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제30장. 정신(精神)/ 15.갑진일주(甲辰日柱)

작성일
2021-10-1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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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제30장. 정신(精神) 


15. 갑진일주(甲辰日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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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용신(用神)은 정화(丁火)가 되겠네.”

춘매의 명쾌한 음성이 방안을 울려 퍼졌고, 모두 숨을 죽이고 이야기에 집중하느라고 정적(靜寂)이 감돌았다. 춘매가 채운의 사주를 가리키면서 말이 이어졌다.

333 채운

“동생의 사주는 인월(寅月)의 갑진(甲辰)으로 태어나서 목기(木氣)가 왕성하여 왕희순세(旺喜順勢)의 이치에 따라서 왕성한 목의 기운을 화로 흘려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까닭에 자신의 청기(淸氣)를 밖으로 내어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하겠으니 가정에서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살아가기에는 그 마음에 흡족하지 않을 거야. 호호~!”

우창은 깜짝 놀랐다. 춘매의 공부가 어느 사이에 이렇게 깊어졌나 싶어서였다. 그야말로 일취월장(日就月將)하는 춘매였다. 풀이가 이어졌다.

“그래서 집을 떠나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찾아볼까 하다가 인연에 따라서 학문의 길로 찾아들었다고 하겠는데, 과연 그렇게 마음을 먹었던 것은 맞아? 이렇게 물으면서도 내가 떨리는 것이 느껴져? 아이고, 왜 이렇게 떨리지. 호호호~!”

사실 춘매가 혼자서 풀이를 해 본 사주야 몇몇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잘 모르는 사람의 사주를 더구나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설명하려니 당연히 긴장되었다. 그냥 사주를 풀이한다는 마음만으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시작을 해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생각과 현실의 차이를 직접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언니가 말씀하신 그대로네요. 부친은 집안에 곱게 있다가 좋은 신랑을 찾아 줄 테니 때가 되면 혼인하라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귀먹어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을 견디고 조강지처(糟糠之妻)가 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자유롭게 살려고 하면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길을 찾다가 술수의 학문으로 방향을 잡은지도 이제 3년째에요. 물론 소득도 있었지만 헛된 시간을 보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호호호~!”

채운이 소탈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 주자 춘매도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육친의 인연에 대해서 풀이를 해 보기로 했다.

“다음은 가족의 인연에 대해서 풀이를 해 볼게. 부친은 나를 존중할 마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밖으로만 나돌려고 하는 마음만 있고 안정적으로 부도(婦道)를 닦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하셨다고 보는 것은 연간(年干)의 부친 자리에 있는 글자가 을(乙)이라서야.”

“와우~! 부친의 마음이 바로 을(乙)이었다는 설명에 소름이 돋았어요. 어쩌면 그렇게 대입할 수가 있죠? 항상 손익을 따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귀에 못 박힐 정도로 들었잖아요. 신기해라. 호호호~!”

“신기하다고 하니까 내가 도리어 신기하네. 호호호~!”

“그렇다면 을(乙)이 사주의 어디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 해당하는 사람은 모두 그와 같은 현상이 생겨난다고 해도 되는거에요?”

“그야 모르지, 모두가 다 이와 같다고 단언을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일리가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에는 무시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겠네.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말을 하면서 결과도 그렇다고 하니까 내가 다 놀랍다니까. 호호호~!”

“그럼 어머니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가 있겠네요? 어떻게 해석하실지 참으로 궁금해요. 풀이해 주세요.”

“어머니는 연지(年支)의 사화(巳火)잖아. 사(巳)에는 병(丙)이 있으니까 동생의 모친께서는 호탕하고 여장부(女丈夫)같으시네. 부친도 모친에게는 별로 대항을 할 마음이 없고 오히려 남필종부(男必從婦)라고 하겠네. 자신에게 거슬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혼을 내고 자신이 복종해야 할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따르는 마음을 갖고 있으실까?”

“맞아요. 저도 어머니가 아버지의 주장을 억누르고 나가보라고 해서 오히려 쉽게 나올 수가 있었거든요. 이제 보니까 어머니의 성향이 그러셨구나. 정말 재미있어요. 호호호~!”

