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제33장. 감응(感應)/ 2.산천(山川)의 방광(放光)

작성일
2022-05-23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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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 제33장. 감응(感應) 


2. 산천(山川)의 방광(放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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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형님께서 그러한 고승을 1년이나 모시고 수행하셨다면 직접 가르침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혹 보고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들려주실만한 것이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지광은 그 시절의 장면이 떠오르는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는 회상에 젖는 듯하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 ◆ ◆ ◆ ◆ ◆ ◆


 

하루는 선사가 시자와 같이 운동하러 다녀오던 길이었다. 이미 멀리에서 선객(禪客)이 법문답(法問答)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들어오는 선사와 선객(禪客)과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지광은 그러한 순간은 피하지 않았다. 선사와 선객의 문답(問答)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대화였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나름대로 수행하다가 화두(話頭)를 타파한 선승(禪僧)이 찾아와서 선문답(禪問答)을 나누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기회는 여간해서는 접할 수가 없는데 마침 지객이 선승에게 말하기를 객실(客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선사께 알려서 시간이 되면 뵙도록 하겠다고 말했으나 그는 말을 듣지 않고 대웅전의 마루에서 기다리겠다기에 지광도 주변을 배회하면서 선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시자가 선사와 함께 돌아오는 소리를 듣자, 예의 그 누더기를 입은 선객이 대웅전 앞에서 앉아있다가는 일어섰다. 산문(山門)으로 들어오던 선사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찾아온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왜냐면 선사의 말에서 바로 이해를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봉 : 누구냐?

선객 : .........(표정이 복잡)

경봉 : 에라, 집어치워라~!

선객 : 저...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경봉 : 틀렸다~!

선객 : .......(절망하는 표정)

 

서너 걸음을 옮기던 선사가 다시 물었다.

 

경봉 : 올여름에는 어디에서 공부할 것이냐?

선객 : 아래 큰 절의 선원에서 지내려고 합니다.

경봉 : 시자야 저 밥버러지를 받아주지 말라고 전달해라

시자 :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그 선객은 사라져가는 선사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광은 내심 고소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지광이 비록 승려는 아니라도 그 선객은 지광을 알아보는 듯했다. 잠시 멍~하던 모습을 추스르고는 지광에게 합장하고 말했다.

“처사(處士)님은 여기에 거주하고 계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소승이 왜 선사로부터 이와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 옆에서 선사를 지켜보셨으니 아시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나이로 봐서 지광과 비슷한 연배일 것으로 짐작되는 선객의 착찹한 표정을 보면서 그 상황에서 느낀 그대로를 말해줬다.

“우선 객실로 가시지요.”

객실은 나그네 승려들이나 일반인들이 하룻밤 묵어가고자 할 때 제공되는 방이었는데 마침 이때는 객실도 비어있어서 조용했다. 서로 맞절하고 자리에 앉아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표정의 선객에게 말했다.

“스님께서는 두 가지 실수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지광은 느낀 그대로 말을 해 줬다.

“우선 어른에 대한 예의를 차리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지난 겨울철에 참선(參禪)하시면서 공안(公案)을 타파하신 듯한 큰 깨달음이 있으셨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 선사께 점검(點檢)받고 싶어서 달려오신 것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바로 그래서 왔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착각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착각이라고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정신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구별하지 못하신 것이지요.”

“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정신세계에서 경봉 선사를 압도할 만큼의 큰 깨달음을 얻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님께서는 그 맛에 취해서 현실 세계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알기 쉽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말씀드리면, 어른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으셨습니다.”

선객은 순간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잠시 후에 다시 물었다.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빈승(貧僧)이 어떻게 했어야 되었습니까?”

지광이 봐도 이 선객이 안타까웠다. 열정적인 모습은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듯했는데 선사를 뵙고서도 자신의 공부를 점검받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묻는 대로 생각을 말해주고 싶었다.

“선사님께 문안드립니다.”

지광이 이렇게 선객의 어투를 흉내 내어 말했다. 그러자 선객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그제야 깨달은 듯했다.

“듣고 보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외람되지만 짧은 생각으로는 스님께서 깨달음만 얻으시고 기쁜 나머지 도인을 만나면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요?”

