도 안타깝다니까, 호호호~!”

“그래도 그만큼이라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능력을 타고난 것도 아마 전생에 수행한 공덕일 겁니다. 하하~!”

“그런 말 말아~! 그로 인해서 오랜 세월을 시달린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니 말이야. 호호호~!”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나쁘기만 한 것도 없고, 또 반대로 절대적으로 좋기만 한 것도 없다는 이치가 맞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총명하기를 바라지만 총명한 만큼 번뇌가 많을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맞아, 가진 자는 가져서 고통이고, 없는 자는 없어서 고통이니까. 그렇지만 지혜는 아무리 많아도 부작용(副作用)이 없지 않을까?”

“누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도 그것에 대해서는 동의해요. 다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도 많은 것을 제외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싶어요. 그러니까 총명한 사람은 모두 수행하는가 봅니다.”

“꼭 그렇지는 않아, 머리가 좋은 도둑이나 날강도가 얼마나 많은지를 동생이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호호호~!”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총명한 것과 지혜로운 것은 다른가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르다고 봐. 총명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지혜는 수행해야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겠네요. 하늘은 저절로 모든 것을 주지는 않으시나 봅니다.”

“당연할 거야. 그러니까 총명한 사람은 적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보다도 더 적지 않겠어? 호호호~!”

“오늘도 재미있는 하루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네요. 산책하니까 좋은데 그만 들어가서 저녁을 먹어야죠? 그리고 그다음의 일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는데요?”

“나도 그래, 어서 들어가자.”

두 사람이 객청(客廳)으로 들어가자 저녁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이 드문드문 앉아있고, 한쪽에는 지광과 현지가 담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염재와 진명도 다가가서 인사했다.

“스승님과 누님도 나오셨습니까? 호반을 잠시 둘려 봤습니다.”

염재가 건넨 말에 현지가 말했다.

“석양의 풍경이 참 좋지? 나도 좋아하는데 오늘은 정 사부께서 말씀해 주시는 귀한 가르침을 듣느라고 함께 하지 못했네. 호호~!”

진명도 현지에게 말했다.

“언니가 곤하게 주무시기에 살짝 나왔었는데 많이 고단하셨던가 봐. 다시 원기가 충전된 모습이 보기에 좋네. 호호~!”

“아마도 어젯밤을 세워서 마작 이야기를 듣느라고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가 보네. 덕분에 푹 자고 났더니 다시 개운해졌어. 스승님께서 겪으신 견문(見聞)을 듣느라고 푹 빠졌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창과 거산도 내려와서 합석했다. 모두 모인 것을 본 주인이 주방에 말했는지 요리가 하나씩 차려졌다. 구수한 냄새가 시장기를 돋구자 연장자인 지광이 먼저 동파육(東坡肉)을 한 점 집으면서 말했다.

“오늘은 아우님 덕에 풍요로운 만찬(晩餐)을 맞이했으니 양껏 먹고 원기를 보충해 보세. 하하하~!”

“형님도 참 별말씀을요. 항상 뒤에서 보살펴 주시니 든든할 따름입니다. 어서 드십시다. 하하하~!”

우창도 이렇게 권하면서 차려진 십여 가지의 요리로 배를 채웠다. 산에서 나는 버섯요리가 특히 맛이 좋았고, 거위탕도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그야말로 보약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진기한 약재를 넣고 푹 고아서 만들었는지 무척 맛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주인이 오미자를 달인 것을 식혀서 가져왔다. 달고도 시큼한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했다.

“저녁은 잘 드셨어요? 차린 것은 변변치 않아도 정성으로 마련했으니 잘 드셨는지 모르겠어요. 호호~!”

주인의 말에 우창이 답례했다.

“너무나 즐거운 만찬이었습니다. 작은 도움에 큰 성의를 베풀어 주셨으니 그 나머지는 공덕상(功德箱)에 그대로 쌓일 것입니다. 하하~!”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다른 일행도 합장하여 마음으로 감사한 것을 표했다. 그러자 주인이 다시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꼭 여쭤볼 말씀이 있다는 지인이 부탁하는데 혹 힘드시지 않으실까 염려가 되어서 미리 여쭤보마고 했어요. 다급한 일인지라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긴 해요.”

