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제30장. 정신(精神)/ 10.궁리(窮理)하는 방법

작성일
2021-09-20 06:46
조회
1130

[328] 제30장. 정신(精神) 


10. 궁리(窮理)하는 방법


========================

우창이 잠시 생각에 잠긴 것을 본 제자들이 가만히 기다렸다. 뭔가 중요한 말이 나올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에 비로소 답했다.

“상념(想念)을 수(水)라고 한다네.”

우창이 이렇게 말하자 채운이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지식은 상념과 연결이 되는 건가요?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지식을 알고 나니까 상념이 수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쉬워요.”

“오행(五行)에는 음양(陰陽)이 있나?”

“물론이에요. 수에는 임수(壬水)와 계수(癸水)가 있으니까요.”

채운이 시원스럽게 얼른 답했다. 그러자 다시 우창이 말했다.

“양수(陽水)는 위로 흐르고, 음수(陰水)는 아래로 흐른다네.”

“예? 물은 다 같은데 수(水)는 다른 것인가요? 양수나 음수나 모두 물이라고 하지 않나요?”

“무슨 뜻이지?”

“양수인 임(壬)은 바다와 같은 물이고, 음수인 계(癸)는 우물이나 하천과 같은 형태의 물이라고 배웠거든요.”

“아, 음양을 대소(大小)로 보면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고,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수를 모두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겠는걸.”

“그럴 줄 알았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뭔가 재미있는 말씀이 나올 것만 같아서 기대되네요. 호호호~!”

채운이 다시 물었을 때 함께 한 제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임과 계가 음양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우창이 그들의 수준이 이와 같음을 알고서 천천히 말했다.

“자, 채운의 생각으로는 음이 먼저일까? 아니면 양이 먼저일까?”

“그야 음선양후(陰先陽後)니까 음이 먼저죠. 계(癸)에서 임(壬)이 나왔다고 하면 될까요? 원래 샘물이 흐르고 또 흘러서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또 바다가 되니까요.”

“오호~! 그것도 재미있는 설명이구나. 아주 좋아. 하하하~!”

“참, 선후(先後)를 말씀하시니까 문득 궁금해졌어요. 스승님께서는 닭과 달걀은 어느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세요?”

채운이 벌써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는지 우스갯말도 꺼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하는데 툭 던지는 농담은 활력소가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우창에게 곤란한 질문을 해서 어떻게 반응이 나오는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것도 예전에 기문도사의 문하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모두 미소를 짓고 우창의 답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기다렸다.

“그건 간단한 일이군. 당연히 닭이 먼저인 것을 몰라서 묻는 건가? 하하하~!”

“그러니까요. 닭이 먼저라고 하신다면 닭은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여쭤야 하는데 어떻게 답을 하실 건가요?”

“닭이 달걀에서 나왔다고 하게 되면 오류(誤謬)가 되는 것이라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 그러니까 질문이 틀린 것이라네.”

우창이 하는 말을 듣고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보통은 ‘닭이 먼저’라고 하는 답에는 ‘달걀이 없이 어떻게 닭이 생겨났느냐?’는 말로 막아야 하는데 그것이 오류라고 명쾌하게 말하는 우창의 말에 모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채운이 다시 물었다.

“어서 그 오류를 벗어날 수가 있는 답이 궁금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실로 최초의 닭은 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서 하는 말인 까닭이지.”

“와우~! 정말 지식의 창고는 아무리 넓어도 제게는 너무나 좁은 것이었네요.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도 새로운 지식을 만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니까요. 아직 답은 듣지 않았으나 그런 느낌이 팍~ 들어요. 그래서 최초의 닭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조물주(造物主)!”

“예? 조물주(造物主)라고 하신 건가요? 조물주가 닭을 만들었어요? 그건 처음 들어요. 그 연유를 설명해 주세요.”

채운을 포함한 제자들의 머리에는 그 해답이 궁금하다는 것으로 가득 차서는 모두 우창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자, 채운에게 물어보겠네. 여기 진흙이 한 덩어리 있다고 하세. 이것으로 계란이나 닭을 만들어야 하네. 그렇다면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그야 계란을 만들어야죠.”

“왜?”