“틀림없습니다. 처사님은 여기에서 얼마나 선사를 모시고 수행하셨습니까?”

“수행이랄 것도 없습니다. 선사께서 밥을 얻어먹을 복이 부족하니 공양주를 1년만 하라고 하셔서 머무를 따름입니다.”

“빈승은 올해로 선방(禪房)에서 보낸 시간이 12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인 옆에서 공양주를 하는 처사(處士)의 견해조차도 따르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혹 선사께 도를 전수(傳受)받으셨습니까?”

“전수라니요. 첫 만남 이후로 독대(獨對)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날마다 즐겁습니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객승은 부럽다는 듯이 합장하면서 말했다.

“참, 또 하나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었습니다. 앞의 예절에 대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할 정도였습니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소상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도는 찰나(刹那) 간에 거래되는 것입니다. 처음에 대면하는 순간에 선사께서 ‘누구냐?’라고 하셨을 그 순간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왜 머뭇거리셨습니까? 아마도 제가 짐작하기에는 그렇게 나오실 줄을 예상하지 못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만 그러셨습니까?”

“맞았습니다. 그렇게 다짜고짜 ‘누구냐?’라고 하실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산문을 들어오면서 선사가 물었을 적에 답변할 내용을 30여 가지나 마련했는데 그러한 질문은 없었으니까요. 참으로 당황해서 어떻게 답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그만 소승의 공부를 보여드릴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한 대 맞았습니다. 그 순간 ‘틀렸구나.’싶었습니다. 전광석화(電光石火)라고나 할까요?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으니까요. 하하~!”

객승은 허탈하게 웃었다. 지광도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바로 회복이 되지 않으면 오래도록 기억 속에 각인이 되어서 자칫하면 자책하는 마음에 이번 생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바로 치유(治癒)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사께서는 무슨 답을 준비하고 왔는지도 알아보시나 봅니다. 하하~!”

“정말 혼비백산(魂飛魄散)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금강신장(金剛神將)이 멱살을 움켜쥐고 흔들어 대는 것과도 같았으니까요. 그 순간에 뭐라고 답을 했어야 그나마 꾸중을 듣는 것이라도 면했을까요?”

객승은 참으로 간절(懇切)하다 못해 애절(哀切)했다.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생겼다.

“속인이 감히 선사들의 법거량(法擧揚)을 어찌 가늠이나 하겠습니까? 다만 제가 스님의 입장이었다고 한다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럼 스님께서 선사가 하신 그대로 제게 물어주십시오.”

객승은 지광이 시키는 대로 물었다.

“누구냐!”

“청천(靑天)에 백학(白鶴)이다!”

우창의 말에 객승은 기겁(氣怯)했다.

“아니, 선사에게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니, 선사로 보이긴 하셨습니까? 그랬다면 뵙자마자 삼배(三拜)를 하셨어야지요. 이왕지사(已往之事) 엎질러진 물이라면 기세(氣勢)라도 올려야 했는데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이미 늦었습니다만, 그렇게 답을 했다면 선사께서는 뭐라고 하셨을까요?”

“아, 착각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어찌 감히 선사의 깊은 도량(道場)을 짐작이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나 허탈해서 그다음의 이야기라도 듣고 싶은 마음이니 처사님이 생각나시는 대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시다면 다시 그렇게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자 객승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청천에 백학이다!”

“이제 보니 땡중이 밥값은 하는군. 방으로 가자~!”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객승은 방바닥을 치면서 탄식했다.

“정말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좋은 도량에서 수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밉보였으니 가능하겠습니까?”

“처사님이 잘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꼭 선사님 곁에서 수행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말씀을 하시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만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한 가지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만.”

“그게 무엇입니까? 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꼭 부탁드립니다.”

“만약에 제가 선사님께 말씀드리면 ‘아직도 안 갔느냐!’고 호통을 치실 것이 분명합니다. 다만 직접 참회하신다면 혹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싶습니다.”

“방법이 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내일 아침 공양하고 나면 선사께서는 아침에 산책을 나가십니다. 그러니까 선실 앞에서 가사(袈裟)를 수하시고 기다렸다가 선사가 나오시거든 큰소리로 외치십시오. ‘선사님을 뵙고 참회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아하~! 그리고는요?”