주인의 말에 염재와 진명이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인지 대략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의 말에 우창이 말했다.

“푸짐하게 밥도 먹었으니 마침 잘 되었습니다. 어디 오라고 하시지요.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우창이 흔쾌히 말하자 주인이 한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예의 두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허리를 굽혀서 다급한 마음을 표했다. 우창도 일어나서 마주 인사하고는 앉으라고 한 다음에 물었다.

“변변치 못한 능력이지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어떤 말씀이신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딸을 잃은 부친이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3일 전에 열여섯이 된 딸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무리 찾아도 행방이 묘연하여 흡사 연기처럼 사라진 듯합니다. 백방으로 알아봐도 흔적이 없어서 관아에 실종(失踪)을 알렸으나 수색에도 진전이 없는지 기다리라고만 하여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친구로부터 오늘 낮에 도사님이 출현했다는 말을 듣고서 이렇게 뵙기를 간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제 딸을 찾아주시기만 바랄 따름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울먹이는 것을 보니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 우창이 차분하게 차를 권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봐도 이 문제는 점괘로 풀어야 하겠지만 과연 점괘로 해답이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은 없었다. 이런 경험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기대를 크게 걸고 있는 모습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참 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정황에서 부모의 마음이야 더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조급해하시는 말씀도 모두 이해됩니다. 그나저나 소생의 작은 능력이 무슨 도움이 되려나 싶습니다. 비록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은 해 보도록 할 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이렇게 말을 마친 우창이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어서 오주괘를 적었다. 우선 점괘를 보면서 정황을 파악해 본 다음에 지광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청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415 딸의점괘

우창이 적어놓은 점괘를 지켜보던 염재는 마음이 놓였다. 당장 큰일을 당할 조짐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짧은 견해이므로 자신의 판단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갑목(甲木)이 임수(壬水)를 시간(時干)에 두고 있다는 것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서 우창의 풀이를 기다렸다.

우창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하는 모습을 본 남자는 애가 탔다. 아무래도 상황이 어렵게 생겨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는 물만 연신 들이켰다. 동행한 남자도 딱한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면서 위로하는 듯이 등을 토닥거려줬다. 그런 동작조차도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우창이 말을 꺼냈다.

“따님의 용모가 무척이나 빼어났군요.”

우창은 뜬금없이 이렇게 한마디 던졌다. 염재가 그 말을 듣고는 갑오(甲午)에 대한 해석일 것으로 짐작해 봤다. 일지(日支)의 상관(傷官)이므로 용모도 예쁘다는 것으로 해석해 봤기 때문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주변에서는 서시(西施)의 환생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차라리 평범하게 태어났더라면 이러한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지요.”

갑자기 목이 메는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를 보면서 우창이 말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랄 밖에요.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비록 상황은 나쁘더라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로 봐서 납치(拉致)당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어떤 못된 인간이 그런 짓을 한답니까~!!”

갑자기 남자가 격분한 듯이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공감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우창의 표정을 살피면서 무슨 말을 해 주는지 기다리는 남자에게 말했다.

“혹시 근래에 혼사(婚事)로 말이 오가지는 않았습니까?”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급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근래에 중매가 들어왔었습니다.”

우창은 염재가 이해하기 쉽도록 월지(月支)의 신금(申金)을 짚으면서 말했다.

“아마도 그 상대방은 상당한 재력(財力)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연지(年支)의 미토(未土)를 짚었다. 그러자 염재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즉시로 알아볼 수가 있었다. 정재(正財)인 미토가 편관(偏官)인 신금(辛金)을 생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명과 현지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답답하기만 했다. 거산도 점괘를 들여봤으나 의미를 알듯 말듯한 느낌이어서 조용히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다.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따님은 중매가 들어왔음에도 전혀 응할 마음이 없었겠지요?”

“맞습니다. 참으로 용하십니다.”