“계란을 만들면 그 안에서 닭이 부화(孵化)될 것이니까요.”

“음.... 조물주의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군. 하하하~!”

“예? 왜죠?”

“조물주가 일할 머리가 없어서 계란을 만들어서 삼칠일(三七日)을 알을 품고 있어야 한단 말이잖아?”

“어? 그렇게 되나요?”

“당연하지. 알은 품어야만 부화가 되니까 말이야.”

“와~! 정말이네요. 그럼 닭을 만들겠어요. 그러면 닭이 알을 낳아서 스스로 자기 알을 부화할 것이니까요.”

“옳지~!”

“신기해요. 스승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괜히 우스개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안에도 이치가 있었잖아요? 어떻게 스승님은 그런 답을 구하셨어요?”

“지식(知識)에다가 사색(思索)을 얹어서 얻은 것이야. 이것이 바로 수(水)의 역할이고 수생수(水生水)의 이치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겠네. 하하하~!”

“정말 놀라워요.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에서도 진리를 찾아내시다니요. 앞으로 공부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깜깜한 머리에 밝은 등불을 밝히는 것은 틀림없겠다는 믿음이 무럭무럭 생겨요. 호호호~!”

“자, 여담(餘談)을 즐겼으니 또 공부해야지?”

“여담도 공부로 만드는 분은 처음이에요. 정말 감탄했어요.”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시간도 소중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시시한 이야기조차도 진리를 담으면 더욱 알찬 공부가 될 테니까 말이네. 하하하~!”

“과연~! 스승님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공감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채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아마도 심경(心境)에서 격한 감동이 일어났던가 싶은 우창은 짐짓 모른 체하고서 다시 이야기를 풀어갔다.

“닭이 음이고 알이 양이듯이 계(癸)가 있고 나서 임(壬)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네.”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운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계란이 왜 양이죠? 음양으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것부터 궁금해요. 귀찮으시겠지만 설명해 주세요.”

“공부에 귀찮은 것은 없다네. 알에는 폭발하는 기운이 내재(內在)되어 있는 까닭에 양이라고 보는 것이라네. 불의 기운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지.”

“정말요? 그게 무슨 뜻인지.....”

“어미 닭이 알을 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야 꼼짝도 안 하고서 알을 품죠.”

“왜 꼼짝을 하지 않지?”

“따뜻하게 보온(保溫)을 해 줘야 병아리가 태어나니까요.”

“맞아, 그것이 바로 화생화(火生火)야.”

채운은 다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미 닭이 알을 품는 것이 화생화라니 이것은 또 무슨 오행법(五行法)인가 싶어서였다.

“무슨 뜻이에요? 불이 불을 생(生)하는 이치도 있었던 건가요? 참, 좀전에는 수생수라고도 하셨어요. 그냥 흘려들었는데 화생화를 말씀하시니까 그것도 생각이 나네요. 수생수는 지식에서 지식이 발생한다는 의미인가요?”

“물론이지. 그리고 화생화는 계란이 불인데 어미 닭이 불기운을 넣어줘서 병아리가 태어나니까 화생화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듣고 보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렇지만 제자 혼자서는 아무리 궁리해도 그러한 생각은 꿈속에서조차도 할 수 못하죠.”

“스승은 뒀다가 뭐할 건가? 이렇게 자꾸 물어서 스승 속에 들어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빼내야 제자 노릇을 잘하는 것인 줄을 아직 몰랐던 게지. 하하하~!”

우창은 채운과의 대화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답답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반응이 맘에 들었고, 있는 그대로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경쾌(輕快)해서 좋았던 까닭이다. 채운이 다시 물었다.

“제자 노릇을 아무리 잘하고 싶어도 스승님이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항상 그 자리를 맴돌게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면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하하~!”

“그렇다면 모든 알은 전부 양(陽)인가요?”

“옳지~! 맞아.”

“신기해요. 그런데 왜 알은 동그랗게 생겼나요?”

“그건 조물주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예? 제자가 잘못 물었나요? 죄송해요.”

“아니, 웃자고 한 말인데, 죄송하다니 민망하잖은가. 하하하~!”

“그렇죠? 제자가 잘못 물은 것은 아니죠?”