지광이 그 방법을 알려주고는 다음 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솥을 씻은 다음에 선사께서 나올 시간이 다가오자 객승에게 알려줬다. 객승은 허겁지겁 가사를 드리우고 선사의 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렸다. 그 장면을 다른 행자(行者:예비승려)들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도 지광이 미리 안배해 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늘 가까이 지내던 선사의 시자(侍者)에게도 미리 말을 해 뒀다. 평소에도 장난기가 많은 시자도 재미있어하면서 협조하겠노라고 했다.

선사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표정을 보실 것이고, 모두가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는 표정을 지으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시자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와서 밖의 분위기를 살펴보고는 선사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도량이 떠나갈 듯한 외침이 들렸다.

“멍청이가 선사께 참회합니다~!”

그러자 경봉 선사가 말했다.

“또 뭐냐?”

“선사님 곁에서 한 철만 머무르게 허락해 주시면 매일 열심히 마당을 쓸겠습니다. 간청드립니다~!”

이렇게 말하고 삼배를 올리자, 절은 받지 않고 행자들과 시자를 둘러보는 선사에게 시자가 선사를 보고는 미소를 지으면서 한눈을 찡긋하고는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렇게 해 주시라는 암시였다. 그러자 선사도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말했다.

“있어 봐라~!”

“예~!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사는 이 말에는 답도 하지 않고 시자와 휘적휘적 걸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지광도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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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지광이 우창 등을 보면서 말했다.

“그때 그 객승의 표정을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 아쉽군. 하하하~!”

이야기에 빠져서 정신없이 듣고 있던 우창이 말했다.

“정말로 천지가 방광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놀랍습니다. 그리고 도력(道力)이나 법력(法力)이 실제로 있기는 한가 봅니다. 그 객승이 말을 하지 못하게 호법신장(護法神將)이 목을 조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방자한 방문객을 그냥 보고만 있었을 리가 없었잖겠습니까?”

“지금이라면 과연 신장이 멱살을 움켜쥐었는지 알아볼 수가 있었을 텐데 당시에는 그 정도는 못되었던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네. 하하~!”

“정말 형님은 신기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개안(開眼)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12년이나 참선을 한 스님이 오히려 형님의 가르침을 받는 것도 통쾌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까?”

“정신세계의 저울 눈금은 속일 수도 없을 만큼 정교하니까. 하하하~!”

“한편 생각해 보면 그러한 형님을 알아보고 속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르침을 청한 것도 예사롭지는 않습니다. 그 후로도 함께 대화를 많이 나누셨겠지요?”

“물론이지. 특히 그 스님은 공양주 출신이라서 국수를 기가 막히게 잘 삶았거든. 수행하는 화상들은 별미로 국수를 좋아하는데 닷새에 한 번은 그 선승의 기술을 빌렸다네. 밥을 짓는 것도 쉽지 않으나 국수를 삶는 것은 더 어려워서 나는 아무리 해도 잘되지 않았거든.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냥 물이 끓으면 국수를 넣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어렵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가 대충은 배웠으니 언제 기회가 있으면 잘 삶은 국수가 무엇인지를 보여드림세.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런데 경봉 선사와 형님은 직접 마주하여 대화하신 적은 없습니까? 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드물지만 있기는 했지, 한번은 출가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네. 시자가 내 말을 듣고는 환영하면서 선사를 뵙도록 주선했지.”

“오호~! 그래서요? 그 말씀도 들려주시지요. 궁금합니다.”

“선사를 뵈었더니 ‘왜 출가하려고 하느냐?’고 물으시더군. 그래서 답했다. ‘도를 닦고 싶습니다.’라고.”

“우와~! 선사의 앞에서 그렇게 말하셨단 말이지요? 참으로 대단하신 형님입니다. 하하~!”

“그러자 선사께서 말씀하시더군. ‘도를 닦는 것은 어디에서나 가능하니 꼭 출가할 필요가 없다.’라고 그래서 퇴짜를 맞았지 뭔가. 하하하~!”

“아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나도 그렇게 말하면 ‘그래라’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인연이 거기까지였던가 보네. 나중에 시자에게 물어봤지. 그때 뭐라고 했어야 허락을 하셨겠느냐고 말이지.”