“그렇다면 형제자매(兄弟姉妹)의 인연도 살펴볼까? 인중갑목(寅中甲木)이 보이니까 형제들도 동생과 닮았구나.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고, 그 뒤에는 모친의 후원이 강력한 영향을 줬다고 봐도 되겠다. 그렇지?”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춘매가 오히려 확정적으로 물었다.

“맞아요. 언니의 말씀이 다르지 않아요. 오빠 둘이 있지만 모두 엄마의 뜻에 따라서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거든요.”

“다음은 배우자인데 아직 혼인은 하지 않았으니까 확인을 하기는 불가능하니까 그냥 해석만 할게.”

“궁금해요. 어떤 인연이 될까요?”

“아니, 그보다도 나름대로 공부를 한 내공이 있으니까 스스로 풀이를 해 보는 것은 어때? 뭐든 스스로 풀어봐야지. 호호호~!”

“그럴까요? 그동안에 배운 공부 중에는 하도 말이 안 되는 것을 많이 배워서 어떻게 풀이해야 할 것인지가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과거에 배운 것을 모두 지워버리고 새롭게 그림을 그려야 하잖아요. 이런 것을 생각하려니까 질서정연하게 말을 하지 못하겠어요.”

“아, 그렇겠구나. 그럼 내가 계속 이어서 풀이할게. 잘 들어 뒀다가 나중에 공부가 되면 겸해서 확인해 보렴.”

춘매는 채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으로 무척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시간과 금전적인 것을 허비하면서도 올바른 공부를 못하고 방황한 채운을 보면서 자신은 그야말로 곧바로 오행문(五行門)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고마워서 문득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도 춘매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한다는 의미였다. 춘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지(日支)의 진토(辰土)를 보면 계을무(癸乙戊)의 세 천간(天干)이 있잖아. 그러니까 남편도 그러한 사람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많은 거야. 우선 계(癸)를 보면 무엇이든 담아두려는 마음과 을(乙)을 보면 또 꼼꼼하게 따지는 거야. 그리고 무(戊)는 약간 고독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러면서도 남편의 관점으로는 아내가 갑목으로 편관(偏官)이기 때문에 공처가(恐妻家)의 의미도 포함하겠는걸. 동생이 어머니를 닮아서 호걸이네. 호호호~!”

“아직 혼인은 하지 않았으나 의미는 느껴져요. 남편이라는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하고 간섭하면 그것을 듣고 있을 것으로는 생각이 되지 않아요. 아마도 결혼을 하게 되어도 그렇게 되지 싶어요. 호호호~!”

채운이 재미있다는 듯이 즐겁게 웃었다. 이제는 풀이가 아니라 놀이가 되어버린 듯한 채운의 사주풀이가 되었다. 흥이 오른 춘매가 또 말했다.

“자녀는 외조부(外祖父)를 빼다 박았네. 잔소리깨나 하겠다. 호호호~!”

“왜 그렇죠? 을(乙)과 묘(卯)의 본질이 같아서인가요?”

“물론이야. 이 정도가 내 수준이야. 이제 동생도 조금만 공부가 되면 그동안 배워놓은 것과 잘 엮어서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될 것이니까 그때는 나에게도 많이 가르쳐줘.”

“그렇게만 되면야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언니는 그사이에 잠만 주무시려고요? 당연히 계속 앞서서 안내해 주셔야죠. 귀한 말씀 잘 들었어요. 고마워요~!”

“나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다는 것만 깨닫게 되네. 더 자세한 것은 이제 스승님께 들어봐야지? 스승님 부탁해요. 호호호~!”

춘매가 최선을 다해서 풀이했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풀이하는 것은 좋은 경험을 한 셈이다. 우창도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는 보충해서 설명을 거들었다.

“갑진(甲辰)은 편재(偏財)가 편재(偏財)를 본 형국(形局)이지. 채운도 십성은 알지?”

“네, 다행히 그건 알아요. 그대로 말씀해 주셔도 되겠어요. 호호호~!”