“당연하지. 묻는 것에는 잘못이 없어. 다만 답을 하는 사람이 잘못 말할 수는 있더라도 말이야.”

“정말요? 잘못 물었다고 혼난 적이 하도 많아서 미리 이렇게 물어도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곤 했는데 스승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까 순간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호호호~!”

“가령, 세 살 먹은 아기가 ‘엄마,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주는 거야?’라고 한다면 그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가 있어?”

“그럴 수는 없죠. 나이를 먹어가면서 차차로 가르쳐야죠.”

“그것 보게. 묻는 것에 잘잘못을 논한다면 진화(進化)는 그만큼 늦어질 따름이라네.”

“오늘 스승님을 뵙고 지식에 대해서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조금도 거침이 없으신 답변에 더욱 희망이 보여요. 세상의 무엇을 물어도 답을 얻을 수가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서요.”

“각설(却說)하고, 알이 둥근 이유는 열기가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폭발하지 않도록 배려한 조물주의 작품이라네.”

“열기가 들어있는 것과 둥근 것이 의미가 있었던 거에요?”

“당연하지. 그렇기때문에 모든 알은 둥글게 생겼지. 불을 잘 보관했다가 순식간에 폭발해야 하는 것이라네.”

그러자 채운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것을 본 우창이 말했다.

“뭐든 묻게. 궁금한 것이 있을 적에 물으면 가장 빠른 효과를 보는 법이니까 말이네.”

“저, 갑자기 고환(睾丸)이 떠올랐는데 이것을 여쭤도 될지 민망해하실까 봐 망설였는데 그 틈을 놓치지않고 물어주시니 말씀드려요. 호호호~!”

“질문에는 기탄(忌憚)이 있으면 안 된다네. 물론 음욕(淫慾)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학문을 위해서 묻는데 민망할 일이 있을까? 고환이 왜 밖에 매달려 있는지는 알고 있나?”

“예?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조물주의 뜻이겠죠. 호호호~!”

채운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계면쩍게 웃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했다.

“남자를 생각하지 말고 소와 말이나 개를 생각하면 민망할 일도 없어. 소의 불알을 생각해 봐. 이름이 불알이라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듣고 보니까 궁금해요. 불알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불의 알’이라는 뜻은 아닐까요?”

“옳지~! 생각하니까 조물주의 뜻도 알 것 같지 않아? 사실 간지(干支)를 배운다는 것도 알고 보면 주물주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에 불과할 거야.”

“정말이네요. 이름은 명학(命學)을 공부한다고 해놓고, 실은 자연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었네요. 우둔한 제자도 이제야 왜 알이 불인지를 알겠어요. 그래서 닭은 음이고 알은 양이었군요.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었네요. 참으로 재미있는 공부에요. 호호호~!”

“재미를 알고 공부하면 한 없이 재미있는 오행놀이라네. 하하~!”

“그런데, 예전에 어떤 언니가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남자는 불완전한 존재여서 내장인 고환이 밖에 매달려 있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채운은 내친 김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우창에게 물었다. 우창도 처음 듣는 말이라서 어리둥절 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그야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군. 형태로 본다면 여체는 완벽한데 남체는 뭔가 불완전해 보인다는 말이잖은가?”

“맞아요.”

“미관상(美觀上)으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처음 들어 보지만 일리가 있어서 말이지.”

“아, 일리가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라는 뜻인가요? 정말로 남자는 신체적으로는 불완전한 존재가 맞는 건가요?”

“그야 남자의 탓이겠어? 조물주의 탓이겠지. 하하하~!”

“에구~ 그렇긴 하죠. 남녀의 몸에 우열(優劣)을 가린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고환이 밖에 있는 의미가 궁금하다는 말씀이죠. 호호~!”

“불의 알을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생각해 봐도 모르겠어요.”

“겨울이 따뜻하면 여름이 어떻다고 하지?”

“그건 들어봤어요. 겨울이 춥지 않으면 여름에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죠. 다만 왜 그런지는 몰라요.”

“그건 압축(壓縮)의 의미라네.”

“예? 처음 들어요. 압축이 뭐죠?”

“고생스럽게 자란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많을까, 아니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면서 비단옷을 입고 자란 사람이 더 많을까?”