“아, 그래서요? 시자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답을 잘했어야지 그렇게 답을 하니까 안 되었다잖은가. 그래서 어떻게 답을 해야 통과했겠느냐고 물었더니, ‘도를 깨닫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야만 한다는 거야. 그게 무슨 차이인지 당시에는 몰랐지. 하하하~!”

“그건 같은 말이 아닙니까?”

“나도 시자에게 따져 물었지. 그게 무슨 차이냐고. 그랬더니 시자가 말하더군. ‘도를 닦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경험을 통해서 이뤄져야 하지만 도를 깨닫는 것은 모든 방황을 끝내고 마지막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더군. 아우님도 이해가 되나?”

“정말이지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면 같은 의미로 알았을 뻔했습니다. 시자의 말을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됩니다. 과연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추상(秋霜)같고, 종이 한 장과 같습니다. 닦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라니요. 정말 선사의 날카로움이 느껴집니다. 하하하~!”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까 출가를 허락하지 않으신 뜻은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산중에서 수행하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통찰(洞察)하셨던 게지. 그러니까 시자의 말대로 ‘도를 깨닫고 싶습니다.’라고 답을 했더라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을 알았지. 하하하~!”

“그렇다면 지금은 출가할 마음이 아예 없으십니까?”

“겉에 입은 옷이 중요하지 않은데 아무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렇게 자유롭게 천하를 유람하는데 승복보다는 속인의 복장이 더 편한 것을 알고 있다면 말이네. 하하하~!”

“과연 형님이십니다. 하하하~!”

“하루는 시자가 와서 ‘선사께서 찾으신다’기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뵈러 갔었지.”

“오호~! 큰 가르침을 주시려나 봅니다.”

“선사를 뵈었더니, ‘요즘 산기(山氣)와 노느라고 재미있느냐?’고 하시는데 깜짝 놀랐지 뭔가. 선사께선 이미 다 손바닥처럼 보고 계셨던 거였어.”

“역시 대단하시네요. 그래서요?”

“기감(氣感)의 수련을 잘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큰 덕을 베풀어주라고 하시더군. 그래서 일복은 많이 타고난 줄을 알았지. 그러시면서 법명(法名)을 지어주셨는데 그게 바로 지광(地廣)이었다네. 하하하~!”

“과연 도인은 꿰뚫어 보시는 혜안이 있으셨나 봅니다. 무슨 뜻인지요?”

“지리(地理)의 이치를 깨달아서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라는 뜻이지 뭐겠는가? 그래서 저마다 주어진 역량(力量)이 있고, 그것을 찾아서 즐기면 되는 것이라는 이치를 그때 선사께서 말씀해 주셔서 깨달았다네. 하하하~!”

“그런데, 자연이 방광한 것에 대해서도 좀 여쭤보지 않으셨습니까?”

“왜 안 물었겠나. 당연히 그에 대해서 질문을 했지.”

“아, 그러셨군요. 당연히 그러셨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선사께서는 뭐라고 하셨는지요?”

“사람이 도를 깨달으면 천지가 먼저 안다고 하시더군.”

“예? 천지에도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참으로 중요한 이치를 그 말씀 한마디로 깨닫게 되었다네.”

“뭘 깨달으셨는지요?”

“홀로 있어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

“과연 그렇겠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논리적(論理的)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지 싶습니다. 그래서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하겠지요?”

“그렇군, 그 말이 가장 합당해 보이네. 불가사의이지. 하하하~!”

지광의 말을 듣고 우창은 감동했다. 그와 같은 인연들이 있어서 오늘의 지광이 되었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람과 인연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형님을 만난 것은 아마도 전생에 죽을 사람을 많이 구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디 그 가르침을 잘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르침을 곁에서 배우게 되는 것도 고맙습니다.”

우창이 감동해서 지광에게 합장하는 모습을 본 염재와 거산도 같이 합장하고 마음 깊이 감사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연을 만났을 적에 더욱 열심히 배워야 하겠다는 다짐도 저절로 하게 되었다. 그것을 본 지광도 미소를 지었다.

“메아리는 소리를 따른다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