“갑(甲)의 천성은 역동적(力動的)으로 활동하는 것이니까 항상 필요한 것은 인성(印星)이야. 인성이 없다면 마음만 움직이고 싶을 뿐이고 실제로 움직일 연료(燃料)가 없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지. 그런데 진중계수(辰中癸水)는 충분히 움직일 수가 있도록 힘이 되어 줘서 거침없이 활약(活躍)할 수가 있으니 갑진으로 태어난 사람의 심성은 이와 같다고 봐도 되겠지?”

“아하~! 그렇겠네요. 그렇다면 60간지의 심성을 이해하게 되면 기본적인 사람의 성향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겠네요?”

“물론이지. 여기에다가 진중을목(辰中乙木)은 갑(甲)의 나대기만 하는 것을 딱 그만큼만 잡아주게 되니까 이것도 음양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지. 그래서 내심으로는 치밀한 면도 있어서 허투루 일을 벌여서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처하지는 않는다고 봐야겠네.”

“정말 오묘하네요.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멋져요. 그런데 을목(乙木)은 겁재(劫財)인데 어떻게 갑목의 나대는 것을 잡아줄 수가 있죠?”

채운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우창이 잠시 생각하고는 설명을 이었다.

“잡아준다고 하는 것은 결과를 염두에 둔다는 의미지. 직접적으로 갑목을 공격해서 엄히 다스린다는 뜻은 아니란 말이지. 갑목이 설쳐댄다고 한다면 갑진은 을목으로 인해서 결과를 생각하게 된다는 의미라네.”

우창의 부연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된 채운이 말했다.

“과연, 오행의 공부가 이와 같음을 이제야 깨닫다니 안타까울 따름이죠. 그렇다면 진중무토(辰中戊土)가 하는 일은 뭐죠?”

“무(戊)는 갑(甲)에게는 편재(偏財)이지만 본질적(本質的)으로는 편인(偏印)이야. 그러니까 편인이 편재의 역할을 하는 셈이지. 무엇보다도 시키는 일이니까 편재의 일을 해야 하겠지? 그래서 통제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위치가 일지(日支)가 되면 자신의 몸이거나 혹은 배우자가 그 대상이 되는 거지.”

“아, 그렇다면 자신이나 배우자에 대해서 통제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씀인가요?”

“물론이지. 그래서 때로는 몸을 학대하기도 하고, 그것은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을 하면 기어이 끝을 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야. 이것은 배우자에게도 해당이 되지만 남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말을 듣게 하려는 마음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가정은 파탄(破綻)에 이를 가능성도 있어서 쉽게 혼인을 할 자신이 없는 거야. 왜냐면 대부분의 부모는 여필종부(女必從夫)가 기본이라는 생각으로 딸을 교육하기 때문이지.”

“어머~! 놀라워요. 호호호호~!”

갑자기 우창의 말을 듣고 있던 채운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어쩜 스승님의 말씀이 제 속마음을 콕콕 찌를까요? 호호호호~!”

“재미있지?”

“재미있다마다요. 일주(日柱)의 의미는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네요. 갑진(甲辰)의 백호대살(白虎大殺)은 어디 가고 강력한 채운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샘솟아요. 어쩜 좋아요~! 호호호호~!”

“백호대살?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하하하~!”

“호식살(虎食殺)이라면서요? 호랑이가 물어간다고요. 호호호~!”

“아니,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통쾌할 일인가?”

채운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으면서 말하자 우창도 재미있어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채운이 설명했다.

“스승님께서 왜 오행원을 세우셨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어요. 그리고 명학(命學)의 언저리에 잔뜩 끼어있는 거미줄과 오만 잡동사니들을 일소(一掃)하는 이치를 처음으로 접해 봤어요. 그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 통쾌했죠. 그동안 제 팔자를 볼 때마다 앙금처럼 바닥에 깔려있던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삼형(三刑)에 백호대살에 목다화식(木多火熄)까지 겹친 데다가 관살(官殺)이 없는 것도 겸하고 있어서 혼인할 남편도 없어서 이번 생은 망쳤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었으니까요. 연약한 여인에게 이렇게 혹독한 말을 한두 사람도 아니고 보는 곳마다 같은 말을 한다면 아무리 여장부로 태어난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도 어렵잖아요. 호호호~!”

“오호~! 그런데 오늘 그러한 근심이 바람결에 구름처럼 날아가 버렸단 말이지? 그리고 오히려 상쾌한 마음조차 들어서 그렇게도 통쾌했던 것이로군.”