남자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서 우창의 말에 신기한 표정으로 답했다. 우창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연간(年干)의 신금(辛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궁리하느라고 열심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추리했기 때문이었다.

‘음, 신(辛)은 정관(正官)이니, 마음에 둔 낭군(郎君)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병신합(丙辛合)이 되었으니 병(丙)은 식신(食神)인지라 자신의 마음에 부합이 되어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오직 그 남자에게만 정신을 빼앗겼다고 봐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병(丙)이 앉은 자리인 월지의 신(申)을 봤을 적에 눈에 들어올 리가 없겠지, 그 사람이 비록 부유한 집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마음에 둔 사람도 그리 궁핍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금(金)이 모두 미(未)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궁리만 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 우창이 물어보기로 했다.

“혹 따님이 예전에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까?”

우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가 말했다.

“예, 있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고 거절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알고 계시는군요. 과연 도사님이십니다.”

“그랬습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실 일이 없겠습니다. 하하하~!”

“예? 무슨 말씀이신지......?”

“따님은 안전하게 잘 있습니다. 다만, 부친의 마음이 중요하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고 말고는 부친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가 할 수가 있는 일이라면 못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남자가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염재는 대략의 정황을 간파할 수가 있지 싶었다. 분주(分柱)의 신축(辛丑)을 봐하니, 납치한 것이 아니고 납치를 당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우창이 말했다.

“딸의 말을 듣지 않으셨군요. 이제라도 딸의 말을 들으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가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어쩌시겠습니까?”

우창이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 남자는 비로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아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마음을 먹기에 달렸다니 이보다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듣고 말고요. 모두 다 딸의 말대로 하겠습니다. 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딸이 뭐라고 합니까?”

우창이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임수(壬水)가 귀로 보였다. 어쩌면 누군가 이러한 정황을 탐문(探聞)하기 위해서 손님들 틈에 섞여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우창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로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예? 어떻게 말입니까? 그리고 뭐라고 하면 됩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주변을 한 바퀴 둘러봤다. 우창의 말에 딸이 와서 듣고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딸은 보이지 않았는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우창을 바라봤다.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여러분께 약속합니다. 딸이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면 됩니다.”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한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께 고합니다. 딸이 원하는 대로 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주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아저씨, 도사님께서 영험하게 말씀해 주셨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틀림없이 바로 소식이 날아올 거에요. 호호호~!”

주인의 말에 남자도 위안이 되는지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물잔을 들어서 들이켰다 목이 탈 만도 하지 싶었다. 우창이 다시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봅시다. 반 시진이 지나기 전에 연락이 올 것입니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정작 궁금한 것은 염재였다. 어디에 있는 무엇을 봐서 그렇게나 빨리 연락이 올 것이라는 조짐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헤아린 우창이 염재에게 설명했다.

“분주(分柱)에 모든 것이 다 있지 않은가? 잘 살펴보게.”

우창의 말을 듣고서야 염재도 다시 분주를 살폈다. 신축(辛丑)은 정관이다. 그리고 다시 전체를 바라보자 연주(年柱)의 신미(辛未)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 혹 연간(年干)의 신(辛)이 분간(分干)의 신(辛)입니까?”

“그렇다네. 이제야 그것이 보였나? 하하하~!”

“그런데 연락이 바로 온다는 것은 어디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임수(壬水)를 보게나.”

“임수가 왜 소식입니까?”

“인성(印星)이 귀가 된다는 것을 벌써 잊었나?”

“아, 인성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갑목(甲木)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목마른 갑목이니 임수(壬水)가 절실하다고 보겠습니다.”

“임수가 절실하다면 갑(甲)의 마음에는 오로지 임(壬)에만 모여있을 것이고, 임은 귀가 되어서 오늘 부친이 군중을 향해서 맹세한 말은 벌써 공기를 타고 딸의 귀에 전해졌을 것이네. 그러니 어찌 머뭇거릴 틈이 있겠느냐는 말이네.”

그제야 염재의 궁금했던 부분들이 풀렸다.