“부모의 영향을 제외한다면 고생하면서 자란 사람이 훨씬 강인(强忍)한 생명력이 있어요.”

“이제 고환을 밖에 매달아 둔 이치를 알겠어?”

“예? 그....러...니....까... 차갑게 하기 위해서인가요?”

“맞아. 체온은 항상 따뜻해서 냉각(冷却)되지 않으니까 밖에서 찬 기운을 맞으면서 저장해 놓도록 안배를 한 것이지. 그러니까 조물주는 외형(外形)보다는 실익(實益)을 선택한 것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잠시 생각을 정리한 채운이 다시 감탄하면서 말을 이었다.

“아하~! 그런 깊은 뜻이 있었네요. 새삼스럽게 조물주의 혜안에 감동했어요. 과연 그 이치가 옳겠어요. 정말 오행의 이치는 무궁무진(無窮無盡)하네요.”

“그야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명학일까? 아니면 자연의 이치일까?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명학은 그야말로 거대한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풍경이 꽤 괜찮은 절경(絶境) 정도라고 봐야지. 그렇다면 이번엔 반대로 알이 음이고 닭이 양이 되는 이치를 설명해 볼 텐가?”

우창은 빠르게 반응하는 채운과 이야기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봐서 이번에는 음양을 뒤집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말을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소란스러운 대로 가만히 뒀다. 궁리하고 토론하는 것도 알찬 답을 얻는 과정에서 필수적(必須的)인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채운이 말을 꺼냈다.

“제가 이렇게 음양법을 논하는 법은 서투르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스승님의 격려에 힘을 입어서 생각해 본다면, 알이 음이 되면 부화가 되어서 나온 병아리를 양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음양백변(陰陽百變)의 이치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 이렇게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니까 오늘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네. 하하하~!”

“감동이에요. 스승님~!”

“그 봐, 농담(弄談)삼아 꺼낸 계(鷄)와 란(卵)의 이야기에서도 얻을 것이 적지 않잖은가? 공부는 이렇게 하면 되는 거라네.”

“알겠어요. 이제부터는 무엇이라도 궁금하면 여쭐 거에요. 호호호~!”

채운은 이렇게 하면서 오행원의 학풍(學風)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출렁이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계수(癸水)를 알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왜 안 되겠어? 어서 말해 봐. 무엇을 생각했는지 말이야.”

“불알이라고 말씀하는 순간에 물방울이 떠올랐어요. 물방울도 알처럼 동그랗게 생겼잖아요.”

“맞아, 그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하는 거라네. 유사성(類似性)과 상이성(相異性)을 관찰하면서 공부하는 것이지.”

“스승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람이라는 것은 유사성이지만 남녀는 상이성이라고 하겠죠?”

“당연하지. 잘하고 있네. 하하하~!”

“만약에 계(癸)를 알이라고 하고 음이라고 한다면 양은 무엇이 될까요?”

채운이 이렇게 말하자 우창은 손가락으로 찻잔에서 차를 찍어서 탁자에 한 방울 떨어트리면서 말했다.

“오늘 탁자 위에 이 물방울이 내일에도 이 자리에 있을까?”

“아니죠. 증발해서 사라졌겠죠.”

“그것이 양이고 임(壬)이지 뭐겠어?”

“아하~! 그렇다면 그 물방울은 없어진 거네요?”

“원, 그럴 리가 있나. 없어지면 안 되지.”

“예? 그럼요?”

“수증기(水蒸氣)가 되어서 허공을 떠다니겠지. 그러다가 다시 음(陰)을 만나면 물방울이 되는 거라네.”

“어떻게 음을 만나죠? 음을 만난다는 말은 다시 물방울을 만나야하는 것이잖아요?”

“냉기(冷氣)도 음이라고 할 수가 있다네. 마치 아침에 나가보면 풀 끝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면 알 일이지.”

“사주를 공부하는 것은 운명을 보는 것이 목적인 줄로만 알았어요. 자연의 이치를 살피는 것이 사주풀이를 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하나만 알아서는 쓸모가 없다는 것도 생각하게 되네요.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그 방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어요. 참 공부의 의미는 살아있는 이치를 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맞죠?”