“왜 아니겠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만났던 많은 스승님은 하나같이 백호대살이 있으니까 호랑이가 물어 죽인다는 말만 했지 편재가 편재를 봤으니 네 마음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설령, 백호대살이 있어서 호랑이가 물어간다고 하더라도 말이지. 평생을 ‘나는 호랑이 밥이 될 운명이라네.....’하면서 살다가 호랑이를 만났을 적에, ‘그럴 줄 알았어....’하면서 죽는 것과, 평생을 자유롭게 맘대로 살다가 호랑이를 만났을 적에 ‘어? 결국은 호랑이 밥이 되는 건가?’라고 하면서 죽는다면 두 사람의 삶에서 누가 더 행복했을까?”

“예? 그렇게도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었네요. 당연히 즐겁게 살다가 죽는 것을 선택하겠어요. 호호호~!”

“그러니까 말이야. 그렇게 될 리야 없겠지만 비록 그렇다고 한들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호랑이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살아야 할 필요가 있겠느냔 말을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단 말이지.”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채운은 말없이 양손을 번쩍 들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누가 봐도 그 의미를 알 것 같아서 제자들도 미소를 지으면서 채운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스승님의 자상한 해석에 감동하면서 자신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는 희망이 뒤섞인 눈길이었다.

“스승님, 어차피 살아갈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도록 처방한다면 또한 공덕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내일의 삶이 어떠할지는 모른다고 할지라도 오늘 이 순간을 마음 편안하게 보낼 수가 있다면 또한 좋은 일이겠다는 생각 말이에요. 왜냐면 근심 어린 마음으로 내 팔자를 생각하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왔거든요. 이러한 홀가분한 느낌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지요.”

채운의 마음을 우창은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러한 기분을 만끽하도록 잠시 가만히 내버려 뒀다.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채운이 말했다.

“참, 스승님.”

“그래.”

“스승님, 정리 삼아서 나머지 궁금했던 것도 여쭐게요.”

“뭐든~!”

“겁재(劫財)가 재물 주머니에 구멍을 내고 있어서 돈이 모이지 않게 되고 그래서 빈곤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은 어떻게 지워버리면 될까요?”

“아, 연간(年干)의 을(乙)과 시지(時支)의 묘(卯)를 말하는 것이구나. 그야 먹고 남는 재물이 있으면 이웃과 나눌 줄도 안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우왕~! 정말 멋져요~~!!”

“같은 말의 다른 느낌이지? 하하하~!”

“자기만 잘살겠다는 사람이 보는 눈으로는 재물을 훔치는 도적으로 보이는 겁재도 더불어 잘 살겠다는 사람이 보면 보시행(布施行)이 된다는 이치를 새롭게 깨달았어요.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쓰레기도 되고, 아름다운 연꽃이 되기도 하네요. 어쩜 여태까지 이러한 관법(觀法)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속을 태우면서 살아왔을까요. 참으로 답답했었네요.”

“재물의 의미는 뭘까?”

우창이 잠시 의미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짐짓 물었다.

“재물은 쌓아놓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쌓아놓으면 어떻게 될까?”

“남들이 부자라고 부러워하겠지요.”

“자신은?”

“남들이 부러워하니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뿌듯하지 않을까요?”

“과연 그럴까?”

“스승님께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으신다는 표정이시네요. 그렇다면 그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재물이란 무엇이죠?”

“재물은 번뇌(煩惱)야.”

“예? 부처님 같은 말씀이시네요? 그건 동의하기 어려운걸요.”

“동의를 못하더라도 할 수 없지. 그게 정답이니까. 하하하~!”

“그렇기는 합니다만, 이해를 시켜주세요.”

“가령 속담을 생각해 보면, ‘부유해서 매년 일천 석(石)을 거두는 부농(富農)은 걱정이 천 가지’라는데 왜 그럴까?”

우창이 이렇게 묻자 눈을 깜빡이던 채운이 말했다.

“그것은 쌓아놓은 재물로 인해서 행여 도둑이라도 들까 봐서 두려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만 석을 거두는 거부(巨富)는?”