“아하~! 갑오(甲午)라서 목이 많이 말랐겠습니다. 그러니까 일 점의 임수가 전하는 감로(甘露)는 환희(歡喜)의 소리가 되겠네요. 놀랍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략 차 한 잔을 마실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남녀 한 쌍이 급하게 객잔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긴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남자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반가움의 눈물이었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불효 여식이에요.....”

나직하지만 명료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은 남자의 잃어버렸던 딸이었다. 그리고 동행한 남자는 딸이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던 사내였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대략 알 수가 있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이 우창에게 물었다.

“도사님 기왕 인연이 되었으니 두 사람의 궁합을 봐주시면 어떨까요? 도사님께서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셨는데 궁합까지도 봐서 덕담해 주신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교훈이 되지 싶어서 감히 부탁을 드립니다.”

주인이 자신의 팔자에 대한 풀이를 듣고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터라 그 인상이 강력했던 모양인지 두 사람을 보자 궁합을 봤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말에 우창도 굳이 사양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염재에게 사주를 적어보라고 시켰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의 사주가 적혀서 탁자에 놓였다.

415 딸의 궁합

두 사람의 사주를 본 우창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오호~! 이런 인연이니 그렇게까지 부친을 걱정시키면서도 혼인하고자 했구나. 과연 이러한 배필은 이번 생에는 다시 만나기 어려운 인연일세~!”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남자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우창이 내친김에 남자에게 한마디 더 얹었다.

“아쉽게도 두 사람의 나이가 10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부친의 걱정을 들었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만, 삶이란 나이로만 행복과 불행이 나뉘는 것도 아니지요. 이 사위는 아들보다도 더 지극한 효성(孝誠)으로 악부(岳父:장인)를 섬기고, 아내를 사랑할 것이니 자칫했으면 큰 보물덩이를 놓칠 뻔했습니다. 하하하~!”

우창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든 딸이 말했다.

“도사님은 우리의 은인이세요. 평생을 잊지 못할 거에요. 이 고마운 마음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

딸이 말을 하다가 목이 메는지 말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그 마음은 모두에게 전해졌다. 우창이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일으켜 세워서 보냈다. 사윗감도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세 사람이 돌아갔다.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덕담을 하고는 흩어졌다. 주변이 조용해진 다음에서야 주인이 우창에게 물었다.

“궁합이 정말로 그렇게 좋아요? 기분을 좋게 하느라고 듣기 좋게 말씀하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기는 했어요. 호호호~!”

주인이 이렇게 묻자 진명과 염재도 궁금해서 우창을 바라봤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창이 염재를 향해서 설명했다.

“딸이 남자를 보고서 반했다는 이치는 알겠나?”

“그것은 딸의 일주(日柱)가 계해(癸亥)임을 보고서 짐작했습니다. 해중갑목(亥中甲木)이 드러났으니 남자의 일주가 갑인(甲寅)인 것은 참으로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겠습니다. 그야말로 행복을 스스로 잡았다고 해야 하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쓰라고 있는 말이지 싶습니다.”

“남자도 자기 가족을 굶기지는 않을 만큼의 복은 타고났으니 자칫하면 선남선녀(善男善女)가 눈물로 세월을 보낼 뻔했네. 하하하~!”

“그렇게 보입니다. 모두 행복한 말년을 보내게 될 것으로 봐서 오늘의 인연은 두고두고 마을에서 회자(膾炙)가 되겠습니다. 오늘 스승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을 보면서 명학(命學)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열정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염재가 감동하여 말하는 것을 보면서 진명과 현지는 물론이고, 거산까지도 마음에 깊이 새겼다. 주인도 마음에 기꺼워서인지 주방으로 가더니 과일을 한 접시 가득 깎아서 내왔다. 그리고는 감탄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항상 그날이 그날이라서 지루했는데 오늘에야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깨달았어요. 말씀해 주신대로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어요. 과일을 드시면서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이만 쉬러 갈게요. 오늘은 너무나 즐거운 날이었어요. 호호호~!”

이렇게 말을 남기고 주인은 들어갔다. 그리고 객들이 앉아서 밤이 깊어가도록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이야기는 꽃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