“맞아, 나도 처음에는 결과를 얻고자 조바심을 내었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그것은 실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만 깨달았을 따름인데, 정작 그것을 알고 나니까 자연의 이치가 보이고, 사주를 풀이한다는 것도 자연의 일부(一部)로 살아가는 인간의 길흉을 읽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네.”

“그러니까, 수(水)를 이해하는 데는 물과 수증기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음양을 이해하면서 임계(壬癸)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막상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요. 왜냐면 임(壬)은 바닷물이고 계(癸)는 우물물이라는 것에서 생각도 머물러버리는 까닭이지 싶어요. 이것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것에는 스승님의 안내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렇게 쉬운 공부를 왜 그렇게도 어렵게 접근했을까 싶기도 해요.”

“그것도 또한 인연이지. 이렇게 공부하다가 인연이 되면 또 저렇게도 공부하면서 점차로 지혜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라네.”

“정말이에요. 벌써 한 시진(時辰:2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생각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겠어요. 이렇게 해서 한 달이 지나고 나면 또 어떤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인지 벌써 궁금해져요. 호호호~!”

채운이 진심으로 공부에 대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우창의 마음도 기뻤다.

“자, 그것은 마음속에만 담아둬도 되겠군. 계수(癸水)를 지식(知識)이라고 한다면 임수(壬水)는 뭐라고 할 수가 있을까?”

“아니, 수(水)를 지식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수를 음양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라는 말씀인 거죠? 음....”

채운이 생각하는 사이에 우창도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정리가 되었는지 말했다.

“채운의 생각으로는 지식을 물방울로 생각해 봤어요. 그렇다면 물방울이 증발하는 것을 임(壬)이라고 한다면 지식을 활용(活用)하는 것이 임(壬)일까요? 실로 이렇게 말씀은 드리면서도 이것이 말이 되는지도 자신은 없어요.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던져봤어요. 호호호~!”

“왜?”

우창이 이렇게 묻는 것은 비록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말을 할지언정 그 연유를 물어야 하는 것이 공부의 과정인 까닭이다. 그러자 채운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답을 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호호호~! 아무렇게나 말을 해도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그 이유는 지식은 가만히 담아두기만 하면 물통에 물이 담긴 것과 같지만 그 물로 무엇인가를 한다면 비로소 물의 존재감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어요. 밥을 짓거나 세탁을 하거나 혹은 마시더라도 말이죠.”

“옳지, 잘 생각하셨네. 바로 그거야.”

“와우~! 스승님을 실망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호호호~!”

“그렇다면 일단은 물통에 지식이 담겨있어야 하겠지?”

“맞아요.”

“담긴 지식이 있으면 비로소 뭔가를 위해서 운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네. 그래서 임(壬)을 궁리(窮理)와 탐구(探究)라고 한다네.”

“아하~! 궁리와 탐구라는 말씀을 들으니까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겠어요. 그렇다면 계(癸)는 모아서 저장하는 물 창고라고 해도 되겠어요. 그렇게 담긴 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궁리하는 것은 임(壬)의 역할이니까 그것은 계와 무관한 것이 된다는 말씀이죠?”

“그렇다네. 하하하~!”

“아니, 어쩌다가 보니까 이렇게 이야기가 깊어지고 또 넓어졌네요.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흥미진진(興味津津)해요.”

“그런 거야. 수(水)는 수집(收集)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응용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 되겠지?”

“일단 그렇게 정리를 해놓고서 또 더 깊은 생각을 해 봐야 하겠어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어서 좋아요. 전개한 다음에는 매듭을 짓고서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하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무엇이든 좋아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임(壬)은 음양이 무엇이라고 했지?”

“그야 당연히 양이죠 양수(陽水)니까요.”

“양은 안에 있을까? 아니면 밖에 있을까?”

“물은 아래의 그릇에 있고, 수증기는 밖의 공간에 있으니까 당연히 임도 밖에 있는 것이겠어요. 이렇게 궁리하는 것이 맞겠죠? 호호호~!”

채운은 스스로 그렇게 말을 하고서도 확신이 서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덤벙대면서 실수하는 것과는 다르기때문에 우창도 그러한 조심성이 맘에 들었다.