“당연히 걱정도 만 가지가 되겠네요. 그런데 재물이 많으면 그 마음에 든든하고 여유로운 것이 아닐까요? 스승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에 대해서 명쾌한 말씀이 필요해요. 호호호~!”

“걱정을 멋있게 표현하면 번뇌가 되는 거야.”

“그건 이해가 되었어요. 왜 번뇌가 많은 것인지를 설명해 주세요.”

“채운은 살아오면서 거금(巨金)을 소유해 본 적이 있어?”

“없죠. 그런 복이 있어야 꿈이라도 꾸죠. 호호호~!”

“뭐든지 겪어봐야 확연(確然)하게 깨닫게 되는데 상상만으로 깨닫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래도 상상으로라도 깨닫고 싶어요. 그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다행히 인간에겐 경험하지 않아도 미뤄서 짐작하는 능력이 있다네.”

“아하~! 맞아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죠?”

“그렇지. 가령 산속에서 약초를 캐던 사람이 커다란 황금을 발견했다고 상상해 볼까?”

“우와~! 얼마나 신이 날까요?”

“그렇겠지?”

“예? ‘그렇겠지’라니요? 그럼 아니란 말씀인가요?”

“잠시는 그렇겠다는 뜻이라네. 그다음에는 무슨 생각이 들까?”

“집도 짓고, 하녀도 두고 호화로운 마차도 사야죠.”

“그다음엔?”

“얼른 집으로 갖고 가야죠.”

“왜?”

“누군가 황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 빼앗으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황금을 몸에 지니고 집으로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자신이 황금을 갖고 있다는 티를 내면 안 되겠어요. 혹 눈치를 채면 달려들어서 빼앗거나 안 주려고 하면 칼을 들고 위해(危害)를 하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두려움은 두려움을 부른다는 의미는 알고 있나?”

“맞아요. 한 번 두려운 생각이 일어나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나기 마련이에요.”

“용케 그 황금을 팔아서 큰 집을 짓고 마차도 샀어. 그러면 모두 해결이 되었을까?”

“모르겠어요. 참으로 상상만으로 느낀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겠네요. 호호호~!”

우창은 잠시 틈을 두기 위해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가깝게는 친척들과 멀어지게 되는 거야.”

“왜요?”

“돈을 얻으러 오는 것이 두렵거든. 내 행복이 무너질 것만 같은 마음이 만들어 낸 부작용(副作用)이지.”

“아, 그건 그럴 수도 있겠어요.”

“담장이 점점 더 높아지고, 끝에는 뾰족한 쇠창살을 박아놓지. 왜 그럴까?”

“밤에 잠자고 있을 때 도둑이 침입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요?”

“자, 이렇게 두려운데 두 발을 뻗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을까?”

“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혹시 도둑인가 싶어서 오던 잠도 싹 달아나지 싶어요.”

“잠을 깊이 들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환상(幻想)과 환청(幻聽)이 들리기도 하겠네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 봤을 적에 황금을 줍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심리적(心理的)인 관점에서 생각해 볼까? 황금을 줍기 전의 마음과 주운 다음의 마음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행복할까?”

“유물론(唯物論)으로 말한다면 줍고 난 다음이 훨씬 행복하겠지만, 유심론으로 말한다면 당연히 줍기 전의 아무것도 없었을 때가 더 마음이 편했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자, 다시 묻자. 재물은 무엇일까?”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어요. 재물은 번뇌에요~! 호호호~!”

“무자식이?”

“상팔자에요~!”

채운도 나름대로 살아온 나날이 있는지라 우창이 앞의 말을 하니 뒷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라서 답했다. 그러자 우창이 또 물었다.

“쌓인 재물이 없으면?”

“번뇌도 없어요.”

“재물이 쌓인 높이만큼?”

“번뇌도 같이 쌓여요~!”

“중생(衆生)은?”

“재물을 창고에 가득 쌓아 두고 싶어해요~!”

“도인(道人)은?”

“재물에 연연하지 않아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우창은 말귀를 알아듣는 채운이 기특했고, 채운은 자신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뒤집어서 청소해 주는 우창의 설명에 마음이 밝아졌다. 다른 제자들의 마음도 또한 채운과 같았음은 두말을 할 나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